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2011.9.4. 문화방송에서 '고려장'이라는 것은 일본이 왜곡하여 퍼뜨린 것이라고 보도한 것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려장하면, 병들고 늙은 부모를 처치 곤란하여 자식이 외딴곳 산속 깊은 곳에 움박 같은 것을 지어 놓고 거기에 부모를 버려 두고 죽을 때 까지 밥이나 겨우 주는 것으로서, 한마디로 힘없고 병들고 늙은 부모를 버리는 풍습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은 일본인이 그렇게 날조 조작하여 퍼뜨린, 한민족 스스로 모멸감, 열등감, 자괴감등으로 빠져 자기것에 대한 자금심을 버려 결국 일제에 동화되도록 하려는 일제의 만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보도 내용에 보듯이 우리 역사의 기록에는 병들어 죽은 부모의 시체를 유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무라야마 지쥰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풍장이라는 것이 있는데 병들어 죽거나 한 사람의 시체는 산속의 나무에 매달아 다 썩어 없어지고 뼈만남게 하는 그런 풍습입니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 현장사진을 함께 실어 놨는데 문헌상의 기록과 일정정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고려장이라는 것은 일제가 왜곡한 내용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써의 역사적 전통문화로 이어져 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개국신화 마지막 부분에는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이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것은 단군이라는 나라의 영도자가 임금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나라를 다 다스리고 때가 되어 그 직에서 은퇴를 하면, 天子 즉 하늘자손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 수행처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높은 곳, 우리의 경우는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 수련을 하여 신과 하나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산속에는 당연히 신성한 공간의 신전, 신당, 또는 신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인 하나의 전통풍습이 되어 우리 조상님들은 원래 세속적인 삶을 열심히 살고 은퇴를 해서는 신과 하나되는 근본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생활로 남은 삶을 정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것이 소위 '고려장'이라는 왜곡된 말로 전해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산속에 수행수련공간인 신전이 있었는데 우리의 3사상에 입각한 국사당,산신당, 서낭당 등이 이런 흔적이라고 봅니다.
세속의 삶을 마치고 신전에서 수행을 하려는 부모님을 위해 자녀들은 자신들을 낳아 잘 키워주고 입혀 주고 덮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같이 신전에 들어가 문안을 여쭈며 수행에 필요한 음식과 옷 등 모든 것으로 봉양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고려장'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전통풍습을 이어 받아 소위 '하안거, 동안거'라는 것을 하는데 일반사람의 출입이 금지되는 공간에 이 기간 동안 좌선에 필요한 최소한 음식과 기타 필요한 것들이 제공됩니다. 수행자는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이러한 고려장 풍습이 단군왕검이 개국한 조선시대에 인도에 전해 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풍습이 현재까지 전해 옵니다. 인도는 아직까지도 사람이 태어나면 열심히 생활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은 후 가정에 충실하다가 그 가정이 자신이 없어도 될 즈음에 가장은 집을 떠납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출가를 하는 것이죠. 출가목적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신과 하나되는 생활입니다. 수행자의 생활로 돌아가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것는 것입니다.
개국신화의 변형된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은 인도의 힌두교 풍습이라고 하지만 힌두교라는 것을 살펴보면 결국 우리의 무당문화, 무당놀이, 굿놀이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당놀이의 원조가 이미 우리겨레라는 것은 우리까페에서 누누히 증명하고 있듯이 결국 우리의 풍습이 전해 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삼태극 까페의 월 정기모임에 지난달부터 오셔서 귀한 참역사 말씀을 해 주시는 한멋님께서 쓰신 ‘땅위에 펼쳐진 하늘’ 책을 보면 고려장 얘기가 나옵니다. 고려장의 진정한 의미를 피력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조상님들은 세상일을 마치고 남은 인생을 수행을 통한 신과 하나되기를 바라는 이런 위대한 정신문화를 남겨 놨을 까요, '부도지'에서 나오는 것 처럼 잃어버린 마고성=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오랜 염원을 개인 차원에서도 이루고자하는 소원으로 봅니다. 해혹복본의 전통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고려장’이라는 말과 내용은 일제에 의해 날조 왜곡된 것이며 그것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자기 뿌리와 조상에 대한 자괴감과 모멸감 수치심 열등감에 빠져 자기 것을 천시 천대하며 버리게 하고 대신에 일본것을 숭배 앙망하게 하여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일제의 악락한 만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장의 진정한 의미는 세속에서의 인생을 마감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수행수련 문화였음을 개국신화를 통해서 확인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있는 흔적은 산신당, 서낭당, 불교사찰의 맨 꼭대기에 남아 있는 산신각, 칠성각, 삼성각 등입니다. 그리고 이 풍습은 인도에까지 전해져 오늘날까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깨어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아래는 고려장이 일제에 의해서 왜곡 날조되었다는 기사입니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rMode=list&cSortKey=depth&allComment=T&cateid=1003&newsid=20110904115921020&p=fnnewsi
‘고려장’ 풍습은 日이 날조한 거짓? 누리꾼 ‘논란’
파이낸셜뉴스 | 입력 2011.09.04 11:59 |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고려장' 풍습이 왜곡된 것이라니.. 역사를 좀 더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일 오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된 '고려장은 없었다' 편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던지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려장은 잘 알려져 있듯 부모가 늙고 병이 들면 구덩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는 것을 기다려 장사지냈다고 하는 풍습을 말한다.
서프라이즈에 방영된 내용에 따르면 고려장은 애초에 우리 풍습이 아니라는 것. 높은 계급의 사람이 죽었을 때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 ' 풍습이 있었던 우리 무덤의 껴묻거리(죽은 자를 매장할 때 함께 묻는 물건)를 도굴하기 위해 일본이 왜곡해 만들어 낸 역사라는 주장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무분별하게 무덤을 파헤쳐 온전한 무덤이 없다는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도 함께 소개했다.
실제로 고려시대까지 병사자(病死者)를 유기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노인을 버렸다는 기록은 없다. 이러한 풍습은 지리적이나 인종적으로 볼 때 우리와 가까운 퉁구스족 ㆍ몽골족ㆍ시베리아 등 여러 종족에서 있어 왔었던 듯하며,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이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의 가능성만 전해지고 있다. 불교 경전인 잡보장경에 나오는 기로국 설화가 나중에 잘못 전해져 고려국의 노인 버리기 즉, 고려장 이야기로 왜곡됐다고 보기도 한다.
방송을 본 누리꾼들은 '고려장 풍습'이 왜곡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누리꾼은 "고려장이 당연히 우리 풍습인 줄 알았는데 일본이 왜곡시킨 것이라니 황당하고 화가난다"면서 "우리 역사가 또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잘 살펴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onnews@fnnews.com 온라인편집부
첫댓글 정말 우리가 제대로알고 대처하고 잊지말아야할 아픔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