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새로움의 탐색을 위한 시 세 편
-시적 형상화에 대한 짧은 생각
-글, 김부회
낯선 혹은 익숙함에 대하여 - 김현정, 내숭이야기 /김진수
재고의 그림자/ 백현빈
탱고의 심장/ 오상직
형상화라는 말이 있다.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본질 따위가 어떤 방법이나 도구, 수단 매체 등등을 통해 구체적이고 선명한 대상 사물이나 생각를 구체화 하는 것을 형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문학에 있어 시적 관찰이나 시적 대상물에 대하여 관조된 심상을 문학의 미적 형상화 한다는 말은, 단지 문학이라는 제한된 공간이나 세계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은 문화에서 파생된 여타의 예술 갈래와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발전하였으며, 시와 음악, 시와 미술, 시와 연극 등등의 새로운 조합을 통하여 서로의 발전을 상승하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학, 그것도 시라는 한정된 범주 안에서의 시문학적 형상화는 상호소통 방식이 아닌 독자적 시세계 또는 정신적인 세계에서 서계로의 개인적 일탈이 비일비재 한 것도 사실이다. 시에서의 형상화라는 단어의 매뉴얼은 미적 인식, 자기화 등에 있어 차용한 이미지를 통한 작용 반작용, 구성, 창작의 방법 등에 있어 다양한 시도를 하며 발전하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화적 형상화, 문학적 형상화 모두 본래 모양이 갖고 있지 못한 배후에 숨어 있는 이미지를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형상화라고 정의 할 때, 시에서의 형상화는 어떤 양태와 모습을 표출되는지 모던포엠 10월호에 기도된 몇 편의 시를 통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ego 내부는 늘 보고, 느끼고, 들은,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것들에 대하여 사유를 할 수 있는 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문적인 문학가나 시인, 예술가가 아니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감각기관이 받아드린 정보에 대하여 자신만의 거름망을 갖고 얼마든지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고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분석이나 정의가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문학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시적 형상화라고 소분류 할 수 있을 것이다. 글과 말에는 단순하게 보이거나 읽히거나 들리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인 반드시 존재한다. 겨울이라는 단어의 배후에는 계절이 있을 것이고, ‘추위’라는 온도에 대한 나름의 자각이 있을 것이며 추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존재할 것이며 어쩌면 동 시간의 타인은 더울 수도 있을 것이며, 순환하는 환절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다양한 원인과 이유와 생각을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분석하고 사유의 갈래를 이미지로 표방해 내는 것이 창조라는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 할 수 없다. 같은 현상을 보고 다른 생각을 창출해 내는 것이야 말로 시문학의 총화이며 시를 시의 본질에 맞게, 그 질감을 재단하고 염색하여 시 옷을 걸치게 되는 것이 형상화 작업이라고 보면 옳은 생각일 것 같다. 요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거나 현미경을 대고 분석하거나 좀 더 다른 세계로의 접목을 이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시를 쓰는 모든 시인의 고된 행군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면면부절의 시간을 점층, 발현한 것이 시라는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기에 시를 형상화 하는 것이며 소통이나 공감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주로 작품에서 화자가 하고 싶은 메시지 또는 나타내고 싶어 하는 정서를 사물이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나름의 깨달음으로) 시적 형상화 방식이라고 정의 하여도 무방할 듯싶다. 손진은 님의 이미지 선택방식을 통한 시 장작 교육 중[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라는 글을 잠시 살펴본다.
시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성의 요인은 상상력이다. 창조적인 표현과 비유는 상상력에서 연유한다. 이미지는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고서도 사람들이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다. 코울리지는 상상력을 수동적인 사물(the passive things)과 능동적인 정신(the active thoughts)을 결합하는 매개적 정신능력(the intermediate faculty)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인간의 직관적 인식능력과 관련된 일차적인 상상력과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언어로 창조하는 이차적 상상력으로 나누고 이 중 이차적 상상력은 시인의 체험을 자각적으로 언어화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낫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가 낫다
어쩐지 香山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 농짝가튼 도야지를 잡어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엿다
나는 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럼이 바라보며
또 털도 안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것을 느끼며
小獸林王을 생각한다 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
-[北新-西行詩抄 2]({朝鮮日報} 1939. 11. 9.)
백석의 시에서 사물들은 그 자체로 시적 대상이 되어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많은 시에서 그는 주변의 소재들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끝부분에 와서 대상이나 사건을 초점화하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창작한다. 이 시 역시 가장 백석다운 시적 표현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돗바늘 가튼 털"을 비롯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 "농짝같은 도야지" 등의 직유를 통해 어떤 세련된 표현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수용자를 압도한다.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 문태준,[개미]({수런거리는 뒤란}, 창작과비평사, 2001.)
기어다가 멈춘 개미와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을 비롯, '젖꼭지/서리맞은 고욤', '겉보리/건 입', '숯/까만 얼굴'의 비유는 문명 이전의 농촌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생명의 세목에서 선택된 것이다. 모든 비유가 주변의 소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석 시의 이미지 선택방식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는 이 텍스트는 다른 수용자의 눈에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읽히고 있다.
저 30년대의 뛰어난 시인 백석을 오늘날 다시 만난 듯하다.
까만 젖꼭지와 개미의 대비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 젊은 시인은 이런 해학적이면서도 텁텁한 막걸리 같은 풍경을 곧잘 그려낸다. 문명 이전의 샤머니즘적인 세계도 시인의 눈에 자주 포착된다.
그러나 이 텍스트는 화자 '나'의 개입으로 인해 백석의 텍스트와는 뚜렷하게 변별되는 세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 텍스트는 소년시절부터 담장 너머로 봉산댁의 알몸을 지켜보며 자라온 '창작주체'인 나의 성장사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텍스트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공간 속에 놓여진 소년의 은밀한 엿보기의 양태를 간직한다. 또래집단의 이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웃집 나이 많은 '여자'를 통해 성을 깨달아가는 소년의 성장과정으로 시를 이끌어감으로써 이 창작주체는 백석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독자적인 개성과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미지 선택방식을 통한 시 창작 교육*-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를 중심으로 -』
손진은 부분 인용
낯선 혹은 익숙함에 대하여
- 김현정, 내숭이야기
김진수
현정 말입니다 아!네, 아니고 말입니다 말 아니고 내숭입니다
내숭;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 푼다. 내숭덩어리라고 광고하는 큰 애기가 있다
1층 독채로 합숙하는
큰 애기1 입가에 고추장 국물을 묻혀가며 떡복이를 먹고,
큰 애기2 밥솥 째 퍼 먹고도 헛헛해 배달 앱을 뒤진다.
큰 애기3 거울에 눈썹을 그린다. 거울 속 현관문이 열리고 배달이 왔다
큰 애기4 콜라를 마시며, 게걸스레 자장면과 피자를 먹고 커! 트림을 하고
큰 애기5가 타는 살찐 런닝머신은 헉헉 가쁜 숨을 토해내고,
마담은 채팅과 서핑을 즐긴다, 신상, 홈쇼핑 단축번호를 누를 때
꽃무늬 레깅스를 입은 꽃뱀이 옥탑 방으로 기어오른다.
2층 쪽방에 세든
201호실 처자1 딱정벌레를 타고 골프 라운딩을 가고,
202호실 처자2 할리 데이비슨을 쓰고 선글라스를 타고 달리는,
203호실 처자3 장밋빛 스카프 휘날리는 랄보르기니를 타고
반 지하에 월세 얻은 신사임당, 오만 원 권 병풍 앞에 앉아 책(일수장부 혹은 고객명부)을 읽는다. 우아하게 치마 밑에서 반짝이는 똥 덩어리
회전목마는 달리고, 훤히 비치는 가랑이 사이의 말뚝을 잡고 시시덕거리는 처자들, 내리꽂히는 롤러코스터, 은방울처럼 구르는 비명, 쉬!
나는 중독되고
김진수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관성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관성은 어떤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별개의 또는 별도의 변수가 없다고 가정할 때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는 성질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 컵 위에 종이, 종이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갑자기 종이를 잡아당기면 동전은 물 컵 속으로 들어간다. 제자리에 계속 멈춰있으려는 관성 때문에 그리되는 것이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익숙해진다거나 낯설게 되는 감각의 변화는 어쩌면 관성이라는 것에 지배를 받는 속성이 존재 할 지도 모른다. ‘익숙’ 이라는 것에서 잠시 벗어나면 이내 낯설어지는 것, 스스로에 대한 것과 타인에 대한 모든 낯섬의 원인이 ‘익숙’ 이라는 감성적 감각적 관성의 효과 내지는 결과라는 것이다. 달리 보면 익숙은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외부의 요인이든 화자 내부의 요인이든 여타의 이유로 인하여 이미 보이는 것에 대해 아니 본 것이라는 과거의 경험적 사실에 의해 A = B 라는 길들여진 공식이 인식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중독되고
시인의 시의 말미에 중독이라는 표현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중독이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일 수 있다. 중독 속에는 통제 할 수 없는 나, 길들여진 나, 새로운 세계와 따로 생각하기 싫은 타인의 모양이나 모습 등속이 어우러져 새로운 판단을 방해하는 무의식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파란 불에서는 건너야 하고, 빨간 불에서는 서야 하는 것은 중독과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그것은 약속이며 규약인 것이다. 하지만 교차로가 아닌 단순히 파란 불빛을 보았을 때 불현 듯 진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익숙’ 에서 비롯된 관성이며 사고의 정체와 단절을 초래하게 만들 수 있다.
시인은 몇 개의 단편적인 군상의 모습을 통해 그 관성의 본질을 익숙과 낯섬이라는 시적질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1층 독채로 합숙하는
큰 애기1 입가에 고추장 국물을 묻혀가며 떡복이를 먹고,
큰 애기2 밥솥 째 퍼 먹고도 헛헛해 배달 앱을 뒤진다.
큰 애기3 거울에 눈썹을 그린다. 거울 속 현관문이 열리고 배달이 왔다
큰 애기4 콜라를 마시며, 게걸스레 자장면과 피자를 먹고 커! 트림을 하고
큰 애기5가 타는 살찐 런닝머신은 헉헉 가쁜 숨을 토해내고,
마담은 채팅과 서핑을 즐긴다, 신상, 홈쇼핑 단축번호를 누를 때
꽃무늬 레깅스를 입은 꽃뱀이 옥탑 방으로 기어오른다.
꽃무늬 레깅스와 꽃뱀이라는 등식은 사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F할 수 있다. 꽃무늬 레깅스를 입은 꽃뱀이라고 [입은] 이라는 수사를 붙여도 위험한 발상의 혐의를 벗긴 어렵다. 하지만 글에서는 용인 될 수 있는 것이다. 화자가 경험하고 학습한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꽃뱀과 꽃무늬 레깅스의 인식의 조합에 이미 익숙해 있고, 그 조합에 나는 이미 중독된 채 사유하는 것이기에 시인의 시적 관찰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일반론적인 감각의 범주라는 것이다. 대중이라는 것은 어쩌면 공통된 사유의 방식을 갖고 있는 일단의 군상을 일컫는지도 모른다.
2층 쪽방에 세든
201호실 처자1 딱정벌레를 타고 골프 라운딩을 가고,
202호실 처자2 할리 데이비슨을 쓰고 선글라스를 타고 달리는,
203호실 처자3 장밋빛 스카프 휘날리는 랄보르기니를 타고
반지하에 월세 얻은 신사임당, 오만 원 권 병풍 앞에 앉아 책(일수장부 혹은 고객명부)을 읽는다. 우아하게 치마 밑에서 반짝이는 똥 덩어리
5연과 6,7,8 행 6연의 똥 덩어리에서 보이는 시인의 관성을 대해 우리는 과연 재해석이 아닌 ‘익숙’의 형상화에 초점을 얼마나 두고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주목할 것은 별도의 행으로 구분한 2층 쪽방에 세든/ 5연 한 행으로 보여진다. 쪽방에 세든 사람은 라운딩을 가지 말아야 하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지 말아야 하며, 람보르기니를 타지 말아야 한다는 약속이나 규칙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 인식에 그렇게 존재하는 경험의, 시실의, 현실의 내가 가진 나름의 관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모든 쪽방에 세든 다양한 군상은 쪽방에 세든 이유 하나만으로 세든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며, 그것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시인의 시선은 [중독]이라는 말로 무마하게 된다. 세상을
김진수 시인의 시는 사유의 일관된 경계에 대한 관성을 경계하자는 메시지를 배후에 깔고 있다. 아니 어쩌면 독자 모두에게 이미 관성이 되어버린 ‘익숙’ 와 ‘낯섬’의 이유를 되돌아보자는 성찰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숭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시인의 내숭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작품은 백현빈의 재고在庫의 그림자라는 글이다.
재고在庫의 그림자
백현빈
우리는 모두
배신자가 된다.
바깥세상은 더럽고 시끄러운 곳이라고
한 칸 남짓한 진열대야 말로
가장 아늑한 곳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팔리지 않은 물건들과
어우렁더우렁 뒤섞여
매일 밤 뿌연 먼지를 덮고 자도
처음 만난 공장 생산라인 위에서처럼
우리 우정 영원히 변치 말자고
맑고 깨끗한 약속을 나누었다.
진열대에 환한 조명이 다시 켜지고
온기 묻은 발소리가
또각또각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망각의 손에 잡힌
상자 속의 알찬 약속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뜬다.
백현빈의 시는 뜬금없이 배신자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시제와 첫 행을 읽으며 배신이라는 말에서 시선을 멈칫한다. 무엇에서? 무엇에게? 왜? 어떤 대상에서 믿음이 사라지는 것이 배신이라고 회자된다. 재고의 그림자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신하고 있는지, 반대로 재고가 우릴 보는 시선이 배신이라 불리고 있는지? 멈칫한 서두에서 오랜 생각이 이어졌다. 오랜 생각이 이어진 것이 어쩌면 필자의 관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관성을 재고/ 그림자/ 배신자의 통념적 개연성에 머물러 있는데 연관관계가 모호한 배후가 툭 튀어나온 다는 것은 독자를 흡입하는 요소를 교묘하게 배열해 놓았다는 생각이며, 진부를 벗어난 구조상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2, 3 4연에서 재고의 그림자와 우리/ 배신이라는 글의 개연성이 진술을 하고 보이는 것에 대한 형상화 작업이 언술의 옷을 입고 진행된다는 느낌이 든다.
바깥 세상은 더럽고 시끄러운 곳이라고
한 칸 남짓한 진열대야 말로
가장 아늑한 곳/
처음 만난 공장 생산라인 위에서 처럼/
맑고 깨끗한 약속/
재고가 갖고 있는, 품안에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나 갈망에 대하여 在庫라는 이름으로 상품의 가치와 상품의 희망과 상품의 세상이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 그것은 열망에 대한 배신이며, 갈망에 대한 방관이며, 희망에 대한 절망의 깊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수많은 재고를 떠안고 있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청년재고, 실업재고, 경제재고, 노년재고 등등의 재고들은 결국 폐기 아니면 땡 처리라는 모습으로 전이되거나 변환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재고를 바라보는 내가 재고가 될 것이며 재고 이후에 출시되는 상품역시 재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논리적 비유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열대에 환한 조명이 다시 켜지고
온기 묻은 발소리가
또각또각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망각의 손에 잡힌
상자 속의 알찬약속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뜬다.
시인은 재고의 그림자에서 애써 의미를 찾는다. 아니 의미를 부여 한다. 조명이라는 빛을 끌어당겨보고, 온기 묻은 발소릴 상기시켜보고 처음 생산라인에서의 굳은 약속이 변함없을 것이라는 꿈을 꾸어본다. 단지 재고라는 말에서 부재된 현실의 깊이를, 문제를, 의식을 담백하게 진술하고 있다. 담백이라는 말의 배후에 가슴 아린 청년이 존재 할 것이며, 계약직이라는 사회에 만연한 무책임이 존재 할 것이며, 알바천국 이라는 App이 파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시적 형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경이며 배후이다. 그들은 늘 숨어있으며 자신의 입을 통해 말을 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 말을, 그 배경을, 배후를 꺼내는 것이 시인의 몫이며 시적 성찰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서두에서 언급, 인용한 문태준님의 [개미]({수런거리는 뒤란}을 잠시 다시 살펴보면 시문학이 인식하는 형상화의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형상화의 결과는 매우 극명하다. 전율과 같은 찰나지간의 성찰을 주는 것이다. 시문학은 짧은 글이다. 짧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강렬하다는 것이다. 마치 그림을 본 첫 순간의 느낌처럼 이미지의 관성이 멈추거나, 등속으로 진행하거나.......
마지막 작품 역시 시적 메시지의 형상화에 매우 적합한 오상직시인의 탱고의 심장이라는 작품이다.
탱고의 심장
오상직
탱고를 추고 싶으면 그대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로 가라
공원이나 노천카페 할 것 없이
4분의 2박자 탱고의 선율은 흐르고
이곳저곳 몸을 밀착하는 커플
늦은 저녁에 수많은 관객이 몰리는 거리
립스틱 바르지 않아도 입술은 붉어지지
장미 한 송이 입에 물고
춤추어도 좋을 흥겨운 처소이다
갈라지 치마 사이로 흰 속살 드러난
살 오른 허리쯤은
선 듯 내어주는 그대에게서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고
탄성이 리듬으로 바뀌는 찰나
꽃잎 속에서 발을 옮기지
정적이 그리웠던 심장이라면
가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거리로
*탱고 :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본문은 전혀 어렵거나 글의 배후를 비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뭔가 놓친 것 같은데, 뭔가 다른 배경이 존재할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의식이 존재할 것 같은데 하면서도 손쉽게 감탄사를 내기 힘든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른바 한 방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을 풀어가며 매듭 지는 단어 하나에 존재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로 가라/
가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거리로/
언뜻, 같은 문장이면서도 분명히 다른, 단순 강조의 의미로만 잃히지 않는, [가라][거리]의 절묘한 사용법에 기인해 생각해 본다. 시인의 탱고의 심장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다고 한다. 열정적인 탱고를 추려면 아니 탱고를 추려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라고 일갈한다. 탱고의 자리에 다른 무엇을 대체해도 좋다. 문학, 예술, 음악, 모든 장르와 모든 사유의 출발점을 그 자리에 대체해도 결국 본질은 [가라] 어디로? [거리]로 [심장]으로
[가라]를 꾸며주기 위해, 아니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시인은 장미와 립스틱과 노천카페와 밀착과 4분의 2박자를 인용했다. 시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이다. 내 메시지와 느낌과 깨달음에 대하여 독자에게로의 전이, 시적 소재와 재제를 원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의 수단적 이유는 [전이]의 원활함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전체 문장 모두가 주식이 될 수는 없다. 밥상위에 밥만 열 그릇 존재한다면 정말 밥 맛 없는 식사가 될 것이다. 국도, 찌개도 나물도 있어야 비로소 밥 한 그릇의 의미와 포만감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법이다. 밥에 비해 국이 많거나 나물이 많다면 문장의 비만화를 초래한다.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가라]라는 밥이 대단히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상하좌우에 포진한 장미와 립스틱과 4분의 2박자라는 반찬들의 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형상화는 전체 글에 대한 것도 좋지만 부분적인 형상화, 의미적인 한 줄, 한 단어에 대한 형상화 모두를 수렴하는 것이다. 글을 문학적인 심미화 하는 것과 형상화 하는 것은 분명 다른 말이며 본질의 깊이가 다르다.
공원이나 노천카페 할 것 없이
4분의 2박자 탱고의 선율은 흐르고
이곳저곳 몸을 밀착하는 커플
늦은 저녁에 수많은 관객이 몰리는 거리
립스틱 바르지 않아도 입술은 붉어지지
장미 한 송이 입에 물고
춤추어도 좋을 흥겨운 처소이다
언어를 형상화 하는 작업은 고통이 수반된다. 아픔이 동반되고 가슴 속에서 수 천만번을 끓여내야 맛이 우러나는 법이다. 백석의 시가 그랬듯 아니 다른 누구의 시가 그랬듯 생각에 생각을 덧칠하고 색을 입히는 과정의 오랜 반복임을 기억하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는 본질과 본질의 배후, 배경에 대한 성찰이 다듬어지지 않으면 형상화는 분명 실패 할 것이다. - 글, 김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