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그날 아침 ‘녹색성장의 아버지’가 자신의 업적 자랑에 취해 있을 바로 그 무렵, ‘녹색성장 아버지’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흑색성장’과 토건 제일주의가 빚어낸 ‘괴물’이 꿈틀거렸다. 우면산 산사태는 16명의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난개발과 환경훼손 때문에 일어난 산사태가 시민들의 보금자리를 강타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녹색성장의 아버지’, 한국을 ‘녹색성장의 종주국’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황당한 일이다.
억울한 생명 흙더미에 깔릴 때, 이 대통령 “(내가) 녹색성장의 아버지”
방배동 레미안아트빌 3명, 임광아파트 2명, 남태령 전원마을 6명, 향촌마을 1명, 보덕사 1명, 송동마을 1명 등 우면산을 빙 둘러 동서남북 고르게 사망자가 나왔다. 많고 많은 산중에 하필 우면산이란 말인가. 어쩌다가 어느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사고가 났을까. 이래서 인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순도 100% 천재(天災)’라고 했다. 수해 상황을 점검하던 이 대통령은 “지금처럼 비가 오면 어떤 도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이번 물난리를 천재지변으로 못 박는 발언을 했다. 죄다 ‘하늘 탓’으로 돌리는 이 대통령의 처사는 옳지 않다. 국가 최고통치자로서 큰 재난을 만난 국민에게 취해야 할 태도는 무얼까. ‘유감이다, 죄송하다, 책임지겠다’ 이렇게 머리를 숙이는 게 도리다. 설령 100% 천재지변이라고 해도 말이다.
전문가들은 우면산 산사태를 인재라고 주장한다. 대부분 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수터 등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 우면산의 특성상, 폭우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지난해 9월 태풍 때 3000여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산사태까지 발생해 지반이 취약해진 상태였는데도 생태공원, 둘레길, 등산로 등을 무분별하게 조성해 화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향촌마을 산사태는 산자락에 조성하고 있은 생태공원 저수지의 물이 넘쳐 발생했다. 이 일대에 서초 내곡지구 보금자리 아파트가 건설 중이고 산 정상에는 군이 레이더 기지를 짓고 있어 임도(林道)가 많다. 토건공사가 산사태를 부추긴 셈이다.
난개발, 대비책 미비, 당국의 무사안일… 사태 키웠다
작년 태풍 복구작업도 미진한데다가 뽑히고 버려진 나무들이 배수를 막아 산사태를 유도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남태령 전원마을과 방배동 아파트 주민들은 작년 태풍 때 쓰러진 통나무를 치워 달라고 요구했으나 구청이 복구공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배수시설도 문제였다.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 흙산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감안할 때 배수시설이 매우 중요한데도 “배수로는 용량 자체가 작아 폭우에 의미 없는 수준”이었다는 게 학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주민들 역시 수차례 배수로 정비를 구청에 요청했지만 “위험하지 않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구청의 소극적 자세가 부른 참변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면산 일대 86%가 개인소유지이어서 배수로 공사 등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게 서초구청의 변명이다. 또 지난해 산사태 후 자연재해 위험지구로 지정하려다 땅값 하락을 우려한 소유주들의 반발로 천재로 규정,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의 입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태가 악화됐다는 식의 발언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와 같은 이 대통령의 인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한 술 더 떠 책임 회피를 위해 사실을 왜곡시키고 있다.
오세훈 시장, 책임 회피 위해 사실 왜곡
오 시장 임기 5년 동안 수해방지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주장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맞서는 서울시의 설전이 인터넷에서 화제다. <한겨레신문>과 서울환경연합은 서울시 예산을 분석한 결과 오 시장 취임 전해인 2005년 서울시 수해방지예산은 641억 원이었으나 취임 첫해인 2006년 482억 원, 2007년 259억 원, 2008년 119억 원, 2009년 100억 원으로 감소하더니 2010년에는 66억 원까지 줄었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 치하 5년 동안 서울시 수해방지예산이 1/10로 급감했다는 얘기다. 반면 인공하천 조성 사업비는 2006년 618억 원, 2007년 707억 원, 2008년 726억 원, 2009년 1천724억 원, 2010년 1천158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서울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발끈하며 해명자료를 냈다. 서울시는 “수해방지 예산은 하수도특별회계, 재난관리기금, 일반회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며 “2007년 1천794억 원에서 2011년 3천436억 원으로 5년 사이 1천642억 원이 증가됐고 지난해에 비해서도 24억 원이 늘어났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수해방지예산은 66억뿐”이라고 주장한 <한겨레신문>이 “혼란을 초래한 거짓 보도”를 했다며 “법적인 모든 조치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서울환경연합과 <한겨레신문>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게 서울시의 주장이다.
수해예방예산 1/10로 줄어든 것 “맞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 결정타를 가하는 주장이 나왔다. 강희용 서울시 의원은 서울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서울시 예산서상 수해예방비용 항목은 2010년 66억 맞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시 예산을 심의하는 서울시 의원이 서울환경연합과 <한겨레신문>의 주장이 사실임을 직접 확인해준 것이다.
또 강 의원은 서울시가 주장하는 올해 수해방지예산 3천436억 원은 “예산 부풀리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3천억 어쩌구는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일반 하수사업 예산 모두 합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큰돈(3천억)으로 이 지경을 만들었으면 정말 무능한 것”이라고 오 시장을 비난했다.
수해방지예산 66억 원을 3천436억 원으로 50배나 뻥튀기하는 오세훈 시장이나, 인재(人災)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이번 물난리를 죄다 천재(天災)라고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광화문 물난리, 청계천 공사가 원인인 ‘인재(人災)’
광화문 물난리 역시 인재(人災)라는 주장이 나왔다. 방재전문가인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작년에 이어 또 문제가 되고 있는 광화문 물난리 원인으로 “삼청동, 인왕상, 사직공원 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다 (청계천으로) 모이게 돼 있다”며 청계천 공사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효율성만 따져 물을 모으면 문제”라며 청계천 공사 계획에 재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지난해 광화문 홍수 이후 배수시설을 증가하는 공사를 해왔다는 서울시 주장에 대해 “대형 배수관로 설계가 이제 마감단계에 있다”며 “전혀 착공도 못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녹색성장’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 이거 말뿐이다. 기후변화를 탓하기 전에 변화에 대비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국지성 호우와 도심 홍수가 어디 이번뿐 인가. 아무런 대비도 없다가 물난리 나면 노란 점퍼 입고 대책본부나 찾는 게 대통령과 시장의 역할이란 말인가?
대통령의 ‘잘못된 시각’과 오 시장의 ‘겉치레’가 부추긴 참변
사람이 대비할 수 있는 일을 팽개친 채 요행을 바라는 무사안일이 빚은 ‘인재(人災)형 참사’다. 제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배수로 막힌 산이 흙더미를 토해내 많은 사람이 깔려 죽었다. 이조차 어쩔 수 없이 ‘하늘 탓’만 하는 게 ‘녹색성장’인가?
한강르네상스, 한강예술섬, 한강운하, 한강크루즈, 수상호텔과 인공하천과 실개천 조성에 혈안이 돼 있는 오 시장이 겉치레 욕구를 버리고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참된 목민관이었다면 이 정도 끔찍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물난리를 바라보는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시각부터 교정돼야 한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성 재난’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자세 없이는 두려움과 분노에 찬 시민의 마음을 다독일 수 없을 것이다.
|
첫댓글 ‘순도 100% 천재(天災)’라고 했다. 수해 상황을 점검하던 이 대통령은 “지금처럼 비가 오면 어떤 도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이번 물난리를 천재지변으로 못 박는 발언을 했다. 죄다 ‘하늘 탓’으로 돌리는 이 대통령의 처사는 옳지 않다. 국가 최고통치자로서 큰 재난을 만난 국민에게 취해야 할 태도는 무얼까. ‘유감이다, 죄송하다, 책임지겠다’ 이렇게 머리를 숙이는 게 도리다. 설령 100% 천재지변이라고 해도 말이다.
임싴은 하는 짓이 다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