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긋지긋한 木子 쪽발이 유태 야스페르츠 유태기리사독 악마집단의 사이코패스의 집단 괴소리 쪽발이의 丙申血穴 淚聲이 메아리를 치고 있다.
3.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 사실이 아니라는데...
안다고 알았다고 이 木子 丙申유태쪽발아. 그만 좀 하라는데 개속 환단고기에 무진년 기원전 2333년 그게 조작 사이비역사학자들의 歪曲이야?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누차 강조하지만 古朝鮮은 국호로 고나라로 朝鮮으로 처음으로 나라를 朝鮮으로 칭한 것이 기원전 2311년 庚寅年으로 경인년에 建國 한 것이 아니다, 始稱國號朝鮮이지 건국은 당요 요임금 즉위년도 戊辰年 기원전 2333년과 同時를 同年으로 해석한 일연선사의 주석의 문제다 즉 확인 결과 서거정의 동국통감에 "당요 요임금은 무진년"이 아니고 "甲辰年"으로 기원전 2357년이다고 밝혔는데 이미 600년전에 밝힌 사실을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建國"이 아니다 그 때가 아니다 그럼 언제야? "단군, 만들어진 신화"로 알았다고 이 丙申 사이코패스들아, 아예 없애라고 그리고는 사울엘리트국 건국 100주년 준비나 해라.
古朝鮮 국호 大夫餘로 개칭한 사실 즉 이는 기원전 2333년도 아닌 기원전 425년으로 그럼 이 수 188년 大夫餘라고 빼지 말지 이 개새끼 쪽발이 이 병도 대역천자야. 그게 더 문제야.
고조선의 후기에 대부여로 국호를 개칭하다
병진년(丙辰年, 기원전 425년) 주(周) 고왕(考王) 때 고조선(古朝鮮)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고치시고 도읍을 백악(白岳)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으며, 여전히 8조(條)를 세우셨다.
환단고기. 삼성기전 상.
인정도 안하지만 우선 古朝鮮이 국호다 고 나라다, 고 천자의 천지로 나라라는 사실 그리고 夫餘로 扶餘는 나라라는 "국호"로 국명이 없이는 국명이 아니다는 소리는 인정 좀 해라.
歷史學 =Histori-O-Graphy로 문자사용년도가 이 병도 사이코패스의 한국사대관에 "한사군 설치 기원전 108년후"로 하면 저러한 쓰레기 새끼가 논할 거리는 없다 할 말이 없어야지 나불나불 유태인 쪽발이처럼 무슨 맨날 조작이고 가리지날인지 무슨 古記-고조선가림다로 고조선기고 산수가림다=배달 留記로 유기는 배달신시의 산수가림다=留記고, 고조선 가림다는 古記로 고조선유기를 古記로 고유명사다.
여담으로, 환단고기의 황당한 내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환단고기를 가리켜 '황당(荒唐)고기'나 '황당괴기(怪奇)'라는 별칭으로도 부르고는 한다. 그건 또 무슨 고기인가요 맛있나요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반응이다.
이 유립의 환단고기[1979년 출간]은 정사도 야사도 아니고 "한국의 역사이야기 =史話"로 구분 좀 해라다. 어째서 역사학을 말하는데 누가 參考하는 용어해석 지명참고도서를 가지고 '학술"논문의 주 테마로 하는가?
參考=reference for unknown words or "geographical position" etc.
즉 平壤은 고유명사가 아니더라, 阿斯達은 지명으로 九州의 하나지 首都라는 말은 장당평 坪=京이고 "平壤"은 陽으로 漢州의 平壤=漢陽, 료주의 평양=료양[遼陽], 심주의 평양 = 심양[瀋陽], 낙랑조선 은국의 평양/도읍은? 安陽 등등이다.
야스페르츠 이문영과 함께 유태기독교 사이코패스 [주]아사달 대표이사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수료자, 서 창녕 위키백과 편집이사.
단군의 연도에 대한 반론[편집]
1.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의 천황은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것을 사실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본에 나라다운 나라가 들어선 것은 2세기 무렵에 고분시대가 되어서부터이며, 그 이전의 기록은 그저 신화로 치부할 뿐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고대 국가들의 기원이라는 기록들에서 그 연대가 사실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 중국에서조차도 공화 원년(기원전 842년) 이전의 연도는 부정확하다고 하여 그저 추정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으며, 은나라 이전의 역사는 아예 그냥 신화로만 보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최근에 중국 정부가 이를 부정하고 신화 수준의 기록들에 대해 연대를 비정하는 공정을 수행하였으며, 그 덕분에 역사학계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2.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 이야기와 대체 차이가 뭡니까? 애초에 단군신화에서 연도를 추산하는 기준이 되는 요임금조차도 신화 속의 인물입니다.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렸다시피, 헤라클레스가 하늘의 별이 된지 50년 후에 즉위했다는 말과 눈꼽만큼도 차이가 없습니다. 단군 기원인 기원전 2333년을 사실, 혹은 추정의 영역이라도 해당한다면 일본 천황의 시점도 기원전 6세기가 되는 것이고, 중국의 역사도 삼황오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에서는 아무도 그런 신화에 불과한 기록들에 근거한 연도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단군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3. 역사는 책에 써 있는 것을 그대로 읽고 외우는 학문이 아닙니다. 역사책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부정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전근대 사람들이 그 역사책의 기록을 그대로 믿었다한들, 현대의 역사학자들도 믿어야 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일개 역사학자보다 역사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일개 과학자보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대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0:05 (KST)
그럴 듯 하지만 전부 헛소리 虛構다.
이러한 위키백과의 고조선을 엿조선, 옛조선 유태기독교인들의 헛소리, "여호와[女好媧] 쪽발년신명을 믿으시오, 불신자는 헬조선[故朝鮮] 이외다." 는 헛소리 정말 허구에 찬 빈 소리다. 고조선이 국호인데 왜 古 천부삼인 符命인 고 神으로도 쓰는 麻古=三神의 나라가 삼신나라 三天아래 마을[麻乙 마고의 땅 三地]로 三韓이 그리도 더럽고 미개한 신라의 鄕札이라서 버리냐고?
檀紀 檀君紀元을 부정하겠다는 소리는 너무도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 기원전 108년은 누가 이런 개소리를 했냐고? 즉 "위만조선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누가 이런 헛소리를 했냐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은 한반도 서북부와 중국 랴오둥(遼東)반도에 걸쳐 있었다.
예컨대 고조선의 도읍이었다고 하는 왕검성(王儉城)의 위치만 해도 평양설, 요동설, 요동에서 평양으로의 이동설 등이 대립하고 있다.
정인성 영남대 교수는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의 위치를 고고학으로 분석했다.
그는 많은 학자가 지지하는 평양설을 거부하면서 "평양성은 고구려가 축성하기 전에 한정적으로 점유되거나 고분이 만들어진 공간으로, 어떤 성곽 유구에서도 낙랑이나 위만조선 시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랴오둥반도에 존재했고, 한나라 군현이 설치된 뒤에 대동강 유역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고조선 영역에서 출토된 청동기를 고찰한 뒤 초기 고조선은 제작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청동거울인 '다뉴경'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기원전 4세기 이후인 후기 고조선 시기에는 다뉴경 네트워크가 붕괴하고 한반도에 세형동검 문화권이 발달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고조선은 광활한 제국도, 가상의 나라도 아니다"라며 "유물과 유적 중심의 해석을 해야 고조선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고고학회장인 이남규 한신대 교수는 "고고학계가 고조선을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번 학술대회가 오류로 점철된 고조선 역사를 다소나마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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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나요? 단기 檀君紀元 건국 무진년 기원전 2333년이 문제의 포인트가 아니고 '위만조선"이 고조선이라고 즉 고조선은 엿조선/옛조선으로 "오울드 조선"으로 "단군조선-기자조선??"하고는 "위만조선 기원전 194년 ~ 108년"의 고조선 마지막 왕조라고 그 전에도 있는데???? 원시 부족단체다????
이병도는 한국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22]
- 민족 미통일 및 일부 피침략 시대
- 서북에 잇달아 형성된 동방사회 : 고조선과 그 주위의 여러 종족·부족사회
- 한군 설치 이후의 동방사회 : 한사군─후방계열의 여러 사회─ 삼한 및 삼국의 초기
식민사관이 아니고 "사이코패스 영혼사기꾼"들이 韓民族歷史學을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최소한 양심이 있는 강단주류사학자라면, 古朝鮮은 국호다, 즉 위서라고 해도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등 삼국유사 기이편에 고조선조 고조선으로 국호로 국명이 古고 國號 나라를 달리불러서 朝鮮으로 稱함이라고 한 국호 古朝鮮을 인정해야만 문자가 있다 없다 빌어와서 썼다 아니다는 다음문제고 "시대"구분을 안하고 저런 쓰레기 영혼을 판 우봉이가 병신도네의 이야기로 무슨 역사학을 하냐고? 송호정은 고조선박사 1호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이병도의 문자로 구분한 "한국의 역사시대"는 한사군설치 기원전 108년"으로 단군기원을 논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사이코패스 강단주류사학자이 쪽발이 여호와 울트라 시오니스트들의 독재독점사학이다.
남들은 없어서 조작하는 판에 우리는 있다는 역사 고조선시대사=고대사로 수 2096년 하고 설정만 해도 논의의 역사시대구분으로 한국이 고대사, 상고사, 태고사는 이러한 환국-배달신시 그리고 고조선/대부여기까지 환단고기로 환단-고조선기로 고조선의 시대 구분으로 "고조선"이 국호로 대부여 수 188년을 넣을 것인가 별도로 수 188년으로 기원전 425년 ~ 기원전 238년으로 나눌 것인가? 그게 선행이지 무슨 전부 아니다 부정이다 엿조선이야? 엣조선 오울드 조선으로 얼리 高麗史야? ?? 뭐가 고대사로 고대시대를 구분으로 이름 좀 쓰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연대가 '삼국유사'에 나온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 경북군위군 일연선사생애관 영정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이 저술한 것으로 고조선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언제라고 할까? 삼국유사에는 고조선 건국연대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위서(魏書)'라는 사서를 인용하여 요임금과 동시에 나라를 세웠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고기(古記)'에 의거해 요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말한다. '경인'은 갑자에 의해서 세는 연도를 가리킨다. 올해는 갑자로 따지면 '병신년'이 된다.
[산] 사이코 패스가 놀고 있다다.
《위서(魏書)》[31]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동안 이어진 단군(壇君)[32] 왕검(王倹)이 아사달(阿斯逹)《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무엽산(無葉山)이라 하였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였으니 백주(白州) 땅[33] 또는 개성(開城) 동쪽에 있으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34]이 이것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 불렀는데 중국의 요(堯) 임금[35]과 같은 시기 [同時]였다.
이를 일연선사가 먼저 쓴 것은 바로 同時로 同年으로 "뒤에 당요 50년은 경인년이 아니고 정사년 즉 무진년에서 50년후면 '丁巳年"인데 이를 경인년 기원전 2311년으로 한 것, 년도다 평양성으로 옯기고 始稱國號朝鮮이라고 한 내용이지 건국이 아니잖아, 완전 개새끼가 엉터리 해석하려고 똥누다 오줌싸고 너가 먹고 설거지해라다.
수도 없이 확인한 것으로 일연선사는 건국고조선으로 한치의 의심도 없이 즉 그 전의 古記전 배달유기는 보지를 못했기에 이를 당요 즉위 同時[동시대]를 同年으로 보고 무진년 기원전 2333년이다 그러니 당요 50년은? "경인년"이 아니고 丁巳年인데??? 하고 당요 요임금 즉위년도를 갑진년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무진년으로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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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연은 '경인년'에 의문을 품고 주석을 붙여 놓았다. 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고 50년은 정사년이므로 경인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요임금은 우리가 태평성대를 이야기할 때 요순시대라고 말하는 그 '요'를 가리킨다. '순'은 요임금 뒤를 이은 순임금을 가리킨다. 고조선이 중국의 전설상의 임금인 요임금 때 세워졌다는 점은 일치하지만 그것이 요임금과 동시인지 그 50년 후인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당고(唐高)[45][46]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庚寅)년 당(唐)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47]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亰)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
우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서 이게 김부식과 일연선사의 진실 原本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곳곳에 누군가 "문자"는 바꾸지 못하고 즉 문자해독술로 보면 말이 안되는 부분들이 곳곳에 있어서 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즉 僞書라는 환단고기, 규원사화 제왕운기 등등, 단기고사, 단서대강 등을 봐도 서로 안맞는 이유는? 바로 발해의 대야발이 지 멋대로 떡칠을 한 곳이 너무 많고 즉 단군 칭호로 檀君 군으로 했는가? 아니다 干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雄=王이고, 檀君은 干으로 標語로는? 아침해빛날 간(倝)=ㅎ한 干이어야 제후 侯가 아니고 우리는 "汗"이라고 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滿番汗, 眞番汗은 일체로 番韓 夫餘라고 나와 있어서 아하 이는 번한=만번한+진번한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건국은 이미 여러차례 검증 통국통감에 이를 확정한 것이 바로 "당요 요임금 즉위는 갑지년 기원전 2357년"이고 당요 25년 무진년에 "단군왕검" 배달나라로 건국하고 경인년에 나라를 달리불러서 朝鮮으로 비로소 처음으로 칭함이 중요 역사사실입니다. 이는 중요도에서 이미
확정한 것으로 일연선사는 同時=동년으로 무진년이라고 한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 일연이 말한 요임금 즉위 원년이 무진년이라는 것은 북송 때 유서(劉恕, 1032~1078)가 지은 '자치통감외기(資治通鑑外紀)'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고조선 건국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사서가 전하는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에 나온 '제왕운기'가 그 책이다. 제왕운기는 이승휴가 지은 책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로 읊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이 건국한 때를 요임금과 같은 무진년이라고 적고 있다. 이승휴도 유서의 설에 따라 요임금이 무진년에 나라를 세웠고 단군도 같은 때 나라를 세운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무진년 개국에 대한 것은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의 '목은집'에서도 볼 수 있다. 목은집에서도 "우리 동방이 당요 무진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조선 초에 편찬한 '고려사'에도 "우리나라는 요임금 때 같이 세워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 권근(權近, 1352~1409)이 지은 '양촌집'이나 조선 왕실의 역사를 적은 '용비어천가'에서도 당요 원년 무진년에 같이 나라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 때가 무진년이라는 설은 그 후 바뀌고 만다. 서진(西晉) 때 황보밀(皇甫謐, 215~282)이라는 학자는 요임금 즉위년을 갑진년이라고 주장했고 북송 때 대학자인 소옹(邵雍, 1011~1077)도 갑진년설을 지지하였다. 사실 요 원년은 이 밖에도 병자년, 정미년, 신묘년 등의 주장도 있다. 잘 모른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요임금은 전설상의 임금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1484년에 고조선 건국년에 대한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다. 서거정(1420~1488)이 편찬한 '동국통감'은 이때까지 따라오던 요임금 개국 무진년설을 버리고 갑진년설을 따르기로 한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요임금과 같은 때에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과 무진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은 많았지만, 갑진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거정은 '동국통감'에 이렇게 썼다.
"지금 살피건대, 요가 일어난 것은 상원 갑자 갑진의 일이며 단군이 일어난 것은 그 후 25년 무진의 일이니, 즉 요와 동시에 세워졌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서거정은 동국통감에 앞서 1476년에 '삼국사절요'를 편찬했는데 이때는 요임금과 동시에 나라를 세웠고 그때가 무진년이라고 써놓았다. 그랬던 것이 8년 만에 자아비판하듯이 요와 동시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 것이다.
동국통감은 성종 때 출간되었지만 세조의 왕명으로 편찬되기 시작한 것이며, 중국의 '자치통감'에 비견되는 정통 사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책이었다. 세조는 자주적인 사서를 만들고자 했으나 성종 때로 편찬이 넘어가면서 사림들이 편찬에 대거 참여하면서 성리학적 사고가 많이 반영되었다. 요임금과 동시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런 성리학적 사고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요임금 원년 갑진년 설에 따라 요임금 25년 무진년으로 결정되었는데, 바로 이 해가 기원전 2333년이다.
예수도 기원전 4년에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대세이나 이 때문에 서기 연도를 모두 뜯어고치지는 않는다. 단기 역시 동국통감에서 확정된 이후 오랜 세월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온 연대인지라 당연히 기원전 2333년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일의 전말은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이 연대를 가지고 엉터리 역사서를 꾸미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확한 지식이다.
[이문영 소설가
이 삼국유사의 주석으로 인한 건국년대가 정사년이 아니다, 무진년은 변함이 없고 단지, 당요 요임금의 즉위년도에 대한 착오로 즉 당요 요임금 즉위년도를 同時=同年으로 무진년 기원전 2333년이라고 하니 당요 50년이면? 정사년인데?? 하는 무진년 당요 요임금의 즉위년도에 대한 오류다. 이를 바로 잡은 것이 "동국통감"으로 어디에서 "당요 요임금"의 즉위년도 甲辰年 기원전 2357년인지를 밝혔으면 좋은데 이를 밝히지 않고 그렇다더라고 하니 문제다, 환단고기류라는 "僞書"들에서는 이를 정확하게 배달신시 제18대 단웅씨 거불단 환웅, 즉 단군왕검의 아버지로 배달나라의 제18대 환웅천왕의 아들이 태자 儉으로 정확하게 나오고 당요 요임금으로 그 계보가 주루룩 즉 "고신씨 곡'부터 기, 그리고 동생 요까지 나옵니다. 즉 거불단 환웅천왕기에 이들이 나온다는 사실로 古記 고조선기전 배달유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유기-고기의 차이 즉 확인 사서의 내용불비에 의한 착오입니다.
제18대 환웅 단웅씨 거불단 환웅기
己巳八年. 高辛氏名嚳卽軒轅之曾孫也, 擧兵侵境, 帝命力通拒守.
己巳(기사, BC2392) 8년. 高辛(고신)씨는 이름이 嚳(곡)으로 軒轅(헌원)은 증손자인데, 병사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하였다. 帝(제)는 力通(력통)에게 명하여 막아 지키게 하였다.
庚午九年. 命蘇豊練兵于綏東.
庚午(경오, BC2391) 9년. 蘇豊(소풍)에게 병사를 綏(수, 수분하 현 산서성 분하)의 동쪽에서 훈련시키도록 하였다.
辛未十年. 高辛再侵, 帝遣吳將軍, 率薰鬻之兵, 西進, 迎擊, 大破之. 高辛不敢復侵, 軍民斥高辛氏, 而定界曰負辛.
辛未(신미, BC2390) 10년. 高辛(고신)이 다시 침범하여 왔는데 帝(제)가 吳將軍(오장군)을 보내어 薰鬻(훈죽)의 군대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저들을 맞아 격퇴하여 크게 이겼다. 고신은 감히 다시 침범하지 못하였으니 군사와 백성들이 고신을 물리친 것이다. 이에 국경을 정하니 負辛(부신)이라 하였다. .
辛丑四十年. 摯卽嚳之子也. 擧兵侵境, 帝遣兵拒守.
辛丑(신축, BC2360) 40년. 摯(지)는 곧 嚳(곡)의 아들인데 병사를 일으켜 변경을 침공하니 帝(제)가 병사를 보내 막아내었다.
癸卯四十二年. 陳克己上言曰.., 摯亂政諸侯請以可伐, 帝不許.
癸卯(계묘, BC2358) 42년. 陳克己(진극기)가 글을 올려 “摯(지)는 어지러운 정치를 하는 제후이므로 마땅히 벌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지만 帝(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甲辰四十三年. 唐堯伐其兄摯, 而卽位, 引兵來侵. 帝命橋牛遣于碣石, 練兵拒守, 堯軍自退.
甲辰(갑진, BC2357) 43년. 唐堯(당요)가 그 형 摯(지)를 벌하고 즉위하였으므로 병사를 이끌고 침략하였다. 帝(제)가 橋牛(교우)에게 碣石(갈석)에서 훈련된 병사로 막아 지키기를 명하니 당요가 스스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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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배달유기 등 배달신시의 제18대 천왕, 단군왕검의 아버지 단웅씨 거불단 환웅천왕기에 실려있는 내용으로 당요로 唐이 아니고 唐堯가 이름이다, 그리고 帝라고 한 적도 없다는 소리로 고신씨 곡이 이름이다 제곡이 아니다. 이를 自我와 彼我로 구분시 고구려이 고추모 등 高씨로 "제곡 고신씨'운운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적군의 후손이야?
고구려(高句麗)가 고씨(高氏)의 성(姓)을 사용(使用)하게 된 것은 고양씨(高陽氏)로부터라는 설이 있고 또한 고신씨(高辛氏)라는 설(說)이 있다. 제곡 고신씨는 현효의 손자이고 황제의 증손이다. 고리국은 고대 고신씨(高辛氏·BC 2476년)의 둘째 아들 설(契)이 도읍(都邑)한 먼 훗날 후손이었던 고리국왕이 이어받아 세워진 나라이다. <진서(晉書)>에 기록되어 있기를, "고구려 사람들이 스스로 고신씨(高辛氏)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성을 고씨(高氏)라 한다."
이는 한나라 劉邦도 선비족으로 "제곡 고신씨"의 후손?? 으로 혼선이 있습니다.
김부식은 진서(晉書)에 있다고 하면서 고구려 역시 고신씨(高辛氏)의 후예이므로 성을 고씨(高氏)라 했다. 그런데 한서 왕망전에 유씨(劉氏)의 시조는 요임금의 아버지 제곡 고신씨로 부터 비롯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漢나라와 고구려는 한뿌리에서 나온것이 아닌가!
한서(漢書) 주석에 의하면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준(準)이라 하였다. 응소(應?), 복건(服虔), 이비(李斐), 문영(文穎), 진작(晋灼), 사고(師古) 등은 모두 준(準)이라고 했다. 특히 응소(應 )는 융고야(隆高也) 준협권준야(準頰權準也) 높이 솟아있다. 그리고 뺨이 고르고 평평하다.라고 적고있다.
그러므로 고조 유방은 죽은 후의 휘호(諱號)가 준(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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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모/주몽으로 "言"라고도 하는데 북부여기 등에서는 해모수의 북부여를 이었다 즉 해모수의 후손으로 오도하는 것으로 '解'가 아닌 맥족중 추나라이름 鄒로 맥족 몽고리 토착민 穢貊族으로 고구려 왕실의 왕족명은? 古鄒加로 몽고추부장장으로 고구려 왕족씨가명이 고추로 몽고추나라 왕씨성이 鄒로 이는 예맥족중 추나라이름으로 재서로 마한조선의 설유/험윤족으로 맥족중 고추모/주몽은 추나라이름 추의 鄒씨로 봐야만 하고 이는 징기스칸이 시조로 "고추모/주몽"이다고 한 점을 부인한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즉 고구려-발해로 高/大/太로 몽고리의 토착민족으로 고래로 몽고리 지역으로 蒙古族이라는 족명은 기원후 8-9세기로 거란족+예맥족은 蒙古族으로 선비족도 설유/험윤족 맹자가 추나라 鄒로 주나라실절 제후국 鄒로 이 문의 해석은 몽고리 토착민 추나라이름 추로 그 자체가 몽고부족의 특징입니다, 고깔모자와 절풍 뒷머리를 바짝치고 "한쪽 다리를 쭉뻣고 절"하는 풍속은 한민족 신한 夫餘 신라 현재 한민족의 풍속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蒙古族 고조선 9한의 하나이나 말단족으로 9. 穢貊족으로 삼한족 백의민족 白族 九韓의 제1족 日本=白族과는 언어/문자/사상 신학 종교 등등 高登神이라고 하거나 수혈신 등은 한국의 경천지교, 마고삼신일체 등 시조관에서도 삼성조지 만들어서 중시조를 민족의 시조로 고등신, 제곡 고신씨라고 하질 않습니다.
檀紀는 거론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 중국정부의 공식 당요 요황제 즉위년도 기원전 2333년이다 이에 고조선은? 자연히 이미 지난 30-40년동안 공식 공정명으로 "東夷古國역사연구회"로 우리보다 낫다, 우리는 엿조선 옛조선 하는 동안 조선은 천자국호로 國으로 낮추어 古國이다고 한 것이 중국정부 고조선공정명으로 東夷古國역사연구회로 이 골자는 산동 등 배달신시의 유적은 물론 홍산문화권의 유물 등은 고국 고조선의 檀君은 이미 동년 기원전 2333년에 "요황제"의 아래 제후국으로 즉 王아래 君으로 중국내 소수민족 조선족의 제후국이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소수민족 조선족"이니 웅녀상 등을 길림성으로 고구려 지역이라고 해서 예맥족이다고 아예 몰아서 길림성으로 가져다 놓고 20미터 웅녀상 등 몰아서 고구려가 고조선이라도 뻐을가고 고구려 공정으로 마무리하는 대담한 짱개새끼이 개뻥사 조작이다.
Emperor Yao
Reign: 2333 BCE–2234 BCE (99 years)
중국공식 즉위년도 기원전 2333년 재위년수 99년 기원전 2234년.. 거기까지는 좋은데 원판으로 출생사망년도에서 ???
사망년도 기원전 2255년 그럼 죽은다음에도 재위 기원전 2234년 귀신황제다는 이야기. ㅎㅎㅎ 완전 놀아요 놀아, 이는 어이되었든 다 고치지 못한 것으로 즉 출생년도와 사망년도도 모른다 그런데 즉위년도는 기원전 2333년 동이고국 단군왕검을 요황제가 제후로 임명했다로 "종속 제후국"으로 "중국 客家族"이 그 때도 있었니???? 완전 짱개떼쟁이 유태잡개들 같다. 여가논리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유태 길버트 도올의 勃起亥史로 필로뽕먹고 록키하기다.
우리 대한민국은 "단군조선=신한"입니다. 삼중고로 정말 황당한 일은?
1. 문자가 없는데 환단고기 등 古記가 나왔다 다 僞書다. 이에 남은 삼국유사의 기이편내용은 조작이 된 것으로 "내용"상 전혀 맞지 않습니다.
당고(唐高)[45][46]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庚寅)년 당(唐)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47]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亰)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이 내용은 무진년에 건국하고 천도?한 것이라고 단군세기에 나오는데 문제는 우리가 文字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황제국, 천자국인 고조선의 경우 首都[坪, 京]이지 都邑은 州都/省都의 일반명사가 "平壤"으로 료주의 평양은 료양[遼陽], 漢州의 平壤=漢陽 등으로 京과 陽[天坪平壤] 夫餘와 扶餘의 차이가 文을 읽는 독해 혹은 諺解의 수준에서 차이가 납니다.
즉 저 平壤城는 都邑의 성으로 平壤으로 "고조선 수도'가 아니고 "신한" 태자국으로 천평에서 그리 멀지 않은 扶餘로 신한의 도읍[平壤]으로 扶餘로 이름하고 그곳의 城을 平壤城이다고 하는 것을 수도-삼한의 도읍/平壤은 扶餘 혹은 三忽[忽제도]로 곳곳에 지뢰밭이다.
2. 단군세기 등 환단고기, 단기고사 단서대강 등등
제대로 쓰다가도 보면 이상하게 "전부 주석"으로 渤海의 당시지명이다?? 干[단군 단간]을 "帝"로 올렸다가 이상하게 "몽고리 汗"은 王? 천왕에 皇에 元皇으로 帝보다 한급 높여서 皇[천황]으로 높인다고 전부 발해의 이름으로 간도? 신한도 전부 고쳐놔서 볼 수가 없다는 것으로 渤海는 산동성으로 발해는 주 강역이 료서=섬서성으로 海東은 청해성 청해의 동쪽의 盛國인데 료나라 거란족은 몽고 유목족이 漢族로 동북삼성으로 들어온 것이 기원전에?? 기원후 1911년 후의 일인데 말갈-여진은 물론, 거란족-몽고족=에맥족이 전부 간도=아침해빛날 간(倝)州의 주인으로 변발쟁이족들 되놈들이 干 단군천자 군자국이 신라인데 아예 박살을 내서 으잉? 凶奴族으로 韓民族의 제1족 白衣民族 白族[白木族 =日本族/白族]이 白丁=賤民으로 주족 土姓이 중화 오월족인 백제왜족 木子와 진나라 좃단 좃가 趙등에 무참히 멸족 왕검씨 王金은 20만명이 멸족당하고 朴씨마져 키가 장대한 북방 夫餘의 단군성골계가 무참하게 왜소족 전주 木子씨이 하인 노예 白丁으로 전락한 이게 마한 맥족 예맥족의 침략사지 무슨 한민족은 어디있냐고/ 전라도 땅이 강역이면 강역이지 한놈도 백제성씨도 없는데 마치 대륙신라의 전주가 백제의 중앙 노른자위?? 라는 개소리 이간질로 나라가 민족이 한민족이 예맥왜족으로 유태엘왜족 쪽발이 나라로 엘리트나라로 滅族 즉 한민족 하나님민족이 결국 "엘리트족으로 여호와 쪽발녀신명"아래 속국 노예족이 될 팔자 더러운 팔자도 다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조선 초기 수도명은 "천평" 서울[神市]라는 사실 없애버림... 환단고기 단군세기...
戊午五十七年. 命築天坪外城, 天坪在吉林東部巨野.
戊午(무오, BC2343) 57년. 天坪(천평) 外城(외성)을 쌓도록 명하였다. 天坪(천평)은 吉林(길림) 동부 큰 들판에 있다.[현 길림성 길림시]
定帝都于太白山下天坪曰徐菀, 帝城曰壬儉城.
帝(제)의 도읍을 太白山(태백산) 아래 天坪(천평)으로 하였으니 서울(徐菀)이라고 하였고, 帝(제)의 城(성)을 壬儉城(임검성)이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단서대강 1920년대 대종교의 신단학회로 1950년도에 나온 것으로 이 또한 "대야발"의 발해문으로 번역한 것을 "한글 번역'판이나 조금 더 나은 것은? 환단고기 단군세기판은 諺文[古文] 등이 中文아니 漢文으로 하고 이상하게, 한국어로 바로 즉 신라 鄕札로 諺文으로 된 것은 전부 삭제되어 "그 내용"의 맥락이 뚝뚝 끊어진 곳이 너무 많습니다.
1. 고조선의 首都로 이를 "天坪"이다 즉 이는 고유명사보다는 서울이라는 鄕語를 문으로 표한 것으로 주의해야할 점은 바로 坪이다 서울은 배달 신시의 神市로 "서울"로 지금까지 마치 徐羅伐 소부리의 취음어라고 한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고 그냥 신라어로 신=서로 울은 市로 이는 神市=서울이 향어=諺語였다는 사실로 왜 이를 없앴는가가 중요합니다 현재 서울을 首都라고 하는 나라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 쉽습니다.발해 마한 예맥 여진 만주원류고 등도 보면 웃긴 것은 나라를 조선으로 한다를 무슨 숙신 주신에서 조선이야?? 아니면 삼수의 물가 潮[白]河 운운하는데 전혀 아니다 즉 삼국유사에 나라를 달리불러 朝鮮으로 문으로 한 것으로 倍達那羅를 배달신시를 배달나라이름은 檀으로 나라를 조선으로 이를 檀朝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일체로 古를 상징하고 나라는 조선으로 古朝鮮이 국호다.
阿斯達(아사달) 下 唐莊坪(당장평)
아사달이 首都가 아니고 딷이름 達로 이는 九州이 하나로 아사달[州]로 시림 길림성은 간주 아침해빛날 간(倝)州 干州면 아사달주로 현 료녕성으로 신라의 尙州고 길림성은 계림주 =始林이다는일일이 찾아서 주석?을 단다고 알아나 주나???
당장평 坪으로 이는 고조선[대부여]의 마지막 수도가 장당경으로 京이다.
단군(壇君)[50]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이 내용은 삼국유사 중 수 188년 "기원전 425년 丙辰年 ~ 기원전 238년 癸亥年"의 내용이 저렇게 수 1908년으로 들어가고 없어진 것으로 대부여기 삭제라는 소리입니다.
의도적 말살로 大夫餘를 말살한 것은? 무조건 쪽발이 이 병도 쥐새끼 쪽발이다 다 똥물 사이코패스로 "쪽발이 이름을 댈 필요가 없다' 이유는 다그치면 이병도가 아니고 쪽발이 쓰다 소키치냐 금서룡이다. 다 필요없다 한국사대관에 쓴 놈이 다 똥물쳐먹어라다.
아사달의 백악산으로 백악산 무엽산 도 '아사달주 즉 현 료녕성의 眞山이고 장당경은 료녕성의 開坪으로 이 坪을 보고는 아하 首都 京이였다고 찍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우리문자를 읽게 됩니다.
2. 단군세기 등 대야발?? 천도했다 발해의 현덕부다???
庚寅二十三年. 帝移都于吉林之西部稱曰平壤, 改國號曰朝鮮. 平壤卽扶餘在太白山之西南地, 是爲平壤城, 卽古之粟末水, 今渤海之顯德府.
庚寅(경인, BC2311) 23년. 帝(제)은 도읍을 吉林(길림)의 서남쪽으로 옮기고 平壤(평양)이라 했으며 국호를 朝鮮(조선)이라고 고쳤다. 평양이란 즉 扶餘(부여)로 太白山(태백산)의 서남쪽 땅인데 이것이 평양성으로서 옛 粟末水(속말수)이며 지금 渤海(발해)의 顯德府(현덕부)이다.[10]
[10] 책을 잘못베껴서 발해란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는데 今渤海라고 적었다.
경인(庚寅)년 당(唐)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47]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亰)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종합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상태로 文字로 보고 다시 저 "발해놈" 대야발은 뭐하는 놈이냐?다.
首都 = 서울 神市로 하늘의 수도는 天秤[천칭]으로 북두칠성으로 이를 서울 首都로 都邑과는 다르다, 즉 도읍으로 주의 도읍으로 도읍은? 平壤으로 문의 차이가 뚜렷했다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神市=서울로 "향어"로 현재도 "서울"이 首都로 京이지 陽이 아니다.
天坪平壤으로 坪=京이고 平壤=陽으로 도읍이라는 일반명사 즉 州의 都邑으로 平壤이고 여기에서 임검성[임금성]이 수도성이고 平壤의 성이 평양성으로 그 격의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壬儉城[金城 등 임금성]으로 王城[皇城]으로 이를 1문으로 하면 王城이지 천자성이지 임검성이다, 王儉城은 거짓으로 사마천의 사기에 王險城[왕험성 = 심히 험한 성이지] 이를 임검성? 아니다.
저 천도 운운은 신한 삼한의 平壤[都邑]으로 격을 높여서 扶餘로 夫餘와의 차이로 삼한의 平壤[도읍]을 扶餘로 현 길림성 宋元市로 길림성 길림시 - 중앙에 수십년동안 쌓은 단웅씨 거불단환웅시부터 天坪의 坪을 버리고 송원시로 조그만 뿌이 사슴농장으로? 이상한 이야기다. 송화강, 속말수로 그 북쪽 재서는 여진족 말갈족 마한인이지만 間道는 "삼한족"으로 신한인데 전부 현? 발해의 현덕부?이건 말자지족의 개소리다.
平壤은 도읍/주도라는 일반명사로 료주의 평양=료양-[遼陽], 심주의 평양=심양[瀋陽] 낙주의 평양[洛陽/落陽] 은국의 도읍 은도=安陽, 현토의 도읍은? 北平으로 坪이 아니다.
漢州의 平壤은 漢陽이다 등등으로 이 京 과 陽은 천평과 平壤의 차이다.
이상한 것이 이 平壤은 평양성 등 고구려는 장안성을 정복하고 "平壤城"으로 西京 혹은 고구려 원 平壤은 산서성 임분시고 국내성은 산서성 료양 료주의 평양 태원시 아래 고요분지 등으로 이는 전부 산서성 료동으로 산서성이 고구려의 주강역으로 나오는데 마치 이 산서성이 간도로 말하는 것은 요상방통이다.
즉 아사달주는 아사는 開天이고 達은 땅으로 삼신강림처는 尙土로 이는 堂이다 藏唐坪은 唐은 堂으로 이는 당연히 尙州=尙土로 堂으로 개천배달지라는 尙州라는 소리가 됩니다 신라는 초기부터 료녕성 아사달주와 계림주 간주=間道가 주 본거지로 바로 寧南이다.
황당한 것이 신라 말살로 신한이 단군조선=夫餘인데 마한은 재서로 나오는데도 이를 계속 마치 마한이 마고지나? 한반도라는 주장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江東이라고 하니 이를 江東郡으로 1개군으로 아니고 江東하면 江東[州]로 九州의 하나다.
이는 古朝鮮 국호다 대부여다 이도저도 아닌 "시대구분"도 안하고 그저 "위만" 왜귀족이 조선을 썼다고 위만이 아니고 이게 고조선이라고 하니 황당한 것이다, 조선을 夫餘로 나라로 나라를 이름하여 韓으로 羅로 麗로 濟로 耶로 國은 제후국 九國으로 하국인데 이를 아무곳에나 사방 50리-100리의 小邑에 附庸國=植民國으로 아예 없애라 그게 韓民族史나 더러운 북조선 아새끼 유태잡족 바크샤 헌영사지, 말자지족사지. 누가 단군천자국 군자국 군국에 대해서 天帝라고 천황한다고 그걸 믿냐고?
甲申元年. 冊長子丘乙爲太子. 封皇弟烏斯達爲蒙古里汗【王也】. 其後孫繁衍爲內外蒙古族, 卽元皇之祖也.
甲申(갑신, BC2137) 원년. 큰아들 丘乙(구을)을 책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皇(황)의 아우 烏斯達(오사달)을 책봉하여 蒙古里(몽고리)의 汗(한)【왕이다】으로 삼았다.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여 내외 몽골족이 되었는데 즉 元帝國(원제국)의 황제의 조상이다.
蒙古里는 국명/지명으로 분명하게 족은 몽고토착민을 "설유/궐유/ 험윤족"으로 거란 丹國+예맥족으로 복속되지 않은 족은 北狄으로 突厥族으로 재서로 료하의 재서로 이는 몽고리 토착민족으로 鄒는 고추가 등 몽고리 추나리이름 鄒로 만주원류고 등에서도 이들 거라족과 예맥족 고구려는 蒙古族으로 제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들끼리 다 해쳐먹었다. 우리는 주족이 신라야 신한 조선=부여가 단군세기가 신한세기지.. 으이그. 정말.
日 나〮ᅀᅵᆯ〮 衆陽之宗人君之表
月 ᄃᆞᆯ〮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星 별〯셔ᇰ
辰 별〯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아니 족발이 이 병도가 진단학회 震國이라고 國으로 1자 國이 황제국명이다 그래서 이를 안하면? 다 斯盧國이야 사방 50리-100리 小邑에 邑借=邑長이 군왕으로 단군천자로 干이라고 으이그 王 天帝아래야?
정말 징글징글 밉다고 어떤 놈이야 伊尹 후손 윤복현이야 晋州 강씨 강상원이 샤가족 백제왜족이야 어디서 경상디언 사방 100리고 가야 사방 50리?? 사방 150리가 군이나 되니???
그리도 밉냐고 소호 금천씨 신라 금씨와 가야 김씨 김유신이 백제왜족을 좀 쳤다고 도대체 1000년이 지나도록 이를 가는 것은 백제왜족 쪽발이면 되지 저 全州木子 개병정 矮小族은 뭐냐고? 기리사독교 목사면 다야? 이 호면 다야?
정말 징글징글 유태교인 이좃같은 李趙ㅅ시대가 아직도 득세냐?
전부 유태잡족 유태쪽발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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