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이병률
지하도 걷다가 어느 화원 앞이었다
화원이라는 말이 오랜만이어서 걸음이 느슨해지고
잘생긴 나무 화분 있어 멈추었다
희박해지는 공기 탓이었나
금방이라도 모든 죄를 고백할 듯 창백하구나, 사람들
그 나무 이름이 인도 벵갈고무나무였지
그때 한 검은 사내가 나무 앞에 우뚝 선다
나는 조금 떨어져 서 있었기에
그에게 충분한 자리를 내줄 수 있었다
터번만 두르지 않았을 뿐
누가 봐도 그는 인도에서 가져온 오래된 침묵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넓은 나무 이파리를 만지고 만지더니
가던 길을 간다
그러고는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그도 나무도
와도 너무 와버렸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 나무의 이름은 벵갈고무나무랬지
이번엔 나무가 사내 쪽으로 몸을 튼다
나무는 황금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내의 몸에서 풍겼던 냄새 뭉치로 나무는 잠시 축축하다
햇빛이 드는 것처럼 지하도는 잠시 정신이 든다
나는 내심 벵갈의 어디에 있다
지하도 걷다가
화원 앞이었다가
내심 나는 화분에 심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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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이병률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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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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