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적 독서 보고서: 참을 수 없는 중독 (아치볼드 하트)
(보고자 김문정 )
부제: 당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은밀한 중독에서 벗어나기
1. 이 책을 읽게 된 경위와 저자 소개
본서는 이번 학기 중독상담 과목의 담당 교수 이민자 교수님에 의해 필독 도서로 선정되었다. 수업 교재로 선정된 중독이론서 한 권만으로는 중독에 관한 임상적, 심리적 통찰을 얻는데 매우 부족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책이 부족분을 채워주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임상 장면과 사례, 중독을 보는 관점 등에 풍부한 지혜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한 학기 동안 중독상담 과목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중독을 개관槪觀할 수 있었다. 알콜 중독, 인터넷 중독, 마약 중독, 쇼핑 중독, 성 중독, 운동 중독, 관계 중독 등 중독의 종류마다 그 특성과 조건이 있고, 치유와 상담 방법들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었다. 본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 종교중독, 생활양식 중독, 동반 의존증, 음식중독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중독에 관한 한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심층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숨겨진 중독과 과정 중독이라는 개념으로 중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가는 과정을 예리하게 설명한다. 한편 저자는 '중독'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것에도 주의를 당부한다.
본서의 출판매체로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가득 찬 현대인들의 전 인격적 회복을 위해 2004년에 출범한 '온누리 회복사역본부'가 알콜 중독자와 그 가족, 성중독자, 우울증, 자아 회복, 이혼 위기, 분노중독, 학대 등의 지원 사역을 통해 많은 회복의 열매를 맺고, 헌신된 사역자들을 발굴했다고 소개한다.
저자 아치볼드 하트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21세기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임상심리간 이해에 크게 기여하는 심리학자다. 남아프리카 출신 기독교심리학자이며, 풀러 신학대학과 심리학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 자신이 이혼가정에서 성장한 심리학자로 인간의 병리적 측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예리한 통찰이 녹아든 많은 주제의 저서들을 집필했다. 세계 정신의약학 공인 위원(2005년 기준) 이며 세계 곳곳에서 목회자와 가족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숨겨진 감정의 회복', '우울증 상담', '마음의 습관', '스트레스와 아드레날린', '우울증 이렇게 치유할 수 있다', '남자도 잘 모르는 남자의 성', '여자도 잘 모르는 여자의 성' 등 24권을 저술했다.
2. 책의 주요 부분 요약
2.1. 1부‘참을 수 없는 중독 이해하기’
숨겨진 중독은 세 가지 특성을 보인다. 1) 희생자는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심리적 갈등 없이 중독에 굴복한다. 2) 사회가 이 문제를 중독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일 중독은 존경을 받고 매력적인 요소로 추앙받기도 한다. 3) 마약이나 술처럼 외부 물질에 의한 중독은 중독 과정이 드러나지만, 숨겨진 중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람을 잠식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외부 물질을 습관적으로 강박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중독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노예화된 행위도 중독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습된 중독과 결핍에 의한 중독이 있다. 중독은 중독을 선택한 당사자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다. 중독은 진실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중독은 중독자를 완전히 통제한다. 중독은 언제나 쾌감을 동반한다. 중독은 매우 파괴적이며 건강에 해롭다. 중독자에게는 오직 중독 행위만 중요하게 된다. 중독자는 자기의 중독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중독은 물질 중독이다. 모든 중독은 심리적인 의존을 동반한다. 중독은 사람의 신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일어난다. 중독은 간이나 유전자, 사이넵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서 일어난다. 몸은 니코틴을 원하지 않아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과정을 그리워한다. 독한 중독 물질에 중독된 이들이 심리적으로 동일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정서적 행동이나 습관이 어떻게 중독으로 진전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갈망에 대한 반응을 통제할 수 없을 때 갈망은 중독이 된다. 갈망은 무언가를 원하는 강한 욕구다. 반면 중독은 갈망을 채우려는 행위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다. 갈망이 강화되어 몸과 마음이 갈망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중독이다. 물질 중독과 과정 중독은 세 가지 유사점이 있다. 1) 과정 중독도 물질 중독처럼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해서 쾌감을 얻는다. 2) 과정 중독과 물질 중독은 ‘기억’이라는 심리적 요소를 통해 중독 행동을 지속한다. 중독자는 중독 물질이 주는 강화 효과를 기억한다. 기억이 갈망을 만들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과정 중독 역시 갈망을 일으키는 기억의 강력한 요인으로 중독적 행동을 반복한다. 3) 흥분제와 진정제는 같은 종류에 속하는 약물인데 이 둘은 교차 효과를 가진 물질이다. 과정 중독에도 이런 교차 효과가 있다. 도박과 등산은 둘 다 긍정적 강화제이고 흥분제로 작용하기에 교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위험한 행동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그 행동에 따르는 위험에 중독된 것이지 행동 자체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절벽타기에 중독되면 행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곡예비행 등을 통해서도 비슷한 효과를 본다. 흥분제 종류로 몸의 생존 메커니즘을 자극한다.
물질 중독 과정에서 성격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특정 성격 유형이 다른 성격보다 더 쉽게 중독에 걸린다는 증거는 없다. 검토 가능한 물질 중독자의 성격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물질 중독자는 비인습적인 경향이 있다. 종교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으며, 반항적이고, 사회적 요구와 성취 목표에 개의치 않는다.
2) 새로운 경험에 적극적이다.
3) 욕구를 즉시 충족하려 들고 지체되면 잘 참지 못한다.
4) 중독되기 전 낮은 자존감에 고통받기도 한다.
5) 전통적인 문화가치로부터 소외당하는 경험을 가진다.
과정 중독을 부추기는 성격은 물질 중독자의 성격과 반대의 특성이 나타난다.
1) 숨겨진 중독을 가진 사람들은 물질 중독자와는 반대로 매우 인습적이고 질서에 집착한다. 과정 중독자는 더 경직되어 있고, 덜 개방적이고, 더 완고하고, 인습적이다. 이들은 어린아이처럼 퇴행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고통이 찾아오면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중독으로 더 깊이 숨어든다. 예를 들면,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물질 중독자는 술이나 약물을 찾고 과정 중독자는 과도한 일이나 강박적 종교활동에 빠져든다.
2) 숨겨진 중독은 심리적 저변에 깔린 많은 동기에 의해 유지된다. 특정 성격과의 관련성을 짚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일 중독이 된 사람의 경우, 계속해서 돈을 벌면서 일을 통해 얻는 다른 쾌락에 눈뜨게 된다. 권력욕, 가족으로부터의 인정, 자아실현 욕구 등 한가지 중독이 다른 중독들을 파생시키며 최초의 중독을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3) 자기 본위적 성격이다. 알콜중독자와도 비슷한 기질이다. 이들은 문제에 얽매여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참을성과 진득함이 부족하다. 수줍음이 많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이들에게 숨겨진 중독의 형태는 근심 걱정하기, 구원자 역할하기, 사회적 고립과 후퇴, 토라지기 등이다.
4) 스릴 찾기- 발랄하고 외향적이지만 불합리한 면을 가졌고, 정서적으로 미숙한 면이 있다. 호기심이 많지만 자극적인 일이 없으면 우울감에 빠진다. 약물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5) 자존감 결핍증- 중독 이전부터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다. 자기 가치를 자신과 남에게 자꾸만 증명하고 싶어 한다. 망상과 공상을 즐긴다. 깊은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인의 인정과 같은 도움이 필요하다. 정욕적인 행위 중독, 스포츠 활동, 여러 형태의 일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6) 지나친 순응- 이런 사람들은 군중을 따른다. 남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모방충동이 강하다. 집단 의존적이다. 혼자 있는 것이 어렵다.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평가가 어렵다. 불안을 달래려고 사람들을 찾는다.
7) 사회적 고립- 관계에 따르는 책임을 원치 않으며 지속적인 관계도 바라지 않는다.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 진심을 내보이는 것을 꺼린다. 타인과의 접촉을 되도록 피한다. 오래된 소수의 관계만 유지한다. 걸리기 쉬운 중독은 tv시청하기, 이상한 물건 수집하기, 고독한 활동에 대한 중독이다.
8) 자기 학대- 고통에서 쾌락을 얻는다. 신경증적 죄책감, 자신의 무능, 실패에 대한 집착이 이들을 괴롭힌다. 가학적인 행동과 우울증을 즐긴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신경증적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고통을 찾는다. 빈정거리기, 상처주기, 과하게 책임지기, 자학하며 자기 만족을 깨트리기 등의 행동을 한다. 과하게 책임지기는 일 중독의 한 형태인데 목사들에게서 종종 발견된다. 건강도 돌보지 않고 과하게 일하며 자기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 행동 등이다. 과민한 양심을 진정시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심한 분노와 원한도 이 중독자들에게서 나타난다.
강박 충동을 중독과 혼동할 수 있지만 둘은 다르다. 강박 충동은 정신적 장애다. 하지만 강박 충동적 성향은 쉽게 중독으로 갈 수 있다. 강박 장애에서 거듭되는 생각과 행동은 쾌락이 아닌 고통을 만든다. 이 점이 중독과 다르다. 강박 장애자들은 중독자와 달리 통제력이 없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재된 불안은 부인하지만 자기들의 고통은 잘 인식한다. 강박 장애자는 외부 물질이나 내부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다.
2.2. 2부 ‘여러 가지 참을 수 없는 중독’
동반 의존자들의 자아에는 문제가 있다.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내면과 분리되어 있다.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거나 돌볼 능력을 상실했다. 주요 특징으로는‘학습된 무력감’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불만스러운 상황이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들이 계속 학대당하는 이유이다. 이들은 자기 가치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능력과 관련시킨다. 상당수의 종교인들이 동반 의존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아에 대한 적합한 이해 부족, 소명에 대한 이해 부족,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을 교묘히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신경증적인 조력자가 된다.
캘빈 밀러는 그의 저서 ‘기쁨의 맛’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중독자’일뿐 결코 제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제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노력할 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종교 중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독교 지도자들은 알아야 한다.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중독에 걸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친밀감 대신 어떤 행위와 제자도가 주는 흥분에 집착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종교 행위에 헌신되어 있다면 종교 중독이다. 자신이나 주변에 피해를 준다면 종교 중독이다. 자기 행위에 대한 통제력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독단적이고 완고한 믿음과 행동에 대한 중독의 배후에는 “반동형성”이라는 심리적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진정한 감정과 반대되는 거짓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여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진리 자체를 위해서 진리를 수호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심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정한 감정을 차단하면서 강박 충동적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기독교에서 성은 신경증적 죄책감과 은폐된 불안의 요소가 된다. 과도한 죄책감은 성 중독을 강화하고 유지시킨다. 무의식에 뿌리내린 과도한 죄책감이 성에 집착하고 잘못된 자극과 흥분의 요소가 되어 집착하게 만든다.
아드레날린 중독은 조급증을 만든다. 조급한 상태에 있을 때 활기를 느끼고 자신이 중요한 인물로 느껴지며,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하는 욕구 밑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특히 아드레날린 과잉생산을 원하는 욕구가 있다. 아드레날린은 무제한 공급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으면 부신은 닫히고 임파선은 작아지며 극심한 피로감과 쇠약, 체중 감소, 신경증, 두려움과 공황 발작 증세가 나타난다.
음식 중독은 아드레날린 중독처럼 쉽게 끊을 수 없다. 음식 중독 치료는 음식을 먹으면서 해야 한다. 거식증과 폭식증, 카페인 중독, 당분 중독 등이 있다. 무엇이 음식 중독적 행동을 유발하는지 찾아야 한다. 실패, 거절, 비판이 원인일 수 있다.
2.3. 3부 ‘참을 수 없는 중독 치유하기’
숨겨진 중독에서의 자아 추구를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설정해놓고 자기가 거기에 얼마나 근접한지 끊임없이 평가한다. 만족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자기를 거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도피하게 하거나 결점을 외면하며 덮으려고 할 수 있다. 이상적 자아에 대한 강박이 중독의 원인이 된다. 완전한 몸, 완전한 정신, 완전한 영혼이라는 이상적인 삼위일체를 향한 노력은 인생의 유한성을 망각한 채 진실 회피의 문제를 안게 된다. 완전한 정신을 추구하는 것도 실제로는 자기기만 행위다. 프로이드는‘신경증 환자의 비참함을 치료했더니 그의 눈앞에는 현실의 비참한 인생이 놓여있을 뿐이었다’고 정직하게 토로했다.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순간 낙원을 떠나게 된다.
과도한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서 자아상이 건전하게 성숙되기가 쉽지 않다. 기독교 복음에 의해 과감하게 ‘불완전하게 되는 용기’를 발달시켜야 한다. 우리가 될 수 있는 최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의 것을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불완전하다. 좌절에 대한 내성을 길러야 한다.
긍정적인 생활양식은 규칙적인 습관이 돼 가면서 그 자체가 중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간 행동에는 건강한 애착과 욕구가 있다. 그러한 것들에게서는 선한 열매가 맺힌다. 이러한 긍정적 중독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윌리엄 글래서).
“경쟁적이지 않아야 한다, 쉽게 특별한 노력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적-정신적-영적으로 유익이 있어야 한다,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 결정은 당사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비판하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3. 비평적 독서 후기
저자는 모든 중독에 영적인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향한 열린 마음과 신뢰만이 중독을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의 공허와 한계를 참된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우상에게 굴복되는 노예의 삶을 종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열거한 중독 중에는 종교 중독이 있다. 이 책을 손에 넣자마자 제일 먼저 펼쳐 읽었던 대목이다. 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용어 중 하나가 ‘그리스도 중독’이다. 아치볼드 하트는 그리스도 자체를 갈망하는 마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된 활동을 하는 것들을 구별한다. 그리고 후자가 중독적 요소들로 오염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많은 선교사와 목회자들, 그리고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활동에 중독되어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숨겨진 중독의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다. 물질 중독과 과정 중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사실상 그 둘은 차이가 없다. 둘 다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기억 효과’라고 짚었다. 단순한 기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물질의 자극을 받아 강한 쾌감을 얻고 심리적 안정을 혹은 자존감이 상승하는 무엇을 느꼈을 때, 그 짜릿하고 황홀한 쾌감의 기억은 두고두고 남아 그것을 갈망하게 된다. 과정 중독도 마찬가지다. 낮은 자존감은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는 갈망과 집착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으면 터무니없는 우월감으로 변한다. 우월감의 쾌감을 맛본 사람은 낮은 자존감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지난한 치유 과정을 택하는 대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칭찬을 통해 자존감을 보상받고 자기를 증명하는 방식의 길을 택한다. 종교 중독은 일 중독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데 인정욕구를 채우는 방법에 있어 종교 중독만큼 빠지기 쉬운 것도 흔치 않다. 이 모든 것이 마음과 생각을 포괄하는 정신 영역에서 벌어진다. 아드레날린 중독을 설명하는 인상적인 대목에서도 이 점을 짚는다. 위험한 행동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행동이 주는 아찔한 쾌감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모든 중독의 기저에 영적 문제가 있다고 단언한 것은 옳은 말이다.
최근에는 부부 상담, 가족 상담, 유아 청소년의 문제 행동 솔루션 프로그램 등이 큰 인기를 끌고, 그런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심리학 용어나 개념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다양한 심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심리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브 컨텐츠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인들이 그만큼 심리적인 문제를 많이 겪는다고 볼 수 있고, 또 정신과 심리에 대한 지적 관심과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세대가 전통과 인습을 따라 체념적으로 순응한 이슈들을 지금은 무턱대고 수용하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를 발달시키며 자아실현에 최선을 다하는 현대인의 영성이 과거에 비해 분명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성화에 근접해 있음에도 왜 이토록 중독의 종류는 많아지는 것일까. 탈권위와 소통을 중시하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사회에서 이전의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수평적 소통을 매개하는 다양한 매스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타인의 경제적 위치와 내 경제적 위치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분명히 자아실현 하기 좋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참된 자아의 실현은 물질문명이 자동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인들은 자기의 욕망이 반영된 마음속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누가 더 예쁘니, 누가 더 날씬하니, 누가 더 멋져 보이니, 누가 더 인기 있어 보이니 등등을 묻는다. 그들의 욕망과 갈망이 한껏 반영된 그 거울은 호락호락 대답하지 않는다. 쉽게 자기에게 유리하고 상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부서진 자존감이 만든 허구의 거울인데도 진정한 자아와의 뿌리가 끊어진 이들은 거울의 불친절한 대답과 냉소하는 표정에 움츠러들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더 음식을 줄이고, 더 운동하고, 더 일하고, 더 공부하고, 더 저축하려고 자신을 힘껏 쥐어짤 것이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더 기도하고 더 헌금하고 더 성경 공부하고 더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 요셉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갈 날을 고대하며 달려가는 이들의 안타까운 몸짓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알콜 중독, 성 중독, 인터넷 게임중독, 쇼핑 중독, 운동 중독, 관계 중독, 아드레날린 중독, 종교 중독, 음식 중독, 일 중독. 이 외에도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종류의 중독들이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을 것이다. 중독의 명칭과 종류를 열거해놓고 보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라는 존재는 ‘너’를 통해 발견되면서 각자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확보하고 그다음에는‘우리’라는 통합된 자아 차원으로 의식의 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차원의 ‘우리’는 개인의 개성이 공동체주의에 함몰된 상태의 무개성인 우리가 아니라, 개아個我보다 더 큰 차원의 영적이고 근원적인 자아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의식의 진화를 이루지 못한 개아個我 가 뿌리에서 끊어진 채 나뒹굴면서 자기 존재를 영원히 ‘너’의 눈에서 찾으려고 발버둥을 칠 때 저 많은 종류의 중독이 귀신처럼 들고 일어나는 게 아닐까? 아무리 달려가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근원에 닿지 못한 개아는 거울 속의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남의 눈에 비쳐지기 원하는 망상 속의 나를 그리면서 성형외과 리뷰에 중독되어 갈 수 있다.
책은 평이하고 쉬운 어휘로 간결하게 잘 설명되어 있고, 적절한 예화와 사례를 넣어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다. 기독교 신앙을 교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중독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관통하면서 복음의 핵심을 통찰하게 만드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아쉬운 점은 성 중독을 다룬 부분이다. 기독교가 성에 관한 신학을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어떤 과감한 접근을 할 것인가 기대했는데, 기존에 나와 있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접근 외에 눈에 띄는 대범하고 혁신적인 제안이 없었다. 여성 누드 사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인쇄물의 조잡한 화소로 보이고, 더 이상 관능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언을 소개한 대목에서는 아예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또, 고작 294쪽 분량의 단행본에서 여러 종류의 중독을 깊이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터. 그렇다면 종류를 확 줄여서 차라리 종교 중독과 동반 의존증처럼 종교인들(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두드러지는 중독 증상만 심층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목회하다가 돌아가신 부모 대신 자기가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내지 묘한 선민의식을 가진 지인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도전적인 책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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