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1. 3. 21(주일) - 사순절 다섯째 주일 - (2021년 12주)
제목; “예수님께 묻는 질문”
성경; 막 14:12-26 (p.80) (시 51:1-2,7, 198<284>, 216<356>, 3)
<예배의 부름> (시 51:1-2,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명상하며 금식하고 참회하며 보내는 경건(영성)과 제자 훈련의 계절 사순절다섯 번째 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 평강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어제 20일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이었습니다. 20일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봄으로 진입하고, 밤의 길이보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빛이 지배하는 계절로 들어갑니다. 제가 지난 주 중에 New Life 4월호 원고를 넘겨주면서 주로 우리 교회 활동 사진이 들어가는 “20면에 봄을 알리는 꽃들”이라는 제목으로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벗꽃, 백목련, 자목련 등 꽃 사진을 실었습니다(☞ 사진 보며). ‘코로나19’가 아직도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하고, 지난 겨울이 눈도 많이 오고 매우 추웠지만, 봄은 오고 있음을 기억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 베드로와 제자들의 근자감에 기초한 호언장담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던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예고한 말씀(14:27-31) 바로 앞부분의 말씀으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음을 앞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최후의 만찬과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3년 동안 제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과 먹고 마시고 자고 했지만, 아직도 분위가 파악도,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부족한 제자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대학 입시생이 없어서 대학 입시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지만. 해마다 3월 초가 되면, 서울대학교에 어느 고등학교가 몇 명 합격시켰는가? 하면서 소위 어느 고등학교가 명문인가? 하는 순위를 매깁니다.
외국에서도 입시가 다 끝나면서 이런 일들을 하는데, 금년도 대학 입시에서 영국 런던에 있는 학생 90% 이상이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이주해온 이민자인 한 공립학교에서 영국 최고 명문 고등학교인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를 제치고, 영국 최고 명문 대학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 가장 많은 학생을 합격시켰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신문에 난 제목이 “런던 흙수저 고교의 반란…명문 사립 꺾었어요” “옥스퍼드·케임브리지大 55명 합격… 48명 보낸 명문 이튼 제쳐” “학생 98%가 소수인종, 6시 등교·3주마다 시험보며 기적 일궈”등으로. 대한민국으로 치면 “개천에서 용 난”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사진 보며)
영국 런던에서 둘째로 가난한 자치구인 뉴엄에 위치한 ‘브램턴 매너 아카데미’(BramptonManor Academy) 고등학교입니다. 올해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 잠정 합격한 학생 55명으로. 올해 입시에서 영국 최고 명문 사립인 이튼 칼리지보다 옥스브리지 잠정 합격생을 더 많이 배출한 학교가 되었습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16일(화, 현지 시각) 오전 6시. 영국 런던 동부의 공립고 ‘브램턴 매너 아카데미' 정문 앞에 2층 버스가 서자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습니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1년 넘게 매일 첫차로 등교한다는 13학년(한국 고3) 새뮤얼(18) 군은 “과외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돼 수업 시작 2시간 전 학교에 와서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이 학교 전교생 580명 중 100여 명이 오전 6시에 등교해 이런 자율 학습을 합니다.
남보다 일찍 하루를 여는 이 학교가 올해 입시에서 영국 최고 명문 사립인 이튼 칼리지보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잠정 합격생을 더 많이 배출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최근 보도 자료를 내고 “개교 이래 최대인 55명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입학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연간 학비만 약 6,500만원에 달하는 이튼 칼리지(48명)보다 7명이 많습니다. 공립은 학비가 무료입니다. 영국에선 고3 초에 일종의 예비고사 성적으로 대학에 잠정 합격한 뒤, 학년 말에 치는 본고사 성적으로 최종 합격이 결정됩니다. 상위권 학생은 대부분 잠정 합격 대학에 그대로 최종 합격합니다.
이 학교 학생들의 출신 배경은 이런 성과를 더 돋보이게 합니다. 런던에서 둘째로 빈곤율이 높은 자치구 뉴엄에 있는 이 학교에선 학생 다섯 중 한 명꼴로 무료 급식을 받고 있습니다. 전교생의 98%가 흑인·아시아인 등 소수 인종이며, 3분의 2 이상이 영어를 모국어가 아닌 제2언어로 사용합니다.
파트타임 간병인으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고 집에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하룬 셰코니(18) 군도 1년째 아침 6시에 등교합니다. 수업은 오후 2시 30분쯤 끝나지만 방과 후 저녁 6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한 뒤 집에 갑니다. 옥스퍼드 입학 제안을 받은 그는 “공부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지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나와 친구들이 증명했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동네 공립학교의 성공 이야기는 13년 전 다요 올루코시 교장부임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나이지리아 연방정부대학 출신인 그는 2012년 중학교 과정만 있던 학교에 고등학교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2년 만인 2014년 첫 케임브리지 합격생을 배출했고, 2018년엔 ’옥스브리지'에 25명, 올해엔 55명을 입학시키게 됐습니다. 그는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대영제국 최고 훈장(OBE)’을 받았습니다.
그는 공정한 기회와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강조합니다. 그는 2019년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우리 학교가 런던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있지만 가정 환경, 출신 배경 등이 학생의 학업 및 사회적 성취에 장애물이 될 순 없다”며 “양질의 교육, 큰 꿈,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의 모토도 ‘노력과 투지를 통한 성공’(Success through effort and determination)입니다. 케임브리지에 잠정 합격한 소냐 로카이 양은 “이 학교 입학 때부터 선생님에게 끈질기게 들은 건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공부하면 뭐든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며 “내가 우리 집안에서 처음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됐다”고 했습니다.
한 기자가 학생들에게 “이 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성취 지향적인 면학 분위기’와 ‘엄격한 규율’을 꼽았습니다. 실제 학교 건물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가로·세로 2m짜리 ‘옥스브리지 게시판‘이 보입니다. 게시판엔 옥스브리지에 입학한 졸업생 이름과 전공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로카이 양은 “학교에 올 때마다 그 이름들을 보며 나도 꼭 이름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고 했습니다.
3주에 한 번씩 치르는 시험도 학생들 성취 욕구를 자극했다고 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올해 케임브리지 법대에 잠정 합격한 대니얼 해리(18) 군은 “잦은 시험은 나를 계속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습니다.
엄격한 학교 규율도 공부에만 집중할 환경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영국 10대의 인사 방법인 ‘주먹 인사'는 절대 금지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호칭할 때도 이름을 부르면 안 되고, 항상 ’서(Sir)‘나 ’미스터(Mr), 미즈(Ms)‘를 붙여야 합니다. 복장도 교복에 검은 구두만 허용됩니다. 방글라데시 출신 타스니아 타신(17) 양은 “아침에 옷 고를 시간을 아껴 주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해리 군도 “다소 빡빡한 규율이 우리 의무와 본분이 학생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율’을 강조하며, 0교시 수업을 없애고, 두발, 복장을 자율화하고, ‘평준화’라는 말로 ‘선택적 수업, 심화 학습’ 등을 없애므로, ‘바보 평준화’를 만드는 우리 교육하고 너무나 다르지요?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면 알지만, 우리보다 민주주의를 훨씬 먼저 시작했고, 자유가 더 보장되는 영국 등 유럽 국가들에 가보면, 거의 대부분 학교가 교복을 입으며, 그 교복과 신발이 천편일률적으로 검정색 일색입니다. 학생들이 입고 신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이지만 방종(放縱)이 되면 안 되고, 자율이 좋은 것이지만 제약 없는 자율은 일탈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명상하며 금식하고 참회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사순절을 보내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므로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II.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막 14:12-25)은 ‘유월절 만찬의 준비’(12-16)와 ‘최후의 만찬’(17-26)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후의 만찬’은 다시 ‘가룟 유다의 배신 예언’(17-21)과 ‘성만찬의 제정’(22-25)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유월절 식사를 어디서 어떻게 준비하는 구도와. 반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제공하는 구도로 맞물려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에 기초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만찬’에 관해서 먼저 간략하게 살펴본 후에 오늘 본문의 대화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교제’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말씀의 예전’과 ‘성례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예전’, 즉 ‘설교’는 초대 교회에서 사역과 증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과 교제하시고,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게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배의 예전인 ‘성례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예전으로써 말씀과 함께 예배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성례전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살아가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주님에게 연접된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확인하는 예전입니다. 이 예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1. 성례(전)란 용어의 의미 :
‘성례’를 의미하는 헬라어 ‘뮈스테리온’(μυστηριον)은 ‘신비’, ‘비밀’을 뜻하며, ‘신비’에 관계된 것으로서 신성한, 혹은 신에게 바쳐진 어떤 것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과거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말씀의 선포로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의 라틴어 번역이 ‘사크라멘툼’(sacramentum)이고 여기에서 영어 ‘새크라멘트’(sacrament)가 나왔습니다. 이 용어는 언제나 신비적이고 성스러운 어떤 것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것을 표현하는 데 적용되어 왔습니다.
2. 성례(전)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의하면 “성례전은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나타내고 그 안에 있는 우리의 도움을 확정하기 위하여(고전 10:16, 11:25-26, 갈 3:27) 하나님께서(마 28:19, 고전 11:23) 직접 제정하여 주신 거룩한 표요, 은총의 계약(롬 4:11, 창 17:9-10)에 대한 인치심이다. 그와 동시에 교회에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을(롬 15:8, 출 12:48, 창 34:14) 구별하기 위해서 주신 보이는 표지이다. 또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롬 6:3-4, 고전 10:16,2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봉사하게 하기 위하여 제정하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례」혹은 「성례전」(Sacraments)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징표”라는 뜻입니다.
3. 성례(전)의 종류 :
기독교 교회의(개신교) 성례는 ①세례, ②성찬두 가지가 있습니다(가톨릭은 7성례 : 세례, 견진, 성체<성찬>, 고해, 종부<환자>, 신품<서품>, 혼배<혼인>). ①세례는 예수님께서 친히 받으시고 제정하신 예식이며, ②성찬 역시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거룩한 예식으로, 성례는 ‘구속의 표’인 동시에 ‘신자’임을 확증하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세례와 성찬 등 거룩한 예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은총의 보이는 형태로, 세상 끝날까지 교회가 공적으로 거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4. 세례란?
‘세례’를 의미하는 헬라어 ‘밥티스마’(βαπτισμα)는 ‘잠근다’ ‘씻는다’ ‘온몸에 충만시킨다’(막 7:4)는 뜻을 가진 ‘밥티조’(βαπτιζω)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여기에서 영어 ‘뱁티즘’(baptism)이란 말이 나왔으며, 우리는 ‘세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용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는 대로 물에 잠기는 ‘침례’나, 물을 뿌리는 ‘세례’나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란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죄를 씻는 것입니다. 세례는 단순히 의식이 아니고 옛 죄의 사람은 물 속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신생의 깊은 의미를 지닌 가장 중요한 예식입니다.
5. 성찬(성만찬)이란?
1) 성찬의 기원
성찬 성례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밤에 친히 제정하신 예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맞이하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떡은 자신의 몸이요, 포도즙은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데서 유래합니다.
원래 그 시간은 유대인들이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는 유월절이었으나 그 의미와 대상은 새로운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여 주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심을 보여주시는 구속 사건의 내용을 담은 예전이었습니다. 이 성찬 성례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바로 사도들에 의하여 철저히 매주일 준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예배의 핵심으로 지켜온 존엄한 예배 예전으로 이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 성찬이란 용어의 의미
‘성찬’을 의미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친교’, ‘교제’, ‘나눔’이란 뜻입니다. 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행 2:42)하는데 몰두했습니다. 이때부터 ‘떡을 떼는 것’은 성찬, 성만찬, 주의 만찬, 또는 거룩한 교통(Holy Communion)이라 불려졌습니다. 특히 이 성찬은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언약(계약) 관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3) 성찬의 신학과 의미
첫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기념하며, 둘째,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셋째, 영적 양식을 공급받아 은혜의 생활을 하며, 넷째, 주님과 교제하며, 다섯째, 화해의 사도로 보냄 받는 파송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성찬의 영적 의의
성찬은 신자들이 신앙을 성장시키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존하는데 중요한 예식입니다. 신자들이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참예하고 구원의 은혜를 확인하며 하늘의 소망을 더욱 굳게 해주는, 성찬에 참예하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요 4:13-14, 6:35, 47-58).
5) 성찬의 재료
성찬은 떡과 포도즙(주)으로 하는데,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포도즙(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합니다(고전 11:23-28).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친히 제정해주신 ‘성찬’은 예배의 필수 요소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 성찬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아직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께 엉뚱한 질문을 하는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인 부모는 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면 “오늘 뭐 배웠니?”라고 묻지만. 유대인 부모는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습니다. 유대 랍비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는 “가장 좋은 학생은 가장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다”라고 했습니다. 나쁜 대답은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질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사진 보며)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은 제자들이 무교절의 첫 날(12)에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때가 때인지라 유월절 음식을 장만해야 하기에 여쭈었지만. 주님은 유월절 음식에 더하여 성만찬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두 가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는. 사순절의 준비는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묻기만 해도 주님은 진귀한 음식을 제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1. 어디로 갈까요?(12a)
제자들에게 당장 급한 것은 유월절 음식을 먹을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난감해하며 “우리가 어디로 가서”(12)준비할지를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두 제자를 성내로 보내시며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그 집의 다락방에서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13).
당시 관습에 의하면 유월절을 맞이하면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했으며(3번, 유월절, 초실절, 수장절), 유월절 식사 역시 예루살렘 성내에서 먹어야만 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주민들은 다른 지방에서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식사 자리와 잠자리를 요청하였을 때 거절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이런 관습이 적용되기는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교권자들에 의해 핍박받던 이들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도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6:8-9,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여튼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어디에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일차적으로 장소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유월절 식사 장소를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두 제자를 성내로 보내시며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그 집의 다락방에서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13-15).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13-15)
유월절 명절에 아무 예고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랍비를 빙자하여 방을 요구하는 것이나 그 요구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매우 이례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통해 예수님의 섭리는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성취됨을 깨우쳐 줍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을 장소를 물었지만. 예수님은 구원의 징표인 떡과 잔을 나눌 자리를 지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다락방에 갔지만, 펼쳐진 식탁은 주님의 몸과 피의 나누는 성만찬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난감할 때 물어야 합니다. “주님. 어디로 갈까요?” 묻기만 하면 지시해 주십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
존 헤론(John W. Heron) 선교사님(1856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1870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테네시주 테네시대학 의학과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1885년 장로교 선교사가 되어 조선으로 파견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는 테네시대학교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성령을 체험하고 기도 중에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땅끝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선교잡지에 실린 이수정의 편지를 읽고 마음을 굳히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이여!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주시오! 조선 백성들은… 어둠 속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보장된 모교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오게 됩니다. 1886년 “조선정부병원 제1차 연도 보고서”에 따르면, 1만 460명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역했습니다. 하지만 1890년, 전염병으로 34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고종의 윤허로 양화진 외국인묘지가 지정되어 첫 번째로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있는 곳이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2. 무엇을 원하십니까?(12b)
제자들은 유월절을 맞이했지만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지켜온 유월절이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무엇을)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12)음식을 어떻게 장만할지를 물은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당시 관습에 의하면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자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유대교권자들에 의해 예수님을 따르거나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핍박이 가해졌음을 생각할 때(“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요 9:22),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도 없고, 양을 잡고 누룩 없는 빵(무교병)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도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는 주님을 위한 마음만 있었지. 마음에 있는 바를 실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여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무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싫어하지 않고, 그 마음을 받으시고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게 하시고,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음에 위로를 받게 됩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뿐인 무능한 자이지만 마음을 내놓고 물을 때 주께서 준비하여 먹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주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 무엇을 원하십니까?”묻기만 하면 주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프랑스 오세르 출신의 여성 시인 마리 노엘(Marie Noel)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질문과 주님의 답변을 다음의 시구로 표현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찾으셨나요?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는 당신께 드릴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략) 저는 너무 지쳤습니다. 아무 것도, 좋은 말 한마디조차 없습니다. (중략) 아무것도 없고, 삶의 혐오, 권태. 황폐만 있을 뿐입니다.” / “그것들을 내게 다오."/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조급함. (중략) 쉬려는 열망에 휘둘려서 (중략) 싫증을 냅니다. 오, 나의 하나님 !” / “그것들을 내게 다오.” / “영혼의 무감각, 제 무기력에 대한 후회와 그보다 더 강한 무기력….” / “그것들을 내게 다오.” / “주님, 그렇지만 이미 당신께서는 넝마주이처럼 폐품과 쓰레기를 모으십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하늘나라.”
3. 나는 아니지요?(19)
예수님은 유월절 음식을 먹는 중에 갑자기 자신을 팔 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8). “너희 중의 한 사람”이라는 말은 제자들의 귀에 맑은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지전 기절초풍할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같이 나눈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 한다’는 갖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권에서 함께 음식을 먹은 후에 배반하는 것은 가장 악한 비인륜적인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시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런 당시 상황에서“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불안에 빠집니다. 근심 속에 한 사람씩 “나는 아니지요?”(19)라고 차례로 묻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논공행상(論功行狀)에 관심이 집중되어 “누가 크냐”(막 9:34)며 쟁론했었지만. 이제는 나는 아니라며 뒷걸음칩니다. 천국에 대한 이해가 물리적 현실인 세상 나라에 집착된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주님은 이름은 거명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20)라며 자기를 팔 자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이어서 악한 일에 이용당하는 딱한 인생에 대한 긍휼을 드러냅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21b). 죄는 미워도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도 근심 속에 물어야 합니다. “나는 아니지요?” 그러면 주님의 마음을 전달받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가 시행되던 시절에 ‘반 드 브록’이라는 경호원이 한 할머니의 집에 나타나 아들을 데리고 나가서 총살한 후 시신에 불을 질렀습니다. 7년 후 다시 나타나 남편을 끌고 갔다가 2년 후에 다시 나타나 할머니 앞에서 남편에게 석유를 붓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때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였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범인이 법정에 섰습니다. 진실화해위원이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그토록 잔인하게 가족을 파괴한 사람을 정의롭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하셨기에 내가 그를 용서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것은 내 남편의 바람이 기도했습니다.” 범인은 그 말에 압도되어 실신했고. 피해자 가족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ging Grace)를 불렀습니다. 눈물의 찬송 속에 진실과 화해가 일어났습니다.
*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통 405장)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았듯이 유월절 준비를 위해 제자들이 한 것이라고는 주님께 물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무지몽매한 제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Augustine)을 ‘기념’(아남네시스, ἀνάμνησις)하심으로 계속된 교제의 길, ‘성찬’(Communion Service)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에서 막막할 때. 능력이 모자라 갖출 수 없을 때, 유혹으로 근심될 때 우리는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묻기만 해도 주님은 고귀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성례” 혹은 “성례전”(Sacraments)을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징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II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만찬과 가룟 유다의 배신, 떡과 포도즙을 나누면서 이것은 나의 살과 피라고 하신 성만찬의 제정 등의 관점에서 말씀을 나눈 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준비해야 하는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이라는 관점에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어떻게 준비할지 예수님께 여쭤봅니다(12).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12) 예수님은 이 질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세세히 일러주신 후 제자들이 이를 따르도록 합니다. 사실상 제자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순종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준비 자체를 ‘제자들이 한 것’으로 선언합니다(16). 제자들은 예수님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려 하고, 예수님은 또 제자에게 식사를 제공하십니다.
과연 사순절을 보내고 고난주간을 앞둔 우리가 그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습니까? 그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그 무슨 벽돌 하나라도 얹을 수 있을까요? 결국 그리스도인이 사순절을 준비하는 것은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여쭤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하여 드릴 수 있는 것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무익한 종으로서 겸비한 마음을 품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순절 특별새벽기도’를 하고, ‘금식 기도’를 한다고 해서 주님께 어떤 유익을 끼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의 보잘 것 없는 준비에도,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 것이라고 예언하시면서도 ‘성만찬’의 제정을 통하여 구원의 감격을 계속해서 누리도록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준비에 주님은 너무나 진귀한 양식을 제공해 주십니다. ‘생명의 복음’입니다. 심지어 받을 만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도 아니요, 주님을 그토록 배신하며 떠났던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주는 ‘살과 피’입니다. 그 식탁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 똑같이 무지하므로, ‘누구보다 내가 낫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만이라도. ‘내 옆의 아무개 집사보다 나는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고백하며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서의 말씀,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누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사건의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같이 주님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2-3)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성만찬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며,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고, 천국을 소망하며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갑시다.아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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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1일(주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2부예배 facebook 실시간 송출한 동영상 url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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