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만과 남해도 자전거 여행기

[봄. 채찬석]

사천만과 남해도 자전거 여행기

1. 여행의 동기와 출발

교직에서 퇴직한 2018년, 자전거 전국 여행을 꿈꾸고 제주도, 남해안, 동해안, 서해안, 내륙을 달렸다. 2019년에는 섬진강, 남원・산청・구례를 도는 지리산 둘레길, 2021년 신안군의 섬들을 달렸다. 그리고 가을에는 수원에서 한강을 건너 임진각에서 속초까지 국토를 횡단했다.

올해 2월에는 남해의 섬들을 가보기로 작정, 계획을 실천하고자 라이딩 연습 중 황구지천에서 넘어져 왼손 골절의 부상을 입고 깁스하고 치료를 받느라 4월 5일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작년 11월, 신안의 압해도・암태도・퍼풀섬을 라이딩한 후, 금년 2월 15일, 사천대교에서 삼천포, 창선도, 남해도, 하동, 사천으로 남해의 한 모퉁이를 한 바퀴 도는 라이딩을 계획했다. 이 계획에 흥미를 느낀 대학 동창, 이동권과 동행하게 되었다. 사전 연습을 위해 황구지천으로 2월 4일, 라이딩을 나갔다가 사고로 왼손 부상을 당해 깁스를 했다. 3월 11일에야 깁스를 풀었으나 온전히 낫지 않아 라이딩을 미루었다가 이번 4월 5일(화)~7일에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 하루 전인 4월 4일, 아산 농막으로 가서 밭에 옥수수 씨를 파종하고, 초석잠도 심었다. 오후에 출발 준비를 하다가 패딩 점퍼를 집에 두고 가져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내일 동행하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로 걱정을 하니 내일 점퍼를 하나 빌려 준다고 했다. 자전거 여행 계획을 써 놓은 여행 공책도 집에 두고 와 아내에게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집에서 여행을 출발해야 준비물을 잘 챙길 수 있는데 하루 전에 집을 나왔더니 중요한 준비물을 빠트리고 출발하는 실수를 했다.

2. 라이딩의 시작

다음날인 4월 5일 아침, 천안 불당대동다숲아파트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도 깜박 잊고 하이바를 가져오지 않아 집에 들어갔다 나왔다. 자전거를 자동차 뒤에 싣고 경남 사천대교를 향하여 9시 20분쯤 출발했다.

사천대교휴게소 주차장에 12시쯤 도착했다. 휴게소 주변에 벚꽃이 활짝 피어 경관이 아름답다. 남북을 가로지른 사천대교 아래의 남해바다를 조망했다. 사천만으로 바다를 끼고 돌며 해안을 달려 한 바퀴 돌아올 예정이다.

친구가 가져온 빵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때웠다. 차에서 자전거를 내려 최소한의 필요 물품을 배낭에 담아 자전거 짐바에 묶었다. 친구는 배낭을 등에 메고 자전거를 탔다.

사천대교의 길이는 약 2 km. 왕복 2차선, 인도는 차도 옆으로 폭 1 m, 좀 좁은 편이고 인도가 차도에 이어 있어 조심하며 달렸다. 다행히 다리가 평지처럼 경사가 없어 달리는데 무리는 없었다. 다리를 건너 우측 길로 빠져 바다 쪽으로 내려와 무지개해안도로를 만났다. 산뜻하게 자전거길을 만들어 놓아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친구가 잠시 동생과 전화를 하더니 거제도로 가서 라이딩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동생이 거제도에 살고 있는데 거기도 자전거길이 좋으니 그리 오면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제안에 잠시 갈등했다. 그러나, 이 여행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하여 출발했으므로 계획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 다시 돌아가 차량에 자전거를 싣고 거제도로 가려면 시간도 많이 소요될 것이고, 준비가 되지 않아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제안이 하루 전에라도 있었다면 계획을 바꿀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단 출발하였기에 계획대로 달리자고 했다.

잠시 달려가니 대포항과 대포어촌마을이 나왔다. 방파제를 양쪽으로 길게 만들어 놓았다. 한쪽 방파제는 새로 길게 만들어 바다로 나가는 전망대처럼 보였다. 그곳도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개통을 못했는지 테이프로 길을 막아놓아 그대로 통과했다.

계획은 우측 해안길을 따라 모충공원과 산분령을 경유하여 삼천포대교공원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자전거 네비는 삼천포장례식장과 삼천포 도서관이 있는 좌측으로 길을 제시해주어 네비를 따라갔다. 더구나 우측 해안 길은 산기슭으로 오르는 길이 보여 오르막으로 힘겹게 가는 것보다 네비가 안내해주는 길이 지름길인 것 같아서 삼천포 시내쪽으로 갔다. 네비가 안전을 고려하기 때문인지 큰 길보다는 작은 뒷골목 길로 안내하여 삼천포천을 지나 삼천포대교공원으로 갔다. 나중에 삼천포대교공원에서 사천대교 방향으로 가보니 그쪽 길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먼저 삼천포 해안가를 살펴보기 위해 사천바다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초양도로 내려가면서 현수교인 삼천포대교를 보았다. 섬과 섬에 다리를 걸쳐 놓은 듯, 아치형태의 난간이 섬을 연결해주는 것 같다. 남해 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여러 개의 섬들, 저 섬들 때문에 바다가 외롭지 않다. 암초처럼 조그만 무인도인 모개도, 케이블카 정류장이 있는 초양도와 창선도 사이에는 조그만 늑도가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초양도. 바닷가로 내려가 죽방렴을 보았다. 아쿠아리움과 카페도 보였지만 죽방렴만 살펴보고 잠시 쉬며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탔다. 이번에는 삼천포대교공원 역방향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각산에 올라갔다. 각산 양지바른 계단 옆으로 분홍빛 진달래가 곱게 피어 있다. 봄날, 진달래가 발갛게 피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각산 정상으로 올라가 봉수대를 보고 삼천포 앞바다를 조망했다. 남쪽으로 창선도가 웅크리고 앉아 남해도로 산등성이가 이어지고 있다. 섬은 조그맣지만 민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도, 신도가 있다. 좌측으로는 규모가 좀 큰 신수도가 있다.

각산에서 내려와 바다를 보며 자전거로 해안도로인 실안해안도로를 약 2 km 달렸다. 자전거길이 잘 나있고 바닷가라 달리기에 쾌적했다. 실안동 횟집 타운과 방파제가 나왔다. 되돌아 삼천포로 나왔다가 그대로 삼천포대교로 올라갔다. 인도라선지 길이 좁아 자전거로 달리기가 조심스러웠다. 또, 약간의 오르막 경사라서 친구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다. 다리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도 보기 좋다. 창선도로 건너와 조금 달리니 모텔이 나왔다.

창선도에서는 단항마을 쪽으로 가려했으나 각산에서 만난 현지인이 그 쪽보다는 주도로로 곧장 가다보면 모텔이 나오니 그곳에서 숙박하면 야경을 보기 좋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주요 도로인 동부대로로 가다 모텔이 나와 들어간 것이다. 모텔에 들어가 방을 예약하고 자전거와 가방을 두고 회센터로 나왔다. 회센터는 영업이 끝나 자연산횟집에서 우럭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친구가 가져온 홍주가 있는데 친구는 막걸리를 먹는다기에 혼자서 40도 짜리 한 병을 다 먹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했다. 친구의 부축으로 숙소에 돌아와 몇 지인들과 통화하다 잠이 들었다.

3. 창선도와 해비치마을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해가 돋았다. 아래에 있는 창남조선소의 타워 위로 빨간 해가 보였다. 아름다운 일출이다. 친구가 가져온 빵과 삶은 계란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8시에 나와 라이딩을 시작했다.

창선교의 명소를 찾아보니 해비치마을(적량마을)이 소개되어 있어 네비로 목적지를 정하고 달렸다. 흥선로에서 좌회전하여 오룡마을을 지나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오르니 장식골고개가 나왔다. 이 고갯길에서도 친구는 힘이 드는지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왔다. 고갯마루에는 적량마을이라 써 놓은 조형물이 있었다. 두 손을 포갠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것 같은 형상이다. 대개 비석이나 자연석에 마을 이름을 써 놓는 게 일반적인데 이 마을에는 세련된 조형물로 마을을 알려주어 인상적이었다. 조형물 뒤로는 빨간 꽃이 피어 줄기에 매달려 있다. 홍매화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홍도화복사꽃이었다.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식 밭에 마른 고사리가 덮여 있고 고사리 밭에서 일하는 농부가 보였다. 마을로 내려가니 마을회관이 있고 마을 광장에는 고사리를 말리느라 펼쳐놓는 농부가 있었다. 그 농부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논밭에 널려 있는 것이 고사리 밭인 줄 알게 되었다. 마을 끝으로 가니 아늑한 C자형의 해안이 나았다. 해수욕장 모양인데 바닥이 자갈밭이다.

네비로 창선교를 목적지로 정하니 다시 장식골고개로 안내했지만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라 해안길을 따라 남쪽으로 달려가도 남해도로 건너가는 창선교가 나올 것 같아 네비의 안내를 따르지 않고 장포항 방향으로 달렸다. 경사도 심하지 않고 경관도 좋았다.

그러나, 2 km쯤 달리니 이 길도 역시 오르막을 올라야했다. 오르막으로 힘겹게 오르는데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오는 농부가 있었다. 모노레일 차 안에는 수확한 고사리가 다섯 뭉치나 있다. 밭에서 고사리를 꺾는 아주머니가 있어 언제까지 고사리를 수확하느냐고 물으니, 5월까지 가능하여 1년 두 달가량 수확한다고 했다. 고사리가 크고 통통한데 밭에 많이 무척 많이 자라 있다. 수익이 좋겠다. 마을이 온통 고사리 밭이다.

고개를 넘어 바다를 보며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왼쪽에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있고 가로수로 종려나무가 줄서 있는데 열대지방에 온 것 같다. 노랑 유채꽃과 파란 바다, 경관이 수려했다.

내리막이라 신나게 달려 창선교를 건너갔다. 창선교를 넘다보니 우측 해안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라이더가 보였다. 하나로 마트 삼동점 앞에서 만난 50대의 남자에게 이순신순국공원을 가려 하는데 아래의 해안길로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해안길이 잘 나 있어 길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가는 것보다는 왼쪽으로 가서 독일인마을과 다랭이마을을 보고 가면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길로 가면 순국공원까지의 거리가 멀고 경사가 심한 길이 많을 것 같아 피했다. 그리고 예전에 그곳을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고, 오늘은 주요 목적지가 이순신국순공원과 이락사, 첨망대였기 때문에 가까운 길을 선택, 우측 해안길로 달렸다.

4. 남해군 해안도로

해안로로 잠시 달리다 보니 우측으로 죽방렴과 아담한 작은 섬이 보였다.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느라 지도에서 본 이름, 농가섬이다. 그 섬까지 철제로 다리를 만들어 놓아 경관도 좋아서 자전거를 다리 옆에 매어두고 들어가 보았다. 데크길 같은 철제다리를 건너가니 농가섬이라는 표지판과 “입장료 3,000원, 차는 무료”라는 글귀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정원에 화려한 봄꽃들이 많이 피어 있다. 가장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나무 두 그루가 있어 물으니 서부해당화라했다. 2미터 쯤 되는 나무에 진홍빛으로 꽃이 만개했다. 홍매화로 알았던 진홍빛 꽃나무는 홍도복사꽃이었다. 또 잎은 돈나무 같은데 연두빛으로 하얗게 핀 꽃은 만리향나무였다.

섬 안으로 원두커피를 들고 가 탁자가 있어 앉으니 한결 분위기가 좋다. 500평쯤 돼 보이는 섬, 이 섬을 주인은 8년 전에 사, 5년 전부터 정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한다. 소규모 정원이지만 예쁜 꽃과 조형물들을 잘 배치하여 아기자기했다. 보기 드문 서양 꽃들이 여러 종류가 심어져 있는데 주인은 꽃을 사와 더 심고 있었다.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었다. 죽방렴이 있어 지자체에서 관광지로 만드느라 다리를 놓은 것 같은데, 이 다리 덕택으로 이 섬이 명소가 된 것 같다. 다리를 놓는데 많은 경비가 들었겠다.

농가섬에서 나와 해안길로 잠시 달려가니 해안가(남해읍 입현리 406-8) 곧게 뻗은 길 좌측에 유채꽃이 길게 줄지어 피어 있다. 길 우측 가장자리에는 직사각형 화분에 분홍 송엽국(사철채송화)이 활짝 피어 있다. 흰 화분에 분홍색 꽃이라 배치색이 되어 산뜻했다. 화분을 시멘트 바닥에 너트를 박아 고정시킨 것으로 보아 이것도 지자체에서 가꾸어 놓은 것 같다. 자전거로 달리기에 편하고 아름다운 1 km 정도의 해안길이었다.

멋진 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밥을 먹어야겠는데 식당이 나오지 않아 초조했다. 도마초등학교 직전에서 다리를 건너 좌회전으로 가다가 학교 마을에는 식당이 있을 것 같아 다시 도마초등학교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 일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식당을 물었더니 여기엔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학생들이 식당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마침 순국공원 가는 길이어서 오던 길로 돌아가 진미갈비(고현면 화방로69-1) 식당을 찾았다.

많은 수석을 전시했는데 시골 식당으로서는 잘 정돈되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부인은 서빙을 하는데, 오늘 점심은 정식만 된다고 했다. 된장국에 김치, 머위나물, 해파리무침, 꼬시래기, 순대 등 반찬이 10가지나 나오는데 밥값은 7,000원, 정말 그렇게 팔아도 남을 게 있을지 모를 정도였다. 밥을 먹고 기기묘묘한 여러 종류의 수석을 구경했다. 참 기분 좋은 식사였다. 시골 마을 길가에 아담한 식당을 차리고 운영하는 부부가 참 평온해 보였다. 복장이나 말씨도 세련되었다. 나이 들어 그렇게 소박한 삶을 사는 것도 좋겠다 싶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대곡저수지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오르막을 오르니 전망이 좋은 고개마루에 운치있는 정자가 있다. 경관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있다. 각 지역에서 관광자원을 잘 개발해 놓았다.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나라다.

5. 이순신 순국공원으로

고현면을 지나 남해대로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졌다가 대로 밑으로 좌회전하니 이순신순국공원 표지판이 나왔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해안가로 갔다. 조경을 잘해 놓은 공원이다. 산 사이로 관음포가 보였다. 이 관음포 앞바다가 이순신이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노량 앞바다이다. 관광안내소에 가니 60대의 아주머니가 팜플렛을 주며 영상관을 알려주었다.

영상을 볼 수 있는 시각, 3시에 맞추어 영상관으로 갔다. 영화를 보려고 입장권을 끊으려니, 안내하는 아가씨가 마스크를 하고 오란다. 자전거 마스크를 썼기에 입장 시켜줄 줄 알았는데 안 된다 하여 다시 자전거가 있는 곳까지 약 700미터를 뛰어갔다.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와 배낭에서 마스크를 꺼내 쓰고 입장했다. 안내원이 3D 영상을 볼 수 있는 안경을 주었다. 정각 3시에 상영을 시작했나 보다. 5분쯤 늦었다. 3D 영상이라 화살이나 폭탄이 내게로 떨어지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대첩을 동영상으로 제작한 영화였다. 이순신 장군이 적탄을 맞고 숨을 거두며 남긴 마지막 말,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戰方急 愼勿言 我死)” 고 한 명언이 나오는 영화였다. 200 명은 앉을 수 있는 영상관인데 다섯 명만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와 노란 갈대가 자란 해안가 공원으로 갔다. 관음포 바다를 향하여 칼을 든 충무공의 역동적인 동상이 생동감 있게 서 있다. 동상 옆의 벽, ‘순국의 벽’에는 노량해전의 테마로 도자 타일의 그림이 붙어 있는데 3,850 장이나 된단다. 길이 200 m, 높이 5 m. 남해군에서 2017년 280억 원을 들여 18만 ㎡에 이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장군이기 때문인지 남해안에는 이순신의 유적지가 곳곳에 많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주로 활약했던 곳이 이 남해였기 때문일 텐데, 남해 외에도 많은 곳에 이순신의 유적이 있다.

다시 영상관을 통과하여 이락사(李落祠)로 갔다. 이락사는 충무공이 순국한 후, 최초로 유해를 안치했던 곳이다. 그의 유해는 이락사에서 충렬사로 이장했다가 다시 고금도를 거쳐 지금의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 기슭에 안장되어 있는데 마치 왕릉처럼 조성되어 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니 양쪽으로 자란 소나무 사이로 이락사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비각이 서 있는데 현판에는 “大星隕海”, 대성운해라 씌어있다. 아마도 그 뜻이 “큰 별이 떨어진 바다”, 즉 충무공의 최후를 알리는 말이라면 대성운해가 맞을 것이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쓰던 옛 방식으로 보면 “해운성대”다.

풍전등화 같은 조선을 구한 충무공이 이 노량해전에서 살아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이 마지막 전투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최후다. 가슴이 저리다. 선조와 원정 온 명나라 장군도 꺼린 이 전투에서 충무공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우리나라를 7년 동안이나 분탕질한 왜군들을 공은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임진왜란의 전쟁 통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3남인 면도 왜군에게 희생되었다. 또한 왜놈들이 다시는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하게 혼쭐을 내주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이 싸움에서 장렬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애를 비극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민족의 위인으로, 최고의 장군으로 존경을 받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조상에 그런 장군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흐뭇하다. ‘소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고,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사람도 막을 수 있다.’는 이순신의 기개와 지혜는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이순신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싶어 첨망대로 걸어갔다.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 그 아늑하고 고적한 길, 애국충정이 깃든 길을 숙연하게 걸었다. 첨망대에 올라 관음포와 노량 앞바다를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나무들이 앞을 가려 바다의 일부만 보였다.

순국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량공원(노량로 268)으로 갔다. 고개 언덕에 있는 조그만 공원이었지만 언덕에 돌을 깎아 만든 ‘바다선녀상’이 있다. 정상에는 여러 개의 큰 바위들이 모여 있다. 그 아래에는 한창 피어난 조팝나무꽃이 눈이 시리도록 하얗다. 주차장 한쪽 허름한 ‘나루터휴게소’ 아래의 벚꽃 길옆에는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유채밭에 사람들이 들어가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망원이 부착된 고급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는 여인이 있어 사진 촬영을 의뢰했다. 휴대폰을 조작하더니 인물 사진 촬영시, 인물이 선명하게 나오는 방법과 인물 주변을 흐리게 하는 장치, 사진의 밝기를 조절하는 장치까지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6. 충렬사와 남해대교

노량공원에서 남해대교 방향으로 가면서 충렬사에 들렀다. 충무공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하동과 남해도를 높게 연결한 연륙교, 그 남해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충무공의 사당과 가묘가 있다. 사당 안에는 이순신의 영정이 걸려 있는데 언제 만든 영정인지 색이 바랬다. 친구와 영정 앞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여 참배했다. 충무공의 영정을 보며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그의 훌륭한 충정과 업적에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사당 뒤로 가서 그의 가묘를 보았다. 그의 유해가 없지만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빈 묘이지만 존재 가치가 있다.

남해대교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와서 하동군과 남해군으로 흐르는 해협을 보았다. 그 해협 해안으로 줄지어 선 벚꽃이 만개하여 풍경이 아름다웠다. 자전거로 그 해안의 왕지벚꽃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황홀한 벚꽃길이다.

곰바우 횟집 창에 “멸치 쌈밥”이 씌어 있다. 오늘은 그 특별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싶어 들어갔다. 된장에 담근 굵은 멸치를 상추와 봄똥 배추에 싸 먹었다. 회도 한 접시 주어 친구와 담소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에 바닷가로 나와서 조명이 아름답게 켜진 남해대교 위로 올라갔다. 대교 옆 2층의 누각에도 전등불이 켜져 단청이 아름다웠다. 밤바람이 싸늘했다. 옷을 가볍게 입은 친구가 춥다고 내려가자고 재촉했다.

이번의 즐거운 여행을 안내해 주었다고 친구가 감사의 뜻으로 한 잔 더 사겠다고 횟집으로 잡아끌었다. 8시인데 종업원은 9시에 문을 닫는다고 그 전까지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생선을 모은 회를 먹으며 담소하고 있는데 옆에 손님이 세 명이 들어왔다. 그 사람들에게 친구와 나를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서울에서 왔다는데 한 사람은 수원 사람이라 했다. 나도 수원에서 살기에 반가워 했으나 별달리 할 말은 없었다. 다시 술 한 병을 추가로 마시고 일어나 숙소로 돌아왔다.

7. 남해대교를 건너 사천으로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자전거를 베란대에서 꺼내, 해변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 가능하냐고 물으니 뒷골목 뼈다구 해장국집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이번 여행길에서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묻거나 사진 촬영을 의뢰했는데 말씨는 투박하지만 모두 친절했다. 해장국을 먹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70대의 남자 네 명이 들어와 옆에 앉았다.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 마을 사는 친구들이 함께 여행을 왔다기에 남해안길, 농가섬, 삼천포케이블카에 대해 알려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군 금남면 지방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1002번 지방도로 경충로를 달리다 보니 하동 케이블카 탑승장과 산 정상으로 이어진 케이블이 보였다. 네비는 경충로 옆 작은 길과 경충로를 이어가며 진교 방향으로 안내했다. 경충로 옆 구길로 터널을 비켜 가니 벚꽃이 양쪽으로 피어 꽃터널이 되었다. 꽃잎이 눈처럼 길 위에 쌓여 있다. 자전거 바퀴 타이어에 연분홍 꽃잎이 달라붙어 꽃수레를 연상시켰다. 지방도로와 샛길, 주로 구도로로 네비가 안내하여 산길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화려한 벚꽃이 줄지어 서 있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눈처럼 나비처럼 흩날렸다.

서포면 자혜리 서포대교휴게소까지 가는 동안 여러 번 벚꽃 터널을 지났다. 연중 가장 화려한 계절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4월은 어디나 아름답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답게 변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정말 우리나라는 봄이 무척 화려한 나라다.

8. 귀로 : 사천대교휴게소에서 천안으로

11시 30분, 이번 라이딩의 출발지였던 사천대교 휴게소에 도착했다. 자동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 있었다. 속도계를 보니 사흘 동안 달린 거리는 116 km. 하루 평균 40 km. 관광 위주의 라이딩이었다.

휴게소 한쪽에 만든 간이 상점(차량 판매소)이 문을 열었다. 그저께는 열지 않았는데 오늘은 문을 열고 영업을 하기에 호떡과 어묵, 커피를 사, 간이 휴게소로 가져와 먹었다. 남해가 보이는 언덕 아래, 벚꽃과 나무들의 연녹빛 새 잎이 아름다웠다.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천안으로 향했다. 곤양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진주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로 달리다가 함양휴게소에서 얼큰한 순두부로 식사를 했다.

친구의 집, 천안 불당대동다숲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4시였다. 차에서 친구의 자전거를 내려주고 작별의 악수를 하였다. 즐거웠던 2박 3일, 친구와 잊을 수 없는 여행을 했다. 생애의 아름다운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가 나의 자동차에 손을 흔들었다. 무사히, 아니 즐겁게 여행을 마치고 아산 나의 농막으로 가는 심정, 사는 일이 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 박재성]

라이딩으로 2박3일...
바람 가르는 즐거움이 가득했겠습니다....

[봄. 채찬석]

긴 글 읽으시고 댓글 주시어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기 만큼의 불편과 어려움도 있었지요.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