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사 /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379번지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8년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제23대 고종(高宗) 때 안종필(安鍾弼)이 왕명으로 탑과 부도, 금당(金堂)을 중건하고 국청사(國淸寺)라고 하였으나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이곳에 몽진하여 국태민안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데 마침내 적을 무찌르고 개경을 되찾자 왕이 크게 기뻐하며 이 절의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본래는 현 위치에서 상봉쪽으로 약 100m쯤 올라간 곳에 있었다고 하며,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은 조선후기에 건축된 대웅전과 근래에 세워진 산신각, 요사 등이 있다.
□ 망선루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92-6번지(중앙공원 내)
망선루는 창건년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고려시대 청주읍성내에 있었던 관아 건물로 객사의 동쪽에 있었으며 일명 취경루(聚景樓)라 불렀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이나 충청도병마절도사 영문과 더불어 고려시대 청주의 역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2층 구조의 팔작누정 건축물로 1923년 남문로 1가 154번지로 이건하였으나 일제치하에서 식민지 문화말살정책(文化抹殺政策)의 일환으로 청주읍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망선루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2000년 12월 현 위치에 복원된 것이다.
□ 안심사 대웅전 /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번지
안심사는 신라 혜공왕 11년(775)에 진표율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원명국사가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 4년(1626)에 송암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대웅전은 건축년도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979년 해체·수리 때 대웅전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 기와에 강희십일년임자(康熙十一年壬子)라고 새긴 명문(銘文)이 있어 1672년(조선 현종 13년)에 기와를 다시 올렸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목조기와 맞배지붕으로 측면에는 풍벽(風壁)을 달았고, 건물내부 천장에는 화려한 닫집이 있는데, 전북 완주군의 화암사 극락전(花巖寺極樂殿)과 더불어 한국 고건축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 원통보전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번지(법주사 내)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보전은 법주사 건축물중 하나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단층 사모지붕이다. 주심포 양식으로 정사각형으로 된 특이한 양식을 갖추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김기응 가옥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율원리 907-10번지
일명 칠성고택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대문채, 중문채, 사랑채, 행랑채, 안채, 광채,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는 조선 후기(1800년대 초반)에 지은 것이며, 사랑채와 중문채, 대문채 등은 후에 지은 것들이다. 안채는 ㄷ자형이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부엌이 있다. 사랑채는 ㄱ자 모양으로 안채 쪽에서부터 부엌, 아래사랑방, 큰사랑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사랑 옆으로는 누마루를 두고 건넌방까지 툇마루를 달았다. 전통기법에 따라 잘 지어진 집으로 조선후기의 우리나라 상류주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 팔영루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번지(청풍문화재단지 내)
팔영루는 높이 2.2m의 석축기단 위에 지어진 누각으로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이다. 조선 숙종 28년(1702년)에 부사 이기홍이 창건하고 고종 7년(1870년)에 부사 이직현이 중수하였으며, 처음에는 현덕문이라고 하였으나 고종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명월의 8경을 시제(詩題)로 한 팔영시(八詠時)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다른 누각의 계단이 나무인 것과는 달리 돌로 계단을 만들었으며 우물마루를 깔았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있어 1983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 최태하 가옥 / 충북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281번지
우리나라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공간구조를 갖고 있는 집으로 안채의 상량문에 1892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함께 지은 것으로 보이고, 문간채, 곳간채, 헛간채는 후에 따로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 동쪽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바깥대문채, 그 왼쪽에 사랑채가 있다. 바깥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직각 축으로 중문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중문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ㄱ자 담이 있고 중문채 중앙에 있는 문을 통해 들어서면 바로 넓은 안마당과 정면에 一자형의 안채가 중문채와 같은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대청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정실이 있다.
□ 월리사 대웅전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5번지
월리사는 신라 무열왕때 의상대사가 지은 절이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건물이다. 의상은 이 절에서 열심히 수도하여 성불하였다고 하는데 하늘의 달빛이 해와 같이 밝게 비추는 것에 감탄하여 절의 이름을 월리사라고 지었다 한다. 그 후 통일신라말 원학대사가 이곳에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 청풍향교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번지(청풍문화재단지 내)
청풍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제사지내며 지방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지방국립교육기관이다. 고려 충숙왕때 창건되었으며, 조선 정조 3년(1779년)에 교리로 옮겼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될 처지에 있어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 지금은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등이 남아있으며, 교육공간이 앞에, 제사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하고 있다.
□ 문산관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번지(문의문화재단지 내)
문산관은 조선시대 문의현의 객사로 건축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종 7년(1666년) 현령 이명하가 옮겨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년 대청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될 처지에 있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전면 10칸, 측면 3칸 규모의 본 건물에, 전면 3칸, 측면 3칸 및 전면 4칸, 측면 3칸의 건물을 양쪽에 붙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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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녕헌 / 충북 충주시 성내동 154-1번지
이 건물은 조선시대 충주목 동헌으로, 목사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던 곳이다. 고종 7년(1870년)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10월 당시 목사였던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하며, 현 건물은 중원군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전면 7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 오른쪽 끝 1칸은 마루방,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 왼쪽 끝 1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 김선조 가옥 / 충북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401-2번지
얕으막한 동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현재 ㄷ자형 구조의 안채와 별당형식의 사랑채만 남아있다. 안채는 18세기 중엽, 사랑채는 19세기 중엽에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담장을 앞뒤 좌우로 빙 돌려서 딴 공간으로 구분하고 쪽대문을 설치해 사랑마당과 연결지었으며, 안방부터 오른쪽 날개부분의 아랫방까지 툇마루를 놓았다. 왼쪽 지붕은 옆면이 맞배지붕이고, 오른쪽은 팔작지붕의 특이한 구조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 충북양로원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76번지
조선 후기 사대부집이었으나 현재는 양로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러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만이 남아있는데 안채는 ㄷ자형이며 앞쪽에 一자형의 곳간채가 있어 트인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떨어져 나간 부분과 고친 부분이 많아 안타깝지만 건축기법이 매우 뛰어난 건물이다.
□ 가학루 /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 140번지
이 누각은 풍류를 즐기며 세상일을 논하던 집회장소로써 조선 태종 3년(1403년)에 현감 하담(河澹)이 처음 세웠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성종 21년(1490년)에 현감 손번이 다시 세웠다. 숙종 42년(1716년), 정조 5년(1781년), 1930년에 군수 전석영이 각각 중수하였다. 가학루(駕鶴樓)라는 이름은 경상도관찰사 남재가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하다 해서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전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난간을 돌린 전형적인 누각의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 후산리 고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번지(청풍문화재단지 내)
청풍면 후산리 유영선씨가 살던 목조 기와집으로, 수몰될 처지에 있어 1985년 이곳 문화재단지로 이건한 것으로 현재는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으로 건넌방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부엌쪽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대청방이 배치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죽담에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삽작문이 정겹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 자풍서당 / 충북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01번지
조선 중기의 유학자 동천 이충범(1520∼1598)이 제자들을 양성하던 곳으로 조선 초 양강 강가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후 여러차레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풍곡당이라고 부르다가 광해군 6년(1614년) 한강 정구 선생이 이곳에 머무르며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학문을 장려하였다는 뜻으로 자풍당이라 이름을 바꾸었는데. 전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목조기와 맞배지붕으로 18세기경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 최함월 고택 / 충북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 428-1번지
조선 숙종때 문장가인 최응성이 살던 옛집으로 본래 충주시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고택의 배치는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에 행랑채가 있고 좌측으로는 서재로 사용하던 정면 4간 측면 3간에 8작 지붕으로 된 염선재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창고가 있다. 또한 안채와 동측 담을 사이에 두고 고종 11년(1874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여 수암 권상하와 함월 최응성을 향사(享祀)하는 무릉사가 있으며, 집 앞으로는 함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 김세균 판서 고가 /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723-3번지
조선 순조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세균(1812∼1879)의 소실이 살았던 옛집이다. 원래는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안채는 충주시 살미면 구룡리로 옮겨 지었고 사랑채만 이곳으로 옮겼다.
□ 지곡리고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번지(청풍문화재단지 내)
건축년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것을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로 인하여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곡간채, 문간채가 있으며, 부엌 앞에는 식료품을 저장하는 고방(庫房)을 두었고,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판자벽을 둘렀다. 문간채 주위에는 담장을 둘러 바깥마당과 구분하고, 대문간에도 담을 설치하여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특히 안채와 곡간채 사이에도 담장을 둘러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는 건넌방의 독립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 점이 특이하다.
□ 이항희 가옥 / 충북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190번지
안채는 세종 12년(1861년)에 지은 집이며 사랑채, 행랑채, 광채, 곳간채는 1930년대에 다시 지은 것이다. 바깥마당과 가운데마당, 안마당으로 공간을 지은 것은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며, 기둥 사이가 넓은 반면 높이가 낮아 비교적 안정감을 주는 건물이다. 사랑채 옆에는 오래된 회나무가 있고 안마당 한쪽에는 민가에서 흔히 심었던 모과나무 등이 있어 옛스러운 정취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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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휘 가옥 / 충북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417번지
19세기 후기에 건축된 집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는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사랑공간을 덧붙이고 광채는 부엌 왼쪽에 뒤뜰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 오른쪽에는 초가로 된 작은 뒷간이 있어 인상적이다.
□ 사로당 /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320-1번지
사로당은 현감 박수근이 그의 아우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조선 숙종 36년(1710년)에 세워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땅에서 1.2m 높이에 마루를 설치하고 잡석기단위에 주춧돌을 놓아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사방에 간결한 난간이 둘러져 있는 고상식의 특징을 갖춘 전형적인 별당건축물이다.
□ 청안동헌 /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573-5번지
조선시대 청안현의 관아(官衙) 건물로, 태종 5년(1405년)에 지어졌으며,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을 뿐만 아니라 청안지서로 사용된적이 있어 변형이 있었으나 1981년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홑처마에 공포를 짜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관아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 고산정 /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산16-2번지
조선 중기 문신인 유근선생이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선조 29년(1596년)에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만송정(萬松亭)이라고 했다가, 광해군 때 국정의 어지러움을 피해 이곳에 은거하면서 고산정(孤山亭)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정자는 아래쪽으로 맑은 냇물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제월대 벼랑 위에 세웠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고 평난간을 둘렀으며 팔작지붕이다.
□ 도화리 고가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0번지(청풍문화재단지 내)
본래 도화리에 있었던 집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고, 건넌방 앞에 부엌과 상방을 덧붙여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안방과 웃방은 장지문을 설치해 터놓을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집은 벽으로 막았는데 이것은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며, 둥근 통나무 굴뚝이 있고 부엌 창 옆에는 관솔을 지펴 어둠을 밝히는 코쿨이라는 시설이 있는데 이것은 태백산맥 일대의 민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 황강영당·수암사 /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33번지
조선 주자학의 대가인 송시열선생을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권상하와 권상하 선생의 제자인 한원진, 윤봉구, 권욱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과 수암 권상하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영당은 전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이며. 담장 뒤편에 있는 수암사는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영조 2년(1726년)에 세웠고 다음해에 황강서원으로 사액(賜額)되었는데 고종 8년(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황강영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있어 1983년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 지선정 / 충북 청원군 현도면 매봉리 248번지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정자(亭子)로 광해군 6년(1614년) 오명립(吳命立)이 세운 건물이다. 자신의 호를 따서 지선정(止善亭)이라 하였으며, 숙종 30년(1704년)에 다시 짓고, 영조 14년(1738년)과 순조 2년(1802년)에 수리하였다. 그 뒤 고종 16년(1879년) 후손들이 담장과 중문(中門)을 지었다.
□ 흥학당 /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452-1번지
이 건물은 충주(忠州) 박씨(朴氏) 종중에서 후손들의 강학(講學)을 위하여 조선 중종 15년(1520년)에 건립한 것으로 흥학당기(興學堂記)에 조선 숙종때 중수하고, 영조·고종 때에도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 가곡리고가 /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146번지
1917년에 세워진 살림집으로 자연석 기단위에 사각형의 주춧돌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운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행랑채보다 지붕을 한단 높여 만든 솟을대문이 있다. 건물이 세워진 연도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전통건축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 영모재 / 충북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376번지
재실(齋室)로서 순조 28년(1828년)에 지었으며, 1888년에 수리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2개가 있으며, 솟을대문이 있다. 이곳은 온돌방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내부로 빨려 들어가게 하여 열효율을 극대화하도록 굴뚝을 설치하지 않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전통온돌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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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신정 /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76번지
조선 중기 문신인 전팽령(全彭齡)이 밀양부사로 있다가 물러나 쉬면서 글을 가르치고 독서도 하기 위해 조선 인종 1년(1545년)에 지었는데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12년(1620년)에 다시 지었으나, 영조 9년(1733년)에 무너져 없어졌다. 지금의 정자는 순조 28년(1828)에 다시 지은 것이다. 목담호숫가에 서 있는 목조기와집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서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 연병호선생 생가 / 충북 괴산군 도안면 석곡리 555번지
독립운동가이며 초대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연병호(1894∼1965년)선생이 직접 지은 집으로 정면3칸, 측면 3칸의 전형적인 초가집인데 1970년대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스레이트로 개량하였으나 1981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자연석 기단 위에 뒷산에서 아무렇게나 구부러진 재목을 구해 대충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흙벽돌을 쌓아 초가이엉으로 덮었는데 안방과 윗방이 있고 앞에는 작은 마루가 깔려 있으며, 마루로 올라서기 위해 쓰였던 아무렇게나 생긴 디딤돌이 그대로 남아있어 평소 검소했던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 팔성리고가 / 충북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129-1번지
1930년경 세운 집으로 원래는 사랑채를 갖추고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ㄱ자형의 팔작지붕으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양옆으로 온돌방을 두었다. 전통건축 양식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김주태 가옥 /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239-1번지
안채는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는 이 건물에 적힌 상량문에 따르면 1901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외부로 개방된 바깥마당에 사랑채가 있고 그 뒷편 담장을 경계로 안채가 있다. 집안으로의 출입은 사랑채 왼쪽의 대문을 통과하여 다시 담장에 설치된 일각문으로 안마당에 출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뒷마당은 부엌을 통해서 집안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게 하였는데 이것은 경기지방의 사대부 집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형태로 이 집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정우 가옥 /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585-3번지
안채의 상량문에 1924년 집의 수리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축년대는 이보다 앞선 것으로 추측된다. ㄱ자형의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잡고 대각선 맞은편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 배치구조를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부엌의 연기나 김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까치구멍을 지붕에까지 설치한 것이다.
□ 독락정 / 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617번지
조선 선조 40년(1607년)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周夢得)이 세운 정자로 후대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이며, 당시 군수였던 심후의 독락정(獨樂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마루에는 송근수의 율시기문을 비롯하여 10여점의 기문액자가 걸려 있다.
□ 삼괴당 / 충북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446번지
조선 명종때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남지언(南知言)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그의 호를 따서 삼괴당(三槐堂)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 25년(1802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단순 소박한 구조의 팔작집이다.
□ 한천정사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50번지
우암(尤庵) 송시열선생이 한천팔경(寒泉八景)이 있는 이곳에 잠시 머물며 작은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였다고 하는데 건물이 지어진년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방이 설치되어 있으며, 전면으로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막돌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일각문이 있다.
□ 연풍동헌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 162번지
연풍동헌은 현종 4년(1663년) 현감 성희위(成熙胃)가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영조 42년(1766년)에 이전 건물이 낡아 당시 현감 이덕부가 새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전면 5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으로 1912년에 개교한 연풍보통학교가 1920년부터 교사(校舍)로 사용하면서 흥영관(興英館)이란 편액을 붙였으며, 1965년 중수하고 1972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연풍초등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 사마소 /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279번지
청안 사마소는 숙종 29년(1703년)에 설치되었으며 현감 23명, 생원·진사 91명 등 114명에 대하여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이다. 사마소란 생원(生員)과 진사(進士) 즉 사마방(四馬榜)에 급제한 자가 50인 이상이 나온 읍에 설치되었다.
□ 명오리고가 /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723-2
이 가옥은 ㄱ자 모양의 안채와 ㄴ자 모양의 사랑채가 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는 전통구들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부엌에서 땐 불의 연기가 안방과 웃방의 구들을 지나 가랫굴로 빠지게 되어 있다. 초가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
첫댓글 전통가옥에 아름다움 선조들의지혜 감상 잘 하고갑니다.....
예쁘고 정겨운 집들 구경 잘 했읍니다. 언제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고택들을 보니 이 장마가 한숨자면 전통한옥 '소로 수장집'형태로 지을 울 집 지붕에 올릴 기와만 눈에 들어오네요. 역시 옛것은 좋은 것이여요.*^*
와...감상잘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