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준이 안녕! 3주차 일요일 아침에도 다시 돌아온 윤별의 종교 편지! 저번 주에 통화로 어디 갈 건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 이번에도 불교, 기독교, 천주교 카페에 야무지게 하나씩 올려둬야겠어. 사실 물어봐도 세 곳 모두에 올려두긴 할 것 같아. 막상 일요일 됐을 때 네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동기들이랑 똑같은 곳에 갈 테니 네가 가고자 하는 곳에 못 가게 될 수도 있잖아. 가장 큰 이유는, 내 편지 때문에 정작 네가 가고 싶은 활동에는 참여 못 하고 억지로 다른 곳에 가게 되는 게 싫어. 네가 진짜로 가고 싶은 곳에 갔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걸랑. 주마다 나눠주시는 간식에도 변화가 있고, 진행하시는 활동에도 변화가 있다며! 재미있어 보이는 곳에 가. 일주일 동안 고된 훈련 하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텐데 일요일만이라도 그 스트레스 풀 수 있는 곳에 가야지! 핸드폰 받아서 유튜브 보는 거랑 다 같이 큰 화면 통해 유튜브 보는 거랑 느낌도 다르고 즐거움도 다르잖아. 특히 중요한 점은 간식. 혁준이 먹고싶은 거 먹어라. 맘스터치 나눠주실 때도 있다는 소문이...
너랑 떨어져 있는 3주 동안 내 딴에는 편지를 되게 많이 쓴 것 같은데 너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 편지들 잘 읽고 있어?! 종교 편지, 인터넷 편지, 손 편지 이렇게 쓰다 보니 내 안 좋은 기억력으로 인해 가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쓸 때도 있는 거 같아. 미안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막상 말을 고르다 보면 남는 게 비슷비슷해지더라. 내 마음을 최대한 압축해서 담을 수 있으면서도 극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말들. 사랑해, 보고 싶어 진짜 자주 말하게 돼. 그치만 어떡해, 내 진심인걸.
나는 아직도 혁준이가 너무 보고 싶고 길을 걸을 때든 영화를 볼 때든 항상 네 생각을 해. 요즘 내 의지력이 진짜 대박인 거 알아?! 날이 추워져서 길거리에 겨울 간식이 되게 많아. 붕어빵, 호떡, 국화빵, 계란빵 등등. 붕어빵을 볼 때면 혜화 올사에서 너랑 먹었던 미니 붕어빵이 생각나. 팥 천 원, 슈크림 천 원 사서 혁준이 집 가는 길에 호호 불며 나눠 먹는 게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집에 도착하면 그걸 품에 안고 뜨거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바닥에 몸 지지며 넷플릭스 봤잖아. 호떡을 보면 겨울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즐겨 먹었던 수수 호떡이 생각나고, 계란빵을 보면 안국에서 봉사 중에 길 걷다가 우연히 먹은 계란빵이 생각난다. 미처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왜 너와의 추억이 안 묻은 것들이 없는지. 21년 중 일 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너는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렸어. 계란빵은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다.
작년 2학기부터 올해 1학기까지 서울 곳곳 봉사를 다녔던 일들도 이제 한 페이지의 좋은 추억들로 자리 잡았어. 그때는 봉사하는 것조차 추억이 될 줄 몰랐는데. 혁준이가 싫어했었잖아, 기억나? 왜 아침부터 여기를 가야 하냐며 툴툴거리다가도 가는 길에 맛있는 거 사 먹고 기분 좋아지는 귀요미였는데. 너 없었다면 나도 봉사 못 했을 거야. 서로가 서로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시절이다. 아무튼 난 올겨울 첫 간식도 너랑 함께 시작하고 싶어서 안 사 먹는 중이야. 누가 옆에서 먹어도, 한 입 권해줘도 안 먹고 꾹 참고 있어. 객기 중 하나겠지만, 왜인지 내 마음이 그냥 그래. 너 없이 처음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 수료 휴가 나오면 그때 먹자!
며칠 전에 갤러리 탐방을 했어. 우리 웃긴 추억이 되게 많더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져서, 혼자 두 시간을 꼬박 우리 사진만 본 거 같아. 오직 사진만으로도 나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너랑 처음으로 같이 찍었던 인생네컷을 찾았어. 무슨 사진인지 감이 와?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찍은 건데, 사진만 봐도 너랑 나 사이의 어색하고 풋풋한 연애 초 기운이 느껴지더라. 여름에 더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혁준이는 그대로야. 네가 땀 닦느라 프레임에서 탈출한 사진도 한 컷 포함되어 있거든. 올해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때는 네가 나에게 호떡을 만들어줬었어. 이것도 되게 웃기지. 내가 발렌타인데이 챙겨달라고 너한테 징징댔었는데, 네가 알겠다며 대뜸 호떡을 구워줬지. 손에 비닐장갑 끼고 호떡 뒤집기에 열중하는 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어. 세상에 이런 남자가 또 어디 있겠어?! 메뉴 선정부터 만드는 모습까지 박혁준 그 자체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나 송도 데려다주겠다고 꼭두새벽부터 같이 셔틀 탔던 사진도 발견했어. 나도 이제 막 입학했을 때라 혹여나 걸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셔틀에 탔었지. 그때의 네 행동은 나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정말 설명이 불가능한 거 같아. 누가 여자친구 데려다주러 1시간 30분 차 타고 송도 오고, 점심 한 끼 먹이겠다고 수업 기다려주고, 밥 먹고는 다시 2시간 지하철 타고 서울 가냐고. 진심으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네가 나를 위해 노력한 만큼, 나도 네가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더욱 힘낼 테야. 앞으로도 편지 자주 쓰고 애정 표현 많이 할게. 네가 불안해할 만한 일들은 만들지 않을 거고,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 이따 통화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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