![현대와 전통의 타종시대를 초월한 긴 울림 70세를 훌쩍 넘긴 원광식 주철장과 현대작가 8인이 ‘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데 호흡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었다. 겉 모양새만이 아닌 천 년의 소리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종을 현대에 살게 하는 일이라 말하는 원광식 주철장 곁에서 8인의 현대작가는 종의 질감과 소리, 그 울림에 취해 ‘무현금 프로젝트’를 완성해냈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ha.go.kr%2Fuploads%2Fsite%2Fkor%2FBBS_201601131108261040)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원광식 주철장과 현대작가 8인의 ‘무현금 프로젝트’ 01 최재연 <울림> 02 유비호 <무현금(無絃琴)> 03 나승렬 <명명(明鳴)_빛과 울림> 04 정희우 <종이종> 05 권병준 <흐느끼는 종들> 06 유승호 <역사는 울림이고, 번진다, 부서진다> 07 김선태 <수호자, 수행자, 포세이돈> 08 김택기 <Human, Energy>](http://www.cha.go.kr/uploads/site/kor/BBS_201601131108376000)
깊숙이 들여다본 ‘종’의 진면목
타종 후 울리는 종소리는 10리 밖에서나 지척에서나 같게 들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공간을 초월한 진한 울림인 셈이다. 53년간 장인으로 살아온 원광식 주철장은 종이 가진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를 내는 종이야말로 살아 있는 전통이자, 현대와의 조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은 타고난 성질 자체가 ‘울림’을 갖고있기에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특유의 성격을 지닌 문화재라는 것. 그러한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 ‘무현금 프로젝트’는 진천 종박물관 개관 10주년과 원광식 주철장의 장인 53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주관했던 진천 종박물관 원보현 학예연구사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주제로 삼았지만 그 결과가 하나의 상품이나 이벤트로 끝나 겉도는 조화가 되지 않기 위해 기획부터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저 역시 공예(범종)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주변에 다양한 콜라보를 봐왔습니다. 하지만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모티브만 가지고 와, 자신의 작품에 얹혀놓는 식의 겉핥기는 공허하다 느꼈죠. 그러한 콜라보가 예쁘고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작가 간의, 혹은 전통과 현대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이번 무현금 프로젝트를 통해 ‘소통’과 ‘이해’의 기간을 6개월간 두며 자신만의 장르 안에서 ‘종’의 미학을 어떻게 풀어낼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사이 수십 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원광식 주철장과 현대작가들은 술잔을 많이도 기울였다. 일생을 종에 바치고도 여전히 배울 것 투성이라며, 프로젝트를 통해 종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는 원광식 주철장.
“47년 전 쇳물이 튀어 눈 하나를 종에 넣어놓고 살았지만 지금도 종에 대한 일편단심은 사그라들지 않아요. 계승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누누이 얘기하죠. 전통은 ‘나’를 찾는 일이라고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로 인해 종은 죄다 전쟁 무기로 실려갔어요.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도 일본 문화와 혼재되어 있었죠. 그래서 일본과 중국의 종 제작 업체를 찾아다니며 한국 종의 전통기법의 흐름을 알아내고자 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우리의 시대별로 진화한 종의 놀라운 변천을 다시금 시연하고 복원해내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나이는 칠순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할 일이 태산같아요. 손상된 우리나라의 국보급 종의 복원은 물론 아시아권의 다양한 종들을 공부하고 만들어,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각각의 종이 갖고있는 울림을 전해줄 생각입니다. 이번 현대작가들과의 소통도 또하나의 환기이자 도전이라 의미가 있었습니다.”
일반 금속공예와 달리 ‘종’은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길이와 부피, 소재 등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원광식 주철장은 만드는 과정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는다면 종이 울리는 천년의 소리는 꾸준히 지속될 수 있기에, 기록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어느덧 2년째 접어든 에밀레종 복원 또한 본래 1년이었던 계획을 2배로 늘렸다. 원광식 주철장은 까다로운 ‘종’의 얼굴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와의 만남을 가진 8인의 현대작가는 사진, 탁본, 금속공예, 동양화, 진동소자를 이용한 소리연출 등 ‘종’이 가진 면모를 낱낱이 들여다보며 화려한 변주를 시작했다. 난생처음 ‘종’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내면으로 주고받고, 작품으로 소통하는 값진 시간이 완성된 것이다.
예술은 변주의 즐거움에 빠졌다!
진천 종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원광식 주철장의 작업장은 프로젝트 진행 내내 왁자지껄했다. 녹인 주철을 바닥에 흘리고, 이를 찬물로 굳히며 생긴 쇳물 잔해를 모아 김택기 작가는 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범종이 사람에게 전하는 감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탁본을 이용해 문양을 강조한 정희우 작가의 <종이종>, 같은 종이라도 치는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는 원광식 주철장의 말을 자신 안의 울림으로 표현한 나승렬 작가의 <명명(明鳴)-빛과 울림> 등 다양한 작품이 종을 한층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돕는다.
그 중에서도 원광식 주철장은 잊을 수 없는 열정의 작가로 ‘권병준’ 씨를 꼽는다. 원광식 주철장이 만든 종에 진동소자를 부착해 타격 없이 공진하게 만든 <흐느끼는 종들>을 선보인 것. 전시관 내에서 타종 없이 정기적인 주기를 갖고 옅게 흐르는 종 소리는 평온과 더불어 이곳이 실제하지 않는 선계(仙界)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10여 개의 종들이 서로 다른 여음으로 화답하는 모습은 그간 원광식 주철장과 권병준 작가가 나눈 대화이기도 했다. 몇 주간 전시관에서 살다시피 한 권병준 작가는 자신의 실험적인 전시마다 <흐느끼는 종들>을 선보이고 있다.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의 오픈 전시와 히로시마현대미술관에서 갖는 평화 70주년 프로젝트 전시에 함께 하게 되었다. 이런 기념비적인 전시를 함께할 수 있게 해준 권병준 작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원광식 주철장도 그의 전시를 보기 위해 히로시마로 날아갈 계획을 갖고있다.
과거의 정신과 소리를 알지 못하면 일어날 수 없었던 기적 같은 예술의 변주가 그저 놀랍고 반갑기만 하다. 전시관 내부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종의 맥놀이(종의 소리가 맥박소리와 같다는 의미)가 잃어버렸던 천년의 소리를 울리게 해줘 ‘다행이다’라고 되뇌며 마음에 안식을 들여본다.
![09 원광식 주철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이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10 선림원터종](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cha.go.kr%2Fuploads%2Fsite%2Fkor%2FBBS_201601131109047680)
글‧최용미 사진‧안지섭
문화재청 작성일 201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