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쎄이클럽 에서 무술동호회 시샵 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글 이였습니다.
여기 택견매니아 회원님들 한번씩 읽어 보시면 상당히 도움이 될꺼 같아서
퍼왔습니다.....
고수를 찾아서...
얼마전 KBS 인간극장에서 5부작으로 방영한 ‘무림일기-고수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이 일주일 내내 장안에 화제가 되었죠. 택견의 장태식과 태권도의 정유진. 두명의 무술청년이 무림의 고수를 찾아 떠난다는 내용이죠. 저는 TV로는 못보고 주말 인터넷을 통해 한꺼번에 봤습니다.
쇼나 오락프로가 아닌 ‘인간극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주인공 태식이와 유진이의 무술에 대한 열정과 강함에 대한 ‘구도의 과정’에 촛점을 맞춰 찍었더군요. 그 과정에서 팔괘장 당랑권 합기도 택견 태권도 등 여러 유파의 ‘고수’들도 등장하구요. 이제 방송도 끝났으니 제 나름대로 본 소감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1. 택견과 태권도. 곡선과 직선의 만남.
대학교를 중퇴한 뒤 서울로 올라와 택견을 수련하고 있는 주인공 장태식(28). 전북 대표 복싱선수를 지낸 적이 있다는 열혈남아. 태권도 전공인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인 정유진(26).
태식과 유진은 버디무비처럼 둘이 짝을 이뤄 무림의 고수를 찾아 여행을 떠나죠. 택견꾼과 태권인. 주인공 두명의 프로필을 보는 순간 무릎을 딱하고 쳤습니다. 이보다 더 절묘한 조합은 생각해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택견과 태권도라…
다들 아시다시피 택견은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곡선의 몸짓이고, 태권도는 강함을 추구하는직선의 몸짓을 가지고 있습니다. 곡선과 직선의 만남! 그리고 택견은 전통무술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고, 태권도는 현대의 국기 스포츠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죠. 전통과 현대의 만남! 한걸음 나아가 택견의 발전과 현대화에 태권도의 발차기가 크게 기여하고 있으니, 둘의 만남은 어찌보면 필연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택견이 무술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고(故) 택견 인간문화재였던 송덕기 옹이 직접 밝혔듯이 택견은 놀이문화로 시작했기 때문이죠. 현재 택견은 송덕기 신한승 두분이 타계한 후 여러 분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경화 도기현 이용복 세사람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죠. 태식이가 하는 택견은 위의 세가지 계파 가운데 도기현씨의 결련택견입니다. 결련택견은 마을이 편을 갈라 단체로 시합을 하는 데에서 따온 단체택견의 의미라고 합니다. 세가지 계파 중 어느 쪽이 송덕기 신한승님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지 여기서 논하기는 힘드니까 생략하겠습니다.
태권도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국기입니다. 정통성에 대해서는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권도가 택견의 후신이라고 주장하거나 삼국시대 금강역사가 태권도를 하는 모습이라는 황당한 주장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해방 전후 가라테 혹은 당수 공수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지만 현재의 태권도는 분명 한국인이 가다듬고 토착화시킨 우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예는 문화적 현상으로 인류공동의 재산이며 국적을 붙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울대 체육학 박사과정에 있는 최복규씨의 석사논문)
위의 말처럼 택견이 놀이로 시작했든,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출발했든 지금 현재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억지로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통(역사)을 왜곡하거나 날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타계하신 국제연맹 합기회 명재남씨의 경우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명재남씨는 한국의 합기도(현재 한국의 합기도는 여러 유파가 있고, TV에 나온 용술관의 합기유술도 그중의 하나임)가 일본의 체술(일본에서는 현재 아이키도로 부름)에서 유래한 것을 인정하고, 토착화하는 과정을 밟아 한국의 독특한 합기도로 발전했다고 말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당당히 주장한다는 요지죠.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무술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는 무술을 하는 사람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구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들 종목이 서양에서 만든 스포츠라고 해서 배타시할 이유가 없고, 또 공놀이를 즐기는데에 있어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무술이 중국에서 넘어왔건 일본에서 넘어왔건 자신의 건강과 호신의 목적에 맞으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리 몸에 맞게 적응(토착화)되면 우리의 무술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2. 가벼움과 부드러움 - 잘못된 화두
무림일기의 두 주인공은 강함을 찾고자 여러 유파의 ‘고수’들을 찾아다니고 있죠. 그리고 화두처럼 계속해서 외칩니다. “가벼움과 부드러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가볍고 부드러워 질 수 있는가?” 즉 고수가 되기위해선 가볍고 부드러워져야 한다는 대전제하에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명제입니다. 가볍고 부드러워지는 것과 고수가 되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볍다’는 것은 몸과 팔다리가 가볍다는 의미인데 이는 고수가 되기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뛰어넘어야할 장애물입니다. 무술에 갓 입문한 초보자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가벼움과 딱딱함입니다. 딱딱하다는 것은 관절이 굳어있기 때문에 몸과 팔다리가 뻑뻑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힘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먹이나 발차기가 가볍습니다. ‘날린다’라고도 하죠. 이 또한 힘의 전달이 안됩니다. 한마디로 파워가 없는거죠. 가벼운 발차기나 주먹은 상대방에 의해 쉽게 제압당합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무인(=고수)의 주먹찌르기나 발차기를 보면 슬쩍 찌르는 것 같은데도 엄청난 파워가 전해집니다. 팔다리가 아닌 허리의 힘으로 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에게도 마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듯이 엄청난 중압감을 주게 합니다. 태극권이든 극진가라데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묵직하다고 하지 가볍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시원한 것과 가벼운 것도 다릅니다. 시원한 것은 군동작이 없는 깔끔한 동작을 말합니다. 고수의 발과 주먹은 군동작이 없기 때문에 빠르고 시원한 것입니다. 가벼운 것은 단지 살이 너무 쪄서 몸동작이 둔한 데서 오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몸이 무거운 것의 대칭되는 말에 불과합니다.
부드럽다. 부드러움은 모든 무술과 운동이 반드시 겸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부드럽다는 것은 관절의 움직임이 원활하여 그만큼 불필요한 힘의 낭비없이 자신의 모든 힘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기만 해서는 무술의 의미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걸로 따진다면 오히려 체조나 발레 선수가 훨씬 부드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가볍고 부드러운 체조 선수가 무술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죠. 무술 즉 기격의 원리에 맞는 부드러움을 갖추어야 진짜 힘을 낼수가 있습니다.
3. 사부는 뒷짐. 제자만 대결
두 주인공은 여러 유파의 도장들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겨루기를 하더군요. 태식이가 이길 때도 있고 질때도 있었죠. 물론 담당 PD는 볼거리를 위해 대련장면을 많이 넣었겠죠. 사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둘이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괜히 엉뚱한 오해를 낳게 할 수도 있습니다. A와 B의 대결에서 A가 이겼으로 A의 무술이 더 세다는 식으로 선입견을 남기게 되는거죠. 드라마를 본 많은 사람들이 “어느 무술이 어느 무술보다 쎄던데.” 라고 단정지어 말하더군요.
다른 문파를 찾아가서 한수 배우는 것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도장 간판 따먹기가 아니라면 말이죠. 진정 고수에게서 한수 배우는 것은 힘을 기르는 방법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묻고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한 문파의 ‘고수’가 가르침을 주고자 허락했다면 본인이 직접 배움을 원하는 후배를 지도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뒤에서 뒷짐이나 지고 제자에게 “너, 쟤하고 한판 붙어봐라.”라고 말하는 것은 참다운 무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물론 제자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당연히 제자가 한수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직접 “이것이 바로 고수의 주먹이다”하면서 시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 문중의 명예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고수가 쪽팔려서...”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무술을 하는 사람이 주먹찌르는 것이 왜 창피합니까? 축구선수가 공을 차듯이 무인이 주먹찌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비전을 노출하기 싫어서...” 주먹 한번 찌르는 것으로 자신의 비전이 노출된다면 그만큼 자신의 무술이 형편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무슨 무슨 파 몇대제자이니 하면서 말로 자랑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가르침에는 백마디 말보다 주먹 한번이 훨씬 효과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미동초등학교 태권도시범단장 이규형님의 자세는 본받을 만합니다. 상대방 나이가 어려도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시범을 보입니다. 무술인에게서 몸으로 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만큼 큰 공부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대련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련은 나와 상대방의 힘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지 배움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련을 통해서 여러 실전기를 몸으로 체험할 수는 있습니다.
4.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
TV에 등장한 ‘고수’ 중에서 몇몇 분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문파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그러니 TV에 나온 것으로 ‘저 무술은 저 정도 수준밖에 안되는구나’라고 단정짓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TV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그 문중의 최고수인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무술하는 사람에게는 과장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부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련택견계승회장인 도기현님의 비법공개 도 마찬가지입니다. 팽이돌리기와 도끼치기를 보여줬는데 확실히 기존의 택견에서는 못본 동작이더군요. 그러나 도기현씨의 ‘비법’이라는 말과는 달리 이러한 동작들은 이미 여러 무술에서 사용하고 있는 초식입니다. 도기현씨 개인의 일격필살 기술은 될 수 있지만, 택견의 비법하고는 상관없다는 얘기입니다.
*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같은 무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서 태식과 유진이에게 인간적인 공감대를 많이 느끼기도 했고요.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죠. ^.^ 그러나 기자의 직업상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