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413장 (구 470장) / 창세기 22 : 1 - 1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41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22장 1절 – 10절 말씀입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멘!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가 운영하던 수도원에, 어느 날 두 사람이 새로 수도사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프란시스는 그들을 데리고 농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주면서 거꾸로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말하기를 "교부님,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배추를 누가 그렇게 거꾸로 심습니까?” 라고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 때 프란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우리 수도원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네. 그러니 돌아가게."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순종이 무엇보다 귀하므로 순종하는지 아니하는지를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까지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름다운 순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애지중지하면서 키운 자식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주시지나 말던지 왜 주시고는 빼앗아간단 말입니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모리아 산에 숫양을 미리 준비하신 것으로 보아, 이삭을 완전히 빼앗아 갈 의도는 없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하여 믿음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아들까지도 내놓으라고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비록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아들을 바치라고 요청하지는 않지만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요구하실지라도 그 요구가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주셨으니 그 분이 무엇을 요청한 들 무리한 요청이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이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요청이 엄청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성실하게 순종하였습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가서 순종하였습니다. 그 길이 사흘 길이었으나 가는 도중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그이 순종은 참으로 모범적입니다. 이제 한 가지씩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준 곳으로 가더니" -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것은, 엄청난 요청을 받았음에도 불구라고 망설이지 않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길을 떠났습니다, 차라리 주시지나 말지 왜 주시고는 달라고 하느냐고 원망하면서 지체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그냥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의 태도는 창세기 19장의 롯의 태도와 대조를 이룹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극심하여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시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롯에게 빨리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명령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을 다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소돔에서의 지위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롯은 지체하였습니다. 할 수 없어 천사가 롯과 그 아내와 딸들의 손을 잡아끌어 성밖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롯의 태도에 비하면, 아브라함의 지체하지 않았던 순종은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다함께 봉독하십시다. "제 3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하나님이 지시한 모리아산까지 가는 길이 사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까운 곳을 지시하지 아니하시고 사흘 길을 가서 바치라고 하였겠습니까? 여기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작심삼일 - 사흘이면 우리 사람의 마음이 바뀔 수 있는 기간입니다. 사람은 대단한 결심을 해도 사흘을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흘이 지나도록 마음의 결심이 굳건하다면, 이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조금도 변함없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산을 지시하시며 그곳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으며 이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그곳까지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더라도 마음 변하기 전에,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편리하게 생각하고, 쉽게 하고 싶은 유혹이 왜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원대로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것이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인류구원이라는 아버지의 원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릴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롯의 태도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롯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을 피하여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롯이 말했습니다.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소알)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산으로 도망가라 하는데, 자기의 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는 자신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기분대로 순종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 편의에 따라 순종하려고 합니다. 또 내 생각에 맞아야만 순종하고 다르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골라서 순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에 방해가 될 지도 모르는 유혹의 요소까지 제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또 6절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까지 하였을까요. 그것은 순종의 순간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작은 유혹의 요소까지 제거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환들을 데리고 번제할 곳까지 갔다고 합시다. 저들이 보는 앞에서 이삭을 묶고 번제로 드리려 할 때, 그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고만 있겠습니까? 붙들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데리고 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아브라함이 순종하는데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유혹의 요소까지 떨쳐버리고 순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절대로 순종하고, 끝까지 순종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