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스노우맨」, 『당분간 인간』, 창비, 2012, 8~32p
새해 첫날이 토요일이라는 건 좋은 징조 같았다. 직장에 매인 사람들은 몇 달 전부터 연휴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여행사들은 발 빠르게 기획 상품을 출시했고 그것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나 고속버스, 기차, 비행기를 타고 짧거나 긴 여행을 떠났다.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각종 모임에 참석해서 송년과 신년의 분위기를 즐겼다. 과음과 과식 이후에도 숙취와 소화불량을 해소해줄 휴일이 하루 더 남아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새해의 첫날 도시는 일찍부터 깨어 움직였다. 새해에는 늦잠을 자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간밤에 여흥에 젖어 아침까지 번화가와 유흥가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날이 밝자 브런치 약속이 있는 사람,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려는 사람, 새해 첫날을 색다르게 시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기상이변 때문에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해가 기울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자 도시는 한결 따뜻해 보였다. 눈송이는 먼지나 보푸라기처럼 사뿐하게 내려앉았으나 그걸 발견한 사람들은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는 요란하게 침을, 누군가는 입버릇이 되어버린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 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흐지부지 내리다 만 첫눈 이후 도시에 처음 내리는 눈이었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까페나 술집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던 사람들도 와, 하며 입을 벌렸다. 새해 첫날 저녁, 고요하게 나부끼는 눈송이는 꽤 괜찮은 이벤트처럼 보였다.
남자는 다른 날보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쳤다. 새해 첫 출근인데다 긴 연휴 끝의 출근이라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어둘 필요가 있었다. 12월 초부터 흘러나온 인사발령에 대한 소문은 몸집을 계속 부풀려가는데다 실체도 또렷해졌다. 남자는 이번 발령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 더 이상 승진에서 밀려나면 곤란했다.
이발한 머리와 말끔하게 면도한 턱, 새하얀 셔츠와 잘 다린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남자의 모습은 패기 넘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빌라 출입문 앞에서 남자의 어깨는 단번에 처졌다. 밤새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유리로 된 공동현관문의 삼분의 이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한눈에 봐도 남자 허리를 넘어서는 높이였다. 눈더미가 바리케이드처럼 버티고 있어서 문이 여리지 않았다. 온힘을 다해 밀어붙여봐도 유리문과 그 너머의 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남자는 숨을 몰아쉬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았다.
남자는 101호와 102호의 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왼쪽에는 칠십대의 노파가, 오른쪽에는 ㄴ유도선수 같은 인상을 한 삼십대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 안면은 없지만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는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다음 남자는 102호의 벨을 눌렀다. 세 번 네 번 눌렀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남자는 다시 현관의 유리문을 밀어보았다. 반응이 엇기는 유리문 쪽도 마찬가지였다. 급한 마음과 상관없이 시간은 정확하고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그다지 여유있다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내라도 부르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데 102호의 문이 열렸다. 102호 남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잠이 깨지 않아 눈이 반쯤 감긴 얼굴이었다. 문틈에서 따듯하게 데워진 술 냄새가 새어나왔다.
“······벨 누르셨어요?”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합니다.”
“······누구세요? ······무슨 일로?”
“4층 사는 사람인데 지금 밖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현관문이 열리질 않아요. 힘을 합치면 저도 그렇고, 이따가 출근하실 때 수월할 것 같아서요.”
102호 남자가 슬리퍼를 챙겨신고 밖으로 나왔다.
“와······ 눈이 정말 많이 왔네요. 근데······ 죄송하지만 다른 분께 도움을 청하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전 이제 출근할 일이 없거든요 31일부로 그렇게 됐습니다.”
102호 남자가 하품을 하며 말하는 동안 남자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상대의 이기적인 태도에 화가 나기도 하고 잠을 깨워서 미안하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안댔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을 연다고 해도······ 출근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102호 남자는 거리를 쓱 훑어보더니 한마디 덧붙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 말을 무시하고 남자는 유리문을 몇 번 더 밀어보았다. 문이 아니라 벽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현관문 너머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평일 이 시간 빌라 앞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 길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지름길인데다 이 지역의 인구밀도가 꽤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비현실적인 두께의 눈 위에는 어떤 발자국이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리와 움직임이 사라져서 문밖은 정지된 화면처럼 보였다. 빌라 밖의 생명체가 모두 사라졌거나 생명활동을 멈춰버린 것 같았다. 바람이 불자 쌓여있던 눈만 황량하게 흩날렸다.
그래도 남자는 시무식에 늦어 부장에게 한 소리 들을까봐 조마조마했다. 입김이 나오고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추운데도 겨드랑이의 땀샘은 활발하게 활동했다. 남자는 회사 동료의 번호를 찾아서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그가 다른 도시에 산다는 사실이 기억났고 그쪽 사정은 어떨지 궁금했다. 동료의 전화에서는 “지금은 통화 중이오니······”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하나. 남자는 119와 112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민원신고센터 번호를 생각해내곤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기억해낸 보람도 없이 “현재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오니······”라는 기계음만 들을 수 있었다. 남자는 휴대폰을 든 채 몸으로 계속 유리문을 들이받았다. 지각이 거의 확실시되자 남자는 이 사태가 이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상사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범지역적인 재앙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주머니 속에 든 휴대폰의 진동이 여진(餘震)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과장의 전화가 반가운 것은 입사 이래 처음이었다.
“김대리, 어, 나도 현관문 앞에서 발이 묶였어. 아파트라 야간근무하는 경비들이 몇 있긴 한데 그 사람들로는 어림도 없지. 연휴가 길었잖아. 암튼 상황을 좀 지켜보자고, 일단 출근은 무리인 것 같으니까······ 무슨 조치가 있겠지. 변동사항이 있으면 연락이 갈 거니까······”
남자는 네네, 하며 경직돼 있던 얼굴을 풀었다. 땀에 푹 젖은 러닝셔츠와 와이셔츠가 비로소 불쾌하게 느껴졌다.
집에 들어가자 네 살배기 딸에게 밥을 먹이고 있던 아내가 놀라며 쳐다봤다.
“뭐 놓고 갔어?”
“아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출근 못 할 것 같아”
아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창문부터 열었다. 옮긴 지 일 년밖에 안 된 회사였다. 눈이 많이 왔다는 사실보다 출근을 못하겠다는 말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게 분명했다.
“회사 전체가 쉬는 거니까 걱정하지마.”
“세상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아내가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남자도 옆에 서서 밖을 내다봤다. 하룻밤 사이에 거리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폭설은 땅 위의 것을 공평하고 동등하게 덮어버렸다. 하얗게 빛나는 눈 더미 속에 건물들의 하체가 고스란히 묻혀 있었다. 누군가 눈에다 전봇대와 가로수를 듬성듬성 꽂아 놓은 것 같았다. 일 미터가 넘게 쌓인 눈은 밟으면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는 보드라운 존재가 아니라 단단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쳤던 눈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속은 평화로웠다. 예정돼 있던 광고가 이어졌고 녹화된 드라마의 타이틀이 차질 없이 올라갔다. 뉴스는 연휴 동안 있었던 사건사고 소식을 간추려 전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삼중 추돌사고와 A시의 한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 그리고 이 도시에 사상 최대의 폭설이 쏟아졌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눈이 쌓여서 도리가 마비된 화면은 확보하지 못했는지 함박눈이 쏟아지는 모습만 몇 장면 등장했다. 눈이다! 화면 속의 눈을 보고 딸애는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저것 봐. 뉴스에도 나오잖아. 저래서 지금 출근을 못한다니까. 눈 때문에 빌라 현관문이 안 열리면 말 다 한 거지.”
수긍이 간다는 듯 아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는 원래 연휴가 하루 더 남아 있었던 것처럼 소파에 길게 드러누웠다.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배가 몹시 고팠고 피곤이 밀려 왔다. 아이의 밥을 다 먹인 아내가 남자를 위해 밥을 새로 안쳤다.
다음 날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공동현관문으로 내려가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의 높이는 어제와 비슷해 보였고 유리문은 밖으로 좀 더 밀렸다. 하지만 네다섯살 된 애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틈이라 출근은 무리일 것 같았다. 남자는 유리문에 바짝 붙어서 밖을 내다봤다. 어둑한 거리 불 꺼진 상점,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완강한 눈 더미, 집 밖은 공동묘지처럼 음산했다. 남자는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를 웅크렸다. 변동사항이 있으면 연락이 갈 거라고 했던 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출근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변동사항에 해당하는지 잠시 혼동이 됐다.
추운 겨울날 가족들이 한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은 따뜻해 보이지만 실상이나 속내까지 따뜻한 건 아니다. 연휴 동안에도 세 사람은 집 안에서만 뱅뱅 맴돌았다. 딸아이의 감기가 심해서 나들이나 여행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저녁 외식을 하러 집 근처의 갈빗집에 간 게 유일한 외출이었다. 연휴 내내 남자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아내는 청소기를 돌린다 빨래를 넌다 하면서 종종거리며 움직였다. 게임하는 아빠 옆에 있어봐야 재미없다는 걸 아는지 딸애는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게 귀엽기도 하고 간만에 아빠 노릇 좀 하고 싶어서 장난을 걸면 딸애는 입을 삐죽거리다가 “아빠 싫어”하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아내가 집안일을 마치고 앉아서 쉬려고 하면 남자는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밥때여서 그런 건데도 남자는 자신의 시장기가 불법처럼 느껴졌다.
딸애의 감기 때문에 보일러는 하루종일 작동 중이었다. 집 안의 온도는 필요 이상으로 높았다. 덥지 않다고 하면서도 아내의 얼굴은 붉었다.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크리스마스 전부터 방학이었다. 그때부터 아이와 지내면서 씨름해야 했던 아내는 남자의 휴일까지 길어지자 더운 한숨을 토해냈다. 밥때가 가까워지면 아내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는데도 아내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지고 부채질 횟수는 늘어났다. 아내가 한숨을 쉬면 남자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갔다.
남자는 어쩐지 집이 자꾸 좁아지는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다가와서 나중에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옮겨가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이 밀폐용기처럼 꽉 막혀있었다. 남자와 아내, 딸애 세 사람은 밀폐용기에 담긴 김치처럼 각자의 상태와 부피에 맞게 발효되고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밀폐용기는 터지기 직전까지 팽창하다가 남자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아내가 전화로 누군가와 수다를 떨 때 한숨처럼 공기를 뱉어내며 아슬아슬하게 모양을 유지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자는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자리가 그리워졌다. 자신의 진짜 자리는 거실 소파나 컴퓨터 앞 의자가 아니라 그 딱딱한 철제 책상과 흡연자들끼리 모여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비상구 계단인 것 같았다. 찬바람이 들어온다고 아내가 잔소리를 했지만 남자는 자꾸 베란다에 나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데 건너편 빌라의 현관문 앞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이틀 만에 처음 보는 외부인이었다. 검은 외투를 입은 여자는 빌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눈을 파헤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왔는지 발치에 트렁크와 짐가방이 놓여 있었다. 손이 얼고 힘이 빠지기 전에 문을 열기 위해서 여자는 안간힘을 썼다. 뚫어놓은 구멍으로 팔을 집어넣어 손잡이를 당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몸으로 밀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허둥대다가 눈 더미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여자는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을 찾는 것 같았지만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라는 걸 깨달은 여자는 체념하고 다시 눈더미와 씨름했다. 담배를 다 피운 후에도 남자는 눈을 퍼내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은 생크림 케이크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마리의 개미처럼 보였다.
“내 친구네 남편은 오늘 출근했다는데······ 당신도 나가봐야 되는 거 아냐?”
저녁을 먹는 동안 아내가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무심한 듯 눈을 내리깔고 있지만 얼굴에는 의혹과 불안, 원망 같은 게 서려있었다. 출근하는 게 나았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아내의 말이 야속하게 들렸다. 하지만 남아 있는 저녁 시간의 평화를 위해 남자는 잠자코 있었다.
사상 최대의 폭설로 완전히 마비되었던 도로와 거리가 경찰과 군부대, 시민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숨통을 터가고 있습니다.
헬기에 올라탄 기자가 도시 곳곳을 비추었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와 안전모를 착용한 사람들이 삽을 들고 부지런히 눈을 퍼내고 있었다. 화면 속의 그들은 레고 병정 같았다.
빌라의 공동현관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남자도 출근 준비를 마쳤다. 현관 앞에는 어른 한 사람이 눈을 퍼내면서 걸어간 흔적이 있었다. 몇호의 누가 어떤 방법으로 문을 열고 나갔는지 궁금했지만 알아낼 길은 없었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다음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길은 얼마 가지 않아 끊어졌다. 대로변으로 나가려면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데 눈이 파인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남자는 막힌 길 앞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쌓인 눈 때문에 도로와 인도도 구분할 수 없었다. 경찰과 군부대는 어디에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는 건지 이곳은 여전히 눈이 점령하고 잇었다. 방송에서는 도로 곳곳에 삽과 안전모를 비치해두었다고는 했지만 그마저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눈을 퍼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시가 멈춰버리고 남자와 거대한 눈 더미만 남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린건 아니겠지. 남자는 엊그제 새벽에 본 재난영화를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며칠 동안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있던 눈은 흙처럼 육중하고 단단했다 가죽이 젖어서 장갑 안이 금세 축축해졌다.
눈 더미 속에서 제설함과 삽 한 자루가 나왔다. 근처를 다 팠는데도 안전모는 찾지 못했다. 시민들을 위해 준비한 거라고 하기에 삽은 너무 낡고 녹슬었다. 하지만 남자는 젖은 장갑대신 삽을 쥐었다. 벌겋게 언 손이 욱신거렸다.
새해 첫 출근을 위해 차려입은 양복과 넥타이 때문에 남자의 동작은 굼떴다. 일할 때 그는 언제나 양복 차림이었다.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양복을 즐겨 입었다. 어느새 양복은 가장 자주 입는 옷,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 되었다. 재킷과 바지가 흉하게 구겨졌지만 남자는 양복바지를 양말 안에 쑤셔넣거나 재킷 소매를 마구 걷어붙이지는 않았다. 작업이 힘들지만 이 눈을 헤치고 회사에 출근하면 얘깃거리도 생기고 남자에 대한 상사들의 인식도 바뀔 거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한 삽을 퍼내면 한발짝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지루하지만 정직한 작업이기도 했다. 세상에 혼자 남아 전설이 된 영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며 남자는 눈을 퍼냈다.
평소 걸음으로 십분이면 왔을 곳을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익숙하지 않은 노동에 남자는 금세 지쳤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이런 속도로 언제쯤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몸을 움직이면서 흘린 땀 때문에 셔츠가, 허리까지 쌓인 눈 때문에 구두와 바지, 속옷이 다 젖었다. 남자의 삽은 점점 느려졌고 눈이 쌓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삽을 쥐었던 손바닥엔 어느새 물집이 잡혔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파고 온 길이 삐뚤빼뚤 이어져 있었다. 앞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삽으로 퍼낸 눈 뭉치들이 원래의 자리로 굴러떨어졌다.
아득히 먼 곳에서 포클레인 같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남자는 삽질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는 기계음이 아니라 먼 데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남자는 그게 도로 위의 눈을 치우는 기계 소리라고 믿고 싶어졌다. 도시의 제설작업은 멈추지 않았고, 이곳의 눈을 치우기 위해 돌진 중이다, 하루 이틀쯤 집에서 버티다 보면 분명히 길이 뚫릴 것이다, 언제 눈이 내린적이 있었냐는 듯 도로 위로 차들이 달리고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 편이 이 눈을 헤치면서 출근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은 공장이나 거래처도 다 쉬고 있어서 출근해봐야 할 일도 없을 텐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갈 필요가 있을까. 남자는 슬그머니 삽을 내려놓았다. 출근하고야 말겠다던 야심 찬 계획은 어느새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말았다.
전화벨은 기막힌 타이밍에 울렸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남자가 인상을 확 구겼다.
“네, 부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먼저 안부전화 드렸어야 하는 데 죄송합니다.”
“김대리, 내가 지금 그런 인사 받자고 전화햇는지 알아? 너 지금 어디야? 우리 사업부에서 너만 출근 안했어.”
“네? ······아, 지금 가는 중입니다. 눈 때문에 현관문이 안 열려서······”
“야, 너 사는 데만 눈 왔냐? 지금 세상천지가 눈이야. 이새끼가 빠져가지고. 며칠 시간을 줬으면 미리미리 눈도 치워놓고 출근 준비를 해야 될 거 아니야. 넌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새끼가 눈치도 없지. 근성도 없지. 네 나이에 대리 달고 있는 거 쪽팔리지도 않냐? 새해부터는 잘해보겠다며, 이 새끼는 맨날 술 마실 때만 열심히 한다 그러지. 회사가 우습냐? 먹고사는 게 우스워?”
부장은 속사포처럼 퍼부어댔다. 아닙니다, 무섭습니다······라는 말 대신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거의 다 왔으며 무조건 빨리 가겠다는 거짓말이었다. 삽으로 눈이 아니라 머릿속을 퍼낸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자는 시간을 확인했다. 부장이 제시한 데드라인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허리까지 쌓인 눈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막막해졌다. 남자는 양복바지를 양말 안에 쑤셔넣고 재킷의 소매를 아무렇게나 걷어붙였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건 그들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밤에 출근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빌라의 현관문이 열려 있었던 것도 밤새 누군가가 근성을 갖고 밀어붙인 결과였다. 남자는 자신의 안일함과 무능력함을 자책하며 삽을 들었다.
눈을 부드러운 솜사탕이나 포근한 솜이불에 비유하는 건 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언 눈 속에서 삽질을 몇 번만 해보면 그동안 눈의 낭만적인 표면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얼어붙은 눈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위험하다. 부딪혀 긁히기만 해도 바로 피가 맺힌다. 남자는 발로 삽을 꾹 눌렀다. 군 복무 시절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울 때도 지금보다는 수월했다. 그 눈은 물에 젖은 모래처럼 무겁긴 했어도 남자의 앞길을 막거나 목을 조르지는 않았다. 폭설이 이 도시가 아니라 남자의 인생에 쏟아져 내린 것 같았다. 팔다리에 힘이 빠질수록 남자는 한 마리의 두더지가 되고 싶었다.
“김대리, 지금 어디야? ······아직 거기밖에 못 왔어? 나도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상황이 이렇더라고. 안 왔으면 좆될 뻔했지. 지금 누구랑 오고 있어?”
혼자라고 하자 과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런 비상사태에 혼자서 움직이면 어떡해. 비상연락망은 폼으로 줬는지 알아? 이럴 때 쓰라고 준 거 아냐.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사람들이 어떻게 제시간에 출근했을까 생각을 좀 해봐. 이틀 동안 개인적으로 판 다음에 가까이 사는 동료들끼리 만나서 같이 뚫고 온 거 아냐. 그게 사회생활이고 회사생활이잖아. 혼자 할 일이 있고 협력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아서 해야지. ······암튼 서둘러 오라고.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업부 전체에서 출근하지 않은 사람은 남자와 제2사업부의 유대리 두 사람뿐이라고 했다.
“유대리야 평소에 점수 따놓은 것도 있고 그쪽 부장이 무르니까 내일까지는 괜찮을 거 같은데, 알잖아, 이쪽은 지랄 같은 거. 거기다 넌 찍힌 몸 아니냐. 오기만 하면 갈아마실 거라고 벼르고 있어. 부장 그 새끼 지기 싫어하는 거 모르냐? 아직도 그런 게 파악이 안 돼?”
출근은 했지만 할 일이 없는 과장은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았다.
“내가 누누이 말하잖아. 사회생활의 99퍼센트가 인간관계라고. 눈치도 좀 보고 고개도 좀 숙이고 비위도 맞춰가면서, 응? 더럽고 치사해도 말이야. 솔직히 우리가 회사생활 아름다워서 하는 건 아니잖냐.”
땀이 마르면서 남자의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쥐고 한 손으로 어설프게 삽질을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유대리의 집이 남자의 집과 회사의 중간쯤에 있다는 점뿐이었다.
유대리가 출근하지 않은 건 좀 의외였다. 그는 제2사업부의 유력한 과장 후보였다. 초고속이라고 할 순 없지만 만년 대리, 만년과장이 많은 회사의 분위기를 볼 때 확실히 빠른 승진이었다. 일밖에 모르는 타입이라 인간관계가 좋은 건 아니지만 평판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남자는 유대리가 사무실에 남아 야근하는 걸 여러번 보았다. 컴퓨터 앞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잇는 유대리의 옆모습은 움직임이 없어서 컴퓨터 책상과 한 세트 같았다. 저녁 먹고 대충 시간 때우다가 퇴근하는 인간들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남자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회사 건물이 아니라 눈을 열심히 파내고 있는 다른 삽이었다. 그건 남자의 삽보다 크고 견고해 보였다. 초록색 삽은 쉬지 않고 눈을 퍼냈다. 남자가 파놓은 길에 다다라서야 상대는 고개를 들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기능성 재킷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에베레스트 산에 던져놓아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그가 쓴 고글 위로 햇빛이 반짝거렸다. 남자는 젖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한 주름진 양복이 부끄러웠지만, 눈으로 뒤덮인 허허벌판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워서 어색하게 눈인사를 건넸다.
“출근하는 길이신가 봐요.”
젊은 남자가 땀을 닦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네, 회사에서는 빨리 안 온다고 난리가 났는데 몸이 안 따라주네요.”
“저랑 비슷하시네요. 천재지변인데 출근 해야 되냐고 물었다가 팀장한테 엄청 깨졌거든요. 삽자루 들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남자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남자는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두 사람은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게 했던 황금연휴와 기상청도 감지하지 못한 폭설에 대해 몇 마디 나눴다. 세상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다.
“월급은 그대론데 물가는 자꾸 오르지, 일할 수 있는 건 몇 년 안 되는데 평균 수명은 길어지지, 병원비는 계속 오르지, 범죄는 늘어나지, 툭하면 이상기후에······”
랩처럼 이어지는 상대의 불평을 들으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르는 사람과 사심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 만인가 생각했고 뜻밖에도 말이 잘 통한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이야기는 단박에 열기를 띠었다.
“맞아요. 사는 게 전쟁입니다. 위에서 누르지 밑에서 치고 올라오지 옆에서 밀지, 버티고 서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폭설까지 내려서 출근이 이렇게 힘들어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오늘 안에 출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요, 이런 개고생 안하려고 학교 다닐 때 기를 쓰고 공부하고 발버둥 쳐서 대기업에 들어온 거 거든요. 근데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인생에 여유라는 게 없습니다. ······그대 A그룹으로 갈 걸 그랬어요. 그쪽은 오늘 출근 안 하거든요. 그런 게 진짜 대기업이죠.”
대기업이라는 말에 따뜻하게 배어있던 땀이 급격하게 식어갔다. 남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녹슨 삽이나 구겨진 양복 따위가 아니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근처 오면 전화 주세요. 술 한잔 하죠. 말도 잘 통하고 처지도 비슷한 것 같은데.”
남자는 상대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익숙한 대기업의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남자는 명함이 다 덜어졌다고 얼버무린 다음 서둘러 삽을 잡았다. 말이 잘 통하는지 모르겠지만 처지가 비슷하지 않아서 마음이 냉랭해졌다. 고글을 쓴 젊은 남자는 왼편으로 멀어져갔다. 뒷모습이 스키장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 같았다. 그새 눈이 두 배쯤 단단하고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옆으로 누운 음식물쓰레기 수거함과 주차금지 입간판 같은 것들이 눈 속에서 나왔다. 삽 긑에 무너가 걸릴 때마다 남자의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출근길의 방해물은 눈 더미만으로도 충분했다. 몇 번 더 통화를 시도했지만 유대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호음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여름에도 폭우 때문에 도시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큰 물난리가 났었다. 도로가 물에 잠기고 지하철 일부 노선의 운행이 중단돼서 출근길이 몹시 혼잡했다. 한 시간 늦은 사람부터 점심때 출근한 사람까지, 제시간에 출근 카드를 찍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로 뛰었는데도 남자는 열한시에 도착했다. 회사 전체에서 출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킨 사람은 유대리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시간 맞춰 온 게 아니라 전날 밤 회사에서 잤대. 비오는 거 보니까 출근 못 할 것 같아서 아예 퇴근을 안 했다는 거야.”
박대리가 담배를 꺼내물었다.
“역시 유대리네.”
구대리는 말끝에 감탄인지 야유인지 모를 애매한 추임새를 넣었다.
“근데 말이다, 제시간에 출근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냐?”
남자가 투덜거리자 박대리가 손에 든 종이컵을 우악스럽게 구겨버렸다.
“그래서 너보고 김새는 김대리라고 하는 거야 저쪽은 유능한 유대리고.”
그 말에 구대리가 한숨을 내뱉듯 웃었다. 박 터지는 박대리와 구박받는 구대리의 말이라 남자도 그냥 웃어넘겼다.
그렇게 열성적이던 유대리가, 출근에 목숨 거는 사람이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속사정이야 어떻든 남자의 입장에서는 같이 출근할 동료가 남아 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유대리를 만나야 출근이 수월해질 텐데, 전화를 계속 안 받는 걸 보면 유대리도 출근하기 위해서 눈을 퍼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유대리가 먼저 회사에 도착할까봐 남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시내 쪽으로 나오자 눈을 퍼내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유대리가 사는 오피스텔은 남자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난 봄에 대리들 몇이 거기 몰려가서 술을 마셨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오피스텔은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웠다. 이런 건 얼마냐? 실평수가 어떻게 돼? 집을 둘러보며 다들 질문을 던졌다. 이런 데서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 나자는 술에 취해서 중얼거렸다. 그때도 유대리는 빈 병이 늘어날 때마다 출근 걱정을 해서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중심가라 그런지 주상복합 오피스텔의 입구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남자는 출입문 앞에서 호수를 누르고 유대리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뚜우, 뚜우 신호만 갈 뿐 응답이 없었다. 집에 있을 리가 없지. 남자는 유대리가 멀리 가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담배도 한 대 피울 겸 통화 버튼을 여러 번 눌렀지만 유대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빨리 안 오고 뭐해. 과장의 문자가 도착했다. 어느새 두 시였다. 남자는 삽을 쥐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눈을 치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빨리 지쳤다. 눈 속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드러누워서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순간에는 눈이 딱딱하고 춥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공원에 있는 나무 벤치 같았다. 심지어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져서 안으로 한없이 파고 들어가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한기 때문에 경기하듯 깨어났다.
남자의 삽 끝에 폐지 묶음이 걸렸다 얼어붙은 종이 뭉치는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삽으로 떠내는 데 그 사이에 들어 있던 중국집 스티커가 남자의 구두 위에 툭 떨어졌다. 손바닥만한 광고지에는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하얀 눈 위에서 그 까맣고 빨간 색상은 너무나 선명했다. 남자는 자신이 아침 점심도 거른 채 삽질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머릿속에서 짜장면과 짬뽕의 냄새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건 아주 먼 옛날에 먹었던 것 처럼 아득하고 그리운 맛이었다. 입안에 따뜻한 침이 고였다. 짜장면 곱빼기 한 그릇만 먹고 나면 회사까지 갈 힘이 생길 것 같았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남자는 홀린 듯 휴대폰을 꺼냈다.
배달이 될까 의심하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길어지자 절대로 전화를 받을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전화를 하는 건 짜장면을 먹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래서 “여보세요”라는 굵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을 때 남자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보세요.” 상대가 한 번 더 말한 뒤에야 “거기 중국집 맞습니까?”하고 물었다.
“네, 진성각입니다.”
“혹시, 지금 배달이 됩니까?”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중국집 주인은 도시가 눈으로 덮여버렸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물었다. 여기 주소가······ 남자는 주변을 둘러봤다.
“가정집이 아니라 대로변인데 가능하겠습니까? ······근처에 OO병원하고 부동산이 있습니다.”
“아, 거기요. 예, 배달됩니다. 짜장 곱빼기 하나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남자는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배 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요란했다. 통화하면서 나눈 말들은 모두 장난이고 배고픔만 진짜인 것 같았다. 배달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흐르지 않고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대로라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어깨가 뚝 부러져버릴 것 같았다.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차가 사라지고 상가들이 문을 닫은 도시는 고요했다. 어디에서도 짜장면을 싣고 오는 오토바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짜장면이 정말 올까.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확인했다. 눈 때문에 출근도 못 하는데 배달이 될 리가 없지 남자는 눈을 한 주먹 떠서 입에 쑤셔넣었다가 도로 뱉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미친놈 같았다.
그때 오른쪽 골목 끝에서 안전모를 쓴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빠른 속도로 눈을 퍼내면서 걸어왔다. 그 사람이 삽으로 퍼내는 것은 언 눈이 아니라 가볍고 보드라운 밀가루인 것 같았다. 노를 젓는 것처럼 몸의 움직임이 유연하고 리듬감이 넘쳤다. 덕분에 남자와의 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안전모에는 ‘신속배달’이라고 쓰여있었다. 안전모를 쓴 배달원이 남자를 보곤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거짓말 같은 상황에 남자는 눈만 껌뻑거렸다. 안전모에 쓰인 문구 그대로 신속하고 정확한 배달이었다.
철가방을 내려놓고 안전모를 벗은 배달원은 뜻밖에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었다. 눈 속을 뚫고 오느라 어깨와 신발이 눈투성이였다.
“먹고 그릇은 그냥 버리시면 됩니다.”
“대단하시네요. 이런 날까지 배달을 하시고······”
“눈이 와도 먹고는 살아야죠.”
배달원은 그릇을 건네자마자 다시 안전모를 쓰고는 바쁘게 걸어갔다. 짜장면 위에 쿠폰 한 장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손이 얼어서 젓가락은 짝짝이로 쪼개졌다. 짜장의 고소한 냄새와 일회용 용기의 따듯함은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젓가락을 쥐고 짜장면을 비비면서 남자는 코를 훌쩍거렸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짜장면을 먹는 동안 남자는 세상이 자신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자신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다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보여줄 법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즐기기 위해서. 정말 그런 거라면 남자는 지금 자신이 그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줄줄 흐르는 콧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젓가락질을 했고 그릇까지 먹어치울 기세로 허겁지겁하다 젓가락을 한 짝 떨어뜨리기까지 했으니까. 그걸 찾으려고 눈 속을 파헤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남은 짜장면은 젓가락 한 짝으로 긁어먹었다. 그래도 양념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부끄러움이나 자괴감 같은 걸 느낄 겨를도 없었다.
회사까지의 거리는 이제 삼분의 일쯤 남아 있었다. 남자는 과장의 문자와 부장의 전화를 한번씩 십었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아내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파고 걸었다. 쉴 때는 허리를 펴고 목을 좌우로 돌리면서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전화는 씹었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맞은편에 불 꺼진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간판을 보자 온장고에 든 따뜻한 캔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얼마 전까지 일상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손이 닿지 않는 저 눈 밑에 파묻혀버렸다. 누가 만들어놓았는지 편의점 앞에는 남자의 키만한 눈사람이 서 있었다. 동그란 눈과 웃는 입 모양을 한 눈사람이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남자는 잠시 멈춰 섰다. 눈이 재앙이 되고 눈 때문에 일상이 무너진 곳에 서 있는, 웃는 얼굴의 눈사람은 김새는 농담 같았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입모양을 흉내냈다. 말라붙어 있던 입술이 툭 터져서 피가 찔끔 새어나왔다.
한참 속도를 내고 있는데 삽 끝에 딱딱한 게 또 걸렸다. 시간은 촉박하고 마음은 급한데 발로 눌러도 삽날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는 일 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시 삽을 꽂았다. 한 삽 떠내고 나자 또 삽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활정보지함이나 자전거가 쓰러진 게 아니라 공룡이라도 묻혀 있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방향을 옆으로 틀어서 팠다. 그때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가느다란 목소리의 여자가 부르는 곡인데 멜로디가 익숙했다. 남자는 잠시 손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벨소리이긴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듣는 음악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지만 남자는 무시해버렸다. 음악소리는 멈추었다가 눈을 퍼내자 다시 시작되었다. 아까와 같은 멜로디였고 눈을 퍼낼수록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남자는 길이 아니라 소리를 찾아서 삽을 움직였다. 손으로 눈을 쓸어낸 뒤에야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눈 속에 파묻힌 누군가의 휴대폰이었고 공교롭게도 빳빳하게 언 양복바지 안에 들어있었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삽과 손으로 눈을 파냈다. 판박이 스티커를 천천히 벗겨낼 때처럼 눈 속에서 검은색 구두와 발, 모직으로 된 양복바지가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코를 훌쩍거리면서 언 손으로 조심스럽게 눈을 파헤쳤다. 입에서는 입김이 쉴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양복 차림의 사람은 눈의 중간쯤에 화석처럼 묻혀 있었다. 양복 재킷과 와이셔츠는 주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얼어붙었고 검붉은 색의 실크 넥타이는 오래전에 흘린 피처럼 굳어 있었다. 양손 다 눈을 그러쥐고 있어서 손가락은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모습이지만 상반신의 일부는 아직도 눈 속에 묻혀 있었다. 쌓인 눈의 두께로 봐서는 그가 쓰러진 뒤에도 눈이 계속 내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가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몸은 추운데 남자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남자는 조심스럽게 눈을 치웠다. 고대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손이 떨렸다. 눈을 쓸어내자 어깨와 목, 안경을 쓴 얼굴이 차례로 나타났다. 혹시라도 맥박이 뛰는지 확인하려던 남자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 속에서 화석이 된 사람은 집에도 업고 전화도 받지 않던 유대리였다. 이봐, 남자는 유대리의 몸을 흔들었다. 턱에서 땀이 툭 떨어졌다. 일어나. 휴대폰에서 다시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봐! 유대리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대리의 전화기를 주워 귀에 댔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 눈 속에, 유대리가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남자의 입안에서 딱딱하게 굳었다.
해가 기울고 주위는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이대로 한 시간정도만 파고 가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자는 회사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파고 온 길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다시 돌아가기에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게다가 남자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는 유대리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숨을 골랐다. 졸음이 밀려왔지만 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눈더미는 딱딱하거나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공원에 있는 나무 벤치 같았다. 시야가 구겨진 종이처럼 뭉개지고 있었다.
서유미, 「스노우맨」, 『당분간 인간』, 창비, 2012, 8~32쪽
32153630 이지용
개요
신년 연휴 기간이 끝났지만, 남자는 폭설로 인해 2일동안 출근을 하지 못 한다. 공동현관문이 안 열릴 정도로 쌓인 눈에도 불구하고 폭설 이후 3일 차 남자는 출근길에 나선다. 그 출근길에서 일어나는 일.
2. 작중 인물 소개
‘남자’(김대리)- 작중의 주인공, 회사에서는 김새는 김대리라고 불린다. 폭설 때문에 연휴가 길어지자 가정에서는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 회사에서 유능하기로 소문난 ‘유대리’와 비교당한다. 자기보다 사회적 입지가 나은 사람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인물
아내- 연휴기간 이후에도 ‘남자’의 출근이 늦어지자, 가계에 대한 걱정과 여러 감정이 섞여 불안감을 느낀다.
102호 남자- 폭설이 내린 날, 남자가 같이 눈을 치우자며 도움을 구하지만,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며 거절한다.
부장- 출근해도 폭설로 인해 업무가 마비되어 크게 할 일이 없음에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남자’를 크게 꾸짖느다.
과장- 비상연락망의 이야기를 하며 ‘유대리’도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언급을 한다.
젊은 남자- ‘남자’가 출근하던 중 만난 인물, 낡은 삽을 가진 ‘남자’와 달리 좋은 삽을 갖고, 복장도 대조되는 인물.
중국집 배달부- 폭설 사이를 헤치고 와서 짜장면을 배달한다.
유대리- 인간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유능하고 성실해서 회사 내에서 평판이 좋은 인물, 눈에 파묻힌 채 발견 된다.
3. 상징
눈- 사회생활에 대한 은유.
눈을 부드러운 솜사탕이나 포근한 솜이불에 비유하는 건 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언 눈 속에서 삽질을 몇 번만 해보면 그동안 눈의 낭만적인 표면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얼어붙은 눈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위험하다. 부딪혀 긁히기만 해도 바로 피가 맺힌다. 남자는 발로 삽을 꾹 눌렀다. 군 복무 시절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울 때도 지금보다는 수월했다. 그 눈은 물에 젖은 모래처럼 무겁긴 했어도 남자의 앞길을 막거나 목을 조르지는 않았다. 폭설이 이 도시가 아니라 남자의 인생에 쏟아져 내린 것 같았다. 팔다리에 힘이 빠질수록 남자는 한 마리의 두더지가 되고 싶었다. 20P 19번째 줄 ~ 21P 5번째 줄
이 문단에서는 사회생활의 거칠고 힘듦이 드러난다. 직장을 다니는 일도 돈을 벌고 생활의 일터가 되는 삶의 일부가 되는 낭만적 공간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겪고나면 쉽게 상처가 나고 버겁고 무거운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폭설이 내린 출근길이란 공간은 이런 사회생활의 부담감이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삽- 만년 대리인 ‘남자’의 삽은 낡고 녹슬었지만, 출근하던 중 마주친 젊은 남자의 삽은 남자의 삽보다 크고 견고해 보인다. 이 젊은 남자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인데, 이를 통해 생활의 부담감을 헤쳐나가는 데도, 사회적 지위가 유형화된 ‘삽’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짜장면- 노동을 하는 이유의 본질이 바로 먹고살기 위한 것을 나타내는 상징. 눈을 헤치고 가던 도중에, 아침과 점심을 걸렀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홀린 듯이 짜장면을 주문한다. 짜장면을 배달해 오는 배달원도 말한다. “눈이 와도 먹고는 살아야죠”
4. 주요 문단/문장
남자는 어쩐지 집이 자꾸 좁아지는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다가와서 나중에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옮겨가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이 밀폐용기처럼 꽉 막혀있었다. 남자와 아내, 딸애 세 사람은 밀폐용기에 담긴 김치처럼 각자의 상태와 부피에 맞게 발효되고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밀폐용기는 터지기 직전까지 팽창하다가 남자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아내가 전화로 누군가와 수다를 떨 때 한숨처럼 공기를 뱉어내며 아슬아슬하게 모양을 유지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자는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자리가 그리워졌다. 자신의 진짜 자리는 거실 소파나 컴퓨터 앞 의자가 아니라 그 딱딱한 철제 책상과 흡연자들끼리 모여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비상구 계단인 것 같았다. 찬바람이 들어온다고 아내가 잔소리를 했지만 남자는 자꾸 베란다에 나갔다. -15P 15번째 줄 ~ 16P 5번째 줄
눈으로 인해 회사에 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남자는 집을 불편하게 여긴다. 아내가 주는 눈치를 포함해, 남자는 집이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 여긴다. 생활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만 도치되어버린 현실이 드러나는 장면.
“내 친구네 남편은 오늘 출근했다던데…… 당신도 나가봐야 되는 거 아냐?”
저녁을 먹는 동안 아내가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무심한 듯 눈을 내리깔고 있지만 얼굴에는 의혹과 불안, 원망같은 게 서려있었다. 16p 18~21번째 줄
-일을 가지 못하자 가장으로서 압박을 받는 장면. 폭설이라는 어쩔수 없는 환경에도 결국 가족을 위해 일을 나가야하는 현실이 드러나는 장면
“제가 이런 개고생 안 하려고 학교 다닐 때 기를 쓰고 공부하고 발버둥 쳐서 대기업에 들어온거 거든요. 근데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인생에 여유라는 게 없습니다. ……그때 A 그룹으로 갈 걸 그랬어요. 그쪽은 오늘 출근 안 하거든요 그런 게 진짜 대기업이죠.” 대기업이라는 말에 따뜻하게 배어있던 땀이 급격하게 식어갔다. 남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녹슨 삽이나 구겨진 양복 따위가 아니었다. -24p 5~12번째 줄
눈이라는 똑같은 생활의 부담감을 헤쳐나감에 있어서도 직장의 차이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
5. 3S 분석
Situation- 폭설이라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남자’, 공동 현관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쌓인 눈에, 같은 주민들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연휴가 끝난 뒤 3일 후, 열려있는 공동현관문을 보고 남자는 출근을 나선다. 그 후 출근길에서 벌어지는 일들.
Space- 주 공간 ‘출근길’
눈이 많이 쌓여 대로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환경이다. 사회생활의 부담감이 구체화 된 공간, 혼자서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공간. 그렇기에 아직 출근하지 못한 유대리를 찾아 나서지만, 눈 속에서 화석처럼 변해버린 유대리를 발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보조공간- ‘집’
남자는 연휴 이후 폭설로 인해 집에 더 머물게 되지만 부담감을 느낀다. 일을 못 가게 되자 ‘남자’의 집안에서의 입지조차 좁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공간. 남자는 집의 거실 소파나 컴퓨터 의자가 아닌 철제 책상과 비상구 계단을 ‘진짜 자리’로 느낀다.
사회생활을 마친 후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본말전도 되어 일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곳처럼 여겨지는 공간.
Stage- 눈 속에 파묻힌 유대리를 발견하는 장면- 눈 속에서 들리는 벨 소리에 눈을 파헤치자 서서히 드러나는 유대리의 몸. 비상연락망을 통해 연락해도 받지 않고, 그의 오피스텔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던 와중 발견하게 되는 유대리. 눈 속에서 화석이 되어버린 그를 발견한 ‘남자’는 혀가 굳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회사로 다시 가지도, 집에 돌아가지도 못한 그는 그대로 졸음을 이겨보려 하지만 시야가 종이처럼 뭉개진다.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작품의 주제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sub stage1- 남자가 집을 불편 해 하는 장면- 남자는 눈 때문에 연휴가 끝나고나서도 출근할 수 없게 된다. 출근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집을 편안한 공간으로 느끼지 못한다. 회사를 자신의 진짜 자리로 여기는 장면. 이 장면에서 노동이 본업이 되고, 그 외의 삶이 가장자리가 되는 현실을 뚜렷하게 나타났다.
sub stage2- 대로변에서 짜장면을 배달받는 장면- 남자는 중국집 광고지를 보고 홀린 듯이 짜장면을 배달한다. 말 그대로 ‘신속정확’하게 짜장면이 배달온다. 배달원을 보고 남자는 말한다. “대단하시네요, 이런 날까지 배달을 하시고......” 배달원은 그에 답한다. “눈이 와도 먹고는 살아야죠” 그 후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는 남자.
폭설이라는 극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하고, 또 그 노동으로 말미암아 한 끼의 식사를 하는 장면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강조하는 장면이다.
6. 작품의 주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그 힘겨운 삶의 무게.
작가는 사회생활의 무거움을 눈으로 형상화한 공간에서 먹고사는 일 그 자체의 힘겨운 무게를 작품에 담아냈다.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렵고, 또 그렇다고 일하지 않을 수도 없는 사회생활의 무게와 고통을 폭설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통해 강조한다.
첫댓글 서술 시간이 폭설이 내리는 출근길이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상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눈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또한 폭설이 내리고 있는 배경과 먹고 살아가는 사회생활의 힘겨움을 잘 제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화자의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술 또한 주제의 비극성을 더 부각해주는 것 같습니당
* 사내에서 평판 좋은 유대리의 죽음이 왜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주제를 나타내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유대리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한 순간에 죽음을 맞음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삶’이라는 주제를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시점 : 주요 인물인 남자 중심의 “3인칭 인물 시점 서술”
유대리는 타인과 특별한 유대를 맺지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인물입니다. 업무적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해 평판과 실적이 좋은 인물이지만, 사회적으로 특별한 유대를 맺지 않습니다.
폭우 때 일찍 출근한것처럼, 유대리도 일찍이 나서 폭설을 극복하려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라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앞서 과장의 통화에서 인간관계의 역설과 맞물려 주제의식이 강조된 부분으로 느꼈습니다.
@이지용 그렇다면 타인과 함께 눈밭을 헤쳐나가는 장면이 나와야한다 생각하는데, 모두가 홀로 눈밭을 헤쳐나가고 있는다는 부분에서 단순히 정신적 유대만을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바라보기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삽을 든 남자도,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등쌀에 못 이기는 주인공 남자도 결국엔 죽음을 맞는다는 암시가 아닐까하는 사견도 붙여봅니다.
남자가 삽으로 눈을 파 출근하는 과정이 집약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분석문에 나온 바와 같이 가장의 무게와 사회생활 또는 회사생활의 무게라는 주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화자가 남자의 상황을 중심으로 주변인물과 남자의 심리를 이야기하여 3인칭 인물 중심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주제와 상징 분석이 제가 미처 못잡아내고 있던 작품의 전체적인 핵심요소를 짚어 알려준 것 같아 인상 깊었습니다. 선정하신 서브 스테이지들 또한 이야기 맥락에 꼭 필요한 부분들임은 이해하나 3s에 포함하기엔 좀 부수적인 느낌이 있지않나 생각이 듭니다.
- 3인칭 '남자' 중심적 시점
분석문에 작성하신 주제에 공감합니다. 소설은 3인칭 화자 중심 시점으로 서술되었습니다. 상징적인 부분들도 각박한 현실 사회를 다룬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서브 스테이지들을 간결히 줄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히 읽었습니다 ⸜₍๑•⌔•๑ ₎⸝
전반적인 작품 분석 및 이해도가 좋고, 3S의 서술이 명확하고 깔끔합니다. 다만 Stage(눈속 유대리를 발견한 장면)에서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생활"을 상징한다고 작성하신 것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유대리라는 인물의 평판이 좋은 까닭은 일을 끝내지 못하면 야근을 하고, 출근을 못할까봐 회사에서 잘 정도로 일을 과하게 중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유대리의 죽음은 목숨보다 일을 중시하고, 연장근무를 당연시하고 일에 쏟는 시간을 유능함으로 평가한다는 사회현실이 불러일으킨 참사로, 일종의 과로사를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인칭, 인물(남자)중심의 서술, 남자와 그의 출근길을 설명함.)
유대리는 자신보다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인물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소설 속에서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는 것이 강조됩니다. 유대리의 고된 사회생활이 눈에 비유되어 잘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눈처럼 차가운 현실과 유대리의 상황이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