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18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영국과 미국 공군은 독일의 드레스덴에
어마어마한 폭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의 건축물들이 거의 모두 파괴가 되었지요. 이 폭격 후에 한 남자가 세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는 폭격 현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인부에게 “거기서 뭐 하세요?”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인부는
“안 보여요? 돌 치우고 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인부는 “안 보여요? 돈 벌고 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인부는
특이하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보여요? 교회를 다시 짓고 있잖아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가장 기쁘게 일을 할 것이며,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부정적으로 보기에 급급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열심히 해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게 이득도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을 꼭 해야 하냐는 의심의 마음으로 지금의 삶을 사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고, 고통과 시련이 만연한 세상이라며 불평불만이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삶 안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야 합니다. 참된 의미를 발견할 때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또한 내가 지금 만나고 생활하는 사람들 안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면 나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은 지금이나 그
옛날 예수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자기 안에서만
그리고 세상의 기준 안에서만 판단하려고 할 때에는 분명히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기준 안에서
판단해보십시오.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분명히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기준
안에서 판단하면서 이 세상 안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 의미를 찾아가면서 점점 더 주님과 가까워질 것이며,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