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대목인 여름방학 시즌과 추석 연휴가 모두 끝났다. 전통적으로 여름 성수기와 추석 시즌은 한 해 영화시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바로미터다. 하지만 올해의 한국영화 성적은 좋지 않다. 추석 연휴 극장가에는 경쟁할 만한 대작 없이 `공조2 : 인터내셔날` 1편으로 관객을 맞았고 흥행도 34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여름 텐트폴 작품들은 더욱 심각했다. `한산 : 용의 출현`이 720만명, `헌트` 420만명을 동원해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췄을 뿐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던 영화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후 처음 맞는 추석 연휴와 여름 대목이기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개봉하는 작품마다 잇따른 흥행 부진으로 최악의 영화시장을 맞게 된 것이다. 한국영화의 흥행부진, 그 이유는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늘어난 제작비만큼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작품들의 제작비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순제작비가 200억원에서부터 많게는 300억원에 달한다. `외계+인` 1부가 330억원, `한산 : 용의 출현`은 280억원, `비상선언` 260억원, `헌트` 195억원, `공조 : 인터네셔널` 155억원이다. 물가상승과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에 따른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고려해도 너무 많이 상승한 편이다. 이는 다양한 콘텐츠와 해외 블록버스터들을 접하면서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자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예전과 달리 제작비가 많다고 해서 상품이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영화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지도 않는다. 시각적인 완성도는 물론 영화의 이야기도 꼼꼼하게 따져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개봉된 대부분의 영화들은 제작비를 앞세워 관객을 유도하려 했지만 식상한 전개와 진부한 이야기, 복잡한 캐릭터 설정 등 완성도 면에서 부족했다.
몇몇 스타 배우와 스타 감독에 의존하는 경향도 문제다. 극장가 성수기를 책임질 작품은 그동안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과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들이 위주였다. 상업영화에서 스타 배우를 기용해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영화들이 지나치게 스타 배우에 기대고 있다. 영화 `외계인`의 경우 주연 배우만 무려 7명이다. 류쥰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조우진, 김의성, 염정아가 출연한다. `비상선언`의 경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이다. 많은 스타들이 등장하면 볼거리는 화려해지겠지만 각각의 배우들에게 역할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깊이감이 떨어지게 된다. 스타배우에 의존해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는 참신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소재와 이야기 개발이 필요하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전문 시나리오 작가의 부재도 아쉽다.
콘텐츠 시장의 변화와 함께 티켓값 인상도 한몫했다. 펜데믹 시대에 가장 큰 변화는 극장에 가지 않고도 질 좋은 영상콘텐츠를 집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플랫폼은 코로나 시기 무섭게 성장했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디즈니 플러스, 애플티비 플러스, 쿠팡플레이, 왓차, 시즌, 웨이브, 티빙 등 국내외 플랫폼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보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극장을 가기 위해서는 특별하고 매력을 끌만한 영화가 아니면 안되게 됐다. 여기에 7~8천원에 볼 수 있었던 극장 관람료가 많게는 1만5천원까지 오르면서 관객들의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한국영화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한국 배우와 영화의 해외 진출에 가속화되면서 국제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으며 동시에 국내 영화시장에서 OTT플랫폼과 경쟁 또한 심화되고 있다.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관객들은 선택의 폭도 넓어지면서 극장과 관객, 공급과 소비의 역학관계도 바뀌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한국영화가 성장하려면 OTT에서와 같이 참신한 기획력과 신인 감독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