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어색한 일인 줄 알지만 그래도 지면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용기를 내서 글을 쓰게 되네. 가끔 전화를 하지만, 전화란 것이 갖는 그런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할 말을 못하고 끊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네. 되돌아 보면 군산에서의 생활이 너무 오래되었고 또 당연히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까닭인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나왔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다네. 그래도 참 군산에 있으면서 마음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카스 광장이며, 흰 벨트의 별빛들을 떠올리며 마시던 그 꿀맛 같은 맥주 한 잔의 맛이 그리워질 때가 많네. 얼마 전 분당에서 전화를 주었을 때도 아무런 전제 없이 한 번 뭉쳐야 하는 건데 그것이 쉽지가 않네.
어젠가 전화를 했을 때도 나는 캔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비가 내린 후 개울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지. 음식점에서 만들어놓은 분수대에서 서로 마주 보듯 물을 뿌리고 있었는데 그 시원한 물줄기가 휴가를 보내는 기분을 그나마 달래주었지. 산은 푸르고 여유로운 집들의 풍경이 마치 유럽에라도 와 있는 듯 화려하지만 가까이 가 보면 집들에 웃자란 풀처럼 사람 사는 모습들이 다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기도 하네. 여름, 한 여름을 보내면서, 가끔 내 자신이 무슨 향수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힘없이 짓눌려 있다는 생각이 드네.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듯 답답한 거로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지. 어쩌면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없다는 것처럼 외로운 것도 없는 듯 하네.
가끔 우진이 차를 타고 하제, 어은동, 한림동과 칠다리를 돌아오던 기억이 나네. 낯선 마을 돌산을 돌아올 때면 새롭게 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보이곤 했지. 논두렁에서 바라보는 도시를 통해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건지도 모르지. 처음으로 차를 사서 하제로 차를 몰던 날의 기억도 새롭네. 난 아직도 그 허름한 차를 끌고 에어베이스 군산이란 글귀조차 떼지 않으면서 덜덜 거리며 서울의 외곽을 달리고 있지만, 그 차에도 참 많은 추억이 어려 있는 것 같으네. 그 차를 타고 부여며, 임천, 만리포며, 곳곳을 달려갔지.
문득 카스광장, 시몬시티, 그리고 북어찜이 좋던 민속촌에 이르기까지 문학적인 대화의 꽃을 피우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실감하게 되네. 뉴질랜드, 극한, 병뚜껑과 방독면, 우진이의 그 세심한 형상화의 힘을 통해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도전을 받았지. 사실 소설 모임을 하면서도 소설을 배운 건 탁류 회원들을 통해서란 생각이 드네. 어쩌면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 인해 어떻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지를 배운 것이니까. 물론 지금도 어설픈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대로 이전 그 뜨거웠던 소설모임이 기억난다네.
한 번 떠나온 후 한번씩 돌아가는 것 조차 힘들어졌지만 마음에는 항시 군산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네. 생업의 문제 때문에 떠나왔던 길이지만 다시금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집을 얻어 작품에 몰입하는 꿈을 갖고 있다네. 워낙 주변버리가 없어서 현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글을 쓴다고 집착했던 시절, 돌아보며 가족들을 힘들게 한 자책감도 들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네.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내가 문학에 대한 간절함을 키워올 수 있었겠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탁류 식구들이 있기에 멀리서라도 위안을 얻는다네. 사는 곳들이 다르고 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 사이트를 통해 가끔씩 소식을 듣고 또 그 끈을 이어나갈 수 있으니 말일세.
가끔 단상이나마 적어올리던 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네. 짧지만 여운 깊은 하루끼의 단상처럼, 그렇게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들로부터 작품이란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구암이형이 말하던 그 서점의 검은 안경, 병뚜껑과의 인연처럼 반딧불을 거쳐 또 무수한 카스 광장의 불빛을 지나 또 수 많은 소설의 별빛들이 추억처럼 빛나고 있을테니까. 언제나 당당하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가면서 키타를 연주하듯 세밀한 글쓰기의 열정을 키워가고 있을 그 은밀한 작업을 기대하네. 기적을 울려달라던 우진이의 주문처럼, 병뚜껑의 일상에도 통 튀는 오픈의 명료함이 항시 깃들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네. 늘 건강하고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