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땀 흘린 뒤 마신 시원한 맥주 맛을 잊을 수 없는 이유
차가운 맥주 한 잔이 성관계보다 더 확실한 쾌락을 준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술을 잘 못하는 필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주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다른 풍미가 섞여 있는 것도 아닌 희석한 알코올뿐인데 말이다.
숱한 경험을 통해 적당히 취했을 때의 기분 좋은 상태를 예감하기 때문일까.
이런 필자조차 수십 년 전 술 한 모금을 마셨을 때의 쾌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
학 4학년 때 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주도 졸업여행 일정 가운데 한라산 등반이 있었다.
산이라기보다는 경사가 좀 있는 평지를 걷는 셈이었지만 그래도 워낙 거리가 되다 보니 두세 시간 지나서는
꽤 힘들고 목이 말랐다(당시는 페트병 생수가 없었다).
중간에 쉴 때 누군가가 캔맥주를 돌렸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엄청난 쾌감과 함께 갈증이 싹 사라
졌다. 요
즘도 목마를 때 가끔 캔맥주를 마시는데 물론 굉장히 상쾌하지만 그때의 ‘강도’에는 미치지 못해 아쉬워하곤
한다.
그런데 그때 냉장이 안 된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더라도 한 모금에 갈증을 날려버린 그런 상쾌함을 느꼈을까.
시도를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차가운 게 몸에 안 좋다고들 하지만 목마를 때 찬물과 따뜻한 물이 있으면 십중팔구는 찬물을 마실 것이다.
그런데 갈증의 생리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찬물이 따뜻한 물보다 갈증해소에 더 나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조성은 똑같고 다만 열에너지만 조금 덜할 뿐이다.
우리 몸은 땀을 많이 흘려 체액이 부족해지거나 짠 음식을 먹어 삼투압이 높아졌을 때 갈증을 느낀다.
물을 섭취해야 체액을 보충하고 나트륨 이온 같은 용질을 희석해 삼투압을 낮춰 정상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물을 섭취한 뒤 삼투압의 변화 패턴을 보면 찬물이나 따뜻한 물 사이에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찬물을 마셨을 때 갈증이 즉각 해소된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찬 음료가 갈증해소효과 커
2013년 학술지 「식욕」에는 ‘차가운 즐거움. 우리는 왜 아이스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좋아할까’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차가운 음료는 따뜻한 음료에 비해 갈증해소효과가 큰데, 이는 구강의 냉각수용체가 뇌의 갈증
중추에 신호를 보낸 결과라고 한다.
즉 뇌는 구강 내 차가운 자극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액체, 즉 물이 들어온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 없이 차가운 자극만으로도 갈증이 완화된다는 말인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정말 그렇다.
논문을 보면 병원에서 물을 마실 수 없는 환자들이 갈증을 호소할 경우 얼음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는데 그
자체로 갈증해소효과가 꽤 된다고 한다(우리나라 병원에서도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실험 결과도 비슷해서 하룻밤 물을 안 준 생쥐는 그런 제한이 없는 생쥐에 비해 차가운 금속 막대(물론
물은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다)를 더 열심히 핥는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갈증뉴런이 발화되면서 갈증을 느껴 물을 찾게 된다.
그런데 갈증해소에 도움이 안 되는 소금물(위)을 마시거나 건조한 찬 금속막대를 핥아도(아래)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꺼지며 갈증이 완화된다.
한편 찬물을 마실 경우 같은 양의 따듯한 물보다 갈증해소효과가 더 크다(가운데).
즉 갈증뉴런은 실제 몸의 수분 상태가 아니라 구강에서오는 감각신호를 바탕으로 갈증해소 여부를 판단한다.
(제공 「네이처」)
흥미롭게도 구강에 분포하는 냉각수용체인 TRPM8은 피부에 존재하는 냉각수용체와 동일함에도 그 반응은
꽤 다르다.
즉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말이다.
피부에 있는 냉각수용체의 경우 체온조절이 존재이유다.
따라서 더울 때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 들어서면 쾌적함을 느끼지만(체온상승을 막을 수 있으므로) 그
온도 범위는 꽤 좁다.
실내온도가 20도만 되도 5분, 10분이 지나면 추워서 소름이 돋고 팔뚝을 비비게 된다(체온하강을 예감하는 불
쾌함).
반면 구강 냉각수용체의 존재 이유는 바로 갈증조절이라고 한다.
따라서 얼음물 같은 꽤 차가운 음료를 마시더라도 ‘몸이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겨울에도 갈증이 심할 때는 냉수가 더 당기는 이유다.
아마도 자연상태에서 물의 온도가 대체로 주위 온도보다 낮기 때문에 입 안에 들어온 찬 걸 물로 여기게 진화
한 것 같다.
결국 냉각수용체는 같지만 이게 뇌의 어디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한라산에서 마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은 필자 뇌의 어디로 가서 그런 잊지 못할 쾌감을 유발
한 것일까.
물을 마시면 바로 갈증이 사라지는 이유
학술지 「네이처」 2016년 9월 29일자에는 이에 대한 답을 포함한 ‘갈증뉴런’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생리학과 연구자들은 뇌의 시상하부 뇌궁하기관에 존재하는 갈증
뉴런이 몸의 수분 상태를 예상해 갈증반응을 조절함을 밝혔다.
즉 필자가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갈증이 가셨다고 느낀 그것은 그 당시 몸의 수분 밸런스가 회복된 걸 반영
한 게 아니라,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라는 걸 예측하고 갈증뉴런이 스위치를 꺼버린 결과라는 말이다.
동물실험을 봐도 목마른 생쥐에게 물을 마음대로 마시게 하면 1분 이내에 갈증뉴런이 잠잠해진다.
사람들의 갈증반응이 순전히 몸의 현 상태를 반영하는 건 아니라는 정황증거는 많았다. 갈증을 느낄 때는
몸의 상태를 반영하지만 갈증이 해소됐다고 느낄 때는 꼭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찬 음료가 갈증해소에 더 효과적인 것도 그렇고 얼음을 물고만 있어도 갈증을 덜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혈액보다 나트륨 이온 농도가 더 높은 바닷물조차 마신 순간에는 갈증을 확 덜어준다.
물론 바닷물을 마시면 혈액의 삼투압이 더 높아져 결국에는 갈증이 더 심해진다.
영화에서 난파된 선원들이 바다를 표류할 때 극심한 목마름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바닷물을 마시려고 하면
주위에서 말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몸의 갈증이 해소된 시점이 아니라 물을 마실 때, 즉 갈증해소를
예감할 때 꺼지게 설정돼 있는 게 사실 합리적이다.
섭취한 수분이 소화기를 통해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수십 분), 갈증뉴런이 혈관의 수
분 상태에 반응한다면 목마를 때 물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고 결국 몸은 과잉의 물을 빼내는 노동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이런 합리적인 추론이 맞다는 걸 보여준 실험결과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갈증해소 예감 조건에서 갈증뉴런의 반응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물통을 보여주기만 할 경우 갈증뉴런의 스위치는 꺼지지 않았다.
목마를 때 그림 속의 물은 갈증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또 물이 없는 물통을 핥아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소금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금속막대를 핥을 경우 갈증뉴런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즉 구강에서 액체를 느껴야만(차가운 금속막대의 경우 착각이지만) 갈증뉴런이 억제된다. 음
료의 온도에 따른 차이도 갈증뉴런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12도인 찬물을 마실 경우 24도나 36도 물에 비해 갈증뉴런의 활동이 감소하는 폭이 컸다.
음식을 먹을 때도 갈증뉴런이 발화한다.
음식이 소화될 때 용질 농도가 증가해 삼투압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밥에 국이나 최소한 찌개, 햄버거에 콜라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 「네이처」 2016년 9월 29일자에는 갈증에 관련된 행동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결과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먼저 갈증이 나 물을 마시면 바로 갈증이 사라져 물을 지나치게 섭취하지 않게 하는 조절하는 부위가 뇌궁하
기관으로 밝혀졌다.
뇌궁하기관은 물을 마실 때 구강과 삼차신경절이라는 곳을 통해 신호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확실하지
는 않다(파란색).
한편 잠들기 전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건 장시간 수분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행동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시교차상핵과 종말판혈관기관,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관여한다(빨간색). (제공 「네이처」)
참고로 소금물의 경우 마신 직후에는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꺼지지만 1분 정도 지나고 나면 다시 켜진다.
즉 갈증뉴런이 냉각수용체를 통해 물이 들어온다는 신호를 받지만 뒤이어 그냥 물이 아니라는 또 다른 신호를
받는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구강인두나 위에 있는 삼투압 센서가 그냥 물이 아니라 이온 농도가 높은, 따라서 체액 균형회복
에 도움이 안 되는 액체를 마셨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광유전학 기술을 써서 갈증뉴런의 스위치를 꺼버리면 체액이 줄거나 삼투압이 높은 생리 상태에서도
갈증을 느끼지 않아 물을 찾지 않았다.
즉 몸이 항상성을 벗어나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편 「네이처」 같은 호에 갈증에 대한 또 다른 논문도 실렸는데 역시 흥미로운 내용이다.
우리는 시간대에 따라 ‘심리적인’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 체액은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목이 마를 때가 있는데
바로 잠자기 전이 그렇다.
잘 생각해보면 자기 전에 물 한 잔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할 것이다.
미국 맥길대 연구자들은 역시 동물실험을 통해 이런 갈증이 수면으로 긴 시간 수분을 섭취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미리 수분을 섭취하기 위한 적응반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생쥐도 사람처럼 자기 전에 갈증을 느껴 물을 마시는데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신경회로를 밝혀낸 것이다.
여기에는 뇌에서 일주기리듬(생체시계)을 조절하는 시교차상핵SCN도 포함돼 있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갈증을 잘 못 느껴 물을 잘 마시지 않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노인들은 하루에 마실 물을 담아놓고 적당히 나눠 마시는 게 좋다고 한다.
아마도 노화로 인해 갈증뉴런의 감도가 떨어진 게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근시와 노안에 대한 고찰
근육이 완전히 이완되었을 때 눈은 10미터에서 무한대의 거리에까지 맞춰진다.
10미터 반경의 (시각적인) 원 내부에서 환경세계의 대상들이 우리에게 가깝거나 멀게 인식되는
것은 근육들의 운동에 의해서이다. - 야콥 폰 윅스퀼
지난해 친구와 점심을 하다 씁쓸한 얘기를 들었다.
책을 보는데 글자가 잘 안 보이고 눈이 금방 피로해져 눈에 이상이 있나 싶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노안
이라고 얘기하더란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자 의사가 “다들 처음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웃더란다.
‘다행히’ 이 친구는 약간 근시라 안경을 벗으면 가까운 거리에서 근시와 노안이 상쇄되면서 초점이 맞아
글씨가 잘 보인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중에 노안이 더 진행되면 돋보기안경을 써야 할 것이다.
노안은 아직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난 봄 오랜만에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다가 필자도 노안이 시작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보시는 데 큰 문제는 없죠?”
“네. 왜요?”
“사실은 도수를 한두 단계 높여야 되는데, 그러면 가까운 데 보시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노안이라는 얘긴가요?”
“그렇죠. 지금 도수를 유지하다 불편해지면 그때 안경을 맞추시죠.”
친구처럼 절묘하게 상쇄되기에 필자는 근시가 좀 심하다.
결국 노안이 더 진행되면 도수가 약한 근시 안경을 따로 맞추거나, 바꿔가며 쓰기 번거로우면 다중초점렌즈
안경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근시는 질병 노안은 노화현상
광학의 관점에서 근시는 초점거리가 망막에 못 미쳐 생긴 증상이고 노안은 망막을 지나쳐 생긴 증상이지만
둘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먼저 근시는 병이다.
안경이라는 교정기구가 너무 완벽해 인식을 못하지만 만일 야생동물이 필자 정도의 근시라면 생존하기 어려
울 것이다.
학술지 「네이처」 2015년 3월 19일자에는 최근 수십 년 사이 벌어진 거의 역병 수준의 근시 급증을 우려
하는 기사가 실렸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심한데 요즘 젊은이는 10대를 거치며 70~80%가 근시가 된다.
우리보다는 덜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도 절반이 근시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10~20%만이 근시였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지구촌 인구의 3분의 1인 25억 명이 근시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난 50년 사이 왜 이렇게 근시가 급증했을까.
▲근시는 대부분 10대 시절 안구가 앞뒤로 약간 길쭉하게 변형돼 초점거리보다 뒤에 망막이 놓이면서 나타
난다(위).
이때 지나친 실내생활로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게 주원인으로 여겨진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근시가 만연해 있다.
아래는 연도별로 20세에 근시일 비율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우리나라도 급격히 증가해 최근 80%에 육박한다.
(제공 「네이처」)
기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근시의 과학상식이 틀렸다는 최근 수년 사이의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즉 요즘 젊은이들이 근시가 된 건 책이나 스마트폰을 봐서가 아니라(물론 영향은 줬을 것이다) 실내생활의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 젊은이의 극단적인 근시 경향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가 된다.
실제로 15살 중학생의 숙제 시간을 보면 중국이 일주일에 14시간인 반면 영국은 5시간, 미국은 6시간이라고
한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책 보고 스마트폰 하는 게 대부분 실내인데 야외생활을 하지 않는 게 근시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
을까?’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놀랍게도 행동연구를 한 결과 야외에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근시가
될 확률이 낮다고 한다.
그렇다면 야외활동의 무엇이(바꿔 말하면 실내생활의 무엇이) 근시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바로 빛의 세기다.
맑은 날 야외의 밝기는 1만 럭스(빛의 세기 단위)가 넘는 반면 실내조명은 500럭스 넘기가 힘들다.
무려 20배나 차이가 나는 게 좀 의아스럽겠지만 밖에 있다가 자연 채광이 안 되는 실내로 들어오면 순간
너무 어두워져 주춤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동공이 확대되면서 밝기에 적응하기 때문에 그런 차이에 둔감해진다.
하지만 이런 어둠침침한 실내에서 거의 하루 종일 보내다 보면 눈이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근시
같은 장애가 생긴다.
따라서 하루에 최소 세 시간은 1만 럭스 이상인 야외에 머물러야 정상적인 눈을 유지할 수 있다.
1만 럭스는 맑은 날 나무 그늘에 있을 때 밝기다.
근시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도 바뀌어야 한다.
호주에서는 수년 전부터 학교에서 야외 수업을 늘리는 등 학생들이 빛을 충분히 쬘 수 있게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 17세 청소년의 근시 비율이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2009~2012년 중국에서 실시된 한 연구결과도 흥미롭다.
눈이 정상인 6~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룹을 나눠 한쪽은 하루 40분씩 야외수업을 했고 나머지는 하던
대로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뒤 근시가 된 어린이 비율을 조사하자 야외수업을 한 쪽이 30%로 하지 않은 그룹의 40%
보다 꽤 낮았다.
물론 야외활동 시간을 더 늘렸다면 차이가 더 두드러졌겠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부모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극성 부모들은 자녀들이 한가하게 야외로 돌아다니게 놔두지 않는다.
근시가 되면 안경이나 렌즈를 끼거나 라식수술을 하면 되는데 뭐 대수냐는 말이다.
물론 근시인 사람 다수는 시력교정으로 별 불편 없이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근시가 심할 경우 망막박리,
백내장, 녹내장, 그리고 심지어 실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눈의 이상으로 실명이 되는 사람의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굴절이상을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다섯 가지 질환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이유다.
노안은 수정체 탄력이 떨어진 결과
▲눈은 먼 거리를 볼 때 모양체근이 이완돼 인대가 팽팽해지며 수정체를 당겨 납작해진다.
반면 가까운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수축돼 인대가 느슨해지며 수정체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 두꺼워
진다.
나이가 들면 수정체 탄력이 떨어져 인대가 당기지 않아도 예전만큼 두꺼워지지 못해 가까운곳의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제공 하버드대)
반면 노안은 말 그대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시각장애로 가까운 거리의 대상을 선명하게 볼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안구가 아니라 수정체의 문제다.
무한대의 공간을 안구 내벽의 망막이라는 휘어진 2차원 공간에 재현하기 위해 수정체는 곡률을 조절할 수 있는 볼록렌즈로 진화했다.
수정체 둘레에는 모양체근이라는 근육이 있고 둘 사이를 인대가 연결하고 있다.
먼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이완돼 인대가 당겨지며 수정체가 얇아지고, 가까운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수축돼 인대가 느슨해지며 수정체가 원래의 형태가 된다. 즉
두꺼워져 곡률이 커진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누워 쉬고 있는(모양체근 이완) 그물침대는 줄(인대)이 팽팽해져 묶여 있는 나뭇가지가
아래로 처진다(얇은 수정체).
사람이 일어나 발을 땅에 디디면(모양체근 수축) 침대 줄이 느슨해져 나뭇가지가 원래 각도로 돌아간다
(두꺼운 수정체).
동물은 주로 먼 곳을 보므로 모양체근이 이완된 상태에서, 즉 근육이 일을 하지 않고도 수정체가 힘을 받아
납작해져 곡률이 먼 거리에 맞춰지게 눈이 디자인되었는데, 이는 절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다.
이런 자연의 생활을 벗어나 가까운 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특히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양체근이 혹사당해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의 탄력이 떨어지며 모양체근이 수축해 인대가 느슨해져도 원래 상태대로 돌아
가지 못하게 된다.
그물침대를 매단 나뭇가지가 사람이 없을 때도 원래 각도로 회복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실제 인대가 당기는 힘을 받지 않을 때 수정체의 지름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커진다.
그 결과 가까운 대상의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된다.
근시가 환경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증상인 것과는 달리 노안은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는 겪게 되는 증상임을
보여주는 정량적인 연구결과가 1922년 이미 나왔다.
나이대별로 ‘최근접 초점거리’를 측정했는데, 이를 보면 20대부터 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40대 들어서는
급격히 늘어난다.
어릴 때는 8cm 정도이지만 40대 중반에서는 20cm 정도 된다.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이때 이미 40cm를
넘어서는, 즉 책이나 신문을 읽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노안 증세가 오는 사람도 있다.
한편 노안의 진행은 남녀 차이가 없었다. 독자들도 자신의 최근접 초점거리를 알고 싶으면 책을 들어 평소
읽는 거리에서 서서히 눈 쪽으로 가져와 글자가 흐릿해지기 직전의 거리를 재면 된다.
필자는 도수를 낮춘 안경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20cm 정도다.
그런데 노안은 왜 이렇게 일찌감치 나타나는 것일까.
인간의 수명을 고려한다면 수정체가 한 20년은 더 버텨야 하지 않을까.
이는 아마도 노안이 인간이 자손을 가장 많이 보기 위한 자연선택 과정에서 변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일 것
이다.
자손의 숫자는 ‘생존율’과 ‘생식값’의 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노안으로 생존율이 지장을 받는 시점(아마도
50대 이후)에서는 이미 생식값(생식능력)이 꽤 낮은 상태다.
게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서로 보살피기 때문에 노안이 심해져도 치명적인 증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안이야 별수 없다지만, 청소년 시절 쉬는 시간이라도 교실 밖에 나가 밝은 빛을 쬐는 습관을 들였다면 지금
처럼 심한 근시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든다.
(강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