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작가 한복용씨의 글을 읽고
오늘은 마음적으로 좀 한가해서 에세이스트를 집어 들었다.
어떤 수필을 한편 읽어 볼까 하다가 이번 가을 쎄미나에서
주제 수필로 떠오른 신인 당선작 한천희 전에 눈이 머물렀다.
먼저 한천희 전 제목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구전 소설 한천희 전 이런 감각이 와서 야! 이 제목이 매력적이다.
구전 야화를 접 하는 듯해서 눈길이 간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누군가가 한천희전 이야기를 해서 그것이 무슨 이야기 일까 듣기만 하고도 궁금증이 쫑긋하고 섰었는데 시간이 여의 칠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 읽었다.
오늘은 수필이 읽히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보려한다.
수필을 읽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건 중에 하나가
1. 호기심을 유발하는 매력 있는 제목이라 본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사람도 좋은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작명가를 찾아가서 큰 돈을 들여서 이름을 짓지 않는가. 동물이나 식물, 생명이 없는 모든 것에도 이름은 붙어있다. 책을 고를 때도 우선 그 책의 이름 제목이 좋으면 손이 먼저 가서 떠들어 보게 된다.
수필도 마찬가지라 본다. 제목은 그 수필의 얼굴이라 본다. 첫인상이 좋으면 성격 까지도 짐작을 하듯이 글의 제목도 이와 같아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보기 때문에 “한천희 전”은 제목에서부터 관심을 갖도록 한 것은 성공적인 선택이라 볼 수 있었다.
2. 다음은 호기심을 유발 시키는 효과 있는 서두가 대단히 중요 하다 본다.
나부터도 서두에 흐름이 신선하지 않으면 책을 덮기 일쑤이다. 서두에서 많은 글을 지웠다 썼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서두는 수필이라는 단거리 경주에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단거리 경주에서 출발이 좋아야 앞설 수 있는 것과 같이 독자의 눈에 서두가 관심을 끌어야 덮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 첫마디가 전면을 읽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천희 전은 큰 제목에 큰 기대를 했던 부분에 약간 실망을 주는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였음을 알고 좀 맥이 풀렸다고 할까? 傳이라는 큰 끝 자를 넣으므로 인해서 이 수필이 중편 수필로 갔으면 더 효과가 나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중간 한천희씨의 없는 집에 장남으로 태어나 삐뚤어진 곳으로 가지 않고 건실하게 성장하여 가슴으로 지은 집을 바라보며 마누라의 구시렁댐도 무언으로 답하며 담배를 피우는 부분등은 “ 니들이 인생을 나만큼 알아?” 하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한천희라는 밥에 맛있는 반찬을 더 맛깔 나는 말씨를 늘어놓아 야! 밥이 더 먹고 싶다는 충동을 주는 주제를 끌고 가는 강한 흐름이 없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필자의 나이도 인생을 살아온 사람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나이만큼의 맛을 가미 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호기심을 유발 시키는 부분은 첫 작품이기 때문에 피그말리온 효과를 보기 위해 후하게 반절의 성공이라 볼수 있겠다.
3. 마지막은 여운 있는 결말을 기대한다.
수필도 사람처럼 처음 사귐이 좋으면 오래 사귀게 되듯이, 사람 첫인상이 좋으면 비교적 마지막도 아름다운 결말을 지듯이 수필도 마찬가지라 본다.
영화를 보더라도 영화의 라스트 씬이 세월이 지나도 두고두고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듯이 한편의 수필도 꼭 극적인 드라마의 라스트 씬 처럼 여운을 남겨주는 일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실감 없는 추상적인 결말로 쓸 때 그 맺음이 가슴에 뭐가 걸린 듯 참 거북하다. 글도 마찬 가지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글은 龍頭蛇尾 격, 마지막 부분에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독자만의 생각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은 아직도 젊은 기대주 작가 한복용씨를 보면서 참 젊을 때 시작해서 좋겠다 하는 부러움도 있고, 그날 잠깐 인사한 인연의 선물로 감히 졸필의 독후감을 여기에 올려 본다.
앞으로 쓰는 수필이 잘 읽히는 수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움이 되면은 좋겠고, 이글이 필자의 힘을 빼는 일은 더더욱 없기를 고대하며, 저도 그렇게 잘 읽히는 수필 쓰기를 염원하는 사람중에 한 사람으로써 나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한복용씨 김종완 선생님 밑에서 수필문단의 큰 꽃이 되기를 염원하며...
댓글 11
조정은 : 07.10.10. 11:29 임선생님. 글을 보시는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중편 수필로 해서 조금 깊게 이야기가 다뤄졌다면 참 좋았을 것 같네요. 정말 그리고 결미의 여운도 더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전 생각없이 사실 감동만 했어요.
仁泉 : 07.10.11. 12:21 제 감상에 동의 하시는 우리 조정은 선생 댓글에 힘이 불끈 ^0^ 아자! 가자! 에세이스트로! 와우~~~
조정은 : 07.10.10. 11:26 전 아직 한복용씨의 한천희전을 이해하고 있는지 자신은 없습니다만, 특이하게 읽었어요. 지난한 삶을 살아내는 한천희씨의 인물됨의 깊이와 자세가 작가의 주관적인 감상을 개입시키지 않고 잘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한천희씨가 집을 짓고 가꾸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독특했어요. 한천희씨가 지은 집은 그냥 일반인들의 주거 공간과는 좀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세상 속에서 세상 이상의 꿈을 꾸며 그 꿈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치열하듯이 한천희씨는 집을 가꾸는 일이 또 다른 자기를 세우는 일이고 지치는 당신의 영혼에 받치는 선물인 거 같아서 싸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개똥이 : 07.10.10. 16:28 잔잔한 감동이지요. 필부필부의 삶을 대변한다는 뜻에서 공감했습니다. 우리 서민들의 삶 말이지요.
仁泉 : 07.10.11. 12:29 匹夫匹婦, 甲男乙女,張三李四 라. 대부분의 삶이 다 그러하더이다.
박경주 : 07.10.10. 19:16 담담히 풀어나간 <한천희 전>. 한 가정의 장남의 역할과 한 여자의 남편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자랑스런 한천희님께 약주 한 잔 대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좋은 글이었습니다.
한복용 : 07.10.10. 22:40 임선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바쁜 날이었습니다. 느지막이 카페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만났습니다. 송구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리지 뭡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입니다. 원고를 넘기고 묘한 기분에 사흘인가를 불안하게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직 글쓰기가 뭔지도 모르는데, 수필을 배운다고 열심히 서울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에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에 명심 또 명심할 밖에요.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ㅎㅎ
仁泉 : 07.10.11. 12:18 젊음의 큰 재산을 거머쥐고 있는 한복용씨 관심 따뜻하게 받아 주셨군요. 제가 피력한 이 글은 저도 가야 할 길이기에 짧고 긴 차이 밖에 없죠. 열심히 같이 갑시다. let,s go funny day.
김지영 : 07.10.11. 10:29 저도 한천희전을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한복용씨는 신인이지만 한 작품을 퇴고하기까지 100번은 고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작가입니다.
개똥이 : 07.10.11. 18:21 으윽 강적이다. 제가 글 쓰면 보통 10-최고 30회 이상 고치는 정도인데....100번이라.. 이거 장난이 아니네요^^;; 완전히 글을 달달 외우시겠내요^^ 무서워요......으흑
한복용 : 07.10.11. 18:39 김지영 선생님께서 농담하신 거예요. 뭐가 뭔지 몰라서 자꾸 보기는 하지만,,,너무 겁먹지 마세요. 개똥쌤~~^^
첫댓글 수필쪽을 검색하다가 한복용선생님의 등단작 '한천희전'에 관한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7년만에 재조명해 보는 일도 뜻이 있다고 생각되어 작품과 당시(2007년 10월)의 선배작가들의
반응을 올려 봤습니다.
리뷰하신 후 소감도 환영합니다.
또한 2007년도 에세이스트의 세미나에 주제로 선정되어 김종완선생님께서 강의한 -수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문학이야기에 리바이벌 했습니다. 일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