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즈’, 너에게 더 이상 갈 수 없어도 괜찮아...
* 본문에는 영화 ‘클로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나중에 읽어 주세요~~
매번 예술성 높은 영화를 선정, 영화걷기를 진행하시는 피피사랑님의 5월의 첫 영화는 벨기에의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Close)’였습니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소개와 동영상을 얼핏 보는 바람에 두가지 큰 오해가 생겼습니다.
영화 소개 영상을 보니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두 남학생의 대화가 프랑스어라 프랑스 영화인줄 알았고, 두 남학생의 '친밀한 우정'(Close friendship)이 부각되는 바람에 퀴어(Queer, 동성애)가 중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면서 중반이 되자 전혀 다른 전개,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으신 어느 분이 영화관을 나오자 마자 조심스럽게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너무 무난한 것 아니냐?”라는 식의 평가를 하시더군요.
낙화도 상당 부분 동의했습니다. (프랑스 아닌) 벨기에 청소년들의 퀴어 문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여러 관계(가족과 친구, 학교 등)와의 갈등과 화해 등을 기대했죠. 영화 ‘클로즈’ 소개 동영상을 본 첫 번째 느낌은 전세계적으로 호평받은 티모시 살라메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청소년판 아닌가 했던 기대도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 초반 상당 부분은 너무나 천진하고 티 하나 없는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친형제 이상 붙어 다니고, 수시로 레미의 집에 가서 자는 레오, 레미의 가족도 레오의 가족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깁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일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니 전체적인 상황은 모르지만, 둘 만의 공간, 둘 만의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레오와 레미는 중학교로 진학합니다. 낯선 환경, 낯선 곳, 그래도 둘 만의 대화와 비밀, 친밀한 우정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그 둘을 둘러싼 환경은 전혀 다릅니다. 주변 친구들의 둘 만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일부 학생들은 ‘호모’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내성적인 라미는 항상 말이 없고, 외향적인 레오는 ‘어릴 때부터 친했다. 형제같은 관계다’라며 적극 반박합니다. 이를 레미는 그냥 말없이 지켜보며, 항상 그렇듯이 낯선 환경속에 두 사람은 항상 서로를 더 많이 쳐다봅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레오에게 꽃은 많은 의미를 지니지만 루카스 돈트 감독이 좀 더 많은 장면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학교 생활이 지속되자 레오가 변합니다. 레미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역동적인(?) 아이스하키 수업에 적극적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던 어느날 매일 같이 자전거로 등교하는 원칙아닌 원칙을 어기고 레오 먼저 등교합니다. 레미는 이를 심하게 따집니다. 여러 학생들이 지켜보는데도 몸싸움까지 하며 따지지만, 레오의 반응은 없습니다. 며칠 후 학교에서 바닷가 탐방을 떠나는 날, 버스에 레미가 타지 않았고, 레오 등 학생들은 바닷가 탐방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옵니다. 귀교하는 버스 안, 선생님들의 전화를 받고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집에 가라고 하는 등 심각한 분위기, 학교에 도착한 버스 안에 레오의 어머니가 올라오더니 비극을 알려줍니다. 레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거죠.
이후 레오는 충격속에서도 담담하게 일상을 영위해 나갑니다. 아이스하키에 더 빠져들기도 하고, 형에게 더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레미를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간간이 레미를 그리워 하며, 형에게 들릴 듯 말 듯 ‘레미가 보고싶다’는 독백을 하기도 합니다. 레미와 함께 한 장소도 찾아가고, 레미의 집 근처까지 찾아가기도 합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레오와 레미의 동성애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중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레미의 극단적인 선택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한 것이지만, 이후의 내용은 관계의 상실 속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같은 남자애들끼리 너무 친밀한 관계에 대해 양쪽 부모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특히 레미 어머니는 아들 레미 못지않게 레오에 대해 가슴으로 난 아들이라 하며 레미와 친밀한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레미의 비극적인 선택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레미 어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레오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고 이후 3번이나 만나지만, 한번도 대답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묵묵히 기다릴 뿐입니다. 레미 어머니의 기다림 속, 레오도 가슴 속 깊은 심정을 내비치고, 어느날 레미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 가서 만납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레어는 힘들게 “네가 레미를 밀어냈다”라고 합니다. 순간 레이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차에서 내린 레오는 (죄책감에) 빗속의 숲으로 뛰어갑니다. 차에서 내린 레미 어머니는 레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고, 숲가운데서 나무 몽둥이들 든 레오는 두려움 속 레미 어머니를 바라보지만, 레미 어머니는 가만히 와서 끌어 안아주고 서로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영화 전반부는 두 남학생의 동성애에 가까운 친밀한 우정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레미의 비극 이후 이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너무 잔잔하다 못해 단조롭고, 자극적인 대사나 상황은 하나도 안나옵니다. 막장드라마에 너무 익숙한 한국, 거친 대사와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거부가 팽배한 한국적 상황에서는 영화 자체가 밋밋할 수 있지만, 동성애적인 요소에 대한 접근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내용에 대해서 서구 등 외국에서는 굉장히 높은 호평을 받지 않았나 합니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지만, 관계의 상실 이후 치유의 과정이 아름다웠던 영화로...
영화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감독은 약관 27살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던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을 거머쥐며 열렬히 환대받은 젊은 연출자입니다. 따라서 후속인 ‘클로즈’ 또한 성 정체성을 주제로 한 영화임을 알 수 있지만, 감독의 의도는 관계의 상실에서 오는 치유의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네요. 영화 후반부는 바로 그런 치유의 과정이 섬세하게 펼쳐져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asVTa_lO70U
영화는 시작하면서 레오의 가족이 화훼농장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주된 배경, 레오의 성장을 아이스하키장과 꽃밭을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꽃밭과 아이스하키 연습장의 색상의 대비, 그리고 꽃이 자라나고 이를 꺾고 다시 자라나는 과정은 레오의 내면과 상황의 대비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꽃밭도, 화훼농장에서 일하는 모습도 너무 짧고 단편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죠.
여담으로 레오와 레미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첫 수업, 선생님은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진행되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로도 하라고 합니다. 처음에 프랑스 영화인줄 알고 유럽이 워낙 다국적 언어지역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벨기에 영화임을 알고는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루카스 돈트 감독은 벨기에 출신인데 브뤠셀 위 서북쪽 겐트지역(헨트라고도 발음, 영어로는 Ghent 젠트) 출신입니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른바 베네룩스 3국 중 하나이고,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긴 국경을 맞대고 있죠. 반대쪽으로는 네덜란드와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언어도 네덜란드어 55%, 프랑스어 35%, 독일어 7%의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벨기에는 현재 북부의 부유한 네덜란드언어권(플랑대런 지역)과 남부의 가난한 프랑스언어권(왈롱 지역)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벨기에는 남북대립이 심한 나라입니다. 돈트 감독은 부유한 네덜란드언어권 겐트지역으로 영화의 배경인 꽃밭도 고향의 풍경을 그대로 옮겼다고 합니다. 따라서 네덜란드어 우세지역인 곳에서는 네덜란드어가 먼저이고, 프랑스어가 나중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프랑스어가 주로 쓰이고 네덜란드어는 형식적으로 소개 차원에서 나옵니다.
돈트 감독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도 모두 벨기에 북부 네덜란드어 우세지역, 왜 프랑스어가 먼저 나왔을까요? 돈트 감독은 성 정체성을 밝히진 않았지만, 성소수자에 가깝습니다. 벨기에 북부 네덜란드어 강세지역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고, 남부 프랑스어 강세지역은 상대적으로 진보한 지역, 돈트 감독은 다양성을 강조하고 똘레랑스(관용)의 프랑스어를 존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면 영화도 산업이고 대중성이 있어야 하기에 네덜란드어로 대사가 나가기 보다는 프랑스어로 만들어야 대중성이 강한 면이 있죠. 예술인지 상업성인지, 모호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돈트 감독의 작품이 많아지면 관심을 두고 지켜볼 소재이기도 합니다.
피피사랑님 덕분에 5월 좋은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한국적 정서나 분위기상, 벨기에 청소년의 성 정체성에서 온 관계와 상실, 그리고 치유과정이 담담하거나 지리할 수도 있지만, 우리와 또 다른 치유방식이 깊은 공감을 던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피피사랑님의 다음 영화걷기를 기대하면서...
낙화는 유수처럼
*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동성애에 관한 영화로서는 최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가장 호평을 받았죠. 예전 후기도 소개합니다.
https://cafe.daum.net/orchestraro/hUB4/119
첫댓글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웠던 "걸"과
2022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고심하지 않고 선택한 영화!
후작에 이어 감독이 12세 관람가로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던 영화였어요
감독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꽃밭을 통해
아이스하키의 세계와 대비되는 연약함을...
레오의 가족이 일하는 이 다채로운 환경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경도 달라지는
유년 시절을 보여줬다고 해요
저도 퀴어스토리인 줄 알았는데... 아니였군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낙화님 후기를 읽었고~ㅎ
낙화님의 한단계 높은 영화 평론만으로
영화를 안 보고도 충분한 감상이 되었네요.^^
오랜만의 단어 '똘레랑스'에 관한
낙화님의 에피소드도 생각납니다!^^
낙화님의 영화후기를 보고 다시 그영화를 복기해 봅니다~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력이 없는 저에게 좋은 감상평이 되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