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은 자기 사랑을 빼앗기지 않는 질투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 하반절과 3절은 하나님께서 아하시야가 다른 신을 찾은 데 대해 매우 분노하시는 내용입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의 병의 치유 여부를 묻기 위해 에그론의 신 인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바알세붑에게로 보냄 받은 아하시야의 특사들을 가로막게 하셨습니다. 마치 옛날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는 발람 선지자의 길을 막으신 것처럼 말입니다(민22:1-35).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하고 진노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진노가 자기 백성이 당신을 찾지 않고 다른 우상을 찾은 데 대한 거룩한 질투심에서 기인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 (출34:14) 고 경고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질투는 사랑의 다른 얼굴입니다. 그래서 서양 격언 중에는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여 분노를 발하셨다는 것은 곧 아하시야를 사랑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아하시야가 비록 악을 행하였지만 그래도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아히시야 역시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하시야가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자 병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대신, 블레셋 족속이 섬기는 바알세붑 신전에 특사까지 보내 자문을 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알세붑이 어떤 우상인 줄 아십니까? 파리 형상을 한 우상입니다. 중근동지방은 파리로 인해 병에 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명과 죽음을 좌우하는 신으로 파리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아하시야도 이 파리 우상 곧 바알세붑을 생명의 주관자로 알고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사자를 파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하시야는 창조주로서 진정한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권자로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파리 형상을 한 우상을 숭배하고 의뢰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짓밟는 행위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에 대한 가증스런 배신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배신에 대하여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빼앗기고는 참지 못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 대신에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하면 맹렬하게 질투하시고 분노하십니다. 특별히 질투로 인한 분노는 그 어떤 분노보다 거셉니다(아 8:6), 결국 그러한 분노는 심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바알세붑을 의뢰하려 한 아하시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죽고 말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자의 말로는 늘 이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성도를 더욱 사랑하시는 분 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문제가 생기면, 사람의 권세나 지혜나 또 다른 것들을 찾지 마십시오. 장난삼아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일도 금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하나님 눈에 다 우상으로 보이는 것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먼저 찾으십시오. 하나님께 회개하며 간구함으로 매달리 십시오. 그와 같은 자세를 하나님은 애타게 바라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부디 하나님을 질투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