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방 쪽잠이 낳은 한강의 기적
아침 7시 한국의 서울아산병원입니다. 세계 각국의 수백, 수천 명의 말기 간 질환 환자들이 간 이식을 받고 생명을 되찾고 있습니다. 한국의 한 간 이식팀이 독자적인 수술 방법으로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여기 외과의사들은 전날 16시간 수술하고도 여전히 지금도 수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 병원은 320례(건) 이식 수술을 했는데, 한 해 세계 최대 기록을 세웠습니다. (중략) 수술 성공률이 96%에 달합니다. 세계 최고입니다.
15년 전인 2008년 12월 미국의 유력 방송사 ABC의 한 기자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앞에서 이렇게 리포트를 했다. 그 기자는 이 병원의 간 이식센터 의료진을 “한국의 드림팀”이라고 불렀고,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다.
1998년 봄, 외과의사를 꿈꾸는 한 인턴이 선배들의 간 이식 수술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 수술방에 들어섰다. 복잡한 수술 도구를 보다 한 곳에 시선이 꽂혔다. 앗 이럴 수가. 수술방 한가운데 수술 침대 뒤로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벽에 기댄 채 자는 게 아닌가. 수술방에서 자다니, 상상이 안 됐다.
잠시 후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서는 더 놀랐다. 그 선배 의사는 밤새 뇌사자 간 이식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인 것이었고, 곧이어 수술복을 갈아입고 다시 메스를 잡았다. 이번에는 생체 간 이식이었다. 수술은 20여 시간 이어졌다. 밤샘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연신 피가 흐르는 간을 조심스레 헤집고 나갔다. 수술팀원들의 손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ABC 기자와 인턴 의사를 놀라게 한 ‘칼잡이’가 이승규(74)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다. 1986년 미국 보스턴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 이듬해 일본 도쿄 암센터, 92년 독일 하노버대학병원에서 간 이식을 배워 온 동양의 작은 나라 의사가 22년 만에 그들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가 됐다. 2008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간이식학회에서 외국 의사들은 “생체 간 이식의 메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수술방 쪽잠이 낳은 한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처럼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에 올라섰듯 ‘수술방 쪽잠’의 악바리 근성이 한국 의료를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2008년 이후 15년 동안 간 이식 세계 최고의 자리는 더 굳건해졌다. 이승규 교수의 회고.
97년 2월 성인 생체 간 이식을 시작했는데, 환자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간암 절제 수술 환자도 마찬가지고요. 간암 중 가장 수술이 어려운 간 문부 담도암(간에서 나온 혈관이 나뉘었다가 합쳐지는 곳에 생긴 암) 환자가 많았지요. 수술당 평균 10~15시간 걸렸습니다. 환자는 밀려드는데 의료진은 부족하고, 그래서 수술의 많은 부분을 혼자 했지요. 30분 쪽잠만 자고 일어나도 거뜬했습니다. 수술 참관용 받침대에 쪼그리고 앉아서 벽에 등을 대고 잤지요.
아산병원 간 이식센터가 세계 간 이식의 메카가 되면서 의료진이 230여 명(행정직 포함)으로 늘었다. 외과·소화기내과·영상의학과·마취과·수술간호사·중환자실 간호사·코디네이션 담당 간호사·행정직 등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의사도 전임교수·임상교수·전임의(펠로)·전공의 등 23명이다. ABC 기자는 이 교수를 중심으로 가족처럼 움직이는 팀워크가 드림팀의 원천이라고 평가했다.
바람 앞 촛불 생명들, 가능성 5%에도 도전
간 이식을 받으러 오는 환자는 중증 중의 중증 간경화·간부전·간암 환자다. 의식 불명이거나 자기 호흡이 약해 인공호흡을 하거나, 소변이 막혀 몸이 퉁퉁 부었거나, 심장이 약해 체외순환기구(에크모)를 달고 온다. 뇌사(腦死)자의 간을 이식하거나, 가족의 간을 일부 절제해 이식(생체 간 이식)한다. 안 그러면 얼마 넘기지 못한다. 이 교수는 “바람 앞의 촛불 같다”고 표현한다. 이 교수팀은 생존 가능성 4~5%만 있어도 이식에 도전한다.
X레이·CT를 보면 폐렴이 와서 허옇게 보여요. 간이 나쁘면 해독이 안 돼 암모니아가 많이 생겨 뇌가 부어오릅니다. 그러면 뇌가 내려앉고, 숨골이 척수에 걸리면 급사합니다. 호흡 마비가 오기 전에 초응급 수술을 해야 합니다. 간이 나쁘면 비장이 커지고 혈소판이 깨져 지혈이 잘 안됩니다. 피가 펑펑 쏟아지지요. 기증자의 간도 서너 시간에 검사를 끝내야 합니다. 이식 후 12~24시간 안에 이식한 간이 정상 기능을 해야 합니다. 작은 실수가 생사를 좌우하니,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지요.
간 이식은 말기 간 질환자의 마지막 치료법이다. 말기 간암도 이식 치료 대상일까. 다음은 이 교수의 설명.
간 이식은 상대적으로 조기에 발견된 조기 간암이고, 간 기능이 저하되어 간 절제를 할 수 없으면서 영상 검사에서 혈관 침범과 원격 전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5㎝ 이하 단일종이면 가능합니다. 또 암세포 크기가 3㎝ 이하며 3개 이하의 종양(밀란 척도)인 경우, 그리고 가족력이 있으면 가장 적합한 치료법입니다. 진행된 간암은 이식 후에도 재발 위험이 높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해요. 간 이식 후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이로 인한 면역 방어 기능이 약화해 간암 재발이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 재발하면 그 속도가 빨라요.
인파이터 복서 이승규, 수술방이 링
이승규는 복서다. 수술장이 사각의 링이다. 상대 주변을 빙빙 도는 아웃복서가 아니라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끝을 보지 않으면 링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뇌사자의 간이나 기증자의 간을 떼고, 말기 환자의 간을 제거하고 거기에 이식한다. 간 정맥, 문맥, 담도 순으로 무수한 혈관을 연결한다. 말기 환자의 간을 제거하려면 들러붙은 혈관, 막힌 혈관, 기형 혈관 등의 숲을 14~15㎝ 파고들어야 한다. 펑펑 쏟아지는 피가 시야를 가린다. 수백 병의 혈액을 쏟아 넣는다.
강펀치만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 기증자의 간을 얼마 남길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욕심을 내 수혜자에게 많이 가면 기증자가 위험해진다. 반대로 적게 이식하면 수술의 의미가 없어진다. 양쪽의 건강 상태·나이 등을 따져 맞춤형 이식을 한다. 심장이 좋지 않으면 수술 중 부정맥이 생겨 간이 부어올라 망가진다. 강펀치 못지않게 정확하고, 섬세한 공격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간을 존경하면서, 간을 사랑하면서 아기 다루듯 한다”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간의 70%를 기증해도 2~3개월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온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야간에 수술실을 가장 많이 쓰는 데가 간 이식팀이다. 뇌사자가 밤에 주로 발생해 야간이나 주말 수술이 많다. 한 해 450~500건의 이식 수술을 하는데, 15%가 응급수술이다. 230여 명의 의료진은 1시간 거리 이내에 산다. 아니 살아야 한다. 밤이든 주말이든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우리는 블루칼라 노동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의사들이 그런 걸 좋아해요”라고 웃는다.
세계 기록 9개, 세계 의학 교과서 새로 쓰다
이승규 팀은 ‘세계 최초’ 제조기다. 불가능? 그건 지금 불가능하다는 뜻일 뿐이다. 99년 세계 최초로 변형우엽 간 이식에 성공했다. 간 정맥은 혈액이 빠져나가는 길이다. 오른쪽·왼쪽·중간 세 개가 지나간다. 하나뿐인 중간정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끝에 허벅지 정맥으로 인공 중간정맥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증자의 좌엽(간의 왼쪽) 대신 크기가 큰 우엽(오른쪽 부위)을 이식했다. 대성공이었다. 이후 세계 표준 기법이 됐다.
2000년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2대 1 이식을 성공한 것도 세계 최초다. 당시 기증자의 간이 작거나 좌우 부위 비율이 기준 미달이면 생체 간 이식을 할 수 없었다. 간 모양 삼각형 종이를 오려 노트에 붙였다 뗐다 반복하면서 고민한 끝에 ‘하나로 부족하면 둘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2대 1 간 이식 탄생의 순간이었다. 2000년 3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치고 나갔다. 환자의 동생과 딸의 간 일부를 각각 기증받아 환자에게 이식했다.
“선생님 자신 있으십니까?”(환자)
“자신 있습니다.”(이승규)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수술해 주십시오.”(환자)
세 개의 수술실을 동시에 열었고, 간 이식팀 전 인력이 나섰다. 23시간의 대수술이었다.
“혈관 봐주세요. 혈류 개통합니다.”
마취과 의사가 혈류 개통을 알렸다. 그러자 거무스름한 창백한 이식 간이 붉게 물들었다. 대성공이었다. 당시 환자는 아직 건강하게 살고 있다. 지금까지 600여 명의 말기 환자가 이 기법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92년 뇌사자, 94년 생체 간 이식을 시작으로 2020년 7월 세계 최다인 7000건 간 이식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9월 8000건(생체 6658건, 뇌사자 1342건)을 돌파했다. 기네스북감이지만 인체 관련 기록은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2대 1 간 이식은 아직도 이 교수팀이 독보적이다. 항상 대기자가 밀려 있다. 이 교수는 “2대 1 간 이식은 정말 좋은 수술법이다. 모든 환자의 수술 경과가 좋다”고 말한다. 세계 기록을 9개 세웠고, 의학 교과서를 새로 썼다.
국내에서 대구가톨릭병원의 간이식·간담췌외과 최동락 교수팀이 20~30건 했다고 한다. 최 교수도 이승규 교수의 애제자다. 이 교수는 “최 교수가 어려운 환경(의료진이 많지 않다는 뜻)에서 대단한 도전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매우 이쁘다”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드러낸다. 일본에서도 2대 1 이식은 안 한다. 11일 인터뷰를 할 무렵, 2대 1 이식을 받으려는 일본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그러면 3대 1 간이식은 안 되나요?”라고 기자가 ‘무식한 질문’을 던졌다.
“안 됩니다. 혈관을 처리할 수 없고, 공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교수는 정몽준 이사장(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도 같은 질문을 했다며 웃었다.
98%의 성공, 2% 실패…아내 무릎에 펑펑 눈물
세계가 이 교수팀에 놀라는 이유가 또 있다. 수술 후 1년 생존율은 98%, 3년 90%, 10년 89%다. 미국은 각각 91%, 84%, 76%다. 이 교수팀을 능가할 데가 없다. 다른 나라보다 중증이 더 많고 혈액형이 맞지 않은 케이스가 더 많은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공률이다. 이 교수는 98% 성공보다 실패 2%에 더 마음이 간다. 그는 2%의 실패 환자를 “잃었다”고 표현한다.
92년 8월 첫 이식환자 C씨는 이 교수가 처음 잃은 사람이다. 뇌사자의 간을 적출해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동맥이 생각보다 적었다. 이 교수는 퇴근 후 아내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다.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 아팠다. 98년 성인 생체 간 이식 환자 세 명을 연달아 잃었다. 그때도 펑펑 울었다. 주변에서 “좀 쉬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오히려 전의가 살아났다. 그는 “예기치 않은 펀치를 맞은 뒤 실패 앞에서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변형우엽 간 이식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승규의 꿈은 ‘잃은 환자 0명’이다. 2017년 생체 이식 361명 케이스를 했는데 사망률이 0이었다. 이 교수는 “그해 말 어렴풋이 잃은 환자가 없을 거라는 감이 오긴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평생의 꿈을 달성했다”고 회고한다. 그런 해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승규의 연구실(5평) 책상에는 A4용지 산더미가 있다. 모두 환자 기록이다. 책장 곳곳에 환자 기록이 쌓여 있다. 거기에는 실패의 기록도 있다. 이승규는 “환자를 잃은 고통과 번민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기억의 바닥에 있다가 불현듯 떠오른다. 잃은 환자들의 기록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아주 많이 괴롭다”고 말한다.
이승규는 매일 오전 7시 팀 전체회의에서 그날 수술환자 방향을 논의한다. 제대로 하는지, 실수가 없는지 체크한다. 그 자리에서 실패의 경험을 공유한다. 간 이식은 분야별 의사들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한다. 마치 자동차 조립라인 같은 정밀 공정이다. 한 군데서 끊기면 곧 이식 실패라는 결말이 난다. 이식 실패는 곧 사망이다. 아산 이식센터의 수술대 위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청진기 애지중지하는 의사
이 교수의 가운 왼쪽 주머니엔 낡디낡은 수첩과 안경이 들어 있다. 챙겨 봐야 할 환자의 아이디와 등록번호, 외래 진료 때 미흡해 나중에 좀 더 살펴보려고 메모한 환자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4~5년 된 수첩인데 너덜너덜하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청진기가 들어 있다.
요즘 청진기 쓰는 의사가 드물던데요?
만져보는 것(촉진)과 청진기로 듣는 것은 달라요. 청진기로 웬만한 건 잡아냅니다. 그걸 갖다 대면 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어요. 회진 때, 외래진료 때 씁니다. 내가 쓰니 우리 팀 의사들이 다 갖고 다녀요.
휴대폰은 어디에 있나요?
병원 안에서는 안 갖고 다닙니다. 회진 때도 그렇고요. 진료에 방해돼요.
이승규에게 이식 전문 의사는 뭘까. “외과 의사는 돌격대입니다. 전선의 맨 앞에서 적진을 뚫고 나가는 역할을 하지요.” 그의 연구실에는 철제 몽골 기마병 조각상이 있다. 몽골 환자가 준 선물이다. 이 교수는 “이식 전문 의사는 몽골 기병과 다름없다. 아산병원은 돌격대다. 파이팅 정신이 중요하다. 후계자에게 이걸 물려줄 것”이라고 말한다.
외과의는 돌격대이자 몽골 기병
이 교수는 경기중-경기고-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다. 23명의 의사 중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유명해진 서울대 의대 출신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했다. 이 교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 듯했다. 한참 후 “저뿐인데요”라고 했다. 고려대·한양대 등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이 한명씩 있고 나머지는 지방대 의대 출신이다. 황신 장기이식센터 소장은 부산대, 문덕복 간이식·간담도외과 과장은 경북대 출신이다. 그외 고신대·인제대·전북대·울산대·충남대·조선대·제주대 등 다양한 지방대 의대 출신이 포진해 있다. 마치 외인구단 같다.
이 교수는 “스카이 출신이 상대적으로 적다. 지방대 출신이 많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이 교수는 본인의 후배들을 왜 뽑지 않았을까. 이 교수는 “어떻게 하다 보니 서울대 출신이 없다. 서울대 출신은 학문적 업적을 중시하고, 연구하는 학자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업무 부하(부담)가 훨씬 강해 몸으로 때운다. 밤낮이 없고 주말도 없다. 수술 시간이 길고 출혈량이 많아 어렵고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서울대 출신의 성향과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이 교수는 “우리는 블루칼라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문덕복 과장을 “돌쇠”라고 했다. 칭찬이 이어진다. “우직하고 성격이 단순하면서 도전적이다. 제가 한 것을 따라잡으려는 열정이 있다. 매우 좋아한다.” 이 교수는 “환자가 나이 많다고 선입견을 갖고 이식 불가로 판단하면 안 된다. 간 병리검사, 조직검사 등 데이터가 좋으면 가야 한다(이식해야 한다는 뜻)”며 문 교수가 그런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32년 만에 3박4일 첫 국내여행
이승규는 한때 펠로(전임의)를 뽑을 때 “아내에게 허락받고 오라”고 했다. 요즘도 그럴까. 이 교수는 “과장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답변을 피했다. 펠로는 4년 내내 병원에서 잔다. 2년 차는 일주일에 반나절만 집에 다녀온다. 이 교수는 1년에 한 번 연말에 팀원 가족을 모두 호텔로 초청해 식사한다.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애들 선물을 주고, 장기자랑대회를 했다. 아내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얘기할 거 있으면 다 해보세요.”(이승규)
“제 남편 돌려주세요. 너무 일을 많이 시켜요. 가족 얼굴 보기 힘드니 집에 자주 보내주세요. 정말 너무하세요.”
이승규 성토장이 됐다. 이 교수는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이듬해부터 ‘부인 말씀 시간’을 없앴다.
이 교수 본인은 더하다. 가족 외식 장소는 구내식당이다. 2015~2020년 아산의료원장을 지냈다. 2021년 주중에 3박 4일 국내 부부 여행을 했다. 통영·거제를 다녀왔다.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89년 아산병원에 발을 들여놓은 후 첫 여행이다. 해외 학회에 아내를 데려간 적이 있는데, 한두 번 가더니 더는 따라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이 교수는 내내 학회에 가 있고, 혼자서 호텔 방을 지키는 게 재미있을 리 없다. 이 교수는 “아내가 젊은 의사 부인들을 다독이고 조언한다”며 “혹시 ‘포기하면 편하니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한다. 부창부수다.
이 교수에게 취미가 뭔지 물었다.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
글쎄 뭐 뭐, 매일 재미있어요. 병원에 나오는 게 재미있고, 진료하는 게 재미있고, 회의에서 젊은 선생과 토론하면서 경험을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요. 수술하는 거, 모든 게 재미있습니다.
술은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 와인 반 잔만 마신다. 후배 의사들과 단합대회에 갔다 호기를 부려 소맥을 몇 잔 마신 적이 있다. 다 토하고 온몸이 벌겋게 변하고 가려움증에 시달렸단다. 이 교수는 “후배 의사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분위기 맞춰준다고”라고 말했다. 담배는 고3 때 배워서 39세에 끊었다. 하루 두세 갑을 피웠다.
이승규는 체력이 수술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시간이 없을 때는 수술방 뒤쪽 러닝머신에서 틈틈이 뛰었다. 의료진을 뽑을 때 체력을 당연히 따진다. 그는 평생 허리를 숙이고 수술하다 보니 허리 디스크가 왔고, 무릎이 망가졌다. 허리 시술을 세 번 했다. 주 1회 필라테스, 재활치료를 하면서 허리 병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하루 20~30분 실내 자전거를 타고, 벤치프레스 등을 한다.
이승규는 한때 3인분의 밥을 먹었다. 밥심으로 혹독한 수술방을 견뎠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쓰레기통. 짜장면 곱빼기를 다섯 젓가락으로 비웠다. 2006년엔 일본 외과학회에 참석해 소바(메밀국수) 먹기대회에 참석해 챔피언이 됐다. 키만큼 소바 판이 쌓였다고 한다.
해외 의사 200명 한 수 배우러 아산으로
이승규 팀의 명성을 듣고 세계에서 환자와 의사들이 몰린다. 미국·독일·일본·중국·브라질·러시아·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의사 200여 명이 다녀갔다. 프랑스·튀르키예 등에 가서 생체 간 이식 시연 수술을 했다. 또 몽골·베트남에 생체 간 이식 수술을 전수하고 수술방 안정화를 지도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지원해 줬다.
미국·일본 등지에서 포기한 환자도 이승규 팀을 찾는다. 지금까지 120여 명이 다녀갔다. 미국 의료진이 포기한 한국계 미국인 박문경 수녀도 그중 한 명이다. 박 수녀는 최근 편지와 감사의 동영상을 보내왔다고 한다. 박 수녀는 “교수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처럼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산 적이 없다”고 적었다. 중동에서도 많이 온다. 몽골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 간 이식 수술을 받았고, 최근 진료를 받고 갔다. 간 이식 수술 시스템을 정착시켜준 공로로 몽골에서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간 이식 의사가 될 거냐.
모르겠다. 젊을 때 간 이식을 전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업해서 편히 살려고 했다. 대장항문외과에 관심이 많았고, 치질 수술을 아주 많이 했다. 간 이식은 어쩌다가 전공하게 됐지만 이걸 하라는 숙명이 있었던 것 같다. 이식팀에서 일해 보면 우리가 일하는 게 숙명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문덕복 교수도 그런 얘기를 한다. 정동환 교수는 ‘선생님 우리 팀은 누군가가 저 위에서 지켜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우리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말기 환자가 걸어 나가는 걸 상상해 봐라. 항상 감사한다.
개업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사나.
성격상 개업했으면 환자를 열심히 봐서 빌딩 한두 개는 샀을 거다. 그렇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재밌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직업을 택했다.
언제까지 수술방에 들어갈 건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간 이식 발전에 보탬이 되는 날까지 하겠다. 아산병원에 도움이 된다면 계속할 생각이다.
아쉬웠던 기억이라면.
회복한 환자보다 아쉬운 환자(잃은 환자)를 더 잘 기억한다. 장부에 다 적혀 있다.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긴장이 풀리면 안 된다’고 가슴 아픈 얘기를 (후배 의사들에게) 들려준다. 수술 배울 때 가슴 아픈 얘기를 들으면서, 야단맞으면서 배워야 머리에 남는다.
앞으로 할 일은.
빨리 간 이식 관련 책을 내서 후학들에게 전수해야 한다. 그런데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힘든 전공을 기피한다.
우리 딸(안과 의사)만 해도 ‘요새는 생각이 다르다’고 한다. 하여튼 우려되지만 그 와중에도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전공의·임상강사의 등을 두드려준다.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뭔가 헌신하고, 나눠줄 게 있어야 존경받는다. 의사의 본업은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임상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게 미션이다. 그런 걸 추구하는 젊은 의사가 아직 있다. 흐뭇하다.
집에서 일을 도와주나.
아내는 전업주부다. 결혼할 때 전임강사였는데, 출산하면서 그만뒀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에게 꼼짝 못 한다. 주말에 설거지를 내가 하고 밥상 차릴 때 돕는다. 아내가 나를 잘 먹이려고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나도 교회에 나가지만 아내만큼 독실하지 않다. 내가 출근할 때 아내가 붙잡고 기도한다. 저녁마다 기도하고 성경 두 구절을 읽는다. 피곤할 때는 한 구절만 하자고 사정한다.
애견인이라고 들었다.
두 마리(한 마리는 유기견)를 키우다 14살, 15살에 죽었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 그만 키우려고 했다. 내가 너무 늦게 들어가니 아내가 외로워했다. 인천에서 유기견(이름은 써니)을 입양해 9년째 키우고 있다. 하루에 세 번 산책시켜야 한다. 집에서 절대로 대소변을 안 본다. 주말에 내가 할 일 중 중요한 게 개 산책이다. 몸무게 20㎏의 대형견이다.
📍 이승규 교수가 말하는 간 건강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는 간…출처 불분명 건강식품은 독
이 교수에게 간 건강에 대해 물었다.
간이 어떤 역할을 하나.
우리 몸에서 심장·폐도 중요하지만, 간도 중요하다. 간은 대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인체의 화학공장이다. 단백질·비타민 등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만들어서 저장하고, 약물이나 몸에 해로운 물질을 해독한다. 또한 담즙을 만들고 우리 몸에 들어오는 세균·이물질 등을 제거한다.
간이 나빠진 후 치료하면 되지 않나.
한 번 망가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한 번 나빠지면 회복이 안 되기 때문에 나빠진 간은 이식 수술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아껴야 한다. 수술도 그만큼 어렵다. 수많은 혈관이 지나가기 때문에 한 번 출혈이 생기면 마치 스펀지같이 배어 나오게 되고, 출혈 부위를 찾기도 힘들다. 극도로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장기다.
간에 나쁜 행위는.
가장 나쁜 행위는 과다한 음주다. 독성물질도 안 좋다.
독성물질이 뭐냐.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건강식품이나 일부 보약이다. 일부 중국 차도 안 좋다. 체질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잘 따져야 한다.
젊을 때 술을 많이 먹어도 중년에 끊으면 문제없지 않나.
아니다. 데미지(악영향)가 누적된다.
간 상태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술 많이 먹는 사람은 매년 간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 간이 어느 정도 굳었는지, 지방간 여부가 금방 나온다. 정기검진 때 초음파 검사를 하자.
간이식 수술의 대상은 어떤 환자인가.
성인의 경우 간경화 등 말기 간 질환, 간암 및 급성전격성 간염 등이 대상이다. 소아는 선천성 간경화나 담도 폐쇄증, 대사성 간부전 및 전격성 간염 등을 앓을 경우다. 말기 간 질환자는 복수, 간성뇌증, 정맥류출혈, 간·신 증후군, 간·폐 증후군 등 다양한 임상 양상을 보인다.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환자의 상태가 나쁠수록 간 이식에 우선순위가 있다. 정부가 정한 순서가 그리돼 있다. 간 혈관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대개 다양한 수술 방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식할 수 있다. 이식 불가 영역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간 이식 불가는 어떤 경우에 해당하나.
심장과 폐 기능이 좋지 않은 환자는 수혜 대상에 들기 어렵다. 간 이식을 받는 환자는 대부분 매우 위중하다. 수술 시간도 10시간에서 20시간 걸린다. 그걸 견딜 만큼 심장과 폐 기능이 좋아야 한다. 간암이 심하면 재발 위험이 높아 수술 대상에서 제외된다. 간 이외 다른 장기의 암이 간으로 전이되거나 혹은 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에도 수술 대상이 아니다. 이식하려고 할 때 폐렴이나 패혈증 등 심각한 감염 징후가 있으면 안 된다.
거부 반응을 없애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쓰게 되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이 자동으로 저하되기 때문에 일반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감염도 환자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증자의 혈액형도 중요하다. 이게 달라도 수혈 공식이 성립되는 혈액형이면 가능하다. 최근에는 새로운 면역억제제가 나오고, 새로운 기술로 혈액형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도 간 이식을 시행한다.
기증자는 간염 바이러스가 없고, 간 기능이 정상이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반드시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간의 우엽과 좌엽 비율이 적당해서 수술 후에 충분한 볼륨의 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지방간이 많을 수 있고, 지방간이 많으면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증자 나이가 젊을수록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