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은 우리말 사전에 '라산스카'라는 뜻 모를 어휘 하나를 추가하고 떠났다. 어찌 '라산스카'뿐이겠는가. 성하(聖河), 동혼(凍昏), 신양(神恙), 흠곡(欠谷) 등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는 그의 체험적 정서가 우리들의 그것과 이질적인 것이어서 공유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농아(聾啞)들 한테서나 발견되는 어떤 언어적 자폐성, 어눌성과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못된다. 농아(聾啞)는 '귀머거리 아이'의 뜻인 농아(聾兒)와 달리 발성기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귀머거리로 청각을 잃어 벙어리가 된 경우이다.
그는 말하자면 짤막한 전언/메시지를 자신이 만들어 낸 조어를 가지고서 어렵게 세상과 말문을 트려고 했던 셈이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말걸기/말트기에는 흥미조차 두지 않았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술과 음악, 그리고 이를 통한 복음주의적 묵상이 그에게는 세상과의 대면 아닌 대면의 형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게 과작(寡作)은 필연이었으며, 이는 침묵의 한 화법이기도 했던 셈이다.
- 권명옥, 김종삼 작품 해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