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거 진천 사거 용인, 진천에 살고 용인에 묻힌다
살아서 진천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궁금하여
진천 농 다리 전시관 관계자에게 물으니 답을 하지 않는다
짐작컨데 진천은 살기 좋고 용인은 명당이 많다는 뜻 같은데
진천 소개 책자를 찾아 보니
진천은 산과 들이 적절하게 분포되어 물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금강으로 흘러가는 미호천 주변에 기름진 들판이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구전에 따르면
진천 색시가 용인으로 시집 갔는데 아들 하나 낳고 신랑이 죽었단다
근디 이 아줌마가 첫남편 아들을 시댁에 두고
진천 사람이랑 재혼하여 아들 하나를 또 낳고 잘 살고 있는데
용인에 두고온 첫남편의 아들이 자기 친엄마를 용인으로 모시겠다고 하니
진천에서 재혼하여 낳은 아들이 안된다고 하니까 싸움이 나서
진천 원님이 판결하기를 생전에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모셔 라고 판결하였다 하여 전해진 이야기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한양 땅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지역이라
지역적 소외감 때문에 생겨난 말인것 같은데,,
갑론을박에 씁쓸함을 안고 농 다리로 향한다
농 다리, 긴 다리인가?
중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보면 보이는 다리,
천년을 견뎠다는 다리,
단순하게 무덤처럼 쌓아 만든 다리인데 천년을 견뎠다고 한다.
진천 농다리는 고려때 만들었다고 하니
그시절 토목기술 부족으로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돌을 서로 물리게 하여 쌓았고
그때의 미신 기법으로 붉은색 돌은 자석 성질이 있다 하여 불그스름한 돌을 이용했다고 한다.
농다리라 부르는 이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대바구니 처럼 얼키설키 쌓아 만들어서
대바구니 농 자를 사용하여 농 다리라고 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살아서는 미호천 주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농다리를 건너고,
죽어서는 꽂 상여를 타고 농다리를 건너고,
이런게 천년의 신비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