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국이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면서도 춘천의 K대 법학과를 고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면 연고대는 물론이고 S대에도 웬만한 과에는 입학을 할 수가 있었고 담임선생님 또한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S대에 진학할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였지만 성국은 가정의 형편을 들어 끝내는 K대를 진학하였던 것이다.
성국은 외롭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써클이나 미팅에는 관심조차도 보이질 않았고 고등학교 동기인 나와 순철만이 유일한 벗이 되어 선술집인 명동 뒷골목의 봇쌈집을 드나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입학금도 모자라 친구들이 조금씩 보탰고 책 역시도 헌책방과 선배들에게 저렴하게 구걸을 해야 했으니 차 한잔값도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거였다. 때로는 학사주점인 멍텅구리에서 홀로 술을 하긴 했었다. 어쩌다가 작은 아버지가 용돈을 쥐어주면 소주 150원 생두부 200원을 시켜놓곤 쥔아주머니의 지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외롱주를 마시는 거였다.
멍텅구리는 명동 한켠의 2층에 자리한 셀프의 선술집이다.
쥔 아주머니는 춘천교대를 나와 교편을 잡던중 남자를 사귀었으나 유부남이었고 아이까지 낳고는 모든걸 체념한채 지내다간 이 멍텅구리를 보증
금 100만원과 월세5만원에 운영을 맡게된 것이었다.
어느날인가 성국이 제안을 한다
"누님! 새롭고 운치있게 해볼 생각 없으세요?"
" 무얼? 무슨걸? "
"하하하 메뉴판 말이어요. 좀 색 다르고 낭만이 있는...."
"어떻게? "
"제가 읊어 볼라니 잘 들어 보세요. 맘에들면 우리 고칩시다. 하하하"
평소에는 말이 없고 샌님 같던 성국의 입가에 웃음이 다 나온다.
...........................................................
멍주는 우유를 타니 멍청해진다 멍주요
몽주는 야쿠르트를 타니 몽롱해진다 몽주요
기분 땡이로구나 환타를 타자 땡주로구나
우울하고 외롭다 외롱주라 멕소롱을 타자
사랑한다 말못하네 장미 한 꽃닢 띄워 사랑주라네
에헤라 잊고살자 매실타고 에헤라주
콜라타니 꼴라주
사이다를 타니 싸다주
쏘맥이라 폭탄이니 만고강산
이거탈까 저거탈까 껄떡주
.....................................................
그렇게해서 메뉴판이 바뀌었고 춘천의 명물 메뉴판이 되었다.
......................................................
성국이 장미촌을 다시 찾은 것은 2학년이 되어 신입생 환영회를 끝마치고 였다. 그간은 흔치않은 명물처럼 책만 끼고 살았고 어쩌다 멍텅구리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들이나 크라스메이트들과는 점차 멀어져 봇쌈집도 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신입생 환영회날은 고교 동기동창인 순철 옆에
서 마음껏 취하고 싶다는 충동에 신입생 환영회가 끝날때까지 순철만 따라다닌 성국이었다. 술도 제법 마셨고 그간의 자격지심과 단절된듯한 거리감도 없어진듯 보였다. 기분은 그간 잠 재웠던 호기심과 영웅심리로 발전되고 있었다.
"야 순철아 너와 난 친구지!?"
"그래 임마 너하고 나하곤 친구지 .. 그런데 성국이 너 많이 마신거 같다!"
"어! 좀 마셨지! 마시고 싶었구!"
"너 그동안 힘들었구나!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거니?"
"어! 할말이 있어 아니 할 말이라기 보다는 부탁이야!"
순철의 입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고교 동창이라 해도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성국이 차차 멀어지고 있슴을 느끼고 있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었으니 순간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무슨 부탁인데.. 말해봐! 네 부탁 내가 않들어주면 누가 들어주냐!"
"끝나면 얘기할께 순철아!"
"야 얘기해봐! 야 그러면 지금 나가자! 과 대표한테만 얘기하고 나가자구!"
"알았어"
순철은 성국이 다시금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성국을 데리
고 밖으로 나왔다.
초롱한 별빛이 가끔은 뿌연 안개로 덮이는 그런 밤이었다.
성국과 순철은 어깨동무를 하고는 현란한 명동의 밤거리를 걷는다.
"성국아 무슨 부탁인데..!?"
"나 오늘 거기가고 싶다 너랑"
"거기가 어딘데!"
"장미촌!"
"하하하"
순철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도 많이 간다지만 성국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웃지마 진짜란 말야!"
"알았어 임마 하하하~~~"
순철은 화통한 친구였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는 순철이 더 얌전한 학생이었는데 가정이 넉넉하다보니 선배나 동료들과 자주 어울린 탓이었을게다
성국은 순철이와 같이 간다는 것에 위안 삼으며 앞장을 서게된다. 뒤에선 순철이 계속 실소를 하며 따라간다.
장미촌은 명동에서 5분 거리도 않된다.
성국은 그간 외로움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동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처지이다보니 첫여자인 명자 누나가 가끔 떠오르고 점점 외톨이가 되면서는
연민의 정까지도 생겨난 것일게다. 대학 입학후에는 장미촌을 지나야하는 명분이 없으므로 갈 수가 없었기에 누군가 같이 가 주길 바랐던 거였다.
마침 순철이가 쾌히 승락을 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슴이었다.
1976년 봄 어느 시사잡지에선 남성의 동정에 관한 설문과 성의 변천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었다. 남성의 첫경험은 평균 20세라는 것과 직업여성에게 의존되어 진다고 하는 것이 48%라는 것이었다. 성국이 여기에 해당 됐으며 순철은 선배를 따라서 서부시장의 젖가락 부대인 금비집을 갔던 것이
처음이 됐던 것이다. 당시에는 오리엔트 손목시계 하나만 맡기면 네명이서 술도 먹고 2차로 잠도 잘 수 있는 시절이었다. 어찌보면 스스럼없이 여인을 접할 수 있는 개방시대가 도래하고 있슴이었다.
"성국아 너 돈 있니? 너 이런데 자주 오는 것 아니야?"
"어! 돈 있어 작은 아버지가 용돈 좀 주셨어 2학년이 되었다구!"
"너 자주 와봤냐구!"
"아니! 딱 한번! 예비고사 끝나구!"
오히려 순철이 더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생소한 것에 대한 약간의 공포같은 것이리라.
이제 성년이 되었다는 통행증을 믿으며 설레임 반 속내의 두려움 반으로
변함이 없는 미성년자 출입금지의 팻말을 돌아 골목을 들어서고 있었다.
작은 홍등가, 집집마다 핑크빛의 불빛이 전시회를 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야 놀다가라!" 어느샌가 두여자가 팔장을 끼고는 나꿔채듯 잡아끈다.
"이것 놓으세요! 우린 3호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가만, 이게 누구야! 성국이 아냐!?"
그랬다. 3년간을 한결같이 이 골목을 이용했으니 알만한 여인은 다 알수가 있었다. 새로온 여인들 빼고는...
"3호집 누구한테 가는데?"
"명자 누나네!"
"하하하하 성국이가 결국은 우리식구 됐네! 야~ 명자야~ 손님가신다~~
성국아 그럼 재밌게 놀다가라~ 안녕~!"
들리지는 않는 거리지만 여인들끼리의 싸인이었다. 우리를 잡고 늘어지지 말라는..... 쉽게 3호집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명자 누나가 보였다.
순철은 어리둥절 성국의 뒤만 따르고 있다. 순철은 말로만 들었지 골목 조차도 통과해본 경험이 없던 터였다.
"이게 누구야? 성국이 아냐!? 소식은 들었어! 너네 후배들 한테서!"
원불교 후배들도 역시 이곳을 통과해서 교당엘 가고 있던 거였다.
성국은 대학 입학후에는 교당에도 가질 않았으며 1년이 지나다보니 그 생각을 잊고 있었던 터라 의아해 했지만 이내 아하 그렇구나! 했다.
"누나 잘 있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내방으로 들어가자! 이리와! 친구분도 이리 오세요!"
성국은 고교때 지나다니던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순철은 죄인인양 쭈삣거리며 뒤를 따르는 것이 영락없는 고양이 앞의 쥐였다.
방은 전축이 더 놓여진 것 말고는 그대로 였다. 불빛도 그대로 였고..
"차 한잔 마실래? 잠깐만 기다려?!!"
벽시계가 12시를 가리켰다. 또다시 떨릴 것만 같던 우려는 생각조차 나질
않고 푸근함 마저 드는 밤이었다. 남모르게 사랑을 쌓던 성국의 마음을
누군들 짐작이나 하겠으랴. 그는 외톨이가 되어 섪은 사랑을 다져갔던 것이었다.
명자 누나가 들어온다. 누군가 뒤따라 들어 오는데 귀염성 있는 얼굴이다.
"이것좀 마셔봐!"
따끈한 수정과였다. 의례껏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생각은 빗나갔다.
대부분 아가씨를 정하면 계산을 하고 포주에게 전달을 하고는 옷을 벗고
행위를 하면 또오라는 일사천리의, 평소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여유있게 차도 미시고 짧았지만 지난 얘기도 했다. 물론 옆에 있는 순철
은 의아해 하면서도 약간은 겁에 질린 얼굴이다.
"잘거야 놀다갈거야? 친구분은 얘 어때요? 싫으면 다른애도 있는데..."
순철은 부끄러운지 겁을 먹었는지 말이 없어 성국이 참견을 한다.
"누나 우리 자고 갈거야! 얼마면 되지? 순철이도 저 아가씨랑 자게해줘!"
"이천원이면 되지? 자!"
순철은 귀염성의 아가씨를 잡혀가는 모습으로 따라 나갔고 뒤따라 명자
누나도 포주에게 가서 입금을 한다.
방법은 알았으므로 성국은 옷을 벗고는 카시미롱의 홑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따스한 명자 누나의 온기가 전해져 오는 포근한 방이었다.
긴밤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들락거리며, 때로는 혼자만 재워 놓은채
다른방을 이용해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것이 상례이건만 명자 누나는
아침까지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의 과거도 꿈결에 들려온다
첫댓글 어느 헌책방에서 본듯한 그런내용 인데여 재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