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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희망릴레이 6.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할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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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공개여부 | 공개 | |
등록일자 | 2012-04-17 | 조회수 | 32 |
첨부파일 | |||
희망릴레이 6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할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정일호 우수상 조금 서툴고 어려웠지만 예전에 기초도 기술도 없던 때와는 달리 더디지만 하나씩 배워 가며 용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첫 월급을 타던 날, 뜨거운 눈물과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 왔습니다. 이제 신용 불량자라는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저는 올해 마흔세 살의 가장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두 살 된 딸아이가 있습니다. 2008년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인해 수입 물가와 원자재 폭등으로 우리나라는 자재 값이 엄청나게 올라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건설사와 설비 회사들이 부도가 났는데, 그때 저도 본의 아니게 10년 동안 운영하던 건축 설비 회사가 무너졌습니다. 많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건 물론 신용카드 연체에 대출금까지 연체되어 신용 불량자가 되고 말았지요. 은행 거래를 비롯해 모든 것이 다 정지되니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이 이런 거구나 한동안 술로 상처를 달래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너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아 눈물과 분노만으로 살아갈 순 없었습니다. 저만 바라보고 고생하는 아내와 어린 두 아이의 눈물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 체면이고 뭐고 다 던져 버리고 2009년 10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설비 회사를 운영할 때 맺은 인연으로 파이프 운반, 도색 등을 시작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었기에 힘에 부쳤습니다. 처음 며칠은 너무 힘들어 손을 쥘 수 없었고, 허리와 등이 아파 온몸에 도배를 하듯 파스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일당은 6만 원. 기술과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을 한 대가 치고 너무 적은 돈이었습니다. 한 달 꼬박 쉬지 않고 일해도 180만 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없는 날도 있으니 한 달에 120~130만 원 벌이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을 일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지쳐 갔습니다. 한 달 동안 이렇게 일해도 우리 네 가족 생활비도 안 나오는데, 빚은 언제 갚고 이 불안한 신용 불량자의 굴레는 어떻게 벗어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 일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냥 쉬고 이렇게 해서 어떻게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막막했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현장에서 일하는 용접사 분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배워 보려고 어깨 너머로 열심히 보고 따라 해보았지만 특별히 가르쳐 주지도 않는 데다 무작정 따라 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기술이었습니다. 누구에게든 기회는 주어진다 전 어떻게든 용접 일을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더니 용접 학원이 있으니 거기 가서 알아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용접 학원에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배관 용접은 한 달에 300만 원, 두 달에 6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큰 액수였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중이었습니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찾아보던 중, 2010년 9월 지금의 인천북부고용센터를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상담한 결과 계좌제가 있다는 말씀과, 특히 형편이 어려운 분과 취업을 꼭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취업성공패키지가 있으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전 기술을 배운 후 취업을 목표로 하기에 딱 맞는 조건이었습니다. 더욱이 300만 원의 계좌비를 받으면서 전문적으로 기술을 배울 수가 있어 더욱더 힘이 되었습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경남 김해에 있는 용접 학원으로 내려가 두 달 동안 고용센터에서 주신 300만 원 계좌비로 열심히 배웠습니다. 배우는 동안 수당도 받을 수 있어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실패도 시련도 많았습니다. 용접을 하다가 손을 다치고 가슴 부위에는 심한 화상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용센터에서 나를 믿고 주는 큰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눈물 나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2010년 11월 5일 시작하여 2011년 1월 7일 무사히 배관 용접 두 달 과정을 끝내고 특급 용접사는 아니지만 준기량자는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후 워크넷 취업 사이트를 보고 2011년 1월 17일 평택 소재 산업용 밸브 제조 회사에 들어가 처음으로 용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서툴고 어려웠지만 예전에 기초도 기술도 없던 때와는 달리 더디지만 하나씩 배워 가며 용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첫 월급을 타던 날, 뜨거운 눈물과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 왔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이제 신용 불량자라는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모두 추억이고 과거일 뿐이다, 이제 내 앞에는 탄탄한 미래와 희망이 있다, 당장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없지만 이제 나에게는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이 있기에 좌절과 포기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고용센터에서 거금 100만 원을 6개월 동안 보너스로 받기도 했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고 간만에 행복감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내 옆에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는 분이 보이면 먼저 취업을 하라고, 기술이 없어 취업이 힘들다면 고용센터에 가면 취업성공패키지라는 것이 있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알려 줍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일이기에 조금의 거짓 없이 생생하게 알려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내 가족을 지키고 아이들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 도움의 손길이 많습니다. 관공서라고 해서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길을 알려 주려고 하니까요. 저는 이제 6개월 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에 더 많은 기술을 배웠고, 더 좋은 조건으로 안산 시화공단에 있는 회사로 옮겼습니다. 절망의 신용 불량자에서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아준 인천북부고용센터 김명수 상담사께도 감사드립니다. 누구에게든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니 놓치지 말고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
첫댓글 똘콜 안타는 비법이라서 보았더니 뭔 주절주절...??
이제는 더 떨어질것도 없는 바닥의 대리시장인데...
결론은 똥콜 안타는 비법이아니라 직업을 바꾸라는 야그..
영양가 평가는 그저 그런대로..
요즘 너무 편한일만 찿을라 하다보니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거지요. 좋은말씀 잘들었습니다. 버릴께없는 말씀 세이경청하고 갑니다.
님은 대리 안하시나요? 누구나 탈출하고 싶을듯...
예리한 글이군요 동감입니다
기술배우면 1년이나 2년후에는 중급기술자로 평균 250만원 법니다 참조하세요 저는 대리 6개월전 졸업했습니다
평균 300 벌다가 뜻한 바가 있어.. 나름 삼년전에 대리판을 노크했음..
그런데, 요즘은 개털을 날림...
광고글올리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