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집은 마당이 좋았다. 제법 널찍한 마당엔 5월이면 붉은 줄 장미가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었고 화단에는 붓꽃, 백일홍, 채송화, 자주 달개비가 번갈아 피고지곤 했었다. 뒷마당에 서있는 자목련 한 그루는 집채에 가려져 한 낮에도 햇살을 받지 못한 채 늘 추워보였다. 봄이면 제일 먼저 피어 계절을 알리는 목련이지만 유독 우리 집 목련은 다른 집 목련이 다 질 무렵에야 겨우 봉우리가 맺혔다가 또 늦게 지곤 해서 오래도록 봄꽃을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애틋함을 갖게도 했다.
그 집에서 년 년생으로 딸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막 걸음마를 배워 걷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볕 좋은 봄날 마당에 내 놓으면 부서지는 봄볕을 따라 서툰 걸음을 걸었다. 한 여름이면 햇살에 적당히 데워진 큰 고무대야의 물속에서 아이들은 첨벙첨벙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마당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매어 달린 튼튼한 빨래 줄에다 기저귀나 속옷, 행주를 뽀얗게 삶아 햇볕아래 널면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이 주부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게도 했다.
이듬해부터는 부지런 하고 생활력 강하신 시어머니에 의해 그 화단은 텃밭으로 바뀌었다. 갖가지 꽃 대신 상추며 고추, 가지 등을 심으셔서 아침마다 이슬 촉촉한 농작물을 식탁에 올리셨다. 어머니 생각엔 꽃보단 여러모로 농작물들이 더 실속적이라 생각하신 듯 했다. 내심 아쉽지 않음은 아니었으나 그 편도 아주 싫진 않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집에서 그리 오래 살진 못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좀 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집이라 생활은 편리해 졌지만 마음은 가난해진 느낌이었다. 방문을 열고나서기만 하면 코끝으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맑은 공기도 만날 수 없고, 이른 아침마다 큰 대빗자루로 싹싹 마당을 쓰시던 시어머니의 움직임도 들을 수 없었다. 마당을 거닐 적마다 가슴 저편에서부터 차오르던 뭔지 모를 뿌듯함이 사라진 것이다. 나 뿐 만이 아니었다. 텃밭을 가꾸시는 걸 소일거리로 삼으시던 시어머니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물론 얼마든지 시장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이야 가득 찼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달콤하진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개미를 눈으로 쫓고, 꽃 이파리를 돌멩이로 콩콩 찧어 소꿉놀이를 하던 즐거움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마당이 주는 그 마음의 여유로움과 풍성함 대신 이리저리 사각 틀에 박혀 버린 듯 집이 답답하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모든 편리함은 다 갖추었으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했다.
삶이 바빠지고 현대화로 치달으면서 우리는 마당을 잃어버리고 산다. 모두가 바쁘고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보니 마당이 주는 그 여유로움과 삶의 여백쯤은 사치고 호사일 뿐이다. 모든 것을 현대적인 시설로 갖추고 좀 더 빨리, 좀 더 편리하게만을 외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네 집이든 내 집이든 성냥갑같이 똑 같은 모양, 똑 같은 환경, 시설로 세상은 쌍둥이처럼 닮아간다. 특히 붐(boom)처럼 아파트가 생기고 나서는 더욱 그러하다. 같은 구조, 같은 평수 심지어는 집안의 가구나 방안의 침대조차 비슷한 모양으로 비슷한 위치에 놓여진다. 아니 아파트라는 문화 자체가 공장에서 딱딱 짜 맞춰온 틀처럼 제 자리에 그 물건들이 놓이기를 강요하고 있다. 거실 한 모퉁이에 소파가, 소파에 앉아 마주 볼 수 있는 티브이가, 티브이 위 액자 속에서 빙긋이 미소 짓고 있는 가족사진조차 닮아 있다. 물론 우리 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쯤 되면 술에 취한 가장이 윗집을 자기 집이라 착각하고 현관문을 발로 둘러찼다고 해서 문제 삼을 만한 일이 못될 성싶다.
하기야 나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길치인 나는 새 동네로 처음 이사를 하고 내 집을 찾지 못해 당황했던 적이 있다. 부끄러워 감히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똑 같은 방향의 똑같은 지붕, 똑같은 대문 모양을 하고 있는 집들이 꽉꽉 들어서 길도 같았고 담 너머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까지 닮아있었다. 대구 외곽에 신도시처럼 새로운 동네가 형성됨으로 우후죽순처럼 다들 비슷한 형태의 집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나 같은 길치가 내 집을 못 찾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경제적인 삶이 윤택해 질수록 정신은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들의 욕심이 우리를 마당 없는 세상으로 내 몰고 말았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가난한 이들의 마당을 빼앗았다. 경제개발에 발맞춰 헐값에 마당이 팔리어 지고 다시 그 마당에 여러 채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높다랗게 올라가 이미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어 도저히 마당을 되찾을 수 없는 현실이 된다. 경제적 윤택함과 정신적 윤택함을 맞바꾼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은 꿈을 꾸기 보단 앞만 쫒아가기 바쁘다. 마당에서 한가롭게 햇볕에 몸을 쬐이고 마음을 누이는 대신 학원 차에 이리저리 실려 꾸벅꾸벅 모자라는 잠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예전 우리나라 선비들이 고고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가장 큰 이유는 모두들 마당을 밟고 거닐었기 때문은 아닐까? 마당을 거닐면서 책에서 배운 학문을 마음으로 익혔으리. 발끝으로 전해지는 흙의 부드러움은 마음을 어질게 다듬고, 아스팔트의 딱딱함과 달리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포용과 수용을 익혔으리라. 또한 마당가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꽃을 심고는 아침저녁으로 꽃을 보며 삶의 여유로움을 배웠을 것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때가 되어야 피고 또한 질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다 키워 제 짝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면 마당 있는 집을 장만하고 싶다.
형편에 맞춰 크지 않은 집이라도 좋을 것 같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이 자신을 닮아 검은 머루 같은 눈동자를 가진 자식들과 함께 늙은 우리 부부를 찾아온다면 볕 좋고 바람 일렁이는 마당으로 내 몰고 싶다. 가끔 아이들의 고운 손에 가시에 찔려도 내 신혼 생활을 빛나게 했던 넝쿨 장미를 심고 싶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시어머니처럼 고추도 심고, 상추와 쑥갓, 가지도 심어 아이들을 위해 점심을 준비할 것이다. 혹 시어머니가 가졌던 텃밭보다 더 넓은 텃밭에서 캐 낸 고구마나 감자를 돌아가는 아이들의 짐속에 넣어 둘지도 모르겠다. 푹 쪄 낸 감자나 달큰한 고구마로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보약같이 먹이고 싶다.
첫댓글 어제, 천마월례회에 참석했다가 저보고 (게으르다)고 말씀해 주신 선생님 덕분에 (부지런히) 한편 써 봤습니다. ㅋ
아름다운 작품이군요.
저 역시 마당이 참한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즐겼으나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술 취한 남편이 다른 집 벨을 눌렀던 적도 물론 있었고
저 역시 다른 집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수려한 문체에 기분좋게 머물렀다 갑니다.
합평회 때 제가 그랬지요?
좋은 감각을 가지셨다고 ---, 건필 !
선생님.
저, 선생님 말 잘 듣지요?
착하죠? 이쁘죠? ㅋㅋ
늘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는 선생님.
멋지신 분이세요. 도장 꽝!!
마당! 오랫만에 들어 보는 정겨운 단어네요. 글이 아기자기 재미도 있네요 ^^
김정애 선생님.
같이 장난 치자 해 놓고 안오시공...
못봐서 섭섭했지요.
이번 주는 꼭 ...ㅋ
어릴때 놀던 흙마당이 그립습니다. 손가락 쫙펴서 땅뺏기 놀이도 했지요.
해지는줄 모르고 옹기종기 모여서 공기놀이하고 구술 치기도 했지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 님의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지나간 추억들은 무어든 그립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놀이를 하고 노셨군요. ㅋ
전 고무줄 뛰기를 잘 했답니다.
저도 꿈꾸는 집입니다
저는 마당에 긴 빨랫줄을 걸어 뽀송뽀송한 햇살에 맘껏 이불빨래를 널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예쁜 글 잘 다듬어 보세요^^
소박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읽는 재미 쏠쏠한 글이 될 것 같네요
제 최고의 단점은 퇴고를 안한다는 점입니다.
유리 선생님 글 읽고 다시 한번 읽어보다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 과감히 여러 문단을 싹~ 지웠습니다. ㅋ
나이에 비해 참 어른스러워요. 어떤 땐 나보다 더.ㅡ,ㅡ;;
헉... 아닙니다.
연륜을 무시해서 될 '수필'이 아니지요
제가 한가지 얘기하고픈 건~
우리는 이제 수필을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안된 초자라는 거예요
너무 어금니 꽉 깨물고 힘들어하기 보다는
천천히 즐기면서 썼으면 좋겠어요
저도 요즘 그게 숙제입니다
무섭게 덤비는 것도 좋지만
마음의 여유를 좀 더 가지면서 주위도 돌아보면서 그렇게
마음이 좀 가벼운, 수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도 지금 잘하고 계신데 부담 안가지시면 좋겠어요 화이팅!!
시냇가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글 입니다.
읽기가 참 편한글입니다.마음이 고요해지는 글입니다.요즘말로 참 조은 글입니다.
선배 선생님들의 따스한 격려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요.
갑자기 무쇠팔, 무쇠다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옆에 계신듯 합니다.
마냥 편한 분...
아공....이쁜 분.
맘이 절로 가는 사.랑.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쉬어가는 인기팬들이 많으시네요. 부럽습니다.^^
저 역시 알콩달콩한 사랑이 머무는 마당에 잘 놀다가 갑니다.
잠시 컴에 안 들어왔더니 낯선 곳에 온 듯 하네요.
에잉, 선생님...
이글은 순전히 선생님 덕분에 낳은 글이에요.
합평회날 선생님 글이 너무 좋고 부러워서
저도 집에 와서 후다닥 한편 쓴거예요.
선생님의 후덕함이 좋아요.
서로 격려하며 좋은 글벗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언니같은 정경샘~ ^^
지금 이마트 와서 물건 기다리면서 궁금해서 카페에 들어와 봤음.^^
내일 일본 등산 간다고 마음이 들떠서 집중이 안 되네요.
어제 합평회 때 의리로 와 줘서 고마웠어요. 그랬다면 다행이고 진실로 믿을께요.
앞으로 대성할 조짐이 엄청 큼~~~^^
글 전체가 다 좋은데 결미부가 더 좋아보입니다.
시냇가님의 그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크게 박수 보냅니다. 짝짝짝짝짜짜짝
500원....잊지마세요.ㅎ
선생님과 얘기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부드러우면서도 자기 소신과 주관이 뚜렷하신 모가비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 이런 고백 첨 들어보셨죠? ㅋㅋㅋ)
요즘 우리 딸애들도 선생님 펜입니다.
주저하지 않고,부끄럽지 않게 가는대로 달리는 님의 호탕함이 여러 놈(?) 기죽입니다.
삶이 반듯하면 눈치볼 일이나 변명할 일이 없는 법이지요.
살다살다 호탕(?) 하다는 얘긴 첨 듣는 칭찬입니다.ㅋㅋㅋ
제발, 따님들에겐 저를 여자처럼 묘사해 주십시오.
호탕, 거침없는, 어런 단어 말구요..
수줍어 하고, 새초롬하고, 예쁘다 (켁!. 짱똘 피합니다.ㅋ) 이런 말로 꼭!!
고맙습니다. 팬이 두 명이나 생겼으니....
오늘은 혼자서 자축이나 할랍니다~ ^^
역시, 우리의 시냇가,
옆사귀가 마를날 없네요.
이제 이런 열매까지.
마당, 펑퍼짐하게 앉아보고싶습니다.
굉장합니다.
우리 동네 살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참 따스하네요.
우리 동네, 참 조용하고 좋습니다.
지금도 보세요. 밤인듯 조용한 이동네..
도시과 시골이 공존하는 이쁜 동네요.
그중,, 우뚝 서서 빛을 발하고 계시는 돼지등 도서관과 성덕교회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