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야, 널 본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네. 그 후덥지근한 날의 오찬이 이맘 때였어 그날 몇 동창들과 만난다는데 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그 애냐고 물었다며? 가끔 그날을 회상하면서 내가 운이 좋은 녀석이라 생각 한단다. 서울에서 얽혀사는 너희들에게 점심 한자리야 별것 아니지만 내게는 정말 보고 싶었어도 기대할수 없었던 만남이었지. 시간도 짧았고, 긴 세월의 공백에서 말도 몃마디 못했지만 네 앞에 실제로 앉아 있다는것 자체가 신기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어. 네 모습이 불어 이르키는 추억이 내게 한두개가 아니거든 이국에서 정신없이 살아오던 나에게 서울을 찾은 그 여름은 나의 전환 지점이었어 주소도 전화번호도 모르던 명기 의식이. . 이 귀중한 친구들을 다시 찾았고, 경옥이와 너의 정다운 미소에 내가 버리고 떠난, 잊어버린 고향의 정서를 절실히 느꼈단다. 늦었지만 정말 고마웠어. 이제 한 십년 철이 더 들었는지, 부모님, 선생님, 옛 친구들에게 새삼 감사하게 생각되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는지 옛 생각도 많이 한다. 지난 2년 명기 회장이 인터넷 동창회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친구들이 하루 종일 들락날락하며 가까이 지낸다. 가슴이 두근두근 말도 못건네든 애들한테 못하는 얘기도 없고, 아이들 결혼식 사진, 부모님 부고, 새로운 삶의 이야기. . . 대화가 끝이 없단다. 지난 오월 말 부중고 창립 50 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었는데 교문에 들어서 눈에 띄는 곳곳, 대강당을 울리는 찬송가와 교가, 수풀이 우거진 중강당 앞뜰, 반가운 친구들, 선후배, 선생님들, 그 황홀했던 하루를 네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것이 네가 틀림없이 내 옆에 한순간도 빠짐없이 있었으니까. 최길자 선생님과 선생님이 결혼하셨을때, 애기 낳으셨을때, 또 김포를 떠나셨을때, 너와 항상 인사드리려 함께 갔던이야기 나누고, 마침 경덕이를 만나 사진도 같이 찍고. . . 오십 맞은 경덕이의 우아한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삼풍에게 화가 나는거 있지. 열흘 서울에 있는동안 친구들이 어찌 잘 해주는지 내가 옛날에 겁이 많아서 하지 못했던 데이트도 나가고 좀 늦었다고? 그래도 여전히 좋았어. 명기는 지난 10여년 동창회를 이끌어 오면서 항상 네가 있었으면 네가 있었으면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너 같이 조용하고, 나서지도 않으면서 일은 제데로 해놓는, 우리에게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되었어. 눈치를 보면 성옥이 경옥이 없이는 또 안될 일들이고, 요즈음은 혜숙이 까지. 글쎄말야, 어느 친구가 말했듯이 막내공주가 큰언니 노릇을 한데니까. 이 주말이 미국 동립기념일이 끼어 4일간의 휴일인데, 애들과 모린은 Wisconsin 호수가로 놀러가고 병원은 한가한 편이어서 네게 한마디 쓰게 되었다. 너하고 가까왔던 경옥이나 혜숙이 같은 애들은 네 이름만 올라도 표정이 달라지고 쑥 들어가 버리는. . . 십년 전 이 여름, 안타깝고, 황당했던 날들을 마음에서 지울수 없지만 난 오늘도 너의 정겨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보낸 영문편지를 고생하며 읽고 소설같이 읽었다며 가을에 네가 전화 했을때 그 목소리에. 2005, 7, 4 내 마음속 깊이 보관하였기에 - Eva Cassidy 겨울 한밤중 타오르는 불길에 네 얼굴이 주황금색으로 비추고 너의 정다운 미소가 어둠속을 헤치는. . . 그 윤곽을 내 기억속에 새겨놓았지 내 마음속 깊이 보관하려고 4월의 아침 비밀을 나누며 아침을 보낸 우리의 산책 애들 처럼 끝없이 웃었던. . . 네가 준 즐거움이 영원히 살아있어 내 마음속 깊이 보관하였기에 따스한 여름밤이면 네 목소리가 아직도 들려 바람이 속삭이듯이 어느 여름날 너는 떠났지 잎새들이 푸르를때 이제 수풀이 깊은 그 옛 길을 걸으면서 네 정다운 미소를 보았고 네 웃음소리도 들었지 네가 아직도 내 곁에 매일 있단다 내 마음속 깊이 보관하였기에 내 마음속 깊이 보관하였기에 I KNOW YOU BY HEART Midnights in Winter The glowing fire Lights up your face in orange and gold. I see your sweet smile Shine through the darkness It’s line is etched in my memory. So I’d know you by heart. Mornings in April Sharing our secrets We’d walk until the morning was gone. We were like children Laughing for hours The joy you gave me lives on and on. ‘Cause I know you by heart. I still hear your voice On warm Summer nights Whispering like the wind. (Oh oh ohh…) You left in Autumn The leaves were turning I walked down roads of orange and gold. I saw your sweet smile I heard your laughter You’re still here beside me
6월에(동창회의 변(discussion)
최 혜숙
그게 언제였었나?
내가 막 역삼동 언덕에 올라섰을때 저아래 경호네 아파트가 보이고 왜 그때 라디오에선 조용필의 친구가 흐르는건가? 추모예배지만 정말 무심하려고 애쓰며 가고 있었는데....
남들을 의식해서인지 모두들 다 무표정(?)하게 예배를보고, 안면이있는 옛날 경호남편 친구들과는 눈인사도 안한채 집으로 돌아갔다. 가끔씩 전화속에서 정말 조심스런 목소리로 혜숙아 언제 동창회 안갈래? 하면 나는 예의 그 야멸찬 목소리로 싫어!1 두마디도 안했다. 여친들 모임까지도 도리질을 하니까 내 수첩을 뺐어서는 그 날짜에 그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많고 예쁜 글씨로 "경복궁" 이라고 쓴글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여친들의 모임마저 흐지부지 되고, 애써 생각지 않으려는세월이이제 이만큼이나 흘렀다.같이 지내며 일어났던 여러가지 일들과,밤을 새워가며 분치기 초치기 시험공부는또 얼마나 열심히 했던가..그러면서 그애의 항상 언니같은 관용과 모든이들에 대한 마음씀이 마술처럼 내게도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나혼자 사명감처럼 대신의 책임(?)을 통감하지만, 이제 동창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한편으로 도망가고픈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 수 가 없는가보다....
경호야!! 다시 이친구에게 용기를 주렴.......................
경호야 안녕!!! 잘 지내지?
너와의 기억은 항상 어린시절 뿐이란다.
더위가 오는듯 하더니...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단다.
고통도...아품도...없는 곳에서 잘 있으리라 믿으며...
항상 6월 끝자락에서는...너를 생각하게 된단다.
안녕~~~~~~
뉴욕에서 태옥이가....
그리던 고향에 처음 돌아온 94년 여름, 염치 없이 여동창도 보고싶은 마음이었어.
이제 아이들키우는 어머니, 집안일에 바쁜 남에 부인들에게 느닷없이 전화한다는것이 어색하게 생각되었지만
24년만에 온 이 기회를 그냥 보낼 수 없었기에,
그래도 웬지 경호는 내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되어,
경호의 연락처를 동창주소록에서 소영이란 새이름을 모르고 열심이 찾았지.
명기 덕택에 며칠후 전혀 어색하지않은, 잊을수없는 오찬을 갖을 수있었다.
별 말없이 동그란 눈으로 누구의 의견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주는듯한 모습은 어려서 부터 그녀가 지닌 인력.
앞장 서지않아도, 자신에게 촛점이 필요치 않아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중심이 되었던 경호.
중2 때 상학이가 항상 "왕눈" 경호가 자기를 좋아하며, date도 하고있다는 자랑으로 나의 가슴을 절이게했기에
한번 이것이 사실이었는지 경호에게 묻고 싶었는데. . .
오늘 다시 경호를 기리며....
작성자이대부고12회|작성시간04.06.29|조회수209목록댓글 4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경호야 !!!!
그동안 우리 모두 너의 빈자리를 아쉬워 했지만,
네가 하늘나라에서 우릴 지켜봐주고 응원해줘서,
서로 격의 없이 잘 모이구 매일 매일 글, 음악, 사진등으로
서로의 안부도 묻고 자기 집안 대소사도 전해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누고 있지.
정말 네가 바라던대로 동창회가 꾸려지는것같아 얼마나 좋은지 몰라...
이제는 너를 떠나보낸 아픔 보다도 너의 마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사실 하나로 너의 사랑과 위로를 우리가 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지.
그래, 앞으로도 우리 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지켜 봐주기 바란다.
여기일본은.한국 추석같은 한일주일 긴휴일이야 내일부터. .여긴이세상을떠난부모.친척.친구들이집으로온단뜻이있는.오봉이라고하지. . 그래다들무덤도가고집에온다고상차리고.특히첫오봉은크게하니.친척.손님 들이많이온단다.남편어머니가 작년에돌아가셨으니. 첫 오봉이라내일부터손님접대일주일해야해. . .
이때에명기가경호이야기.사진올리니 눈물 이쏟아지내. . . 정말아름답고 젊잔하고 마음곱고사랑스러운경호였지. . 그때의쇼크가마음아프게하네. . .
그리고 또하나놀란것은.24년만에유진이가명기를찾아 만났다는사실. . 나만40년만에만난게아니라 다들딴나라에서사느라바빠서 24년이나안보고살았다는사실에놀랐어. . 남녀가서로안보고살았구나. . .
아미야 오봉절에 신경 쓸 일이 많았겠네...
니 말대로 유진인 94년도 24년만에 보고 다시 올해가 24년이 지난해야
근데 처음 24년은 굉장히 긴 세월 처럼 느껴졌지 아마 나이도 젊고 또 학교 취직 결혼등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었기 때문인것 같아 ,
처음 남녀 동창회 준비는 생각 보다 힘들었지 윗글에 혜숙이도 언급 했듯이 여자 동창들이 많이들 참석 하는걸 주저하는거야 그래 내가 경호가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 ....
당시에 사진 찍으면 많이들 당황들했지 지금 보다 더 젊었섰는데 ㅎㅎㅎ...
다음에 일일이 인화해서 주소로 송부했는데 내심 은근히들 관심들은 많었지 .... 미국에 있는 동창들 한테 보낼때 내가 특정인 여친한테 많은 수의 사진을 보내고 다른 동창들한테는 세네장만 보냈지 근데 하루는 전화가 왔는데 "너 그러면 안된다 사진을 누구는 특별히 많이 보내고 우리는 고작 몇장만 보내니 엉?"
"어떻게 알었니?"
"우리는 가끔 만나는데 사진 얘기가 나와 서로 돌려 보는데 아 글쎄 누구는 사진을 열몇장 갖고 있으며 하는 말이 니네는 왜 사진이 이렇게 조금 있니? 하는거야 우리들은 얼마나 열 받은줄 아니? 엉 너 주글래...."
"ㅎㅎㅎ 니네들이 모여 같이 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건 회장 특권이니 그런줄 알어라"
요새는 디지탈 문화로 모든게 편해 졌지만 이런 재미는 없어졌지.....
올해 더위가 ‘94년 무더웠던 여름을 연상하게 한다는 글을 어디서 읽으면서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여름이었기에 옛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명기 덕택에 또 다시 뚜렷하게 그 여름을 되살리게 되었다.
그저 2-3년 생각하고 서울을 떠난 16살,
여의치 않게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별 관심없는 의학을 시작하면서 뭔가 언젠가. . .
취침 때마다 귀향의 공상이었다.
각하의 피살사건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한 것은
미숙한 젊은이의 오산
군사정권이 어스러지는 사이에 청춘은 가버리고
어느새 이곳 사람과 2 아이 가정을 이룬
마흔의 이방인.
‘94년 여름 고모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행 비행표를 끊었지.
오랜 세월, 머나먼 거리, 무심, 그리고 침묵,
무슨 염치로?
그래도 그리던 친구들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이대부국 동문회에 전화로 메세지를 남겼단다
6회 이명기씨에게 도착 날짜와 비행일정을 알려줄 수 있냐고.
시카고에서 김포까지 13시간, 옛 생각에 잠겨 한잠도 못이루었다만
김포에 내리면서,
한나절이면 되는데, 이 한나절이면 되는데!
24년이 원망스러웠다.
역시 우린 대단한 학교를 나왔어
김포에 명기가 기다리고 있었고,
편찮으신 고모님 뵈러가는 일로 잠깐에 인사로 헤어졌지만
그 날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어느날 까지
명기가 베풀어준 우정은 어느 문장으로 표현이 안되지.
아~, 정말 무더운 7월이었어.
난, 24년만에 처음이니까 특별히 더운 여름인줄은 몰랐지.
한 이틀 있으니 북한 김일성이가 죽었다는 기사.
그럴줄 알았으면 내가 일찍 귀향했어야 하는데. . .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은 버리기 쉽지 않지?
하루 오후 모교를 지나 유치원 앞으로 이대다리를 건너
이화문고, 그린하우스, 월성당, 왼쪽으로 아현동까지 걸었는데
무덥고 땀을 뻘뻘흘리며 좀 어디 쉴 곳이 있나 다방을 열심히 찾았는데
뭐가 뭔지 이 촌놈이 알 수가 없어 들어가기도 겁이났었단다.
어느 저녁은 명기와 아주 고급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중국식 복장을 한 예쁜 호스테스가 내게 ‘사요나라’ 라네,
그런 모욕은 처음이었어.
경호를 만난 이야기는 명기의 특이한 묘사로 충분하니 다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만
20여명이 부중고 진학하면서 사춘기를 함께한 우리에게 특이한 추억과 친근함이 있다 생각해.
아미, 상현이, 혜숙이, 옥희, 설희, 성은이, 태옥이. . . .장미 그 자체의 정미,
싱그러운 소녀의 모습들이 내겐 아직도 생생하지.
내겐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어김없는 짝사랑이었고.
오늘이 또 다시 24년이 흐른 현실이라 믿어지지 않다만
내 한글이 많이 발전했다 기특하게 느껴진다.
’94년 방문후 고맙다는 편지를 쓰려 한동안 고생하다가
영문으로 보냈었거든.
내 이야기 길게 늘어놓아 미안하다만
간단히 말하면,
고마워, 니들이 있어줘서
유진의기나긴글이.딴나라에서살아온내마음을찢어지도록아프게하네. . 너무나잘알겠고.너무나아쉽고. . . 경호가살아있었으면.우리들의역사. . . 달랐을꺼야. . 중심인물이었으니. . . 이젠우리할미할비70이다되어가는노인층이지만.유진이의사라알듯이. 사람세포는120살까지살수있데. . 일본에100살넘은인구가6만7천명정도고.점점늘어나고있데. . .과거는가슴아프지만.지금 은지구전체에서.어디에살아도 이렇게대화하고 있는것이 얼마나행복한일이니. . 다들안아프고.젊게건강하게살자! 언제든지 만날수있으니까!
첫댓글 이렇게 이쁜 경호가 지금 있다면..
얜 늙어도 이뻤을거야.
우리 마음 깊은곳에 잊혀져있던 지난날들의 수많은 추억들에 잠시 젖어봣넹~~Ω 빛바랜 사진들이 엄청 사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