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학사 연구의 정초 유학사 연구 제2기(1945-1959)는 해방 후에서 동란기에 이르는 혼란 속에 학문의 새로운 체계를 수립하는 시기이다. 이 때의 대표적 연구서로서, 최후의 한문본 유학사인 이병도 선생의 『자료한국유학사초고』1)와 최초의 국문본 유학사인 현상윤 선생의 『조선유학사』는 반세기 전의 저술로서, 아직도 이 두 책의 시대 구분과 학파의 분류는 통용되고, 그 유학사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 이병도의 『자료한국유학사초고』는 시대사의 변천 및 시대사회의 문제와 연관 속에 유학사를 서술하고 있다. 삼국에서 한말까지 걸치고 있으며, 고대와 고려시대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두어 종전의 심한 불균형을 어느 정도 시정하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를 과도기/사화기/학파 · 당파분열시대/호락논쟁(湖洛論爭) · 고증학발흥시대(考證學勃興時代)의 4시기로 규정하였다. 현상윤의 『조선유학사』는 삼국시대는 빈약하고 조선시대에 치중하고 있지만 성리학과 더불어 예학파를 설정하고 ‘양명학’ · ‘경제학파’ · ‘한말척사위정운동’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 『자료한국유학사초고』에서는 ‘서경덕’과 ‘이언적’이 하나의 절로 독립되고, 『조선유학사』에서도 ‘서경덕’ · ‘이항(李恒)’이 각각 한 절을 이룸으로써 퇴계 · 율곡 중심의 도학적 정통의식에서 소홀히 다루어진 ‘서경덕’ 등의 비중이 뚜렷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자료한국유학사초고』에서는 ‘호락논쟁지발전(湖洛論爭之發展)’ · ‘기하남인학파여신학풍(畿下南人學派與新學風)’ · ‘양명학문제(陽明學問題)’ · ‘구주문화지침입여유자지태도(歐洲文化之侵入與儒者之態度)’ 등이나 『조선유학사』의 ‘예학중심의 유학’ · ‘당쟁시대의 유학’ · ‘서학감염(西學感染)의 소동’ · ‘척사위정(斥邪衛正)의 운동’ 등은 제1기의 유학사 연구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았던 분야를 유학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고 ‘구주문화지침입여유자지태도’나 ‘서학감염의 소동’ · ‘척사위정의 운동’은 서양문물과 종교의 침투에 대한 유교사회의 반응양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교의 종교적 역할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유학사 연구의 제2기에 와서 당파적 · 지역적 관심에서 벗어나고 사상사의 쟁점과 역사적 영향을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유학사의 구성체제가 변함에 따라 그 내용이 전혀 다른 비중으로 다루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현상윤은 『조선유학사』의 서론에서 유교전통에 대해 군자학 · 인륜도덕 · 청렴절도의 세 가지 공과 모화(慕華) 사상 · 당쟁 · 가족주의 · 계급사상 · 문약(文弱) · 산업능력 저하 · 상명주의(尙名主義) · 복고사상의 여덟 가지 죄를 열거하는 공죄론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근대적 질서를 추구하는 1940년대 말의 입장에서 전근대적 유교전통의 공과를 성찰한 것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1966년 이상은 선생은 현상윤의 공죄론이 유교 교리의 본질적 가치와 시대적 응용의 과오를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하여, 유교적 가치의 보편성을 재각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2) 그것은 제2기 유학사관과 제3기 유학사관의 전환계기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유학사 연구의 확산 1960년대 이후 제3기 유학사 연구는 현재의 학문적 관심과 연구성과를 집약한 것으로서, 제2기 연구의 전면적 개혁이 아니라 부분적 심화와 확장을 추구한 성과라 할 수 있다. 1970-1990년대의 유학사 연구는 각각의 관심영역에 따른 초점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점에 특성이 드러난다. 1970년대의 대표적 두 저술은 배종호 선생의 『한국유학사』와 유승국 선생의 『한국의 유교』이다. 『한국유학사』(배종호)는 조선시대 성리학사의 본격적인 연구로서 매우 중요한 업적이지만 유학사의 통사적 연구로서 전체성을 보여 주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이 책이 실제로는 ‘한국성리학사’인 것을 ‘한국유학사’로 명명하고 있는 사실은 1970-1980년대 한국의 유교학계에서 통용되던 현상으로서 성리학이 현실적으로 유학사를 대표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배종호의 『한국유학자료집성』(3권)은 그의 『한국유학사』 저술에서 사용하였던 원전의 성리설들을 인물별로 수집한 것이다. 이처럼 성리학과 유학을 동일시하는 의식의 배경에는 전통사회의 유교적 신념이 붕괴되고 일제하에서 새로 학문적 관심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유학 = 철학의 등식관계를 확신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 『한국의 유교』(유승국)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 모든 유학사의 연구가 조선시대에 집중되고 고대 · 삼국 · 고려시대가 매우 빈약하였던 사실에 비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심화시켜 조선시대 이전과 조선시대 이후의 비중이 거의 같을 만큼 끌어올렸다. 제명(題名)에 ‘유교’라 한 것과 상응하여, 성리학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 신념의 실천규범과 삶의 태도, 문화현상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1980년대 유학사의 통사적 연구 성과로서 윤사순 교수의 『한국유학논구』, 김충열 교수의 『고려유학사』, 금장태의 『한국유교사상사』를 들어 볼 수 있다. 윤사순 교수의 『한국유학논구』는 조선시대를 전기의 ‘성리학’과 후기의 ‘실학’으로 서술하여, 장지연이 ‘경제를 겸한 유학자’로 실학자를 소개한 이래 본격적으로 실학을 성리학으로부터 전환 · 발전 과정으로 해명함으로써 유학사의 시각을 크게 개선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역사 분야에서 실학개념논쟁을 비롯한 실학의 업적의 진전을 유학사에서 수용하여 유교적 입장에서 재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서론 ‘한국유학의 제문제’에서 한국 유교의 정체성 문제, 한국유학사의 발전사관론을 제기하여, 유학사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충렬 교수의 『고려유학사』는 고려시대 유학을 중심으로 종으로는 삼국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시대를 확장하고, 횡으로는 성리학의 전래과정을 중심으로 한국유교와 중국유교의 연관관계를 해명하는 연구로서, 한국유학사에 취약지대의 한 부분인 고려시대 유학사를 집중적으로 미시적인 데까지 조명함으로써 유학사의 시대사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여기서 성리학의 전래 시기를 안향(安珦) 이전으로 소급하는 정밀한 고증 작업은 귀중한 업적이다. 금장태의 『한국유교사상사』는 『한국종교사상사』(경전편 포함 전5권, 연세대출판부)의 한 부분으로 삼국시대에서 한말 · 일제하까지 각 시대에서 유학사상사의 문제를 종교적 성격과 관련 속에 해명하고자 한 데 특징이 있다. 곧 유교의 의례와 제도, 타종교와의 관계, 유교의 신념적 근거, 유교의 종교적 개혁운동의 문제들을 유학사의 중요한 성격이요 동력으로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1990년대 유학사의 통사적 연구 성과로서 황의동의 『한국의 유학사상』, 한국사상연구회가 편찬한 『조선유학의 학파들』, 최영성의 『한국유학사상사』를 들어 볼 수 있다. 황의동의 『한국의 유학사상』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한국유학사를 전반적으로 조명하면서, 특히 조선시대의 성리학파의 철학사상을 이 중시, 기 중시, 이 · 기 조화의 범주로 분류하여 주리 · 주기(主理 · 主氣)의 기존 용어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으며, 자주적 학통과 예학사상, 의리사상, 양명학, 실학사상 등 주제별 영역으로 다루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사상연구회의 『조선유학의 학파들』은 조선시대의 유학사상을 조선 초기 성리학의 이론을 정초한 ‘관학파’에서 전기 · 후기 사림파, 화담 · 퇴계 · 남명 · 율곡 · 서애 · 학봉 학파와 탈주자학파 · 기호남인학파 · 낙학파 · 호학파 · 논문학파 및 강화학파 · 성호학파 · 북학파를 비롯하여 노사 · 화서 · 한주 · 간재 학파와 개화파에 이르기까지 22학파로 조선시대 사상사를 구성함으로써 학파 중심의 유학사상사라는 독특한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최영성의 『한국유학사상사』는 5권 7편으로 삼국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유학사의 기존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정밀하게 구성하여 1990년대까지의 한국유학사연구를 총결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특히 정치사나 사회사와 유학사의 연관성을 주목하고 있으며, 그 동안 유학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많은 인물들을 소개하고, 발해의 유교사상까지 다루고 있는 점에서 특징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