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의 선교전략
김성태 교수(총신대)
<문제제기>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 선교전략의 부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선교이론도 체계적으로 정립이 안되었고 효율적이고 상황적인 전략을 강구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임기응변적인 선교정책과 선동적이고 선전적인 변질된 선교의 message는 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씁니다. 서구선교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서구교회는 Unreached People개념과 전략선교의 개발등으로 선교의 폭과 잠재적 사역의 범위가 커진 반면에 과거의 잘못된 문화우월주의증거 선교방법과 식민주의적 상황하에서의 강압적 선교로 인해 결국 Asia와 Africa에서의 "Missionary Go Home"의 Moratorium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약술하듯이 선교역사 속에서의 제 선교이론과 전략을 살펴보는 것은 시급하며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한국교회사 속에서의 선교의 경험과 전략들을 연구함은 세계교회와의 균형을 이루면서 왜곡되지 아니하고 단견을 극복하면서 적절한 전략들을 한국교회의 상황에 비추어서 개발한느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인은 이 강의를 전개함에 있어서 선교역사 속에서의 전략발전사와 한국교회사 속에서의 전략발전사로 나누어서 진행함으로 광의적인 면과 지엽적인 면의 조정을 시도하면서 오늘날의 선교현지상황과 연결하여 제 전략들을 제언하려 합니다.
<선교역사 속에서의 전략 발전사>
1. AD. 1C-AD. 15C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 : 수도원 선교시대(베네딕트, 켈틱, 프란시스카) 및 로마교회의 영국, 구라파 선교 : 시리아, 페르시아 중심의 동방교회의 중앙아시아, 서남, 동남아시아, 중국선교는 많은 선교이론과 전략들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보면은 사도바울, 패트릭, 보니페이스, 안스카르, 프란시스, 레이몬드 룰, 몬테 쿠비노, 알로겐 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은 사도로서의 계시적 권위에 의존하여 교회의 모든 선교전략에 원리를 제공합니다. Roiand Allen, Louis Herkhof, Michael Green, Robert Speer 등은 바울에게 선교전략원리를 제공합니다.
요약해 보면은,
첫째 : 바울은 전략적인 면을 고려해서 당시 대도시 중심의 선교를 실시했다.
둘째 : 수용성(Receptivity)을 고려해서 회당 중심으로 God-Fearors와 개종자들을 집중화하였다.
세째 : 토착교회를 설립하고 토착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네째 : 타문화권 선교지 문화에 일반 은총적인 면을 무시치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다섯째 : 토착교회 설립후 토착지도자에게 교회권을 맡기고 "Regions Beyond" 하였다.
A.D. 4세기 이후 10세기 이상까지의 수도원, 로마교회의 선교는 수도원을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 선교를 실시하였다. 대표적인 선교전략을 고찰하면은,
첫째 : Power Encounter와 People Movement에 촛점이 모아졌다.
둘째 : 수도원을 세워놓고 교회, 학교를 설립하여 토착지도자를 양성했다.
세째 : 종합적인 Team Work 선교를 하였고 선교 방법으로 지역개발도 하였다.
네째 : Accommodation의 선교를 하였다.
A.D. 2세기부터 이미 시작된 동방교회(후에 Nestorian으로 발전)의 선교전략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웠다.
둘째 : 선교지 언어훈련을 시켰다.
세째 : 민족적이고 국수주의적 선교를 하였다.
네째 : 토착지도자를 키우지 아니하고 중앙집권적 선교를 하였다.
다섯째 : Accommodation의 선교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선교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 People Movement 중심의 정치지도자 위주의 선교는 기층서민을 유리시킴으로 해서 혼합주의 및 정권이 바뀔시 선교의중단을 가져왔다.
둘째 : Accommodation의 과용화는 복음의 변질을 가져오고 생명력을 상실함으로 도태되었다.
세째 : 토착지도자를 양육치 아니하는 선교교회 중심의 중앙 집권적 선교는 토착교회의 종속화, 정체화를 가져오고 혼합주의를 야기하였다.
네째 :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 선교는 토착민과의 깊은 틈을 가져왔고 결국 소멸되었다.
2. A.D. 15C - A.D. 18C
Gustay Warneck, Kenneth Latouretto, George Peters, Herbert Kann, Richard De Ridder 등은 루터와 캘빈의 개혁신학에 선교신학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루터와 캘빈의 신학에 선교신학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J.Calvin의 기독교 강요, 그의 주석 등에서 찾아보는 하나님의 주권, 그의 영광사상과 우주적 교회를 통한 구원 받을 자의 모음의 Motif와 하나님 나라 개념등은 그의 신학 자체에 선교신학이 근간되어 있음을 입증한다. 17-18세기 영국과 미북부지역 중심의 청교도 운동은 Richard Baxter, Richard Sibbs, Jonathan Edwords, John Eliott, David Brainard 등에 의하여 미 토착민인 원주민 인디안 선교운동으로 나타난다. Richard Baxter는 현대의 선교사 개념을 처음으로 신학적으로 정립하여 Unfixed Minister란 개념을 발표하였다.
이 때의 개혁주의 청교도 선교전략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 Mission Compound 중심의 선교를 하였다. 신정정치개념과 인디안 보호를 위해서 Mission Compound를 만들고 그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둘째 : 교육 선교를 하였다.
세째 : 문화개방의 선교에 치중하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 로마 카톨릭교회의 반동종교개혁운동이 벌어졌는데 Ignatius Loyola에 의한 Jesuits가 이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Jesuits의 대표적 선교사들로는 Francis Xavier, Matteo Riocl, Adam Shall 등을 들 수 있는데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들 선교전략의 특징은
첫째 : 카톨릭 제도로서의 중앙집권적 선교를 하였다.
둘째 : 교육선교에 힘썼다.
세째 : 토착지도자를 키우지 아니했다.
네째 : Accommodation의 선교를 하였다.
이 시대의 선교의 문제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 Mission Compound 중심의 선교는 유리된 기독교인의 군집을 가져왔다.
둘째 : 교육목표의 상향적 설정은 토착기독교인으로 하여금 Elite Group이 되게하므로 지역 공동체와의 격차를 가져왔다.
세째 : 중앙집권적 로마교회의 선교는 토착교회의 지도력을 상실케 하였고 혼합주의를 야기하였다.
네째 : Accommodation의 극단화는 결국 자체내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혼합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3. A.D. 18C - A.D. 20C
18세기에 일어난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은 Danes Halle의 Mission Movement와 Herrnhut의 Zinjendorf 백작을 중심으로 한 Moravian선교운동을 일으켰다.
경건주의 선교전략의 특징은
첫째 : 소그룹(Cell Group)중심의 선교를 하였다.
둘째 : 독립적이고 자비량 선교를 하였다.
세째 :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웠다.
네째 : 성경번역을 토착어로 시도하였다.
다섯째 : 현지문화를 무시치 아니하였다.
18세기 말에 영국의 Wililam Carey가 인도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한 이래 근대적 의미의 선교가 실시되었다. 이때서부터 Faith Mission Movement(Hudson Taylor가 대표적임)와 Para-Church선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의 선교운동의 특징을 살펴보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선교운동이 일어났다. 교육, 의료, 전문직에 의거한 종합적인 선교가 이루어지고 궁극적으로 교회설립을 목표로 삼았다.
둘째 : 토착교회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토착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세째 : 토착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경번역, 기독교서적 발간에 힘썼다.
네째 : 식민주의 시대의 선교로서(독일, 화란, 영국) 문화적 우월감과 Christendom 설립을 선교의 목표로 잡았다. 또한 이 시대에(18-19C) Henry Vern, Rufus Anderson에 의한 삼자원리(Self-Supporting, Self-Governing, Self-Propagating) 선교운동이 일어나서 후에 Henry Martin, J.L.Nevius, R. Speer 등에 의해서 더욱 발전이 되었다. 이것이 1910년 에린버그 선교대회에서 공식적인 선교전략으로 채택되었다.
삼자 선교전략의 특징은
첫째 : 자급, 자치, 자전의 토착교회를 설립하였다.
둘째 : 토착지도자를 양성하여 선교하는 교회를 설립하였다.
세째 : 선교사의 철수와 Regions Beyond를 강조하였다.
네째 : Comity 제도로서 선교지역을 분할해 선교한다. 이러한 삼자선교원리가 1890년 J.L. Nevius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어졌다. Nevius의 삼자선교원리는 H. Venn이나 R. Anderson의 경우와는 다르게 토착문화의 존중과 평신도 지도자 양육의 중요성과 성경공부의 강조 등으로 한국교회에서 튼 성공을 거두었다. 20세기에 이르러 인도의 선교사로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던 Donald Mcgavran에 의해 People 개념이 재조명되어졌다. 그는 "Bridge of God"과 "Understanding Church Growth"란 책을 통하여 개인주의적 서구선교의 경향을 비판하고 군중에 의한 People Movement를 강조하면서 동질단위의 집단(Homogenius Unit)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교회설립과 성장중심의 선교를 주장하였다. 이것이 Ralph Winter와 C. Peter Wagner등에 의해 더욱 개발됨으로 Unreached people 선교운동과 교회성장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 선교운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마28:16에 의거해 People의 개념을 영어의 Ethnic으로 보고 동일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무리로 해석화여 people을 선교목표로 삼고 전략을 개발하였다.
둘째 : Hidden People의 개념을 발굴하여 이미중심으로 이루어진 서구 대도시의 그룹 가운데 가리워진 비복음화된 사람들의 무리를 전략적으로 추적하여 선교를 실시하였다.
세째 : 복음의 수용성과 저항성의 원리를 개발하여 수용성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선교를 집중적으로 하였다.
네째 : 국가적, 지역적 상황(National, Local Contexts)과 국가적, 지역적, 제도적 상황(National, Local, Institutional Contexts)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선교를 실시하였다. 여기에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적 기술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어졌다. 이러한 Unreached People 선교운동과 교회성장 선교운동은 Lausanne 선교대회(1974)에 큰 영향을 미쳤고, 결국 Lausanne Covenant 작성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현대에 DAWN(Discipling A Whole Nation)선교운동과 NMRMM(Non-Missionary Resident Mission Movement)이 바로 이 선교운동에서 파생되어졌다.
DAWN과 NMRMM선교전략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토착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토착교회의 잠재성 개발과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둘째 : 13억의, 복음의 문이 닫혀 있는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자, 평신도 등의 교회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합법적인 방법으로 선교현지에 진출하여 장, 단기적 선교 프로그램을 전략적으로 개발하여서 궁극적으로 토착교회 설립에 힘썼다.
세째 : 세계적인 선교 Net-Work을 개발하여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선교를 실시하였다.
이 시대의 선교의 문제점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보면
첫째 : 경건주의의 지나친 소그룹 강조와 독립주의적 선교는 신학의 신비주의적 경향과 함께 상호 유기적인 협력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므로 소멸되어 갔다.
둘째 : 문화적 우월감과 Christendom을 선교의 목표로 설정함은 토착교회와의 보이지 아니하는 심각한 유리감과 갈등을 조장함으로 후에 일어난 Moratorium의 대상이 되었다.
세째 : Henry Venn, Rufus Anderson의 삼자선교원리는 Peter Beiyerhaus, William Smally 등에 의하여 서구문화적, 교파중심주의적 선교와 문화적 우월의식 선교 등으로 선교현지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비판되어졌다.
네째 : Comity 선교는 결국 지나친 교파 중심주의적 성격을 형성하였고 후대에 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
다섯째 : Mcgavran, Wagner에 의한 교회 성장운동은 실용주의적 미국정신이 강하므로 하나님의 선재적 주권적 요소가 상실되고 인위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Wagner를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운동은 신학적 취약성으로 인하여 성령의 현재적 역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Power Evangelism 등지의 Mcgavran과는 다르게 변질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교회사 속에서의 전략 발전사>
1. 1876-1910
Scottish 선교사인 John Ross 목사가 고려문에서 네사람의 청년을 만나 선교함으로 한국선교는 시작되었다.
Ross목사의 선교전략의 특징은,
첫째 : 성경번역과 토착교인을 통한 성경배포에 힘썼다.
둘째 : 토착화를 번역시 대두법 사용으로 실시하였다.
세째 : 토착교회 설립을 주요 목표로써 삼았다.
1890년 이래 H.G. Underwood 목사님 중심의 Nevius선교운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 기층서민들을 주 선교대상으로 하였다.
둘째 : 소외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교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였다.
세째 : 성경공부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사경회).
네째 : 순회전도의 기동성을 강조하였다.
다섯째 : 평신도 지도력 개발(영수, 조사, 성경판매원 남여)에 힘썼다.
여섯째 : 자급, 자치, 자전의 토착교회 설립운동을 하였다.
일곱째 : 한글을 사용하였다.
여덟째 : 종합적인 선교방법으로 문화개방운동을 하였다.
이때의 선교의 문제점으로는 아래와 같은 점을 살펴 볼수 있다.
첫째 : 토착화 시도가 관서지방 중심의 지역성에 제한되어졌다.
둘째 : 토착교회 치리권을 산교사를 인정안하고 모국교회의 치리권에 두었다.
세째 : 토착지도력의 기준을 Culture Change의 역동성을 고려치 아니하고 하향적으로 설정하였다.
2. 1910-1945
일제의 합방 이후 교회는 교육선교에 힘을 썼다. 특히 1919년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교회가 함으로 민족의 교회가 되었다. 1913년 처음으로 타문화권 선교(E2-ME2)는 중국 산동에 세 사람?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 시작하였다.
이 때의 선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 Team선교를 실시함으로 의료선교사도 보내고 여전도사도 파송하였따.
둘째 : 선교현지의 선교기관(미 장로교회)과 지역교회가 긴밀한 유기적 연결을 가졌고 현지교회의 치리권 하에 들어갔다.
세째 : 교육, 의료선교를 실시하였다.
네째 : 교포, 유학생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전도목사를 상해, 남경, 북경, 동경, 하와이, LA 등지에 파송하였다.
이 기간의 선교의 문제점으로는 아래와 같은 점들이 있다.
첫째 : 일제의 폭암적 압박으로 인한 지나친 정, 종의 분리는 내세지향적 성격을 띠게 되어 선교동기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
둘째 : 선교사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이 없었기에 선교현지를 이탈하였다.
3. 1945- 현재
해방 이후 민족복음화운동이 김활란, 한경직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개 교단 중심의 교회배가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한국동란 이후에 이북 피난민을 중심한 교회설립운동과 Bob Pierson, Billy Graham의 방문과 더불어 Crusade 형태의 대형전도집회운동과 부흥회운동이 일어났다. 이때에 ME3 혹 E3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선교사 훈련의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함으로 여기저기 선교훈련기관이 세워지고 선교의 열의가 뜨거워지므로 우후죽순적으로 많은 선교기관이 발생하였다.
이 시대의 선교의 문제점으로는 아래와 같은 점들을 열거해 볼 수 있다.
첫째 : 부흥회 운동의 기복신앙화의 경향성이다.
둘째 : Crusade 중심의 Collective Evangelism 등은 지역교회중심의 선교운동이 아니었기에 계속적인 양육, 훈련이 결여됨으로 한 운동으로서의 의의는 있었지만은 실질적으로 큰 성과는 없었다.
세째 : 혈연, 지연 중심의 선교사 선정과 선교지 선정, 무계획성 등이 있다.
네째 :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선교행정과 영구적인 선교행정의 제 원리가 정립되지 않음으로 불필요한 재정, 인벽의 낭비와 선교사 간의 분쟁, 선교지 이탈 등에 아무런 조절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다섯째 : 너무 잦은 선교사 호출과 선교사들의 지나친 선교모금운동과 미국, 한국방문은 선교사들간에 위화감을 조성시키고 선교현지에서의 긴장과 갈등을 일으켰다.
여섯째 : 현지 상황에 맞지 아니하는 선동적이고 선전적인 선교 Project 수립이 야기시키는 문제점들이 있었다.
일곱째 : 선교학의 기본적인 훈련도 되어 있지 않고, 타문화권 훈련도 받지 않고 나감으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한국 선교사의 자질을 부정적으로 평가케 만들었다.
이제 결론적으로 선교역사 속에서의 전략 발전사와 한국교회 속에서의 전략 발전사를 고찰해 봄으로 다음과 같은 선교전략을 제언한다.
첫째 :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선교행정과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둘째 : 선교사 훈련의 내실화를 기하며 공적훈련(Formal Training)과 비공적, 자유적훈련(Informal, Non-Formal Training)을 잘 조화시킨다.
세째 : 선교 재정수립 정책에 있어서 감독기능을 강화시키고 상황적이고 효율적인 재정을 수립한다.
네째 : 선교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그에 따른 상황분석을 통하여 적절한 선교전략을 설정한다.
다섯째 : 토착교회의 치리권을 인정하며 상호 유기적인 연관 속에서 선교사 자신의 문화도 부인할 수 있는 성경적, 그리스도 성육신적 선교를 행한다.
여섯째 : Africa, Asia의 선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개척적인 선교이기보다는 혼합주의적이며, 신학의 좌경화로 인해 자유주의적인 선교의 혼탁 속에서 신학적으로 선교학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선교사를 파송하여 지도자 훈련에 힘을 쓴다.
일곱째 : Team Work 선교를 실시하되 평신도 선교 지도력을 개발한다. 본인의 생각으론 Team 장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여덟째 : 금일에 한국교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타문화권에 선교사를 보내기보다 자국민 지도자 훈련을 한국서 실시함으로 선교하자는 이론을 경계한다. 이것은 타문화권 선교의 긴급성과 효용성을 부인하고 선교의 열의를 꺼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홉째 : 어디까지나 복음주의, 개혁주의의 선교전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 나라의 확장 속에서 교회설립, 전도의 우선순위를 두되 종합적인 선교로서 지역개발전략도 필수적인 방법으로 개발한다
|
첫댓글 잘 읽고 담아 갑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