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이름을 맞추는 일은 인간 사회활동의 기본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인물퀴즈’란 코너가 있을 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80억명이 넘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알 수도 없고, 또 미국 대통령이나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처럼 내 인생과 별로 관련 없는 사람의 얼굴을 굳이 내 기억 속에 저장할 필요를 느끼진 못할 테니, 이런 경우는 예외로 하자.
하지만, 평소 알고 있었던 가수들... 즉 내 기억 속에 소중하게 저장되어 있는 사람 조차도 그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바로 맞히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우리 뇌의 구조는 얼굴을 보고 이름을 외치는 ‘인물퀴즈’의 문제를 풀 때, 우리 뇌에서는 크게 ‘얼굴 재인(facial recognition)’과 ‘명명하기 (naming)’라는 두 종류의 처리 과정이 동반된다.
얼굴 재인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얼굴이 내 머릿속 얼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얼굴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얼굴 재인을 담당하는 뇌 영역은 하측두피질(inferior temporal cortext)에 위치한 방추형 얼굴 영역(Fusiform Face Area, FFA)이다.
특히, 이 FFA라는 영역은 다른 사물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직 얼굴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얼굴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FFA에 이상이 생기면 안면실인증 (prosopagnosia)이라는 증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모든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변별하는 능력이 없어지게 된다.
정상적인 FFA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기억이란 유한한 것이어서 한 번 봤던 모든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 얼굴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의 얼굴만으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는데, 사람에 따라서 1000개부터 많으면 1만개의 얼굴이 포함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10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에도 개인차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는 얼굴을 유난히 잘 기억하는 사람도, 얼굴을 여간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이 얼굴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어 있는 얼굴로 확인되면, 이제 그 사람의 이름을 명명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명명은 FFA가 아닌 다른 뇌 영역에서 일어나는 독립적인, 즉 얼굴 재인과는 전혀 별개 처리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얼굴 재인과 명명하기가 서로 상관없는 처리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예시가 설단현상(Tip of the tongue)이다.
어느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고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운동을 한 기억까지 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날 듯 나지 않을 듯 괴롭히는 현상을 말한다. 얼굴 재인은 성공했지만, 명명하기에 실패한 사례가 된다.
설단현상은 얼굴재인과 명명하기가 독립적인 처리과정이라는 걸 알려줌과 동시에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얼굴재인이 되면 그 얼굴의 주인공과 관련된 정보들이 활성화돼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성격, 나와 겪었던 에피소드 등의 기억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얼굴과 이름은 연관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최훈이다. ‘훈’이라는 이름의 한자 뜻은 ‘분홍색’이다. 내 이름에는 분홍색과 같은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희망사항은 반영되고 있을 뿐, 막상 나와 연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니 내 얼굴을 보고 내 이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그래서 인물퀴즈는 어렵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한 사람의 신원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정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인사할 때 얼굴을 보이며 이름을 나눈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처음 만날 때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땅에 처박고 인사하지 않는다. 대신 얼굴을 보이며 이름이 박힌 명함을 상대 쪽으로 돌려 인사하는 것도 내 얼굴과 이름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려 함이다.
하지만 나를 대표하는 그 두 정보, 얼굴과 이름이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단점이다. 그래서 내 얼굴에 이름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내 이름을 기억 못하는 친구나 파트너들을 보며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아닌, 노력이다. 내 얼굴과 이름을 연결시켜 상대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입력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옮겨온 글입니다 ~~~♡
첫댓글 나도 이 글을 읽기 전....
간혹 얼굴과 이름을 바로바로 연결하지 못하여 당황할 때도 있었는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