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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갈 문화 리뷰 스크랩 글을 읽는 눈 욕망해도 괜찮아.
미-----루 추천 1 조회 797 12.07.01 08:56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진짜 책을 안 읽고 살았다. 그래도 지적인 체하고 싶은 허영은 있어서 인터넷 서점을 자주 들락거리고, 책읽기를 워낙 좋아하는 조카에게 읽고 싶은 책을 사주는 즐거움도 커서 많이 사나르긴 했다.


정년 전에 빨리 은퇴하면 어떨까? 


나는 사뭇 진지했다. 조카는 냉정했다. 은퇴를 언제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이모 선택이지만 은퇴 후에 할 일을 미리미리 알아두고 연습해두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난, 아무 일도 안 할 거야. 다시 책 읽는 즐거움이나 찾아야겠어.


아, 그것도 좋지. 그럼 우선 지금부터 한 달에 한 권 아니면 두 달에 한 귄이라도 정해서 꼭 읽어봐. 이모 블로그 밑즐긋기 안 한 지도 꽤 오래 되었잖아.


뜨끔했다. 그래서 당장 집어든 책이 ‘욕망해도 괜찮아’였다. 내 책꽂이엔 저자 김두식의 책이 이 책 외에 한 권 더 있다. ‘불편해도 괜찮아’, 겉장도 안 들춰 보았다. 영화 좋아하니까 이 책 읽어봐, 라고 조카가 강추했지만 나는 이미 독서와 담을 쌓고 살고 있었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라는 수식어를 붙인 ‘욕망해도 괜찮아’는 제목이 좋다. 불편해도, 욕망해도 괜찮아, 무슨 시리즈물 같다. ‘괜찮아’라는 말에 담긴 따뜻한 위로와 격려와 관용이 전해진다. ‘욕망’이라는 말이 마치 숨겨야 할 개인의 큰 잘못인 양 오도되고 있는 세상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욕망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가슴에 품은 본능적 기대 아니겠는가.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이든 사랑이든 힘이든, 가슴에서 열망하고 몸이 원하는데 아닌 척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욕망이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며 뒤틀려 여기저기 균열을 낸다면 그 또한 문제겠지만 있는 욕망을 없는 척 가리는 것도 자신을 굴절시키며 이중의 인격으로 살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우스꽝스러운 개인이 득실거리는 사회는 기형적이다.


저자는 자신을 평생을 계(戒)의 세계에서 모범생으로 살아온 법학교수라고 소개한다. 교과서적인 규범 안에서 주어진 규칙에 순응하며 한발자국도 선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어디 저자뿐일까. 그런데 어느 날 선을 살짝 넘어보니 세상이 조금 달라보였다며 독자들에게도 그 선을 좀 넘어 보라고 권한다. 부모와 선생 혹은 사회적 관습과 관행이 정해준 선(戒)를 넘으며 어떤 경계의 울타리를 조금씩 낮추고 넓혀갈 때 개인이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해지고 타인과의 관계도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어 말해준다.


삶의 시기시기마다 솟아오르는 작은 욕망의 씨앗들을 억압하지 않고 잘 데리고 놀면서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게 하면 스스로 열매 맺고 소임을 다한 후 소멸하게 될 것이다. 욕망에게도 그런 생로병사가 있을진대 씨앗을 품기만 한 채 어두운 내면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빗장을 단단하게 걸어잠그고, 때로 빗장 틈새로 삐죽거리며 머리통을 내밀 때마다 두껍이 두들겨 잡듯이 방망이로 내리쳐 다시 숨어버리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두들겨 내리쳐도 욕망이 쉬 죽지 않는다. 죽지 않은 욕망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괴물처럼 튀어나와서 개망신을 당하게도 하고 심지어 인생을 거덜나게도 한다.   


욕망(色)과 규범(戒)과 날마다 충돌하는 매일의 삶은 그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지만-----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일수록 주변에 털어놓기 힘들고------조금이라도 잃을 게 있는 사람이라면 솔직한 고백으로 괜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고 내밀한 욕망의 고백은 더욱 어렵습니다.------욕망이 건강한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감시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엿보고 돌을 던지는 왜곡된 방법으로라도 은밀하게 욕망을 배출하지 않고는 도저리 살아갈 수 없는 게 인간인 까닭입니다.--4쪽~5쪽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까발리는 대상엔 자기 가족도 포함된다. 가족을 분석하면서 그 안에 깃든 우리 사회의 욕망의 알몸을 보여준다. 나는 특히 ‘학벌 사회, 신정아와 스캔들, 위인전, 플레이보이 몸과 살의 소통'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성공 대신 성취라는 그럴 듯한 말을 쓰지만 들여다보면 공부 잘 해서 학벌 사회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라는 부모의 욕망일 뿐이다. 이 부모의 욕망은 학벌공화국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토양을 양분 삼아 자랐다. 그런데 엄친아가 없으면 이 욕망도 없을 거라고 한다. 즉 이웃이 없으면 욕망도 없다. 우리의 욕망은 결국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을 모델삼아 비교하는 데서 발생한 가짜 욕망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학벌 피라미드 꼭대기 명문대에 가서--요즘은 아이비리그인가?--욕망을 실현시켰어도 충만한 내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저자 역시 자식이 공부 안 하고 성적이 안 나올 때는 지인들의 모임에서 자식 자랑하는 사람이 밉더니만 자기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고 성적이 상위권이 되자 모임에서 자식들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슬쩍 못 이기는 척 자랑을 하곤 한다.


나는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열등감이 있는데 실력은 쥐뿔도 없다는 데서 이 열등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경기도 내 교사 집단에서는 이 지방대 출신은 평균값을 형성한다. 국립사범대가 없는 경기도에는 온갖 국립사범대 출신들이 섞여 있고 소위 말하는 스카이 출신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열등감의 바늘에 콕콕 찔렸다. 공부를 하지 않고 졸업장만 땄기 때문에 실력이 없다. 그럼 이 실력 없음에서 기인한 열등감은 정직한 감정일까. 에라 모르겠다. 나를 불편하게 하니까 그것도 일그러진 욕망의 잔해일 테지.


신정아씨의 잘못은 학벌을 위조해서 큐레이터가 되었고, 가짜 박사 학위로 동국대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이 되었으니 신정아씨의 잘못은 딱 여기까지라고--58쪽 하는 저자에게 동의한다. 저자는 신정아씨 사건을 르네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으로 설명한다. 나야 뭐 르네지라르가 어떤 사람인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지만 ‘모방 욕망, 스캔들, 만장일치의 폭력, 희생양’으로 이어지는 그의 이론을 대입시켜 풀어주는 저자의 글은 매우 가독성이 높고 고개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 역시 신정아씨 사건을 보도해대는 언론의 작태에 욕지기 비슷한 불쾌감을 느꼈던 터라 이 부분을 읽을 땐 ‘아, 내 생각도 그랬는데’하는 은근한 으쓱거림 잘난 체도 끼어들었다. 진짜 연애라도 한 똥아저씨가 지분거리기만 한 전직 총리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 대목에선 깔깔거리며 웃었다.


앗, 그런데 은근히, 저자는 이 태도를 중산층이 유지하는 ‘계’의 핵심라고 한다. 노골적이지 못하고 ‘은근하게’ 표출되는 욕망은 우리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데 그 부작용이 비해 효과가 너무 미미하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남의 은근한 욕망을 귀신처럼 잡아내는 무시무시한 센서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란다.--148쪽--


신정아씨와 똥아저씨, 상하이 영사관 스캔들을 살펴보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는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고 누린 다음에야 어른이 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훌륭한 어른’이 됩니다. 그저 ‘어른 행세를 하는 법만 배운 소년들이 ’훌륭한 어른‘타이틀을 거머쥐는 셈이죠. 인간이 평생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볼 때, 지랄이라는 실탄을 거의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90쪽


똥아저씨와 허 영사 등은 소년 중에서 어쩌면 가장 순수한 축에 속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자기 내면에도 그런 소년이 존재함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희생양 사냥이 이성을 잃기 시작하는 시점에 잠간 멈춰서서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르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스캔들의 중심에 선 희생양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우리는 희생양 양산의 메커니즘을 깰 수 있습니다. ----- 침팬지와 나의 유사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침팬지보다 나은 인간에 훨씬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95쪽


우리 사회를 지나치게 ‘계’의 세계로 만드는 데는 범람하는 위인전이 기여한 바가 큽니다.--166쪽


인간은 빠지고 날조된 신화만 넘치는 위인전들 덕분에 우리는 인생 선배의 삶을 통해 욕망과 조심스럽게 동행하는 길을 모색하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시절에만 위인전을 읽고 성인이 된 후에는 균형 잡힌 전기에 아예 손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겠죠.--169쪽


시골에서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자란 나는 위인전을 읽은 기억도 별로 없다. 성취욕이 별로 없는 나를 위인전을 안 읽은 탓이라고도 생각했다.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공이라는 열매를 딴 사람들을 흠모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어찌 성공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겠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내가 만일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면 ‘꿈’을 가슴에 품고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러면 비록 지방대학 출신이라도 ‘실력 없는’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을 테니 나의 학벌 열등감은 좀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오히려 인간의 너저분한 욕망이 빠진 성인군자 같은 위인전이 지닌 폐해가 클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저자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중산층이 지닌 욕망의 속살을 고백체로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그 고백이란 것이 드러내도 부끄럽거나 타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정도의 내용은 아니다. 그 정도라면 책으로 이름을 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치러야 할 아주 작은 대가일 뿐이다. 그래도 가족 이야기를 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과연 저자처럼 나를 포함한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나와 가족 이야기는 저자의 가족처럼 평범한 중산층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과 가족을 팔아먹어도 될 정도로 유명인이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유명인들은 대체로 그러더군.


‘플레이보이 몸과 살의 소통’은 쓰지 못하겠다. 어젯밤부터 붙들고 늘어졌다가 아침부터 이어 썼는데도 다 못 썼다. 곧 화실 가야 할 시간이다. (사족)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뭐라고 했을지 각자 생각해 보시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욕망해도 좋아’를 읽은 후 곧 ‘불편해도 좋아’를 읽기 시작했으니 이 책이 가독성이 좋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미루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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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7.01 10:17

    첫댓글 칠월을 여는 첫 날 아침에 흥미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지랄총량의 법칙이 정말 존재한다면 아껴쓰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마흔 전에 다 소진 하는 게 좋겠다는 갠 적인 생각을 해봤어요 ㅋ

  • 12.07.03 23:20

    좋아요 버튼이 있으면 누룰뻔 했습니다요.

  • 12.07.01 13:02

    '욕망해도 괜찮아'... "....좋아"
    아 책읽고 싶어져요-
    좋은 하루 되세요.~

  • 12.07.01 14:05

    미루님 ! 다음 글도 기다립니다. ^^지랄..실탄.. 많이 남았는데.. 그거 유효 기간이 있던가요 ? 사용설명서라두 일단 만들어 봐야겠어요.^^ 올 여름 조금 써보는 거..욕망해 보아요.

  • 12.07.02 12:26

    남과 말할때 이것저것 신경쓰며 말하는 나에게 해주고싶은 말입니다. 욕망해도 괜찮아... 억누르지않아도 괜찮아^^

  • 12.07.02 18:13

    저도 맘으로 찍어 놓고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님 글 읽고 바로 구매욕망이 솟구치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꾸벅.

  • 12.07.03 08:59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 아주 부럽고 사랑스럽습니다 ^____________^
    요사이 세상에서 젤 멋져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약점도 쿨하게, 가식없이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조금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변화해 간다고 믿고 싶습니다.
    근데 자연스럽게 타인을 신경쓴다면 그것 또한 나의 욕망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 12.07.05 02:51

    빙고 ^^

  • 12.07.02 22:34

    방금 집에 오는 길에도 게으른 저의 자아를 책망하며 "책좀 보자구"책칙질을 하였는데..
    뜨끔합니다.. 서점에를 당장에 가야겠어요..총.총.총

  • 12.07.02 23:52

    '삶의 시기시기마다 솟아오르는 작은 욕망의 씨앗들을 억압하지 않고 잘 데리고 놀면서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게 하면 스스로 열매 맺고 소임을 다한 후 소멸하게 될 것이다.'
    라는 대목에 공감!정말 지랄 총량이 있다면 걱정입니다.더 나이 먹기 전에 지랄을 떨어야 하나?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12.07.06 23:03

    아~ 미루님의 글은 항상 넘 솔직하고 넘 가감이 없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이 안 들게 해요.
    그래서 저같은 미천한 속인도 그냥.. 마냥.. 공감할 수 있고.. 아주 편안히 읽고 가게 만드네요.
    ^^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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