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 '미얀마 바간' 검색)
1. 이대로 난 괜찮을까?
"여름씨, 여기 이거 왜 이래?"
바쁘게 움직이는 나의 손놀림은 4년 동안 실력이 묻어났다. 자리에 일어나서 팀장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데 막내 인턴이 날 불러 세운다.
"선배님, 이거 이렇게 하면 될까요?"
나는 인턴에게 받아 걸으면서 인턴이 실수 한 부분을 차례대로 일러주었다. 그리고 팀장님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물었다. 팀장님은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오신 분이지만 일하는 속도나 컴퓨터를 다루는데 능숙하지 않으셨고 항상 날 불러 확인하셨다.
"이여름씨! 잠깐 들어와요!"
이번에는 과장님까지 날 불러 세웠다.
봄이 왔지만 아직도 서늘한 바람에 몸이 움츠려 들었다.
"여름씨, 이번에 **회사에서 광고 들어왔는데, 여름씨가 이번에 맡아 줘야겠어."
"네?"
"휴가는 프로젝트 하고 나서 다시 쓰는 거 어떤가?"
"네?“
"그게 너무 급한 일이라 그런데."
날 시키면서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과장님의 얼굴이 보이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이 없고 서 있자, 과장님은 내 손에 이번 프로젝트 계획서를 넘겨주시며 밖으로 나가신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내가 털썩하고 바닥에 앉아버렸고 그리고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나와버렸다.
사실 그다지 휴가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 난 휴가기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뒹굴 거리며 그 동안 쉬지 못해서 밀린 잠도 자고 싶거나 밀렸던 드라마나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원치 않는 휴가까지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자, 왜 이렇게 서글픈지 모르겠다.
휴-
내 나이가 29세, 곧 20대가 꺾기고 30세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난 제대로 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때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고 취업을 위해 틈틈이 공부를 해야 했다. 날 위한 삶이라지만 내가 정말 이런 삶을 살길 바랐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엄마야.
“응. 왜. 나 지금 바빠.”
-아빠가 또 일 벌렸지 뭐니. 네가 좀 말려봐.
“아빠가 엄마 말도 안 듣는데 내 말을 듣겠어?”
-다리도 아픈데. 정말 내가 못 살아. 그런데 휴가 때 안내려와?
“응. 안 가”
-남자친구 만나게?
주저앉아 울음을 멈추고 결국 나는 엄마의 대화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딸, 아들 모두 서울로 올려 보내고 외롭게 보내는 엄마는 가끔 소일거리가 없을 때 이렇게 대화 상대가 되어 주길 바랐다.
“없어. 그런 거.”
-이놈의 기집애. 시집은 가야지!
혼자 살 거라는 말을 했다가는 또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들어야하기에 나는 참기만 한다.
“엄마. 나 진짜 바빠.”
동생한테 좀 잘해줘. 윽박지르지 말고. 돈도 잘 벌지도 못하는데 맛있는 것 좀 사주고.
엄마가 저럴 때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련히 잘하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덧나나.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내 동생은 항상 우리 집안의 걱정거리였다. 나는 동생을 항상 돌봐야 하는 장녀였고 그 책임 또한 막중했다. 부모님께 힘든 일이 있어도 난 항상 동생보다는 더 잘해야만 했던 자식이기에 고민한 번 털어 놓은 적 없었다. 가끔 난 그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나의 역할 때문에 숨이 막혀 오곤 했다.
-참참, 여름아. 아빠가 할머니랑...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한 손에 잡혀 있는 홍보계획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문서를 보자, 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대로 난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사람마다 어느 순간 그 상황이 벅찰 때가 있다. 그 때마다 회피하거나 직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런 상황이 오면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게 정답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처럼. 내가 견디기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조금은 내 자신을 위해 비겁해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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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떠나기 9일 전.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면 나는 책을 사서 무작정 읽어버렸다. 활자중독증이 있는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글이란 글은 모두 읽어버렸다. 그런 후, 나중에 다시 그 책을 펴보면 새로운 책으로 둔갑되어 있었다. 힘이 들었을 때 읽었으니 분명 왜곡된 시선들로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 바로 읽히지는 않았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려 애썼다.
내가 힘이 들긴 하는 건가?
이거 엄살떠는 건 아닌가?
남들은 다들 참고 해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투정부리는 건 아닌가? 라며.
하지만 난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글이 읽혀지지 않았다. 읽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이해하기도 벅찬데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싶었다.
들고 있었던 책을 덮고는 창이 보이는 창가로 다가갔다. 달무리가 져서 흐릿하게 번진 달이 서울을 비추고 있었다.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날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절실했다. 일도, 가족도, 연애도 모두 다 내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더 이상 귀를 막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러기 위해 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탕화면으로 저장되어 있는 일몰사진을 보았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너무도 아름다운 이곳을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 배경화면을 해 놓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난 인터넷으로 검색해가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찾았다.
일몰 사진이 가리키는 곳은 미얀마.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미얀마는 태국, 라오스, 중국, 인도에 근처에 있는 나라로 동남 아시아 최대의 국가라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생활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개개인이 스스로 공덕을 쌓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그래서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이 착하며 누구에게나 선한 마음으로 웃어주는 ‘미소의 나라’라고 불렸다.
미얀마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더욱 이 나라에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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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떠나기 8시간 전. 퇴근
광고에 필요한 아이디어 및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해서 과장님을 만나러 갔다. 이틀 밤을 새가며 따로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쉬는 틈틈이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모든 서류와 아이디어를 따로 정리하느라 너무 힘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휴가 정정신청서와 휴가 신청서를 준비하였다.
"무슨 일인가? 여름씨?"
"보여드릴 게 있어서요."
들고 있던 서류를 보여드렸다. 차근차근 살펴보시더니, 날 의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좋군요.'라며 웃으신다. 그리고 끝까지 보고는 맨 뒷장에 휴가신청서를 보시고는 날 위로 쳐다보신다.
"내일부터 10일 동안 다녀오겠습니다."
"여름씨,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제 몫은 모두 끝냈습니다. 돌아와서 자르셔도, 뭐 어쩔 수 없지만.. 우선 갔다 와서 뵙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짐을 챙겨 당당히 회사에서 나왔다.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내 행동에 대해 자책감을 가지면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떠나기 3시간 전
집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지금 거긴 매우 더운 여름이라고 하니, 여름옷들을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보름 정도 집을 비울 생각하니, 치워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후다닥 지나 나는 인천공항에 가는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신나야 했지만 혼자 여행가는 것도 처음이고 일하다가 와서인지 여행가는 기분도 덜하고. 무튼 잠깐 출장 가는 기분 같아서 여행기분을 내기 위해 핸드폰으로 미얀마를 검색했다.
"볼 수 있을까?"
일출과 일몰이 너무 예쁜 이곳.
태양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곳.
이곳에 가면 날 위로하기 딱 좋은 장소 같았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여행사 직원을 기다렸고 몇 분후 전화가 왔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난 여행사 직원은 생각보다 어렸다.
"안녕하세요."
내가 어색하게 웃자, 날 반갑게 반기시며 인사했다.
"여름씨 때문에 이번 여행 가는 거예요."
"네?"
"사실 여기 가기로 한 팀이 3명이거든요. 사실 4인 이상은 되어야 가는데.."
"아 정말요?"
"그런데 갑자기 오늘 1명이 많이 아프셔서 못 오신다고"
왜 나는 못 온다는 그 분보다 내가 못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을까? 꼭 이번에는 가야 하는데....
"그런데 현지 가이드 분이 비수기이기도 하고 예정도 된 거니, 진행하시겠다고 하셔서요. 그리고 여름씨가 꽤 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좀 사정했습니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웃으며 티케팅하기 위해 줄을 섰다.
"다른 한 분은 조금 늦으신데요. 차가 많이 막히나 봐요."
난 다른 한 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 당시 난 떠나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아? 저기 오신다."
큰 배낭을 메고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오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태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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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한태양이라고 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이 대로 괜찮을까' 기억에 남습니다 천천히 따라 갈게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끝까지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