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막 합니다.
어떻게 써야할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왔던 <임을 향한 행진곡> 아직도 귀에 울리는듯합니다.
금새 눈물이 고입니다.
극장에서 몇번의 울컥거림이 있었지만 눈물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제야 자꾸 눈물이 흐릅니다.
어찌 그 날의 광주를 영화 한편으로 가늠할수 있겠습니까?
영화로써의 <화려한 휴가>는 잠시 접어 두겠습니다.
젊은 한때 도청에서의 최후의 항쟁을 생각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추구했던 신념이 자신의 죽음과도 바꿀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왜, 흩어젔다 후일을 도모할수는 없었던가?
한참 지나서야 그들 죽음의 의미를 알았슴니다.
그날, 광주의 완성은 도청에서 시민군들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역사라는 놈은 피를 먹고 연명 하는가 봅니다.
역사라는 강은 피의 범람으로 흐르는가 봅니다.
역사는 피빛 잉크로 쓰여지는가 봅니다.
광주시민의 피는 보혈 입니다.
누군가가 흘려야할 피를 대신 흘렸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남은자들은 모다 빚진자들 입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유월항쟁때 도청에 짱돌 몇번날리고 어찌어찌 하다가 사과탄 파편을 우측 허벅지 상단에 맞은(가벼운 촬과상 정도)적이 있습니다.
그걸 두고두고 잘난척을 하고 민주화투쟁 이야기만 나오면 개거품 물고 썰레발 치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앞서가신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 입니다.
우리도 인간이라 항상 광주를 가슴에 품고 살수는 없습니다.
살다보면 정말 치사한일에 울고 웃고 합니다.
하지만 아주 광주를 잊고 살진 말았스면 합니다.
다음은 계엄군의 도청 진입 전날 지도부였던 <윤 상원>열사의 고등학생들을 모아두고 한 마지막 발언 의 기록을 옮겨 왔습니다.
“너희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영화로서의 <화려한 휴가>의 완성도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극장 개봉을 목표로하는 영화는 상업성을 배제 할수없습니다.
혹자는 그날의 광주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가볍다,멜로화 했다 등등 말씀 하시지만 이제 시작 입니다.
더 많은 광주 이야기가 영화화 되야 된다고 봅니다.
자, 잠시 광주도 잊고 영화도 잊고 배달하러 갑니다.........
첫댓글 아저씨~~ 여기도 배달해줘요~~~ㅋㅋㅋ 판모밀 하나요~~~ㅋㅋ
너무 울까봐 직접 가서 보기 겁납니다.
형님 뭐 배달 하세요?
광주항쟁이 있던 그때 버팔로는 군대 복무중이었습니다. 왜그리 그때는 광주항쟁이 아닌 광주사태가 밉던지... 비상사태로 인하여 5분 대기조? 수시로 걸리는 비상. 시국은 알수없는 쪽으로... 부대내에도 삐라는 뿌려지고....
형님 저도 내일부터 배달합니다. 배달의기수 화이링!
혹?....행복을 배달하시나요?...^^열쉬미~~~~헉헉.....요기 행복 한접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