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 경기도 남양주 ‘물의정원’
며칠 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에 있는 ‘물의정원’을 찾아 산책했다. ‘물의정원’은 국토교통부가 ‘한강살리기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조성한 전체 넓이 약 50만㎡의 수변생태공원이다. 강변 산책로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강변 안쪽 늪지대에는 부들, 줄, 갈대, 꽃창포, 억새가 무성하다. 그리고 여름이면 늪지대에 연꽃이 가득 피어 장관을 이룬다. 그뿐만이 아니라 갖가지 나무가 우거진 풀밭이 있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나들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한 공원 입구에 있는 ‘뱃나들이교’를 건너면 길 양쪽에 드넓은 꽃밭을 조성해 봄에는 화초양귀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꽃과 노랑코스모스꽃에 파묻혀 꽃길을 걸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물의정원은 자연과 소통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자연친화적 휴식공간이다.
가을은 코스모스의 계절이다. 어째서 코스모스꽃을 보면 자꾸만 고등학교 다닐 때의 한 여학생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학교 앞에서부터 읍내에 이르는 곧게 뻗은 논두렁길, 질펀하게 펼쳐진 논을 가르마 타듯 양옆으로 곱게 빗어 넘긴 그 길은 이따금 소달구지가 지나다니곤 했다. 그리고 벼 이삭이 누렇게 영글어 가는 가을이 되면 논두렁길 언저리에 희고 붉은 코스모스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예쁜 꽃길을 만들곤 했다. 그 여학생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흙먼지가 날리는 신작로를 피해 종종 그 꽃길을 걸어가곤 했다. 그래, 나는 그 여학생이 교문을 나서서 그 꽃길에 접어들면 창문에 기대어 그녀의 뒷모습을 쫓곤 했다. 그래서 붉은 책가방을 들고 검은 교복을 입은 모습이 까만 점이 되어 벼 포기에 파묻혀 아스라이 사라질 때까지 넋 놓고 오래오래 훔쳐보곤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들판 한가운데 드문드문 서 있는 허수아비와 누렇게 익어 가는 벼. 나는 지금도 가을이 되면 학교 앞의 논두렁길을 걸어가는 그 여학생의 단아한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떠오르곤 한다. 또한 눈을 감지 않아도 그 옛날 코스모스 꽃길 사이로 나비처럼 나붓나붓 걸어가던 그 여학생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또다시 가을이 돌아왔다. 이 가을에는 설핏 기우는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그 여학생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학교 앞 들녘길을 걸어가고 싶다. 그래서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걸으며 코스모스 꽃송이를 따서 하늘 높이 던져 올려 팽그르르 돌면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그리고 논두렁에서 두 팔 벌리고 우뚝 서서 허수아비 흉내를 내며 훠어이! 훠어이! 소리 질러 참새 떼를 쫓으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다.
기실 20여 년 전 캐나다에 여행 갔을 때 밴쿠버 시내에 있는 퀸엘리자베스공원(Queen Elizabeth Park)을 둘러본 적이 있다. 퀸엘리자베스공원은 밴쿠버시에서 가장 높은 캠비가(Cambie Street) 언덕에 조성된 도심공원이다. 공원에는 밴쿠버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정원과 돔형의 식물원이 있는데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이 피고 있으며, 희귀한 나무들이 있어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이 공원은 당초 도로공사를 위해 돌을 캐내던 채석장이었다. 그런데 1930년, 채석을 끝낸 뒤 버려진 채석장에 나무를 심고, 꽃밭을 만들어 공원을 조성한 뒤 ‘리틀마운틴파크’라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1939년에 영국 왕이자 캐나다 국가원수인 퀸 엘리자베스 여왕이 밴쿠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퀸엘리자베스공원으로 바꾸었다. 퀸엘리자베스공원은 밴쿠버 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퀸엘리자베스공원을 둘러보면서 삭막하기 짝이 없는 채석장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민 것에 놀라움과 함께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런 점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어 달 전, 양평 남한강변에 조성한 ‘두물머리나루터’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리고 잘 꾸며진 강변길을 걸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철 편으로 서울을 출발해 남양주 운길산역에 내렸을 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물의정원’에 들어서서 ‘뱃나들이교’를 건너자마자 알싸한 코스모스 꽃내음이 코를 찔렀다. 그리고 코스모스 꽃밭에 들어서자 불현듯 그 옛날 코스모스 꽃길 속으로 점점이 사라져가던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 때문에 ‘물의정원’ 구석구석을 둘러보지는 못했으나 코스모스꽃 속에 푹 파묻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