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과 설렁탕, 그리고 소머리국밥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는 무엇일까? 곰탕은 쇠고기와 소 내장을 넣어 국물을
낸 뒤 삶은 고기를 넣은 국밥이다. 설렁탕은 소뼈와 쇠고기를 함께 삶아 우러난
국물에 삶은 고기를 넣은 것인데 사용하는 고기 부위도 다르다. 곰탕은 살코기와 곱창, 양 이 들어가는 반면 설렁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사태 등을 사용한다.
농사를 짓고 살았던 옛날에는 소가 아주 소중한 가축이었다. 농번기 때 논밭을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나이가 들면 도축되어 사람에게 단백질을 제공하였다. 쇠고기로 만든 곰탕과 설렁탕은 아무나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보신 음식이었다. 곰탕과 설렁탕은 열량이 높아 특히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음식이었다.
곰탕은 대부분 도축장 근처 시장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별로는 황해도의 해주곰탕, 서울 경기의 서울곰탕, 전라도는 나주곰탕, 경상도는 마산곰탕과 부산곰탕이 유명하다. 특히 나주곰탕은 나주 옛 관청 주위에서 열린 5일장에서 상인과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국밥이었다. 도축한 고기를 당일에 삶아 맑은 국물에 밥과 고기를 넣고 토렴(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하여 먹었다. 나주곰탕과 서울곰탕은 지방이 적은 양지살이나 사태살, 내장 등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설렁탕은 과거 임금이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제사를 마치면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넣고 맹물을 부어 끓인 뒤 백성들과 나누어 먹었다. 이 음식을 '선농단에서 내려준 탕'이라고 해서 '선농탕'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설렁탕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설렁탕이 일찍부터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설렁탕집에는 큰 무쇠 솥 2~3개에 뼈와 여러 부위 고기를 삶아 국물을 내고 편육을 부위별로 썰어 놓았다. 그러다 손님이 찾아와서 설렁탕을 주문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로 토렴한 후 국수사리를 얹고, 손님이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넣고 다시 토렴해 내주었다.
곰탕과 설렁탕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전문식당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 곰탕과 설렁탕은 재료의 다양한 구색을 맞춰야 하고, 고기 부위별로 익는 시간이 다르고 익히는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삶아볼수록 맛 좋은 탕을 끓일 수 있다. 무엇보다 큰 솥에 각종 재료를 넣어 푹 끓여야 곰탕과 설렁탕의 제 맛이 난다고 할 수 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소머리국밥도 유명한데 밥에 소 머리고기를 얹고 뜨거운 사골국물을 부어 먹는 것이다. 핏물을 뺀 소 머리고기와 사골을 끓이다가 무 등을 넣고 푹 끓인 국물을 밥에 붓고 소 머리고기를 썰어 함께 담아 양념장을 곁들인다. 경기도 광주는 예부터 경상도 지방에서 과거 보러 한양에 갈 때 지나던 길목으로서 이 지방에서 숙식할 때 주식으로 먹던 소머리국밥이다.
∎선농단 / 선농제를 지내던 제단으로 조선시대에는 역대 임금들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농사에 관계되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조선 태조 때부터 한양에 선농단을 설치했으며,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에는 매년 봄 선농단에서 선농제를 지냈다. 왕이 친히 밭을 갈 때는 농부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복 있는 사람을 뽑아서 함께하게 하였다. 이처럼 왕이 선농단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으며, 지금은 사방 4m의 돌단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5호.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74-1번지에 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설렁탕 한 그릇 하실까요? ㅎㅎㅎ
아~~
그런 음식문화
내가 다좋아하는 곰탕.설렁탕.
소머리국밥
그중에 소머리국밥 좋아해요
곤지암이 유명하죠~~^^
사골국물을 몇일째 먹는지...
제가 사다 줬으니
내탓입니다 ♡
ㅎㅎㅎ 많이 드시고 화이팅!!!
임금이 백성을 위해서 친히 밭도갈고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군요!
유명 설렁탕집 가끔 가는데
김치도 맛있고
식사후 좋은 기분으로
돌아오곤합니다.
그러시군요.
창덕궁엔 논도 있었다는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