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양산파 장문인과의 혈투
바람소리를 듣고 당강은 신속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상문을 보자 나직이 말했다.
『공자께서 무슨 지시가 있으셨는가?』
여상문은 나직이 말했다.
『내가 대답을 하여 그들의 주의를 끌라고 했네. 뒷쪽에서 저 새끼들이 안으로 덮쳐들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일세!』
당강은 코웃음 쳤다.
『흥, 죽으려고 환장한 놈들이군.』
여상문은 손가락으로 한 짝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문짝을 가리켰다.
『당형, 자네는 저 문짝 뒤에 서서 나를 엄호해 주게. 자네가 자랑하는 암기를 치명적인 곳을 향해 사정없이 발출하게!』
당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 후레자식들에게 맛보여 주어야지!』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문짝 뒤로 몸을 숨기고 나직이 말했다.
『여형!』
여상문은 외쳤다.
『밖의 친구는 누구요?』
담장 밖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먼저 말을 했던 사람이 즉시 입을 열었다.
『너는 여상문이지?』
여상문은 냉랭히 대꾸했다.
『나는 대비방 저단의 여 관사요!』
그 사람은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여상문, 너는 정말 관사 노릇을 잘했다. 그러나 하늘의 그물이 어김이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의 그 기만술수는 들통이 나고 말았다. 너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분고분 기어 나와 이 나리들이 더 번거롭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해라!』
여상문은 딱딱하게 응수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가겠는가? 너희들 마음대로 찢어발기도록 하란 말인가? 너희들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이 여가가 눈에 거슬린다면 나중에 철위부로 돌아간 후에 따져도 늦지 않는데 이와같은 수단으로 사람을 업신여기다니, 이 여가는 달갑게 승복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흥, 여상문, 그래도 주둥이를 야무지게 놀리는구나.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적과 내통하고 잠입하여 염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윗사람을 배반하였다. 너는 첩자였으며 적의 졸개였다. 우리들이 오늘 밤 이곳으로 올 때 너를 처치할 권한을 이미 부여받았다. 여상문, 교활하게 머리 쓰지 말아라. 너도 남자라면 나서서 포박을 받아라!』
여상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 사람은 폭소를 터뜨리더니 사납게 말했다.
『나로 말하면 대비방의 풍화혼(風火魂) 반영(班榮)이다!』
여상문은 입술을 삐쭉했다.
『알고 보니 당신이었군! 반가 양반, 당신이 나를 첩자라고 하는데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풍화혼 반영은 분노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증거? 네가 거짓 이유를 대고 사사로이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궁싯거리며 홀로 이와 같이 황량한 마을에 있는 황폐한 산신묘로 찾아들었고 또 산신묘 밖에서 강호의 쥐새끼들이 너를 위해서 망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말해 보아라, 여상문. 이와 같은 사실들을 한데 모으면 어떤 의미가 되느냐? 너는 본방에 들어오게 된 경력이 가장 낮은 편이며 출신 또한 의심스럽다.』
여상문은 조심스럽게 경계를 하면서 항의하듯 입을 열었다.
『반영, 당신이 말한 이유는 억지로 죄를 덮어씌우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제미랄, 설마하니 나는 산책도 하지 못한단 말이냐? 내가 이 황량한 마을의 황폐해진 산신묘로 찾아들면 안 된다는 말이냐? 그리고 밖에서 무슨 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건 틀림없이 너 방가가 미리 함정을 파 놓고 나를 해치려고 술책을 부린 것에 불과하다. 이 비열하고 치사한 인간 같으니라고…』
어둠 속에서 반영의 매서운 부르짖음이 그 말을 가로챘다.
『후레자식! 터무니없는 소리를 마구잡이로 지껄이지 말아라. 너는 오늘 밤 죄를 지은 증거가 확실해서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설사 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이 나으리는 너의 그 수작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너를 사로잡아 데리고 돌아가 엄벌하고 말겠다. 그 때 가서 네가 어떻게 변명을 하는지 두고 보겠다.』
여상문은 크게 부르짖었다.
『반영, 당신이야말로 첩자이다. 당신이야말로 적 쪽에서 보내와 우리 쪽에 엎드려서 비밀을 염탐해 내려는 원흉이다!』
반영은 우레와 같은 폭갈을 내지르며 입을 열었다.
『잘한다! 이 대담한 반역도 같으니라구. 네가 감이 나를 물고 늘어지려고 하다니, 좋다, 좋아. 네가 마음대로 물어뜯도록 해 주지. 네가 어떻게 나를 모함할 것인지 두고 보겠다.』
그런데 그 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한 차례 처절하고도 매서운 비명소리가 밤하늘의 바람을 찢어 놓을 듯이 울려 퍼지게 되었고, 곧이어 한 우람한 검은 그림자가 허공으로 내던져져 몸뚱이 전체가 산신묘의 지붕을 넘어서 무겁기 이를 데 없는 푸대자루처럼 맹렬하게 정전 앞의 빈터에 팽개쳐졌다.
이 돌연한 변화에 쌍방의 사람들이 놀라 흠칫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흠칫한 순간 산신묘의 지붕 위에서는 다시 두 마디 답답하게 내뱉는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무거운 물건이 구르는 소리와 기왓장이 깨져 구르는 소리가 우르릉 쿵탕, 우르릉 쿵탕 두 번이나 들리면서 다시 두 사람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로 군유명의 걸작이었다. 그들 세 명은 이미 두 다리를 쭉 뻗고 죽어 있었는데 암암리에 산신묘 지붕 위로 덮쳐 올라갔던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가까스로 지붕 위에 올라섰을 뿐이었다.
그들이 발걸음을 아직도 똑바로 디디기도 전에 군유명의 은교련이 어느덧 세 사람을 요절내고 만 것이었다.
이 때 또 한 명의 몸에 잿빛 옷을 걸친 우람한 체구의 대한이 정히 담장 바깥쪽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는 본래 죽어가는 세 사람을 따라 지붕 위로 뛰어오르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미처 허공 위로 뛰어오르기도 전에 지붕 위의 세 사람들이 죽어 자빠지자 그만 깜짝 놀라 몸을 돌려 담장 박을 향해 줄달음을 친 것이었다.
그 사람이 막 담장 가에 이르자 산신묘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군유명이 어느덧 정확하게 겨냥하고 무거운 기왓장을 맹렬히 내던졌다. 기왓장은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날았고 다음 순간 목숨을 구해 보려고 달아나던 회의인이 어느덧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담장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기왓장은 모조리 박살이 나고 회의인의 머리통도 깨지고 말았다.
기이할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 가운데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있었다.
잠시 후, 산신묘 담장 밖에서 반영이 괴성을 질렀다.
『이 음독하고 교활한 여상문아! 네가 어째서 그토록 대담하고도 망령된 행동을 함부로 하나 했더니 원래 너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있었고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여상문, 너는 눈을 뜨고 잘 보아라. 오늘 밤에 설사 황제 늙은이가 너를 돕는다고 해도 너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여상문은 싸늘히 웃으면서 응수했다.
『흐흐흐, 개소리 작작해라!』
『여상문. 너를 찢어 죽이겠다.』
그 호통소리에 이어 불꽃이 허공 가득히 날더니 춤추는 화룡(火龍)처럼 산신묘의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이었다.
대뜸 붉은 화염과 붉은 광채가 눈부시게 빛나면서 사방을 뒤덮었고 불꽃은 날름거리며 거칠게 타올랐다. 어둡고 황페한 산신묘 주위는 즉시 한 토막 한 토막 불타오르는 화광에 의해 밝혀지고 모든 물체가 일목요연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반영은 저쪽에서 부르짖었다.
『돌진하라!』
이십여 명의 그림자가 미친 호랑이처럼 정전으로 덮쳐들었다. 동시에 다른 여섯 명의 대한이 무리를 지어 담장을 뛰어넘고 가로질러 정전으로 몰려들었으며 산신묘의 뒷쪽과 좌우 양쪽에서도 여섯 명의 솜씨가 매서운 인물들이 급격히 몸을 날려 들어왔다.
문가에 선 여상문은 문 뒤의 당강에게 알렸다.
『왔네, 당형!』
당강은 벼락같이 두 손을 잇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네 알의 주먹만 한 크기의 은빛 공이 번개처럼 적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그 네 알의 은빛 공은 덮쳐드는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고 적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더니 갑자기 와락 서로 부딪치면서 깨졌다.
공이 서로 부딪쳐 깨지는 그 순간, 공안에 장치되어 있던 수백 수천 개의 독 묻은 강침이 팍팍팍, 하는 소리와 더불어 반원을 이루면서 사방으로 폭사되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은빛 광채가 비 오듯이 거세게 쏘아지면서 사방을 뒤덮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담장 안으로 뛰어든 잿빛 옷의 대한들은 즉시 한 바탕 울부짖음을 토해 내며 다투어 나가떨어져 뒹굴었다. 무기들이 그들의 손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느 한 사람도 독이 묻은 강철침을 피한 사람이 없었다.
이 때 허공으로 덮쳐든 여섯 명의 대한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 쳐들었다. 열두 자루의 날이 좁은 비도(飛刀)가 급격히 정전으로 쏘아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명의 대한들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며 돌진해 들어왔다.
그 여섯 명의 대한들은 똑같이 흑의를 걸치고 있었고 가슴팍에는 용을 수놓고 있었다. 모두 독룡교의 인물이었다.
여섯 명의 대한들은 쌍인도(雙刃刀)를 들고 있었다.
여상문은 호통을 내질렀다.
『알고 보니 독룡교의 십이흉이었군!』
십이흉 가운데 여섯 명은 휙, 하니 흩어졌다가 맹렬히 덮쳐들었는데 그 가운데 매부리코를 지닌 자가 싸늘히 외쳤다.
『여가야, 목숨을 바쳐라!』
여섯 자루의 쌍인도는 휙휙, 소리를 내고 싸늘한 광채를 번뜩이며 뻗쳐왔는데 번개처럼 빨랐다.
여상문은 담뱃대를 들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당강이 어느덧 길게 소리 내어 웃으면서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달려들었다.
육흉은 일제히 폭갈을 터뜨리면서 즉시 둘로 나누어지더니 세 사람이 당강을 상대했다.
당강은 사납고 맹렬하게 비스듬이 등뒤에 메고 있던 추두부(錐頭斧)를 뽑아들고 전면에서 적을 공격했다.
몇 개의 다른 방향으로 나누어서 달려들던 여섯 명의 대한들 역시 똑같은 흑의를 걸치고 있었고 가슴팍에는 황룡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손에는 쌍인도가 들려 있었다. 독룡교의 십이흉이 모조리 출현한 것이었다.
지붕 위에 숨어 있던 군유명은 냉랭히 소리치며 별안간 번갯불처럼 몸을 날리더니 단번에 먼저 산신묘 안으로 달려 들어온 이흉(二凶)에게 덮쳐들었다.
그 두 사람은 놀라서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리는 동시에 쌍인도를 맹렬히 휘두르며 반항했다.
거칠게 뻗쳐진 쌍인도는 아슬아슬하게 군유명의 등 뒤에서 삼 푼쯤 떨어진 곳에서 서로 얽히듯이 지나쳤다.
군유명의 은교련이 어느덧 떨쳐지면서 휙, 하니 맞은편에 있는 적의 아랫배 안으로 파고들었다. 다른 한 사람은 죽어라 하고 쌍인도를 아래로 내려찍었는데 군유명이 은교련을 뽑아들고 비스듬히 돌리자 그 한 자루의 쌍인도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피에 젖은 은교련은 어느덧 독사처럼 그 사람의 목을 휘감았고 곧이어 맹렬히 그를 삼 장 밖으로 패대기 질 치는 것이었다.
이 때 다른 십이흉들이 이쪽으로 덮쳐들면서 노호를 질러대었다.
군유명은 나직이 웃었다.
『보채지 말아라. 모두에게 달콤한 맛을 보여주마.』
그의 수척한 몸뚱아리가 벼락같이 오 장이나 높이 솟구치는 순간 그를 포위 공격하던 사흉은 즉시 흩어져서 몸을 날렸다.
그들 네 사람은 일제히 팔을 휘두르자 여덟 자루의 날이 좁은 비도가 어느덧 군유명에게로 격사되어 왔다.
신형을 허공에서 급히 맴돌도록 하면서 군유명은 은교련을 싸늘한 벗갯불처럼 휘말며 선회했다.
쨍그랑, 창, 하는 가벼운 음향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덟 자루의 비도는 모조리 그에 의해 삽시간에 휘감기더니 맥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사흉은 깜짝 놀라 호통을 지르며 신속하게 나누어 피했다.
이 때 군유명의 왼손이 벼락같이 쳐들리는가 했더니 금빛 광채가 번개처럼 빛났다.
『으아악!』
사흉 가운데 한 명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면서 뱅글뱅글 맴을 돌면서 나가떨어졌다.
사흉은 미처 제대로 땅바닥을 밟고 서기도 전에 비명소리를 듣고 급히 뒤돌아 보았다. 그들 세 사람의 시선이 막 동료의 몸에 던져지게 되었을 때 세 사람 가운데 또 한 명이 으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한 번 곤두박질을 치면서 나가떨어지게 되었는데 그의 두개골에는 이미 한 자루의 금차(金叉)가 자루만 남기고 꽂혀져 있었다.
나머지의 두 친구가 무슨 반응을 나타내기도 전에 군유명의 손은 어느덧 허공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쌍인도를 때늦지 않게 맹렬히 쪼개 내었다.
그 순간 군유명은 마치 예리한 날을 붙잡으면서 벼락같이 맴을 돌면서 손을 번쩍 쳐들자 은교련은 곧장 한 사람의 목을 찔렀으며 전후의 분간 없이 그는 다시 왼손을 내리쳤다.
퍽!
『으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메아리치는 가운데 남아 있던 한 명이 골통이 뽀개져 뇌수를 쫙 갈기며 허공에서 뱅글뱅글 맴을 돌더니 저쪽으로 나가떨어져 데굴데굴 십여 번이나 굴러갔다.
바로 이 때 산신묘의 정전에서 갑자기 처참한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더니 십이흉 가운데 한 명이 두 손으로 머리통을 얼싸안고 비틀비틀 달려 나가더니 머리로 땅을 박으며 꼬꾸라졌다.
이와 동시에 여상문 역시 나는 듯이 정전에서 달려 나갔다. 그의 어깻죽지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뒤로 한 명의 십이흉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마당에 막 이르자마자 여상문은 벼락같이 몸을 돌리면서 담뱃대를 광풍폭우처럼 휘둘러 반격했다.
정전에서는 당강이 세 명의 적수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데 조돈력 역시 이미 다른 한 명의 십이흉과 싸우고 있었다.
적의 두개골에 박힌 단장차를 뽑아들고 산신묘 처마 아래의 그늘 속에 몸을 세운 군유명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상문, 조심하게.』
여상문은 애써 공격을 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예.』
마치 두 유령처럼, 산신묘의 담장 밖에서 한 명의 회의인이 은빛 장포를 걸치고 온 머리카락이 허옇고 사자코에 커다란 입을 가진 우람한 체구의 늙은이와 더불어 살금살금 걸어 들어왔다.
그 회의인은 머리통이 함지박만큼이나 컸으며 얼굴에 비곗살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 몰골이 매우 흉악했다. 그의 손에는 오리알 굵기에 여섯 자 길이의 철곤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걸어들어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더니 그만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의혹에 찬 시선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운 처마 밑에 서 있는 군유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인은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정(定) 장문인( 掌門人), 상황이 아무래도 좋지 못한 것 같군요… 어째서 십이흉이 단번에 패했을까요? 눈앞의 몇 명의 녀석들 재간으로는 아무리 봐도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을 것 같군요…』
그 은빛 장포를 걸친 늙은이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적의 고수가 한켠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 같네…』
회의인은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한 번 살펴볼까요?』
은포(銀袍) 늙은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네. 우리들은 먼저 이곳의 진세를 안정시키고 보세. 다만 이곳에 있는 몇 명의 녀석들을 제압한다면 숨어 있는 사람이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회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이다.』
그는 정전 안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괴성을 내질렀다.
『잘한다. 조돈력. 정말 쇠신이 닳도록 찾아다녀도 찾을 길이 없더니 찾으려고 하니까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찾아지는군. 대담한 반역도가 이곳에 있었구나.』
조돈력은 정전의 한복판에서 십이흉 가운데 한 명과 싸우고 있었다.
일 대 일로 싸우면 그의 재간은 상대방보다 훨씬 고강한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하는 동안 여유가 있었다.
그러다가 그 회의인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자 퉷, 하고 침을 뱉고서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반박을 했다.
『반영, 너는 호가호위할 필요가 없다. 반역도라고? 누가 반역도란 말이냐? 나는 너희들의 소행을 치욕스럽게 여기고 너희들과 함께 내 몸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느냐? 반가야, 승복할 수 없다면 네가 나서서 시험해 보아라. 거기서 제미랄, 네 에미의 초상이라도 났느냐? 왜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고 지랄이냐!』
이 회의인은 바로 대비방의 당주 풍화곤 반영이었다. 그는 그 말을 듣더니 사납게 외쳤다.
『조돈력, 네 녀석은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해서 적과 내통했으며 당을 배반하고 윗사람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비열하게 외부의 적과 손을 맞잡고서도 순순히 포박을 받지 않고 오히려 여기서 미친개처럼 함부로 짖고 있구나? 오늘 밤 어디로 도망가는지 두고 봐야겠다!』
조돈력은 손에 들고 있는 한 쌍의 금환으로 예리한 바람을 휭, 하니 일으키는 가운데 눈부신 광채를 쏟아내며 이리저리 춤을 추듯 휘둘러 대어 그의 적수를 이리저리 피하고 도망가도록 했다.
십이흉 가운데의 한 명인 이 자는 황소처럼 숨을 떨고 있었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막기만 할 뿐 반격할 힘을 상실하고 있었다.
사납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조돈력은 버럭 소리쳤다.
『너는 그쪽에서 호통이나 치고 있거라. 반가야. 내가 이 잡종을 처치한 후에 너를 다스려 주겠다!』
풍화곤 반영은 살그머니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고 한 쌍의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 부르짖었다.
『반역자야, 죽음을 코앞에 두고 그토록 방자하게 날뛰다니, 곱게 죽기는 다 틀린 줄 알아라.』
그는 눈에 살기를 띠우며 매섭게 외쳤다.
『조가야, 더 기다릴 것 없다. 내가 너를 상대로 한두 수 놀아주겠다.』
조돈력은 군유명이 바로 곁에 숨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연신 공격을 했다.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맹렬히 공격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응수했다.
『매우 좋다. 반영아, 너는 주둥이만 놀리지 말고 너의 그 개같은 머리를 이쪽으로 길게 내뽑아 목을 자르기 좋도록 만들어라. 단번에 잘라 고통을 면케 해 주겠다.』
반영은 소맷자락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빠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 장문인, 저 반역도와 겨루고 있는 독룡교의 형제는 아무래도 얼마 지탱하지 못할 것 같소이다. 내가 가서 저 자를 상대하겠으니 이곳은 수고스럽지만 정 장문인께서 좀더 보살펴 주십시오.』
은포 늙은이는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반형, 조심하오.』
『장문인께서는 안심하십시오.』
그는 천둥치듯 호통소리를 내지르더니 훌쩍 몸을 날려 정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여섯 치 길이의 순강철로 된 곤봉으로 벼락같이 한 바퀴 원을 그렸다.
원이 와락 번뜩이게 되었을 적에 철곤의 머리쪽은 어느덧 악독한 용이 동굴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세차게 뻗쳐나가는 것이었다.
조돈력은 발걸음 미끄러뜨리면서 몸을 돌렸고 왼쪽의 고리로 맹렬히 그 십이흉을 반격하는 동시에 오른쪽 고리를 재빨리 뒤집었다.
창, 하는 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영은 빙글 몸을 돌리게 되었고 조돈력 자신은 비스듬히 뒤로 세 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반영은 냉랭히 웃더니 재차 철곤을 겨누면서 공격을 하면서 악독하게 외쳤다.
『겨우 그 정도냐? 조돈력!』
조돈력은 몸을 번뜩이면서 공격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주마등처럼 빙글빙글 맴돌며 위치를 점점 옮기는 전법으로 나갔다.
그는 혼자서 두 사람을 상대로 해야 했다. 금환을 어지럽게 휘두르며 그는 매섭게 외쳤다.
『너도 대단치 않구나. 제기랄! 둘이서 한 사람을 이겨봤자 사내답지 못할 뿐더러 영광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반영의 순강철로 만들어진 막대기는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쉭, 쉭, 하는 음향을 발출하고 있었다.
철곤 윗쪽의 세 치를 제외하고 그 이하의 철곤 안은 모두 다 비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바람만 닿으면 즉시 타오르는 형광린독(瑩光燐毒)이 숨겨져 있었다.
이 형광린독은 사용하는 사람이 손으로 맹렬히 철곤의 밑을 후려치면 곧장 쏟아져 나온다. 그리하여 갑작스럽게 적에게 상처를 입혀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가 강호도상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철봉 덕분이었다.
물론 철봉의 음흉한 점을 조돈력은 잘 알고 있었다. 반영의 무공에 대한 솜씨와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초식이나 수법까지도 상당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영도 조돈력에 대해서 알만큼 알고 있었다.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반영은 풍화곤을 마구 휘두르며 쓸듯이 후려쳐 갔다.
우르릉, 우르릉, 마치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쪼개 놓을 것 같은 위력이 드러났다.
거기다가 십이흉 가운데 한 명이 옆에서 협공을 하니 조돈력은 차츰차츰 궁색한 경지로 빠져들고 있었다.
정전문의 부근, 박룡육절의 우두머리인 당강과 세 명의 십이흉의 싸움도 역시 생사를 판가름하는 긴박한 고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때 당강은 이미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고 그의 세 적수들 가운데 두 명도 상처를 입고 있었다.
마당에 서 있는 은포 늙은이는 지루함을 느꼈느지 소맷자락을 떨치더니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반 당주, 노부는 성질이 급하여 더 이상 구경만 하고 있지 못하겠소. 이제 마땅히 내가 나서서 싸움을 종결시켜야 될 것 같소.』
반영은 맹렬히 공격을 퍼부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이 간악한 도적들을 모조리 처치하도록 합시다.』
조돈력은 이리저리 몸을 날리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제에미, 뻔뻔스러운 놈들!』
싸늘히 코웃음치며 은포 노인이 천천히 오른손의 소맷자락 안에서 한 자루, 길이가 한 자 반 정도에 수정같이 맑고 투명하고 예리한 칼날에 하얀 상아로 자루를 해 박은 단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왼손에 들고 발걸음을 옮기며 음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노부가 일찌감치 너희 젊은 녀석들의 소원을 들어 주어야겠구나.』
그는 정전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했다.
바로 이 때 처마 아래의 음영 속에 숨었던 군유명 역시 때맞추어 걸어 나갔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대장문, 당신은 뻔뻔스러운 사람이군.』
흠칫 놀라며 은포 노인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몸을 세웠다. 눈빛을 빛내며 군유명을 바라보더니 무겁고 매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대장문께서는 눈이 높으시니 나를 잘 모를 것이외다. 하지만 나는 귀하가 바로 양산파의 우두머리로서 단검(短劍)을 쓰는 명수 척반혼(尺半魂) 정침(定琛)인 것을 알고 있소!』
은포노인은 바로 양산파의 대장문 정침이었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로 군유명을 바라보며 위엄있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높이 사주시니 영광이군. 노부는 틀림없는 정침이지만 노부의 눈이 어두워 귀하가 어디서 온 선성(神聖)이며 어느 쪽의 영재(英材)인지 모르겠구려.』
깨끗하고 흰 치아를 드러내며 나직이 웃던 군유명은 소맷자락의 금실로 수놓아진 단장화(斷腸花)를 들춰 보였다. 단장화의 꽃잎들이 불빛 아래서 한 가닥의 기이한 광채를 번뜩였다.
군유명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한 송이의 꽃을 보면 생각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대번에 온몸의 혈액이 모두 다 응결된 것처럼 정침은 그만 뺨의 근육을 부들부들 떨었으며 콧구멍을 벌름거리더니 놀람과 두려움에 찬 어조로 탄성을 발하듯 입을 열었다.
『마존!』
군유명은 두 손을 마주잡아 보였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불초가 바로 마존 군유명이올시다.』
길게 숨을 들이마신 양산파의 장문인은 억지로 가슴 속의 불안과 경악을 억누르고 긴장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 군유명, 당신은 오늘 밤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소?』
군유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 대장문, 당신의 그 한 마디가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당신들은 오늘 밤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왔지요?』
양산파의 장문인 정침은 흠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노부는 명을 받들고 반역도의 뒤를 쫓아 사로잡아서는 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왔소!』
군유명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렇다면 나는 여러분들과 정반대군요. 나는 우리 친구들을 도와주고 호랑이 앞잡이가 되어 나쁜 일을 일삼는 음흉하고 의리 없는 도배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왔소이다!』
정침은 가슴이 무겁게 뛰노는 것을 느끼며 주저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군유명, 노부에게 한 가지 건의가 있소.』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귀를 씻고 경청하겟소.』
정침은 망설인 끝에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군유명, 소문에 들으니까 당신의 무공은 절세적이라 천하무적이라하니 물론 노부의 잔재간이 눈에 차지도 않을 것이오. 따라서 당신은 나와 싸워도 재미가 없을 것이오. 당신이 정말 재미있게 한껏 즐기고 싶다면 오늘 밤은 그만두고 따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노부가 당신과 겨룰 만한 고수를 모셔다가 겨루게 하고 싶구려. 어떠시오?』
군유명은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장문의 뜻은 오늘 밤 나와 겨룰 용기가 없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 내 적수를 불러다가 한 번 멋지게 결판을 내보라는 것이오?』
정침은 허옇게 센 머리를 끄덕이며 간곡하게 입을 열었다.
『바로 그런 뜻이외다.』
군유명은 전당(殿堂)과 마당에서 격렬히 싸우고 있는 몇 사람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장문께서는 아무래도 솔직하지 않은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뜻이온지?』
군유명은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오늘 밤 승산이 없기 때문에 나를 슬슬 꼬셔서 영웅심을 부추겨 눈앞의 위기를 벗어나고 싶다, 한숨 돌린 후에 많은 고수를 데려다가 멋지게 나를 처치하려는 것이 아니오?』
물론 군유명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정침이 어떻게 그와 같은 말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입가를 부르르 떨면서 급히 변명했다.
『군유명, 당신은 오해를 하는구려. 고수는 겨룸에 있어 반드시 맞수를 만나야 하는 것이오. 만약에 쌍방이 현격한 차이가 난다면 이긴다 한들 무슨 보람이 있느냔 말이오.』
군유명은 갑자기 광소를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정침, 죽어 마땅한 이 늙은이가 망령이 들었구나. 이 새끼야, 세 살 먹은 어린애들이 즐겨 쓰는 수작으로 이 군가를 속여 보겠다는 것이냐? 우리가 오늘 밤 이곳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을 적에 어떠한 형세였느냐? 너희들은 떼를 지어 이곳을 포위하고 우리를 섬멸하려 하지 않았느냐? 그게 공평한 대결이었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오늘 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다. 죽음으로 판가름을 내야 한다.』
군유명은 안색을 악독하게 굳히고 냉혹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 무공을 연구하거나 토론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배운 바를 인증(印證)하자는 것도 아니다. 정침, 나는 원한을 갚으려는 것이며 너희들을 죽이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관용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피를 뿌리고 목숨을 빼앗아야 한단 말이다. 이 늙은 놈아, 내 말을 잘 알아들었느냐?』
정침은 수치와 분노에 사로잡혀 부르짖었다.
『군유명이 어떤 자인가 했더니 정말 기고만장하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미친놈에 불과했구나. 노부는 그저 예의를 차리고 나중에 손을 쓰려고 한 것뿐이다. 노부가 네깐 놈을 두려워하는 줄 알았느냐?』
군유명은 냉랭히 웃었다.
『두렵지 않다면 잘 되었다. 정침, 양산파는 악을 도와 나쁜 일을 일삼으며 이익을 보고 의리를 져버려 동강의 방흉(幇凶)이 되었다. 늙은이, 실력이 있으면 어디 덤벼 보아라.』
정침은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속으로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으나 겉으로는 매섭게 입을 열었다.
『군유명, 너무 사람을 핍박하는구나.』
군유명은 코웃음 쳤다.
『흥, 나 군유명이 늙은 개를 얼마나 잘 때려주는지 맛을 보여주겠다.』
정침은 이를 갈았다.
『미친 자식, 누가 이기고 지든, 실력이 어떻든 누부는 결코 너의 그 조그마한 허명(虛名)에 놀라 자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주판알을 잘못 튕긴 것이다!』
군유명은 차갑게 씩 웃으며 한 걸음을 다가섰다.
『나에게는 허명이 없다. 정침, 너야말로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 지를 모르는 놈이다. 너는 나이를 헛먹었다.』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은교련이 뻣뻣하게 밑으로 드리워지면서 시뻘건 핏빛을 번뜩였다.
군유명의 추혼탈명(追魂奪命)의 무기를 드러내는 것을 보자 정침은 온몸이 싸늘히 식어오는 것을 느끼고 뒷덜미의 머리칼이 불현듯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왼손의 예리한 단검을 비스듬히 쳐들었다.
양산파의 장문인께서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평생을 강호에서 굴러먹은 노부가 너를 두려워할 줄 알았느냐? 내가 맹활약을 할 때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군유명은 혀끝으로 입술을 살짝 핥으면서 웃었다.
『물론 그러시겠지.』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서둘러서 손을 쓰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던져 상대방의 단검을 한동안 지켜보더니 다시 실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입을 열었다.
『정말 훌륭한 검이구나. 정침, 그 물건이 용설(龍舌)이겠지?』
정침은 침을 탁, 뱉고는 일부러 침착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군유명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그 물건을 나의 서류탁자 위에 놓아두고 종이를 자르는데 쓰고 싶다. 그러다가 녹슬게 되면 똥통에 쳐 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