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2022년 10월),
시인의 딸은 세상에 하나뿐인 보따리를 떠나 보냈다.
70여년 오랜 세월 외로이, 어렵게 지키고 간직해온 시인의 유품.
가족의 슬픔과 그리움이 묻어 있고 쌓인 보따리...
대구시 아카이브로 떠나보내는 칠순을 넘긴 시인의 딸은 부탁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 윤복진(尹福鎭)이 제대로 조명되고 기억되길 바란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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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슬픈 민족의 근 현대사 격랑이 소용돌이치고간 파란만장한 역사의 뒤안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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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서 있는 이 순간.
필명은 김수향(金水鄕) 혹은 김귀환(金貴環).
이원수(李元壽), 윤석중(尹石重)과 함께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동요시인.
'기러기', '망향'의 시인..
일제강점기 작사가이자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윤복진(尹福鎭,1907~1991)은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호세이 대학교를 나왔으며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통틀어 윤석중과 함께 최고의 아동문학가로 평가받는 인물.
그러나 6·25전쟁 와중에 월북, 해금된 1988년까지는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모르고 잊혀진 이름, 비운의 문학가다.
윤복진(尹福鎭,1907~1991)의 1936년 당시 모습. /대구시
윤복진 작사, 박태준 작곡에 이인성이 표지를 그린 동요곡보집 '물새발자옥'.(1929) /대구시
해저문 바닷가에 물새 발자욱
지나가던 실바람이 어루만져요
그 발자욱 예쁘다 어루만져요
물새 발자욱
윤복진 시, 박태준 곡 - 바리톤 황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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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덕 : 일본 동경음대 졸, 연세대음대 교수 및 학장역임, 미국 미드웨스트대학교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WNQjFKhYphk
1920년대 소년 문예운동을 함께한 윤복진과 윤석중, 신고송, 서덕출, 최순애와 이원수 등 조선의 소년문사들.
윤복진이 조선일보 필자로 활동하던 즈음 이육사 시인은 기자로 활동했다.
1930년대 이근무의 무영당백화점 악기부는 이근무와 박태준, 윤복진, 이인성, 김용조 등 대구의 문예인들이 모이는 아지트.
그들을 만나러 홍난파가 대구를 찾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이 윤복진을 만나러 무영당 백화점을 드나들었다..
작곡가 박태준과 윤복진이 함께 묶은 악보집 물새발자옥 내지(1929)
4대 독자였던 윤복진은 6·25 전쟁기 월북하면서 고향 대구에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세 명의 딸들을 남겼다.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리 없다. 고향에 남은 가족들은 일평생 거주지를 옮기지 않았고, 늘 대문을 열어놓고 지냈다. 굴곡진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에서 월북한 가족을 둔 사람들의 일상이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조차 없다.
아들이 그립고 걱정될 때마다 아들의 책을 태우며 시간을 보냈다는 어머니의 마음, 모두를 두고 떠나버린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 어린 시절 헤어진 탓에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딸은 자신이 일흔을 넘기고서야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리워졌다고 했다.
월북 이후 동요시인은
남한에서는 잊혀진 동요시인이 되었고,
북한에서는 '동요 할아버지' 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현역작가로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였다.
1991년 7월 16일 평양에서 '망향'의 시인은 '고향하늘'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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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말합니다.
“평생 내겐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내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결혼식에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아버진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독히도 미워했고 원망했던 아버지, 하지만 난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가 필요했고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첫댓글 이 모든것이 민족분단의 슬픔이지요.
어서 통일이 되면 이런 모든 걸림돌이 다 없어질 것을....
과거에 신라, 백제, 고구려가 서로 적대시하며 지냈지만
지금 누가 나는 신라고 너는 백제며 고구려라고 하나요. 모두가 하나지요.
아직도 우리세대엔 이런 슬픔이 곳곳에 깃들어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계 인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크고 길고 엄청난 민족의 비극이지요.
가슴속 원한과
가슴 저민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간 원혼들...
어이하리까.
민족의 비극?
6ㆍ25의 상처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치 못 하니 전세계어 유일한 민족분단의 나라입니다
우리 살아생전에는
통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ㅠㅠ
남북이
너무도 오래 너무 다른 체제로 달렸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칫 몇백년을 갈지도...
서로 간섭말고
편안히 살아가는 것도 뭐가 해로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