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에 따라 '죽연마을 → 사성암 → 오산 → 매봉 → 자래봉 → 솔봉 고개 → 동해 삼거리 → 배바위 → 둥주리봉 → 동해마을'의 9.4km 구간을 5시간 20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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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높이: 542m
위치: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 해발 531m의 호리호리한 산으로 자라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비경이 많아 가족동반이나 단체 소풍 코스로 사랑을 받아왔으며, 죽연 마을에서부터 지그재그로 산길을 돌아오다 보면 발 아래 감도는 섬진강 물에 눈이 부시고 더 높이 오르면 지리산 줄기를 배경으로 한 구례 일대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상에는 서기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암자가 있는데 원효, 도천, 진락, 의상대사 등의 성신이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리고 있으며, 이 사성암을 중심으로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12 비경이 일품이다. - 한국의 산하
10월의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는 경기도 오산이 아닌 구례 오산에 오르기로 했다. 애초 오산은 2017년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 오산이 품고 있는 사성암을 상춘 시절에 맞춰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말인즉 급하게 오를 산이 아니라, 정히 갈만한 산이 없을 때 유유자적 다녀올 생각이었다. 이후 다양한 기관이 선정한 100 산에 다 오르고, 백두대간 연결도 완료한 후에는 여러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을 보고, 오지 위주의 초행 산행에 따라나섰다. 물론 천고지 중 여섯 산이 남았으나. 서두른다고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라, 기회만 엿보고 있다.
안내산악회의 산행 계획에 따라 초행의 산에 동행했다가 실망한 적이 많아, 어느 순간부터 산행에 가성비를 따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해서 이미 검증된 산의 미지 코스를 올랐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초기에 계획을 세웠던 산 위주로 다녔다. 그런데, 열심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던 때와는 달리, 안내산악회라는 마약에 중독된 현재는 귀차니즘이 대중교통 이용을 방해한다. 비용 또한 안내산악회가 50%~70%가량 저렴하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가성비는 대중교통에 비해 안내산악회가 좋다는 얘기다.
안내산악회의 단점은 정말 가고 싶은 오지는 대중성이 떨어져 계획조차 보기 힘들다는 거와 가고 싶은 시점에 갈 수 없다는 거, 성원 미달로 산행 자체가 취소되기 일쑤라는 거다. 그럼에도 장점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오산은 상춘 산행으로 계획했으나, 안내산악회 계획과 맞지 않아, 아직 사성암 본존불에게 신고를 못 했다. 그러는 중 9월 초,10월 산행 계획을 세우다, 한 안내산악회에서 10월의 마지막 날에 떠나는 산행 계획을 발견했다. 문제는 같은 날 영월 구봉대산과 이틀 후인 목요일에는 오지 전문팀의 칠곡 가산을 이미 신청했다는 거.
상춘에 사성암을 방문하는 건 스스로 지옥에 뛰어드는 거라는 자기 합리화 후, 영월 구봉대산과 구례 오산을 두고 고민하다가, 구봉대산은 많으면 월 3회 이상 적으면 한 번은 계획을 공지하는 만큼 이미 신청한 산행을 취소했다. 그리고 최소 이틀은 쉬어야 체력을 회복하는 인간이라, 하루만 쉬고 가야 하는 가산과 다시 저울질했다. 사실 가산은 산행 신청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을 보는 순간 오르고 싶은 마음이 반으로 줄어, 6월 신청했다가, 취소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10월에 정히 갈 만한 산이 없어 다시 신청한 거라 미련 없이 취소했다.
산행 일인 10월의 마지막 날 기상청 산악날씨 지리산 노고단 예보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10도~11도 사이의 기온, 2m/s 내외의 바람이고, 구례 사성암 예보는 역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20도~24도 사이의 기온, 2m/s의 바람으로 기온 차를 빼면 같다. 해발 1,500m가 넘는 노고단과 500m를 간신히 넘는 오산의 기온 차는 당연하고, 약간 더울 듯 하나, 산행에는 최적의 날씨다. 다만, 미세먼지 상태를 알 수 없어, 조망이 어떨지는 예측이 안 되지만, 모든 등산 준비는 평소와 같다. 물론 점심으로 사당역표 김밥을 사 가나, 지도 앱으로 확인한바 날머리에 '동해국수'라는 식당이 있는 걸로 나오나, 영업 여부는 알 수 없어, 현지에서 확인해야 한다. 와중에 들머리와 날머리가 바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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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사당역 1번 출구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라, 5시경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어제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6시 55분경 집을 나서, 구산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구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삼각지에서 사당행으로 갈아탄 후 6시 50분경 도착해, 승차장 종합판매대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배낭에 넣고, 1번 출구로 나갔다.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주 평일인 화 또는 목요일의 루틴이라 날짜와 주변 환경의 변화를 계절 단위로 실감하는데, 역시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같은 시간이나 날은 더 어둡다. 출근하는 직장인의 표정도.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며,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직장과 직장의 위치에 따라 각기 줄 서서 기다리는 직장인, 막 도착해 자기 줄을 찾아 끝으로 가는 사람과 역시 막 도착해 방향을 바꾸는 버스로 정신이 없다.
그들을 지나쳐, 거의 주차장 끝에서 우회전하자, 열 지어 주차 중인 눈에 익숙한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그런데, 내가 타야 할 구례 오산행 버스는 제일 뒤다. 좀 전에 지나온 공영주차장 공간은 출근하는 직장인과 버스로 정신이 없는데,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는 전국 단풍 유명지로 떠나는 버스가 줄 서서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으며 보니, 물이 없다. 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냉장고에 있는 500mL 생수를 깜빡하고 그냥 왔다. 토요일 북한산 숨은벽 산행 때도 물을 깜빡해 흥수가 준 물로 갈증을 달랬는데, 요즘 뭘 꼭 하나씩 빠트리고 다닌다. 다행히 버스가 휴게소에 들르니 그때 사면 된다. 다만 생수를 사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버스에서 사용할 슬리퍼 등이 든, 파우치를 들고 차에 탄 후, 내 자리로 가, 슬리퍼로 갈아 신는 등 거의 4시간을 달리는 버스에 잘 버틸 수 있도록 불편한 걸 느끼지 못하게 환경을 세팅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태블릿으로 보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하고, 조금 지난, 7시 정각에 버스는 구례 오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후 양재와 죽전에서 승객을 마저 태우고, 9시 16분경 20분간 휴식하기 위해 여산 휴게소로 들어갔다. 직전 인솔 대장이 20분간 휴식한다는 공지와 함께 구멍가게도 없는 날머리의 유일한 식당이 월, 화는 영업을 안 하니, 산행 후 먹을 걸 준비하지 않은 승객은 휴게소에서 준비하라고 알려준다. 낭패다! 그나마 다행은 대장이 식당을 언급한 덕분에 생수를 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해서 주차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른 후, 지난번에 왔을 때는 공사 중이었던 여산 휴게소의 시조 소공원을 둘러본 후 편의점에 들러 500mL 생수 한 병 사 들고 버스로 돌아갔다.
거의 모든 안내산악회의 인솔 대장이 그렇듯이,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미처 몰랐던 것 중 대장의 설명으로 알게 된 건, 들머리인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지 자가용이 다닐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기 마을버스가 있다는 거. 대장도 등산이 힘든 승객은 마을버스를 이용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구례 오산이 지리산과 구례를 기준으로 섬진강 건너에 있다는 거. 고로 광양 백운산과 같은 위치로, 강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이 나뉠 거라는 내 생각이 틀렸다. 이정표가 워낙 잘 되어 있어, 종주 코스와 짧은 코스에 관해 언급만 하고 따로 코스에 관한 설명은 없다. 대신 그보다 더 중요한 자유시간, 즉 하산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제안을 했다.
애초 산악회 계획은 5시간 20분 동안 오산 산행 후 인증꾼을 위해 20분의 시간을 더 들여, 지리산 생태탐방원으로 이동해 국립공원 스탬프 인증을 받는 거다. 물론 인증꾼이 없으면, 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거로, 대부분 승객이 인증꾼이 없기를 바랐으나, 확인 결과 세 명이나 있어, 들려야 한다.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인솔 대장이 하산주 관련해 산꾼 몇과 얘기를 나누었는지, 5시간 20분 산행이나, 5시간으로 끝내고 20분을 단축하면, 그 시간을 스탬프 인증을 위한 시간에 더해, 식당가인 화엄사 주차장에서의 스탬프 인증 시간을 40분으로 늘리겠다는 제안을 했다. 대장이 강요할 사항은 아니라, 권장은 5시간 마감, 공식은 5시간 20분 마감이라는 말로 얘기를 마쳤다. 이후 구례에 도착한 후 오산 주차장 찾지 못해 우여곡절을 겪어 계획보다 20분 늦은 11시가 조금 넘어 들머리에 도착했다. 고로 공식 마감은 4시 20분, 하산주를 위한 권장 마감은 4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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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차장 출구에 정차하는 바람에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멘 후, 주변을 둘러봤다. 사성암 주차장에는 이미 예닐곱의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고, 마을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차장도 있다. 그리고 주차장 옆이 섬진강이다. 오랜만에 보는 섬진강이라,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알려준 오산 들머리를 찾아 내려가며 보니, 일행 중 십여 명은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들머리로 가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등산 앱을 기동하기는 했으나, 현재 위치의 고도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다. 45.9m! 오차를 고려하면, 40m 내외로 생각보다 낮다. 최소 100m는 넘을 거로 생각해, 530.8m에 불과한 오산을 우습게 생각했는데, 거의 500m에 가까운 표고차라 생각을 고쳐먹었다. 690m의 둥주리봉과 표고차는 650m 정도라, 올려야 할 높이가 지난 주 다녀온 각흘산보다 높다[산행기].
들머리를 행해 포장도로로 하류로 내려가며 보니, 길을 혼동하지 않도록 곳곳에 이정표가 방향을 잘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그 이정표 중 하나에, 들머리인 '오산 등산로 입구 0.2km', 반대 방향으로는 날머리인 '동해마을 2.2km'라고 알려준다. 말인즉 도로를 따라가면 들머리와 날머리 사이의 거리가 2.4km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걸 보는 순간, 산행 후 날머리에서 들머리로 걸어와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화엄사 주차장에서 자유시간 40분이라는 인솔 대장의 달콤한 유혹이 없었다면 서둘러 하산해 실행했을 거다. 그런데. 이정표 상의 들머리는 200m를 더 가야 등산로 입구인데, 오른쪽으로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다. 그리고 빠른 몇은 벌써 그 길로 올라가고 있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름길이다.
당연히 우회전해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호흡을 조절하며, 급경사 마을 관통 도로를 올라가, 11시 16분 정규 등산로와 만났다. 그런데, 그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의 오산 방향 지시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등산로 임시폐쇄 알림'이라는 안내문이 매달려 있다. ‘이게 뭐야? 그럼, 다 차를 타고 올라가란 얘긴가?’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친한 산꾼이, '선배님, 어떻게 해요?'하고 묻는다. '당연히 가야지, 우리가 가지 말란다고 안 갔나?', '앞에 자재 더미를 쌓아 놓았으면, 그걸 부수고 넘어가나요?', '아니, 그랬다가는 고소당하고, 우회해야지!' 이런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새로 조성한 등산로를 따라 오산 방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지나, 바위너설을 만나자, 위아래로 시야가 탁 트여, 먼저 위를 바라봤다. 갈지자를 그리며 바위너설을 따라 올라가는 갑판 계단이다. 아래로는 섬진강 변에 우리가 출발한 주차장이 보인다.
그걸 기록으로 남긴 후, 너덜의 바위 조각으로 만든 돌길을 따라 계속 오르자, 드디어 갑판 계단이 시작된다. 국립공원이 아닌 오산도 사람이 많이 찾아서인지 갑판을 피할 수는 없다. 아래에서 본 대로, 바위너설 지역을 갈지자를 그리며 사성암으로 향하는 갑판으로 위로 오르며 보니, 중간 방향을 바꾸는 지점에는 쉼터도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에는 등산객 대여섯이 벌써 자리를 펴고 한잔하고 있다. 그들을 지나, 좌회전해 다시 바위너설 지역으로 들어서는 갑판에서 위를 보니, 까마득히 위로 계속 갑판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본 안내문의 공사가 이 갑판 설치를 언급하는 건지, 상태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인다. 그럼, 얼마 전까지는 갑판이 없어, 너덜이나 너덜 옆의 급경사 등산로로 바로 올라갔을 거다. 그야말로 지옥을 맛봤을 텐데, 그 당시 오산에 오지 않은 걸 후회하며 계속 위로 올라, 11시 27분 과거 등산로의 흔적이 남아있는 '돌탑 삼거리'를 지났다. 삼거리 이정표에 의하면 오산까지 남은 거리는 1.5km!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갑판이 설치된 곳이 바위너설 지역이라, 좌우는 울창한 숲에 가렸지만, 아래로는 탁 트여 그나마 섬진강과 그 건너의 조망을 보여준다. 그걸 놓칠 지자체가 아니라, 갑판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에는 쉼터가, 그리고 바위너설을 가로지르는 중간 부분에는 전망대를 설치했다. 물론, 조망이야, 높이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하지만! 어쨌든 그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그렇게 급경사 바위너설을 올라, 11시 31분경 드디어 갑판이 끝나고, 다시 낙엽 쌓인 돌길 등산로로 바뀌는 지점에 도착했다. 상태로 봐서는 이 또한 최근에 재정비한 등산로다. 앞뒤 좌우를 둘러보며 그 등산로로 위로 가다가, 과거 등산로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걸 보고 그냥 갈 수 없어, 산세를 관찰했다. 과거 등산로로는 바로 왼쪽의 능선으로 올라가고, 새로 정비한 등산로는 갑판에서 돌길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갈지자를 그리며 위로 가고 있다. 고로 과거 등산로가 경사는 급하나 지름길이다.
그걸 버릴 인간이 아니라, 좌회전해 과거 등산로로 오산 정상으로 향했다. 페이스를 잃지 않게 호흡을 조절하며, 100여 미터를 가자, 능선이라 생각되는 합류 지점에 인공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농사시설로 보여, 여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정자의 기단이다. 들머리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고도를 알기 위해 수시로 등산 앱을 확인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규 등산로에서 벗어난 곳에 '전망'이라는 표기가 있어 이건 뭐인지 궁금했는데, 과거 전망 지점에 정자형 전망대를 만들고 있다. 오산이 초행이라 과거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현재는 등산객이 아니라 관광객을 위해 환골탈태 중이다. 어쨌든 이 지점부터 등산로는 아예 돌길이 아니라, 시멘트 포장도로다. 넓이로 봐서 차량용은 아니고, 휠체어용으로 생각된다.
전망대에서 그 포장도로로 위로 5분가량 올라가니 사거리다. 포장도로는 직진이고, 아래에서 갈라졌던 정규 등산로가 그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위로 간다. 그 사거리에 있는 이정표 기둥에는 '전망대 삼거리'라는 명패가 붙어 있고, 그 기둥에는 '공사 중 출입 금지' 안내문이 매달려 있다. 고로 애초 여기는 위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없는 삼거리였는데, 이번에 새로 돌길을 만들어 사거리가 됐다. 가지 말란다고 안 가면 산꾼이 아니라 새로 만든 돌길로 정상으로 향해, 11시 42분경 울창한 숲 사이로 건물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건물의 모양새로 봐서는 절집은 아니다. 그럼, 산장? 그 건물의 정체를 추측하며 계속 오르자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 소음과 사람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그 소리가 커진다. 사성암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11시 48분 많은 자가용이 주차한 사성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새로 만든 등산로에서 도로로 합류하기 직전 공사 중임을 알리는 플래카드에는 공사 기간이 2024년 12월까지로 아직 14개월이나 남았다. 여기까지 오며 본 바로는 거의 마무리 단계로 보이던 데, 아직 만들 게 많은가 보다!
도로에 올라서 아래를 보니, 등산로로 올라오며, 궁금해했던 건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다원이다. 다원에는 관광객과 우리 일행으로 보이는 몇 명이 기념품을 사거나, 차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주차장 끝, 사성암 입구의 '사성암 종합 안내도'를 기록으로 남기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사성암으로 조금 올라가자, 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그것에 의하면 오산까지는 553m, 둥주리봉은 5.1km다. 그럼,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둥주리봉이고, 그 앞에 있는 게 오산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그 모습을 사진 찍고 사성암으로 가, 11시 54분 암벽에 기대선 전각 아래에 도착했다. 사성암 관련 사진에 늘 등장하는 그 불전으로 본존불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원효가 손가락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은 그 옆 암벽에 있을 거다. 해서 옆으로 많은 절집이 보이나, 먼저 본존불이 있을 거로 여겨지는 전각으로 향했다.
마애여래입상을 만나는 순간을 기리기 위해 동영상을 찍으며 돌계단으로 전각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부처를 새길만한 암벽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전각에 도착할 때까지 안 보인다. 응? 그럼, 어디에? 전각이 멀지 않아, 일단 본존불에게 신고하고, 마애여래는 그 후에 찾기로 하고 계속 영상을 찍으며 전각에 도착해 내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전각 한쪽 벽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처럼 유리고, 그 너머에 사리탑 대신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말인즉 본존불이 마애여래입상이다. 전국의 산에 오르며, 그 산이 품고 있는 사찰은 유명하든 아니든 시간에 쫓기지만 않으면, 본존불에게 꼭 신고했다. 그런데, 돌부처 본존불은 많이 봤지만, 마애불은 여기서 처음이다. 하지만, 전각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천장의 조명이 방해해 본존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등산화 끈을 풀자, 옆에서 지켜보던 친한 산꾼이 '선배님, 들어가시게요?' 묻는다. '제대로 보고 싶어서!'라고 답하고, 등산화를 벗고 들어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신고한 후 마애여래입상의 제대로 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전각의 이름이 유리광전이다. 고로 그 마애여래입상은 약사여래다. 신고도 하고 기록도 남긴 후 전각에서 물러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완벽한 전망대다.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어, 사진을 찍었다. 유리광전에서 볼일이 다 끝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등산 앱이 반응한다. 응? 사성암도 인증 대상인가? 궁금해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오산 반경 50m 내란다. 오산 정상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50m 내라니? 이런 식의 오류를 많이 봐온 바라 그러려니 하고, 불교용품점에서 초를 하나 사 불을 붙여, 기원단에 놓은 후 본격적으로 사성암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나한전은 신발을 벗지 말고 들어오라는 안내문이 있어 들어갔더니, 절벽 쪽에 거대한 창문이 있다. 그 창문이 전망대로는 최고로 보이나, 그 창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해, 귀차니즘에 나한전 전망대는 포기했다. 이후 지장보살을 만난 후 본존불 다음으로 중요한 산신을 만나기 위해 산신각을 찾았으나, 없다!
산신각이 안 보여 삼성각을 찾았으나, 역시 없다. 대신 산왕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여, 그 방향으로 갔다. 맞다. 그런데, 신 아니라 왕이다. 거하는 곳도 각(閣)이 아니라 전(殿)이다. 그런데, 왕(王)보다 신(神)이 더 위 아닌가? 아, 왕의 나라에는 산이 많고 그에 따라 산신도 많아, 왕이 산신을 거느린다는 의미인가? 그럼, 산왕은 산신들의 왕? 골치 아프다. 산왕에게도 이번 산행을 신고했으니, 사성암에서 할 일은 끝났다. 그런데, 산왕전 옆으로 배례석이라는 게 보여, 이건 또 뭔가 하고 가 봤다. 안내를 보니, 본존불이 없을 당시 화엄사 본존불에게 배례하는 곳이지만, 내게는 전망대다. 구례 시내 전경과 지리산 끝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옆에 있는 안내도를 보니, 도선굴이라는 게 있다. 분명 도선국사가 참선한 굴이라는 의미일 거다. 그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굴 입구를 찾아 헤매다가, 산왕전 왼쪽에서 이정표를 발견했다. 산왕전에서 이것저것 하는 동안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역시 인간은 집중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는 의지의 동물이다. 다른 동물도 그런가? 어쨌든 동영상을 찍으며 도선굴을 통과했다.
도선굴을 통과하자, 좌는 배례석으로 우는 오산으로 가는 등산로다. 사성암에서 봐야 할 건, 다 봤으니, 당연히 우회전해 오산 정상 방향으로 조금 가자, 공식 전망대다. 당연히 그 전망대로 갔으나, 조망이 배례석보다 못해, 주변 조망을 기록으로 남기는 건 포기하고 전망대에 있는 관망도를 기록으로 남겼다. 참고로 산행 후 이 글을 쓰면 사성암에서 돌아다닌 트랙을 확인해 봤다. 정신없는 기록에는 분명 실제 간 기록도 있으나, 거의 80% 이상이 GPS가 튀어서 발생한 트랙이다. 문제가 있는 게 핸드폰일까, 등산 앱일까? 전망대를 마지막으로 사성암에서 나와 오산 정상으로 향하다가, 아래에서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반응했던 게 기억나 동영상을 찍으며 갔다. 그리고 12시 15분 오산 정상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상석의 위치가 산꾼의 상식을 깬다. 정상은 아직 더 가야 한다. 그리고 사성암 직전에서 저게 오산일 거로 생각한 봉우리는 아직 멀었다. 어쨌든 여기가 공식 정상이다. 고로 사성암이 오산의 7부 능선쯤에 있을 거로 생각한 게 오류였다. 정상 바로 아래다.
마침 조금 늦게 일행이 도착해 그와 상부상조해 인증을 남긴 후 다시 길을 재촉해, 100여 미터를 가자, 앞에 정자가 보인다. 그런데, 정자가 있는 위치가 오산의 정상이라 생각된다. 저 위치가 아니라, 아래에 정상석을 설치한 이유가 있을 거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정자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지리산 방향의 최고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전경을 파노라마와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친한 산꾼이 앞에 보이는 능선에 관해 묻는다. 해서 엉덩이 두 쪽의 왼쪽이 중봉, 오른쪽이 반야봉이고, 그 앞에 높은 봉우리가 왕시루봉이라고 알려줬다. 물론 왼쪽 끝의 높은 봉우리가 노고단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지리산 남부 능선, 왕시루봉과 남부 능선 사이가 불무장등이고 그 끝이 화개장터다.
정자 전망대에서 기록을 끝내고, 뒤로 돌아 오산과 사성암이 보이나 확인하며, 길을 재촉하다가, 오산에서 고개로 내려가기 직전 오른쪽 섬진강 방향으로 암벽 전망대가 있어, 그곳으로 가, 가야 할 방향의 능선을 관찰했다. 물론 기록도 남기고. 뒤의 높은 봉우리가 오산 최고봉인 둥주리봉, 그 앞이 사성암 직전에서 오산으로 착각한 자래봉이다. 관찰을 끝내고 암벽 전망대에서 다시 등산로로 돌아와 사당역표 김밥을 배낭에서 꺼내 먹으며 고개로 내려갔다. 그런데, 기복이 심하지 않고, 등산로는 웬만한 국립공원보다 좋아 걷기가 수월하다. 고로 절로 속도가 난다. 그렇게 전진해 12시 31분 둥주리봉 4.4km 거리의 매봉을 통과하고, 12시 40분 자래봉 삼거리를 지난 후, 계속 뒤로 돌아 사성암과 오산 정상이 보이나 확인했으나, 울창한 숲에 가려 안 보이다가, 어느 순간 나무 사이로 사성암이 간신히 보여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간신히 사성암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어딘지 궁금해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자래봉으로, 현재 시각 12시 53분이다.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갔지만, 정상 삼거리로 이정표에는 자래봉 대신 '선바위 구름다리 1'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지자체에는 자래봉보다 구름다리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이정표를 보니, 구름다리까지 0.3km, 즉 300m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자세히 보지 않고, 3km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었다. 왕복 600m라는 걸 알았다면, 당연히 다녀왔을 거다. 봉우리에 올랐으니, 고개로 내려가야 하나, 그 기복이 심하지 않다. 그리고 숲을 벗어나자, 앞에 가야 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50m가량 가자, 갑판 계단의 마고실마을 갈림길이다. 이정표 기둥에는 '선바위 구름다리 2'의 명패가 붙어 있고, 둥주리봉까지 남은 거리는 3.1km!
갈림길을 지나 100여 미터를 가자, 앞은 봉우리로 막혔으나, 뒤나 탁 트인 전망대라 뒤로 돌아, 사성암과 오산이 보이나 확인했다. 안 보인다. 하지만, 자래봉 왼쪽 암벽과 그 위의 소나무가 절경이라.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앞의 봉우리로 올라가며 보니, 정상에 전망 바위다. 당연히 지나칠 수 없어, 바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뒤로 보이는 건 아래와 대동소이하고, 진행 방향으로 보이는 건 이미 앞에서 본 것과 같다. 말인즉 특별히 다른 게 없어 기록으로 남길 게 없다는 거다. 그래도 오른쪽으로 지리산 촛대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사진 찍고,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역시 봉우리에 올랐으니, 고개로 내려가며 보니, 암릉에 독야청청 소나무다.
당연히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봉우리로 오르는데, 무언가 빠르게 길을 가로질러, 재빨리 뒤로 물러난 후 그게 뭔지 확인했다. 광합성 하러 나온 뱀이다. 그놈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벌써 낙엽으로 들어가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대충 있을 거로 생각되는 위치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찍으려고 보니, 빠르게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이후 당시 찍은 사진을 이 잡듯이 뒤져도 그놈을 찾지 못했다. 분명 사진 속에 있는데, 진화가 선사한 놀라운 보호색이다. 뱀이 무사히 사라지는 걸 보고, 앞의 봉우리를 어떻게 오를지 고민하며 가는데, 의외로 등산로는 직진하는 게 아니라 봉우리를 우회한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다. 코스에서 약간 벗어난 봉우리는 굳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봉우리 하나를 우회해 둥주리봉으로 향하는데, 김밥을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해서 오랜만에 에너지바를 꺼내 먹으며 갔다. 그리고, 1시 19분 생각지도 못한 임도에 도착했다. 이정표 기둥에는 솔봉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고, 둥주리봉은 좌로 2.2km를 가야 한다. 직진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지시는 없지만, 분명 길이 있고 그 방향에 인기척이 들린다. 해서 이번 산행의 B 코스인 둥주리봉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동해마을로 내려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임도를 따라 좌회전했다. 그 길을 따라 4분 정도 내려가니, 왼쪽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이정표에는 '동해마을 임도 갈림길'이라는 명패가 붙어있고, 둥주리봉까지는 1.8km가 남았다. 그리고 동해마을은 조금 전, 임도 합류 지점에서 직진하는 게 아니라,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된다. 그럼, 그 길과 거기서 들렸던 인기척은 뭘까? 알바 중인 일행?
임도를 떠나 다시 등산로로 들어서 둥주리봉으로 향하다가, 산행을 시작하며, 오산에서 내려와 둥주리봉으로 올라가는 고개의 고도를 확인하겠다고 했던 걸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임도에서 올라온 높이가 20여 미터에 불과해 지금 확인해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실천에 옮겼다. 456.3m! 임도에서 올라온 높이와 GPS 오차를 고려하면 400m가 조금 넘는 거로 생각된다. 그럼, 690m의 둥주리봉과 표고차는 300m가 조금 안 돼, 사성암 주차장과 오산의 표고차 500m보다 훨씬 낮다. 말인즉 오산에 비하면 쉬운 산행이라는 거다. 표고차를 확인하고, 급경사를 올라가자, 쉼터 전망대다. 당연히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치를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처음에는 앞의 능선 오른쪽 뒤로 보이는 봉우리를 지리산의 봉우리라 생각하고 어느 봉우리인지 곰곰이 따져봤다. 촛대봉이라 하기에는 그 아래 세석평전의 경사가 너무 급하다. 그렇다고 천왕봉도 아니고. 해서 왼쪽을 보니, 까마득한 뒤로 희미하게 능선이 보인다. 저게 지리산이다. 그럼, 오른쪽은 광양 백운산!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13시 35분 '배바위 삼거리'를 통과했다. 둥주리봉까지 남은 거리는 1.3km. 삼거리를 지나 100여 미터를 가자,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그 암벽에는 갑판 계단이 있다. 당연히 그 계단으로 위로 오를수록 앞은 전혀 안 보이나, 뒤는 탁 트인 전망대다. 그리고 비록 멀기는 하나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사성암과 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연히 갑판 계단 정상에 도착해 뒤로 돌아 그 절경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사진을 찍은 후 다시 길을 재촉해 암봉 정상으로 향하며 위를 보니, 갑판 전망대가 보인다. 해서 서둘러 그 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둘러봤다. 아쉽게도 아래에서 본 것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전망대에 올라온 기념으로 사진 몇 장 남기고 고개로 내려갔다.
고개에서 앞의 봉우리를 보니, 동영상으로 기록해야 할 칼바위능선이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무명의 암봉으로 올라 뒤로 돌아보니, 더 멀어지기는 했지만, 사성암과 오산이 더 잘 보인다. 당연히 그 모습을 또 사진으로 남기고 얼마 남지 않은 목표로 향했다. 봉우리에 올랐으니, 다시 고개로 내려가는데, 역시 한국 산은 막판까지 가봐야 안다. 지금까지와는 길이 다르다. 안전 가드로 밧줄이 있고, 암벽 사이에 철 사다리가 있는 게 그나마 오지와 다른 점이다. 그 철 사다리로 바위에 올라, 50여 미터를 가자,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현재 시각 2시 7분! 3시까지 하산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할 수 있을 거 같다. 1시간이나 일찍 내려가 봐야 할 일도 없지만. 어쨌든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너덧의 일행이 인증을 찍느라 정신없는 둥주리봉 정상에 14시 9분경 도착했다.
둥주리봉 옆에도 정자 전망대를 만드는지 기단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처음 아래에서 그 기단을 보고 쉼터 의자라 생각했는데, 위에서 보니 정자 기단이다. 이러니, 2024년 12월까지 공사를 하지. 어쨌든 일행이 다 떠난 후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고, 잠깐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로 봐서 사람은 아니고 멧돼지나 고라니 종류다. 해서 소리 나는 방향을 유심히 지켜봤다. 꼬리를 하늘로 치켜든 동물이 빠르게 지나간다. 삵? 담비? 담비는 뭉쳐서 다니니, 삵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너무 빨라 핸드폰을 들고 있었음에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 이후 저 멀리 지리산과 백운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둥주리봉을 떠나 동해마을을 향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한 시각이 14시 13분경이다.
해발 40m가량의 사성암 주차장에서 높이 531m의 오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높이 690m의 둥주리봉에서 사성암 주차장과 비슷한 높이로 생각되는 동해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역시 예상대로 쉽지 않다. 아직 여기까지 공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갑판 따위는 볼 수도 없다. 이정표도 어쩌다 있기는 한데, 다 쓰러져 가는 중이고 정확하지도 않다. 2024년 12월이 지나면 여기도, 갑판으로 도배되겠지만. 어쨌든 오지 하산의 묘미를 만끽하며 내려가는데 위에서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 한 대가 아니다. 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헬기에 무언가를 매달고 남원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불? 훈련인가? 보이는 건 한 대나,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게 여러 대다. 보이는 헬기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하산을 재촉해, 어느 순간 좋아진 등산로로 14시 37분 '장골 능선' 이정표를 지났다.
14시 38분 쓰러져 가는 능괭이 이정표에 도착했다. 2017년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산에 오를 계획을 세울 때는 용서마을로 하산할 예정이었다는 걸 이정표에서 용서폭포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해서 이정표 주변에 용서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지 찾아봤다. 없다! 해서 이번에는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에는 길이 표시되는지 확인했다. 역시 없다. 대신 둥주리봉에서 바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있다. 그럼, 이정표가 위치한 갈림길은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아, 길도 없어지고 지도에서도 사라졌다는 얘기다. 그렇게 결론짓고 다시 하산을 재촉해, 14시 45분 동해마을 1.3km 이정표를 통과하고, 14시 53분 '솔봉' 이정표를 통과했다. 동해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1.0km. 솔봉? 임도에 합류할 때 그 이정표도 솔봉이었다. 같은 솔봉인가? 어쨌든 3시까지 하산하겠다는 목표 달성은 실패다.
그 이정표를 통과해 13분가량 내려가자, 오가는 차량 소음이 크게 들리고 저 아래로는 다리와 그 밑을 흐르는 섬진강이 보인다. 그리고 1분 정도 더 가니, 도로에 주차한 빨간 버스가 보인다. 둥주리봉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부분 앞선 일행을 추월한 상태라, 먼저 도착한 일행은 거의 없을 거라고 자신하며, 종점으로 향하는데, 도로로 내려가는 마지막은 계단이다. 그 끝은 화장실 옆이고. 신이 나서 계단을 내려가자. 옆에 동해마을 이정표가 있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주차한 빨간 버스의 뒤태를 바라보며,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일행이 벌써 도착했다. 그리고 문제의 동해국수는 마을 입구에 오른쪽에 있는데, 대장이 언급한 대로 문이 닫힌 상태다. 대신 우리 일행이 식당 야외 식탁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먹고 있다. 동해 국수 옆에 마을 표지석과 정자가 있어 그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3
동해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3시 8분경으로 권장 산행 마감인 4시까지는 52분이나 남았다. 정자 뒤에는 짧은 B 코스를 달린 산꾼과 인솔 대장이 술판을 벌이고 있고, 정자 주변과 섬진강 변의 쉼터에도 등산객이 끼리끼리 모여 준비한 음식을 먹고 있거나, 쉬고 있다. 도착했을 때 수고했다고 인사했던 친한 산꾼과 그들 모두 어딘 가에서 씻은 모습이다. 산행 마감 시간까지 할 일도 없고, 생각보다 더워 땀으로 목욕한 상태라, 그들은 섬진강에서 씻은 거 같지 않으나, 나는 섬진강에서 씻기로 했다. 해서 정자에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배낭과 함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뒀다. 이후 맨발로 버스에 타, 슬리퍼를 신고 나와 땀으로 흠뻑 젖은 수건을 들고 섬진강으로 향했다.
다행히 강변의 갑판 산책로 겸 쉼터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 잡풀이 자라고 있는, 섬진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런데, 그 계단으로 내려가자, 갑판 계단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오간 흔적인, 키 작은 갈대 사이로 난 길로, 섬진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섬진강과 오산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사성암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이후 웃통을 벗어부치고, 3시 30분까지 대략 6분 동안 씻고, 다시 정자로 돌아왔다. 그런데, 목이 타들어 가는 듯 갈증이 심하다. 그렇다고 물을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물론 동료 산꾼에게 얘기하면, 생수 한 통 구하는 거야 어려운 게 아니나,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동료 산꾼에게 요청하는 대신, 주변에 뭐가 있지 않을까 둘러보다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에서 '약천사'라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마을 위에 약천사라는 절이 있다는 얘기다. 해서 절에서 감로수를 마시기로 하고 위로 올라갔다. 마을 입구에서 50여 미터를 가자, 마을 관통로 왼쪽으로 낡은 지붕만 있는 건물이 보인다. 전형적인 우물의 모습이다. 당연히 우물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갔다. 예상대로 뚜껑으로 덮인 우물이다. 화강석으로 만들어 우물 벽에 박은 머릿돌에 의하면, 착공 2월 10일, 준공 2010년 4월 9일이다. 그리고 지붕 아래에는 청소 도구가 걸려있는 게 여전히 관리하고 있다. 고로 사용하는 우물이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물을 뜰 수 있는 바가지나, 물컵이 안 보인다.
우물이 깊어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시스템일 수도 있어, 뚜껑을 열어봤다. 깨끗한 물이 있다. 머리를 박고 마시기에는 깊다. 그렇다고 두레박을 쓸 정도는 아니라, 두레박 따위는 없다. 바가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뜰 수 있을 깊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물을 뜰 수 있는 어떠한 도구도 없다. 정자로 돌아가, 빈 생수통을 가져올지 고민하다가 귀찮아서 포기하고 약천사를 향해 계속 위로 갔다. 귀차니즘이 타는 듯한 갈증을 이겼다. 그렇게 100여 미터를 올라가자 서낭으로 보이는 나무가 있고, 그 옆에 태극기가 있는 건물이 있다. 마을회관 또는 노인정이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시계를 봤다. 3시 38분으로 권장 마감까지 22분 남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약천사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해서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갈증이야 화엄사 주차장 상가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려 정자로 돌아가며, 올라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마을 경치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3시 45분경 버스기 기다리는 마을 입구로 돌아와서 보니, 많은 승객이 버스에 타고 있다. 해서 햇볕에 말리고 있던 배낭을 짐칸에 싣고, 등산화와 양말을 비닐봉지에 넣어 냄새가 새지 않도록 잘 봉한 후 그걸 들고 버스에 탔다. 그러자 권장 마감 5분 전인 3시 55분경 인솔 대장이 인원 점검을 하더니, 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고 한다. 역시 평일에 산에 다니는 산꾼은 다르다. 그런데, 통로 건너 옆자리의 여성 등산객이 인솔 대장에게 다들 일찍 하산해서 밥도 먹고 했으니, 20분 추가하지 말고, 국립공원 스탬프 인증만 하고 바로 서울로 가자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뭐 저런 인간이 있나 했는데, 여성 대장도 뭐 이런 여자가 있나 하는 표정이다.
그렇다고 고객의 제안을 무시할 수 없는 대장이라, 이런 제안도 있는데 동의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뒤는 모르나 볼 수 있는 앞에는 손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손을 안 드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처음 약속대로, 자유시간 40분을 줘야 한다는 건 그 버스에 탄 대부분이 알고 있으니, 굳이 손을 들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제안은 기각되고, 화엄사 주차장을 향해 달린 버스는 4시 17분경 도착했다. 그러자 대장이 4시 56분까지 버스에 탑승하라고 공지했다. 40분 동안 밥을 먹으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배도 고프고, 갈증도 심해 차가 주차하자마자, 식당가로 향했다. 물론 10여 명이 나를 따라온다. 그런데, 들어가는 식당마다 영업 끝이다. 해서 모두 흩어져 영업을 계속하는 식당을 찾아 헤맸다.
버스에서 내린 지 5분이 지난, 4시 21분경 간신히 계속 영업하는 식당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두 팀만 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걸로 봐선, 다른 팀도 식당을 찾은 듯하다. 어쨌든 안면을 트지는 않았으나, 서로 목례는 하는 사이의 두 산꾼은 자리를 잡자마자 파전을 주문하고, 냉장고에서 맥주와 소주를 꺼내 밑반찬을 안주로 소맥을 마시기 시작한다. 애초 술은 생각 없고 배를 채워야 했던 나는 산채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리고 타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그 자리에서 연달아 두 컵을 비웠다. 그런데, 막상 주문한 비빔밥이 나오자 바로 앞의 냉장고 속 소주가 눈에 들어와,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잎새주 한 병을 들고 왔다.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중독이다! 음식 맛이 특별 나지는 않으나, 비빔밥에 곁들여 나온 된장국? 된장찌개는 예술이다.
잎새주 반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소맥을 마시던 두 산꾼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하고 나가며, 내게는 아직 10분 남았으니, 천천히 먹고 오란다. 뭐, 밥을 거의 다 먹었고, 잎새주도 두 잔 정도 남은 상태라 빠르게 병을 비우고 5시 49분경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에서 나와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러다 주차장에 있는 택시 요금표를 발견하고 유심히 살펴봤다. 그사이에 많이 올랐다. 화엄사보다 더 먼 구례 터미널 기준 성삼재까지는 인당 1만 원이었다. 아니, 그럼, 4만 원이니 변한 게 없나? 중산리까지 12만 원이면 싼 건가? 감이 안 온다. 어쨌든 나중을 위해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술을 떠나 목이 타들어 갈 정도로 대단히 힘든 산행이라 피곤했다. 이번 산행에서 등산의 쉽고 어려운 건 등산로가 아니라, 들머리와 정상의 표고차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잠에서 깨어 보니, 전주를 지나고 있다. 엄청 빠르다. 그리고 잠깐 졸다가 깨어보니, 천안논산고속도로다. 그럼, 정안휴게소 정도에서 쉬지 않을까 했는데, 이안휴게소로 들어간다. 급할 건 없으나, 여전히 갈증이 나, 화장실에 들른 후 편의점으로 가 식혜를 하나 사 마셨다. 그리고 버스에 타자 차가 출발한다. 식혜 마시느라 제일 늦었는데, 주어진 10분이 아직 안 됐음에도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다. 어쨌든 다시 달린 버스는 천안을 지나자, 서울로 향하는 많은 차량으로 서행하다가 오산 나들목을 지나 버스 전용차선으로 들어서자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달린 버스는 먼저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8시 19분경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해 승객을 내려줬다. 다른 승객과 함께 양재에서 내리는 거로 이번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대로 '죽연마을 → 사성암 → 오산 → 매봉 → 자래봉 → 솔봉 고개 → 동해 삼거리 → 배바위 → 둥주리봉 → 동해마을'의 13km(램블러) 구간을 4시간 3분 동안 탐방했다. 이동 3시간 56분, 휴식 7분!
안개 낀 고속도로와 달리, 도착한 구례는 청량하고 맑은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라 탁월한 조망의 산행이었다. 오산을 둘러싼 지리산과 백운산, 이름 모를 산과 구례의 절경을 감상했다. 사성암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부처는 몰라도 신선은 될 듯하다.
귀경 중 인솔 대장이 얘기했듯이 벚꽃, 매화로 유명한 봄이 아니라, 가을에 방문했기에 꽃이 아니라, 오산이 가진 진수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수많은 산을 오른 후 최근에야 깨달은 게 등산로의 상태가 아니라, 들머리와 정상의 표고차가 등산의 어려움을 결정한다는 거다. 말인즉 표고차가 클수록 힘든 산행이다. 고로 540m가 조금 넘는 오산이라 우습게 볼 수 있으나, 들머리 높이가 40m 정도에 불과해 500m에 달하는 표고차를 가진 산으로, 쉽지 않은 산행이다. 최고봉인 둥주리봉 기준, 650m에 달하는 표고차다.
한 번 이상 오른 산은 한 번으로 계산해, 오산이 400번째 오른 산이 됐다!
첫댓글 오산의 최고봉인 '둥주리봉'은 '동주리봉', '둥지리봉', '동지리봉' 등 몇 자만 바뀐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정상석과 이정표에는 분명 '둥주리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로 안내산악회 및 램블러의 '둥지리봉'이라는 표기가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