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는 `(自)스스로 (願)원하여 (奉)받들고 (仕)섬긴다`는 의미로 활동 그 자체가 고귀한 가치를 품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활동은 곧 자원봉사의 목적이 되고 봉사자들은 주어진 일감을 중심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자원봉사도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은 지역소멸, 청년유출, 초고령화, 기후 및 감염병위기 등을 겪으며 공동체정신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공통된 사회적 이슈 외에도 날로 복잡다단해지는 지역문제로 주민 봉사활동 필요성이 날고 고조되고 있다. 울산 동구에서도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행정에만 요구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이 발굴하고 해결하는 활동사례가 적지 않다.
작년 개통한 대왕암공원 출렁다리 입구 앞 맥문동 군락지에 가보았는가. 이 곳은 공원 내 핫스팟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장소로 5월에서 8일 사이 피는 자줏빛 꽃들로 보라색 융단을 밟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 군락지에 식재된 맥문동은 12만본 규모로 지난 2020년 4월 200여명의 동구지역 자원봉사자들이 5일간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다. 식재 후 일년 뒤 출렁다리가 생겼고, 그 이듬해인 올해 꽃들이 만개하며 맥문동 군락지 꽃길을 배경으로 전국에서 찾아온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중이다. 필자가 8월 중순경 군락지를 방문했을 때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다. "여긴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너무 좋겠다" 관광객의 대화 속에 끼어 들 순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그거 우리 동구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겁니다!"
다음은 마을버스 정류장 이야기다. 마을버스는 좁은 주택가 사이 골목으로 다닌다. 그래서 마을버스정류장도 골목에 위치해 있다. 시내버스 정류장이 한 동에 1~2개 정도라면 필자가 조사했던 동구 한 동의 마을버스 정류장은 8개로 시내버스 정류장보다 훨씬 많았다. 시내버스 정류장은 점점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버스 이동정보 제공, 동계 온열의자 및 방풍도어설치 사례라 하겠다. 나아가서 울주군은 기업과 손잡고 와이파이 제공 및 핸드폰 충전, 에어컨 가동, 보안시스템까지 갖춘 스마트정류장을 운영중이다. 반면 필자가 조사한 마을버스 정류장들은 벤치 하나도 찾기가 어려웠다. 편의시설은 차치하더라도 골목에 위치한 마을버스 정류장은 대체적으로 불법주차 또는 쓰레기 상습투기 문제로 이용자는 물론 인근 주민들이 심한 불편을 겪고 있었다.
정류장에 불법주차한 차량으로 인해 생긴 사각지대로 버스기사는 이용자를 보지 못해 지나쳐 버리게 되고, 이용자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하다 보니 도로 중간으로 나가 사고에 노출된다. 이를 신고하여 과태료가 부과되게 되면 주차한 사람도 동네주민이다 보니 정류장 인근 가게의 업주를 의심하게 되고 싸움이 난단다. 쓰레기 상습투기가 반복되는 정류장은 악취와 벌레로 인한 불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 새벽시간을 이용해 가구와 유리 폐기물까지 버려지면서 치워도 치워도 답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구청에 지속적으로 CCTV 설치를 요청하고 있다는데 한정된 예산 및 각종 행정절차로 인해 추진이 쉽지 않아보였다. 설사 된다 하더라도 주민의 사생활이 지속적으로 촬영되고 있다는 건 유쾌한 일도 아니다. 지역사회가 이런 부류의 문제들을 대할 때 보통은 행정청에 민원을 넣어 해결하려 한다.
우리는 뜻이 있는 마을공동체와 봉사단체를 찾았고 함께 이 문제를 공동체 차원의 연대정신으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2021년 7월`시(詩)가 있는 마을만들기Ⅱ`사업을 시작했다.
해당사업은 불법주차나 쓰레기 투기 문제가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대상으로 지붕이 있는 원목벤치를 설치하여 주민이 그늘 아래서 버스를 기다릴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의 대형벤치가 설치되면서 더 이상의 불법주차, 이로 인한 위험도 다툼도 없다. 통제적 성향을 띠는 볼라드(탄성봉)가 아니라 주민편의를 위한 시설물을 설치한 것이어서 주차할 자리가 사라졌다는 민원도 없어졌다. 쓰레기 투기문제가 있는 장소는 벤치와 함께 대형화단을 설치했다. 자원봉사자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통해 계절별로 바뀌는 화초들을 보며 몰래 쓰레기를 버리기가 부담스럽게 만들어 버리자는 취지다. 실제 쓰레기도 90%는 사라졌다. 이 뿐 아니라 벤치의 양 측면 기둥을 활용하여 초등학생 아이들이 직접 쓴 시화를 넉 점씩 게시한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통해 정기적으로 교체되는데 작품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대왕암공원 해맞이광장에서 지난 8월 한 달간 시화전도 개최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본 시화가 감동이 된 주민은 시화 하단 QR코드로 접속해 어린이작가에게 응원과 감사 메세지를 보낸다. 그래서 사업명이『시(詩)가 있는 마을만들기Ⅱ』이다.
현재 동구에는 6개 마을버스 정류장에 그늘벤치가 운영되고 있는데 3체제로 운영된다. 기부자(자재구입지원)-설치자(대한민국명장회울산지회)-관리자(우리자리봉사단)로 완벽한 업무분장을 통해 참여단체(3체제)의 자부심이 아주 높다. 이렇듯 목표와 동기가 분명한 자원봉사활동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것이 축적되어 도시경쟁력을 낳는 선순환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