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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기 위해 울트라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盛夏(성하)"의 계절....
*수안보 인증센타*라이딩계에 입문하지 않았다면,결코,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와 인연이 닿지 않았을텐데, 벌써 여러 번 이 곳에 내 발을 내딛었다마의 태자가 누이 동생인 덕주 공주와 함께 꺼이 꺼이 울면서 넘었던 하늘재와 미륵 대원지,그리고 월악산의 마애불을 답사 라이딩 할 적에도 이 수안보에서 내려 라이딩을 했고, 오천 자전거 길을 달릴 때도 여기서 부터 출발을 하였다이제, 곧 소조령과 이화령을 업힐 할 예정이다
*漱玉 瀑布(수옥 폭포)*
수안보에서 소조령을 넘자 마자 괴산군 연풍면(행촌 사거리)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수옥폭포는
조령 3관문에서 소조령으로 흘러 내리는 계류가 절벽을 통과 하면서 만들어진 높이 20미터의 규모가 큰 폭포이다
깍아 지르는 절벽과 울창한 숲이 천연의 요새를 이루는곳에 숨어 있는 이 폭포는 3단 폭포인데, 상류 2곳은 청옥색의 깊은 沼(소)를 이루고 있다
고려 시대의 공민왕이 "紅巾賊(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 하였다 한다
*漱玉亭(수옥정)*
수옥폭포를 바라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수옥정은
연풍 현감으로 있었던 "조유수"가
자신의 삼촌인 "조상우"의 인품과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지은 亭子(정자)로,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린 정자를 근래, 새롭게 복원하였다
*괴산 원풍리 마애 2불 병좌상*(1)
수옥 폭포에서, 행촌 4거리로 달리다 보면, 왼편 산 자락에 위치한 "磨崖 2佛 竝坐像(마애 2불 병좌상)"이다
마애 2불 병좌상이란 거대한 암벽에 두개의 불상을 나란히 새겨 놓은 부처상을 말하는데,
현재, "보물 제 97호"로 지정되어 있다.
*괴산 원풍리 마애 2불 병좌상*(2)
높이 12 미터의 거대한 암벽에 6미터나 되는 方形(방형:네모형)의 "龕室(감실:불교에서 작은 금동불이나 목불을 모시는 집,혹은 聖堂(성당)에서 聖體(성체)를 모셔 두는 공간)"을 파고
그 안에 2개의 불상을 조각하여 나란히 배치하였다
흔히, 불상은 삼존불,
즉, 한 중앙에 본존불을 두고, 양 옆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는
즉, 세 개의 불상을 모시는게 원칙인데, 마애 2불 병좌상같이 불상이 2개 밖에 없는 2불 병좌상은 국내에서는 매우 희귀하다고 한다
*괴산 원풍리 마애 2불 병좌상*(3)
이 괴산 마애 2불 병좌상은 "法華經(법화경)"에 나오는 다보여래와 석가여래의 설화를 반영하고 있다
즉, 다보여래는 석가모니가 설법을 할 때
다보탑과 함께 땅에서 치솟아 올라, 석가모니의 설법이 "진실"임을 증언 했다 한다
괴산 마애 2불 병좌상은 나옹선사가 절을 세울 자리를 찾아 전국을 헤메던 중
이곳에 이르러 계곡의 물맛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처음 맛보는 "生後一味"처럼 물 맛이 너무나 맛이 있어,
이 곳에 절을 짓고 평생토록 道(도)를 닦았다 한다
*괴산 원풍리 마애 2불 병좌상*(4)
마애 2불 병좌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쪽 불상의 코가 떨어져 없어진 곳에 인위적으로
플라스틱으로 없어졌던 코를 만들어 꿰어 놓았다
이는 어느 佛心(불심)이 깊은 佛子(불자)가 안타까히 여기고 이렇게 히였다 한다
전해지는 말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주기 위하여 출병한 중국의 이여송이 원풍리의 마애불을 보고
이 마애불의 형상이 흡사 壯士(장사)의 모습처럼 생겨서, 이곳에서 壯士(장사)가 많이 나겠다고 생각을 하여, 조선의 정기와 혈맥을 끊기 위하여 코를 베어 버렸다는 說(설)과
남아 선호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의 여인네들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코를 떼어 갔다는
설도 있다
허나, 실은
우측 불상의 코는 陽刻(양각)되어 있고,좌측 불상의 코는 陰刻(음각)어 있어
이 음각된 불상의 코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흡사 인위적으로 코를 떼어 버린것 같이 보인다는 학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불상에 총알 자국의 흉터가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6,25동란 뒤, 미군들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마애불울 표적 삼아 총질을 해대어 생겼다 한다
이화령 정상에 드디어, 도착!!!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을 이어주는 높이 548미터의 이화령은
소백산맥의 조령산과 갈미봉의 鞍部(안부)에 위치해 있는데, 모든 라이더들에게는 일종의 통과 의례같은 곳이다
이화령은 인문, 지리, 역사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고개를 기점으로 한강 문화권에서 낙동강 문화권으로 넘어 가게 된다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조령산 정상 아래쪽에 있는 고개가 이화령 고개, 윗쪽 고개는 "문경새재", 그리고 더 윗쪽은 이른바 "하늘재"이다
이화령의 업힐 코스는 약 5키로로 길 바닥에 5키로,4키로,3키로...... 착실하게 표시된 적힌 이정표만 바라 보며, 천천히 힘을 안배하면,누구나 도전해 볼만한 코스이다
이화령 고갯길은 이제 자동차가 다니는 길보다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줄겨 찾는 명 코스로 더 유명하다
이화령 정상에서 까마득하게 바라다 보이는 곳은 괴산군 연풍군이다
저 멀리 직선화된 국도 3호선과 중부 내륙 고속도로가 나란히 이화령 땅밑으로 빨려 드러 가는 모습이 아련히 보인다
방금 힘들게 업힐하여 올라 온 약 5키로의 九折羊腸(구절양장)의 길,,,, 마치 양의 창자처럼 이리 저리 꼬부라진 모습이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 놓은 듯 가물 가물하게 보인다
백두대간 이화령을 경계로 문경쪽은 문경읍 각시리요, 괴산군쪽은 연풍면 행촌 4거리이다
*이화령 정상*(5)
(이화령 터널)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이어 주던 이화령 고개는
일제 강점기 시절, 도로 개설과 민족 정기 말살을 이유로 단절 되었는데,
2012년 복원 공사를 통해, 야생 동물들의 로드 킬 방지를 위해 생태길 조성과 함께 이화령 터널을 만듬에 따라, 백두대간은 다시 연결되었다
솟아 오르는 백두대간이여!....백두대간 복원에 붙여
눈부시구나
드 높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과 물 보듬고
어흥! 등뼈를 세우고 구비 구비 치닫는 우리의 백두 대간
봄 오면 진달래 산 벗꽃 다투어 피고
뻐꾸기 멧 비둘기 우짖는 여름
가을이면 타 오르는 만산 홍엽
겨울엔 설화 피어 이 세상 밝히는
금수강산 한 허리가 빛 잔치이구나/중략 /이근배
*이화령 정상*(7)
(백두 대간 이화령을 잇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이화령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단절되어, 87년만에 다시 연결되어 민족 정기를 되살리고, 생태계를 복원 하였다
*이화령 정상*(8)
(이화정)
문경 방향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이화정은 이화령의 조령산 등산로 입구, 들머리에 세워져 있다
*이화령 정상*(9)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유명한 경북 안동 출신의 유안진 시인의 시비다
문경새재는
날아 가는 새들도 쉬어 가는 고개
영동 영남의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길,
보부상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쉬어 가는 곳,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주흘산과 대자연을 즐기로 찾아 오는 곳이 문경 새재라고 하였던가?
*새마을 운동 始發地(시발지)*
(각서리 마을)
문경새재에서 문 경방향으로 다운 힐하여 처음 보이는 첫 동네가 문경읍의 "각서리 마을"이다
각서리 마을의 초입에 웬 "새마을 운동 시발지"라는 입석이 세워져 있는데, 글쎄?.....
지금 현재도 포항과 청도등 여러 지자체에서는 서로 자기의 지역이 새마을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始發地(시발지)다" 라고 주장을 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인데......
*문경 새재*(1)
(제 1관문인 주흘문 성곽)
"문경새재"는 "죽령"과 "추풍령"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고갯길로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 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다
문경새재는
1,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란 의미로 ,...鳥嶺(조령)
2,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란 의미로 ,...草岾(초점)
3,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4,"새롭게 만든 고개"등의 뜻이 담겨져 있다
문경 새재 옛길은
"명승 제 3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현재, 국가 지정 명승길은
문경 새재길을 포함하여 "죽령 옛길", "문경 토끼비리 길", "구룡령 옛길"을 포함하여 총 4군데다
*문경 새재*(2)
(옛 길 보존 기념비)
1978년 문경새재 옛길을 포장하려던 경북도의 계획에 대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옛길을 포장하면,
자동차가 출입을 하게 되어, 보존과 관리가 어려우니, 이 일대를 "도립 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였다
그 덕분에 다행히 문경 새재의 옛길이 이 정도 나마 보존되고 있다
*문경 새재*(3)
(문경새재 아리랑,1 )
문경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가락으로 감아 돌고, 장단으로 솟구치니, 이것이 곧, 문경 새재 아리랑이다
*문경 새재*(4)
(문경새재 아리랑,2 )
문경 새재 아리랑은
고종 때 우리나라에 미국인 선교사로 와 있던 "헐버트"에 의해,
조선의 민요로 채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문경 새재*(5)
(문경새재 아리랑,3 )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큰 아기 손질에 놀아 난다.....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문경 새재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에는 짖굿은 해학이 담겨있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 한 민족의 애환이 오롯이 담긴 문경 새재 아라랑의 한 가락을 부르며
험한 문경 새재를 넘었던 것이다
*문경 새재*(6)
(선비의 상,1)
문경 새재는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넘나 들었던 길이었기 때문에
전통사회의 구심점을 이루었던 지성과 인격의 상징이었고,
우리 나라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미래를 창조 하고자 했던
옛 선비들의 뜻을 기리고자, 문경새재에 이 "선비의 상"을 세웠다
선비의 상은 문경 새재 아리랑의 碑林(비림) 건너편에 있다
*문경 새재*(7)
(선비의 상,2)
문경새재의 선비의 상은 다양한 꽤 큰 규모의 6가지가 있는데,
선비의 평소의 생활 모습에서 부터 관직에 올랐을 때의 마음가짐과 또 관직에서 물러난 후,
다시 고향에 돌아 와, 후학을 양성하는 모습등을 담았다
*문경 새재*(8)
(선비의 상,3)
6 가지의 선비 조각상에는
조각상과 관련된 시 구절이 적혀 있는데
퇴계 이황, 다산 정양용, 율곡 이이등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들의 글이 적혀 있다
*문경 새재*(9)
(신길원 현감 충렬비)
임진왜란 당시 문경 현감이었던, 신길원 현감은 관병 20명과 함께 왜군에게 항거하다 왜군에게 붙잡혔는데,
붙잡혀도 굴복하지 않자, 사지를 절단 당하고 순국하셨다.
이에, 숙종은 신길원의 마음을 높이 사, 忠烈碑(충렬비)를 세워 주었다
*문경 새재*(10)
(야외 공연장)
문경 새재 입구에 있는 공연장의 모습이다
문경 새재에서 행하는 달빛 여행등 각종 행사 시,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문경 새재*(11)
(옛길 박물관,1)
옛길 박물관은 "길"을 주제로 한 우리 나라 최초의 전문 박물관이다
*문경 새재*(12)
(옛길 박물관,2)....기리고차
옛길 박물관 앞뜰에 전시해 놓은 이 "기리고차"는
조선 시대 때 거리를 측정하던 수레로
1리를 갈 때 마다
나무로 만든 인형이 북을 쳐서, 거리를 알리게 만든 "자동 측정용 수레"이다
(드라마 세종대왕 촬영용으로 만든 소품이다)
*문경 새재*(13)
(문경 새재 과거길)
옛날, 선비들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세 갈래의 길이 있었다.
그 세 길중
주~욱 미끄러진다는 "죽령", 추풍 낙엽처럼 뻘러진다는 "추풍령"은 절대로 넘지를 않았고
"경사스러운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를 가진 "문경 새재"만을 넘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고 한다
*문경 새재*(14)
( 기묘한 노송과 交龜亭:교귀정)
"교귀정"은 새로 부임하는 경상 감사가 경상도에 첫 발을 내 딛고, 업무와 관인을 인수 인계 받던 장소이다
교귀정 옆의 노송은 보면, 볼수록 특이한 樹型(수형)으로 신비감을 더해 주는데,
나무의 뿌리는 교귀정 방향으로, 줄기는 길손들이 쉬어 가도록 남쪽으로 향해 있으며,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춤을 추는 듯한 형태를 띄고 있다
*문경 새재*(15)
(궁예의 마지막 장소 촬영지)
교귀정 앞 계곡에 있는 이 너럭 바위는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마지막을 촬영한 곳이다(실제로는 평강에서 피살됨)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궁예의 마지막 독백)
*문경 새재*(16) (제1관문 :주흘관)
문경새재에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가 왜군에게 초토화되었던 안타까운 역사 때문에
이를 교훈으로 삼아
제1관문인 주흘관. 제 2관문인 조곡관, 제3관문인 조령관등 총 3군데의 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위 사진의 제 1관문인 주흘관의 성곽은 바깥으로 휘어져 있어, 남쪽에서 쳐 들어오는 적을 방어 하도록 설계 되어 있다
*문경 새재*(17)
(제 2관문:조곡관)
제 2관문인 조곡관은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때 신충원에 의하여 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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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새재*(18)
(제 3관문:조령관)
제 3관문인 조령관은 문경 새재의 정상에 세워진 관문이다
차곡 차곡 쌓은 불규칙한 크기의 돌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영남대로 문경문*
영남 대로는 조선 왕조 성립과 함께 구체적으로 윤곽이 드러 난 교통로로
한양과 동래를 잇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였다
문경 시내에 있는 이 문의 현판 글씨는
우리 나라 서예계 대가인 "초정 권창륜 선생"의 글씨이다
*문경 불정역(폐역)*
새재길의 자전거 인증센타기 있는 불정역은
한 때는 기차로 석탄과 사람을 실어 나르던 문경인들의 애환과 아련한 추억의 묻어 있는 아주 작은 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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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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