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주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것들은 - 얼마나 현실적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배가 고플 때는 –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합니다. - 무릎을 한번 꿇으면 -세상의 것을 준다고 유혹도 합니다. -세상의 법칙대로만 살면 후회없는 삶을 산다고도 합니다. - 그래서 세속적인 관념에 빠진 사람들은 - 세상의 풍조를 따르면 잘 산다고 생각하고 - 세상풍조를 따르지 못하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자기인생의 농부로 모시고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세속에 물들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세상 것을 자랑합니다. -심지어 교회가 세상 것을 부추키기도 하면서 –세속적인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변론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세상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냐며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감추기 위해 – 세상까지도 창조하시고 통치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
그래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당 안에서 세속의 법칙과 -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서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 이들을 살리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 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이곳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인 비전교회 성도들에게 -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혹 사명을 받은 우리의 삶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위선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에게는 - 거짓된 삶으로 비추어진 것은 없습니까? - 자신의 양심까지 속여가며 -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혹 양심까지 무뎌져서 – 자신이 지금 어떤 길을 걷고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이러한 부분이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여주옵소서 그리고 용서받은 우리의 삶이 –진정한 소명의 삶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통해 – 세상이맑아지고 – 밝아지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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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신. 먼저 소금이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 1절-5절)
허기가 극에 달하면 냄새만 풍겨도 목숨을 건다는 말이 있고 -‘사흘 굶으면 -포도청 담도 뛰어 넘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 그만큼 굶주림은 고통스럽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 무려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때 사탄이 - 허기지신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 배고픈 네 배를 채우기 위해 - 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먹어봐라.’
이것은 단순히 배고픈 배를 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별도 –해도, 달도 –산천초목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겁니다. - 물론 - 저 작은 돌멩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태양과 별들뿐 아니라 – 돌멩이도 - 돌멩이 그대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신 돌멩이를 –빵으로 왜곡시키라는 겁니다.
너의 유익을 위해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라는 무서운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 그러나 사탄은 오늘날에도 - 우리에게 - 말씀을 왜곡하라고 유혹합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 빛과 소금이라는 용어를 좋아합니다. - 그리고 빛과 소금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그러나 정작 주님께서는 빛과 소금이라는 단어의 순서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 마태복음 5장13절-15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소금이다.’고 먼저 말씀하시고 – 그 다음에 너희는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단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단어의 순서도 절대적입니다. - 왜냐하면 - 순서가 바뀌어지면 -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 왜 그리스도인들은 –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 빛과 소금이 되자면서 –빛을 내세우는 겁니까? -흔적도 없이 물속에서 녹아버리는 보잘 것 없는 소금보다는 – 찬란하게 드러나 보이는 빛이 – 더 멋지게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녹아서 남에게 보이지 않는 소금보다 -남에게 드러나 보이는 빛이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빛을 뜻하는 헬라어 포스는 -하나님의 빛 -진리의 빛이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 그러므로 이 빛을 통해 – 내가 먼저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빛을 통해 내가 먼저 빛이 되고 - 그러한 내 삶을 통해 남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 그래서 나 자신이 -소금처럼 먼저 녹아야 합니다. -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빛은 – 나 자신을 녹이는 소금같은 삶을 전제로 얻게 되는데 – 사람들은 - 소금을 제쳐놓고 – 빛을 먼저 추구합니다. - 그렇다면 그 빛이 뭡니까?
세상에서 성공하고 – 많은 돈을 벌고 – 명예를 얻고 - 높은 직위까지 출세하는 세상 빛 아닙니까. - 그러나 그것은 - 성경이 말하는 빛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세상 영광의 빛을 - 가장 크게 드러내었던 사람은 – 솔로몬입니다. - 그는 부귀영화의 대명사입니다. - 그러한 그가 말합니다. [전도서 1장1절로 2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이 –자신이 그토록 누려왔던 돈과 권력과 명예 – 이것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분명 필요하지만 - 언젠가는 소멸 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세상 영광의 빛만 추구하는 인생은 - 다 헛되기 짝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 그리고는 - ’네가 가서 외치거라.‘ - 그러자 이사야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가서 대체 뭐라고 외쳐야 하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 이사야 40장 6절로 7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네가 지금 성공했니? - 네 지위가 좀 높니? - 그래도 너는 말라 비틀어질 풀이야. - 네가 지금 재산이 많니? -네 권력이 하늘을 찌르니? - 그 모든 영광이 오래갈 것 같지? -아니야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네가 자랑하는 것도 –네 인생도 -다 사그러지고 없어져. -이게 인생야.‘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인격체를 지닌 몸은 - 헬라어로 소마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으로 치장하고 – 남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육신은 - ’사르크스‘라고 합니다. - 직역하면 몸뚱이 -고기덩어리입니다. - 그렇다면 목숨이 뭡니까?
하루하루 쇠퇴해 가다가 –언젠가 코끝에서 호흡이 멈춰지면 –썪어문들어질 이 고기덩어리의 목숨아닙니까.
여러분, - 반드시 죽고 – 반드시 썩어 문드러질 - 그러한 육신인 몸뚱아리를 위한 삶이 - 우리 생의 목적이 될 수 있겠습니까? - 고기덩어리에 불과한 – 우리의 이 사르크스를 - 세상 영광의 빛으로 - 영원히 치장할 수 있겠습니까? - 없습니다.
두 번째로 – 먼저 소금이 되는 사람만 – 참된 빛이 될 수 있습니다. - 가령 지금 여기에 소금이 있는데 – 그 소금이 천년 만년이 지나도 녹지 않고 - 소금의 형태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면 – 그건 가짜 소금입니다. - 그건 진짜 소금이 아닙니다.
진짜 소금은 반드시 녹아서 소멸됩니다. - 그러나 녹는 소금이 -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녹는 것이 아닙니다. - 소금이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것은 – 무엇인가의 – 또는 누군가의 – 생명을 지켜주고, - 그것을 보호하여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 소금처럼 -지금 자기를 소멸시킬 수 있는 사람만 – 성경이 말하는 빛이 될 수 있고 - 성경이 원하는 헌신의 길을 – 비로소 걸을 수도 있습니다.
등잔도 – 양초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잔도 양초도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소금처럼 자기를 태워 없애야 합니다. -자기를 소멸시켜야 누군가에게 빛을 비춰주는 겁니다.
그래서 소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만 –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소금이 되는 사람만 – 성경이 말하는 빛이 되는 겁니다.
세 번째로 – 소금처럼 자기를 소멸시키는 빛만 – 성경이 말하는 빛이 되는 겁니다. 마 5장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옛날 산동네는 해만 지면 캄캄했습니다. - 그런데 어느 집에서 누군가가 - 등잔에 불을 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순간부터 등잔에 있는 기름은 –자기를 태웁니다.
그리고 그 등잔의 기름이 -자기를 태우는 순간부터 – 그 산동네 집에 빛이 비쳐집니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 그 집만 밝게 비추어 주는 것 아닙니다.
산속을 헤매는 여행객이 –그 불빛을 발견하고는 - ’아 불빛나는 저 마을이 아무개 마을이지. 이제 저 고개만 넘으면 목적지가 나온다.‘-그 사람에게는 그 빛이 이정표가 됩니다. -이처럼 자기를 태움으로 인해 –빛을 주고- 희망을 주고 –길을 줍니다.
그러므로 소금처럼 자기를 소멸시키는 - 그 빛의 의미와 가치는 – 영원한 생명의
의미와 가치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 빛과 소금이 아니라 – 너희는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구약시대의 엘리사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 그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 자기 스승인 엘리야의 영감보다 - 갑절의 영감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 엘리사만 남았습니다. - 그 엘리사가 되돌아올 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 성경에서 한 개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갈라주신 것은 – 엘리사가 유일합니다. - 엘리사는 그 정도로 위대한 영감의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한 뒤에 – 성경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서 – 엘리사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을 – 열왕기하 2장 19절로 21절을 보면 - 여리고 사람들이 -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리고에 물이 죽어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 물을 주면 농작물들이 다 죽습니다. -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엘리사가 -’소금을 좀 다오.‘ - 그리고 물 근원에 가서 소금을 뿌렸습니다. - 그리고 그 이후 그 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 그런데 엘리사가 소금을 던지고 난 다음 - 뭐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여호와께서 그 물을 단물로 고치셨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엘리사가 소금을 던지지 않고 -기도만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굳이 소금을 가지고 오게 해서 소금을 물 위에 던진 뒤에 –여호와께서 이 물을 고치셨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엘리사는 ’- 나는 이제부터 나를 소멸시키는 소금처럼 살겠다.‘고 온 세상을 향해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 이후부터 – 자기를 돋보이려한 적이 없습니다. -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기를 소멸시키므로 – 어둔 세상 속에서 -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 평생 몰두했습니다.
신약의 사도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일행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주님께서 바울만 택하셨습니다. -그 이후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를 택하셨는지 – 자기 정체성을 망각한 적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 9장 15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이것이 바울의 정체성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 만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라는 – 자기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채찍질에 맞으면서도 –억울하게 투옥당하면서도 –춥고, 배고프고, 헐벗으면서도 –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해주기 위해 – 자기를 소멸시키는 소금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단 한번도 - 세상의 빛으로 -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는 참수형을 당해 목이 떨어져 죽으면서도 – 사람들을 위한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 소금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 그래서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그가 기록한 13권을 통해 –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는 생명의 빛으로 -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있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소금이 되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치러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 –당신의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 완전무결하게 소멸시키신 – 순도 100%의 소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죽음을 깨트리고 –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부활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분의 말씀이 - 생명의 말씀이고 – 오늘도 우리를 빛으로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요1장 1절-3절입니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 그래서 오늘날도 온 우주만물은 –모든 자연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 –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 죄성을 가진 인간만 –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을 - 등지고 살아갑니다. -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 생명이 있습니다. - 그 생명은 –인간이 영원히 좇아야 할 – 영원한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 그런데 요한복음 1장 5절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 생명의 말씀의 빛 – 말씀의 생명의 빛이 –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악의 어둠에 갇혀있는 인간 세상을 비췄습니다.
이것이 당신을 돋보이시려고 하신 겁니까? - 아닙니다. - 죄에 빠져 죽어가는 인간들을 살리시기 위해 – 순도 100%의 소금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 그분이 소금이 되시므로 –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셨습니다. -그 빛이 오신 겁니다.
그러면 어둠에 처해있는 인간들은 – 그 빛을 보면서 – 열광하고, -두손을 들어 – 빛을 환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성경은 - 정반대를 증언합니다. -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왜 생명의 빛이 어둠에 오셨는데 – 어둠 속에 있는 인간들이 깨닫지 못했을까요? - 세상 영광의 빛에 몰두하느라고 – 눈이 먼 인간들이 보기에 – 소금은 보잘 것 없어 보였거든요. -이사야 53장이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해 줍니다.-사53장 2절(공동번역)
그는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세상 성공과 세상 출세와 –세상 명예의 빛에 눈이 먼 인간들이 볼 때 –보잘 것없는 소금으로 오신 주님은 – 눈길을 끌만한 볼품도 없고 – 풍채도 없고 – 멋진 모습도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빛에 눈먼 인간들은 – 주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오셨지만 –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빛을 배척해버렸습니다.-그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십니다. -이때 사람들이 나와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나를 구원해 달라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때 온 성이 소동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동했다는 헬라어 ‘쎄이오. 라고 하는 단어는 - 지축이 흔들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지르는 함성 때문에 땅이 흔들리듯이 예루살렘 지축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들이 외친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참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예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적과 이적을 베풀어 주실 줄 알았는데 -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욕망을 전혀 채워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환영했던 그들에 의해 - 불과 닷새 후에 - 또 한 번 - 쎄이 오 – 지축이 흔들립니다.
그것은 간절히 구원해 달라는 호산나가 아니라 -세상 영광의 빛을 바라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어주지 않고 – 소금처럼 사랑하며 살라고만 하는 – 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하는 함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 우리도 입으로만 – 예수쟁이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세상 것이 없어서 신앙생활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까?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세상 영광의 빛입니까? - 아니면 진리의 빛입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 자기를 돋보이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더라면 – 로마황궁에서 로마황제로 태어나셨을 겁니다. - 그러나 그분은 소금으로 오셔서 당신을 소멸시켰기에 – 그분은 우리를 살리는 영원한 빛이 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 너희는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 오늘도 – 너희는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 먼저 소금이 되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되고 – 그런 사람이 - 영원한 구원의 통로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 총독이– 군중들을 향해 - 예수님과 바라바 가운데 - 누구를 사면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라바에서 바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이고 –아바는 아버지라는 의미로 - 바라바는 -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 그리고 주요 복음서 사본에는 - 바라바의 이름을 - ’예수 바라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군중들은’ 사면 대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고, -‘아버지의 아들 예수 바라바’를 선택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내몰고, - 죽음을 앞둔 ‘예수 바라바’는 구원해냅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세상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아들을 택하지 않고 –세상의 아들을 택한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보다는 – 자신을 드러내는 세상의 빛을 택한 겁니다. -하나님 나라와 –누군가를 위한 -소금과 같은 삶은 버리고 – 세상 부귀영화의 빛으로 – 살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는 -세상 영광의 빛을 추구하는 - 그런 삶을 살지 마십시다. -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 녹는 소금처럼 헌신적인 삶을 사십시다. -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되시는 - 여러분! - 그리스도인들은 남이 나에게 대접해주고, - 나를 알아주고, - 나를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 그냥 겸손한 마음으로 –낮고 낮은 헌신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 소멸되는 헌신의 소금이 되므로 –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비전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터전이 되며 – 담임목사인 제가께서 소명의 길을 걸어가실 때 –
작더라도 - 여러분의 헌신적 삶은 –목사님에게 큰 힘이 되며 –비전교회 모든 성도들의 삶의 현장이 –화목제물 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화평이 넘치는 -축제의 마당이 될 것이며 – 텅텅 비어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모두는 - 이 땅을 비추는 생명의 빛으로 승화될 것이고 – 여러분들이 모인 비전교회를 통해서 – 이 세상은 비로소 – 맑아지고 밝아지게 될 것이며 –그러한 여러분의 삶이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헌신의 삶이 될 것입니다.
=============================기도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소금이 되어주신 주님께서 –너도 누군가를 위한 소멸하는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지만 – 나는 일평생 아예 소금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어주신 주님께서 - 너도 빛으로 살라고 하셨지만 –나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세상 영광의 빛으로 - 나를 돋보이게 하느라 – 천하보다 귀한 나의 생명을 어이없이 갉아먹어왔습니다.
나의 이 모든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 이제 우리 모두 빛과 소금이 아니라 – 소금과 빛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 누군가를 위해 우리 자신을 소금으로 소멸시키므로 –우리의 삶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빛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님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매일 맑아지고, 밝아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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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보혜사 성령님의 감화감동 충만한 역사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삶의 모습으로 헌신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다짐하는 - 주님의 백성들과 비전교회 위에 –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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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복음 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얼짱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