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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스크랩 목포의 빛과 그림자
권영시 추천 0 조회 76 19.01.24 20:1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목포가 제법 시끄러웠는데, 이 글은 시끄러운 일이 언론에 보도되기 이전에 이미 필자가 목포를 다녀 온 터라 최근의 이슈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점을 먼저 밝히면서 글을 싣는다.

   신라는 후백제 견훤의 습격으로 경애왕이 사망하고 경순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끝내는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경순왕은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떠나게 됐다. 이 때 아들 김일(金鎰)은 천년사직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면서 반대하다가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베옷[麻衣]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살았다하여 마의태자로 불린다.

   고려 역시 몽고의 잦은 침입에 저항했으나, 끝내는 몽고의 압력을 이기기 못하고 원에 예속되어 최씨 무인정권은 붕괴되고 당시 강화도의 도성은 개경으로 환도하게 됐다. 이에 불복한 삼별초군이 자주독립 고려정부를 세우고 진도로 남하하여 용장성궁을 세우고 주위로 산성을 쌓아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다. 당시 추대된 왕은 원종의 6촌 승화후 온이다.

   이 같은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고자  작년 1월에는 경기도 연천군의 임진강과 군사분계선 사이에 있는 경순왕릉을 다녀왔고, 금년 1월에는 진도의 행궁인 용장성을 다녀왔다. 이때 진도를 가면서 목포를 거친 것이다.

   필자는 유달산을 기준으로 내륙으로 연결된 지역을 빛으로, 바다를 내려 보는 지역을 그림자로 나름 양분해서 표현해 본다.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를 거치면서 목포역 일대를 중심으로 최근 북항 일대로 확장된 도시 지역을 빛이라 일컫는 다면, 유달산에서 삼학도 사이의 자연환경과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근대의 역사가 담겨져 과거를 짚어볼 수 있는 지역을 그림자로 일컬어 본다.

   그렇다면 목포의 역사적 볼거리로 친다면 단연 그림자가 될 것이다. 필자는 볼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유달산 앞의 자연환경을 토대로 조선시대까지의 남아 있는 역사의 그림자를 짚어 보기로 했다. 이난영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 노랫말에도 이 모든 자연환경이 배경으로 등장되기도 한다. 이난영의 노래는 유달산 중턱에 마련된 자리에서 기계적이나마 유달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중단 없이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목포에서 그림자를 돌아 본 나머지를 사진으로 남겨 본다

호남선 종착 목포역


유달산 자락 국도 1호 2호 도로원표 앞에 세워진 기념비, 왼쪽 산이 유달산, 오른쪽 붉은 벽돌조 건물이 유달산 노적봉 기슭에 자리한 '목포영사관' 건물로 1900년에 완공됐다. 이후로 목포이사청,목포부청,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등을 거쳐 지금은 목포역사박물관이 됐다.


목포영사관이던 건물 뒤 노적봉 땅속으로 굴을 만들어 방공호를 구축해 놨다. 일제가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반도에 전쟁을 일어날 것을  대비해 오지마다 방공호를 구축한 것 중에 속한다.


방공호 옆에 목포부청 문서고 건물


유달산을 오르는 산중턱에 소나무가 몸통에 붙여 자란다. 안내판에 '연리지'라며 표기해 놓았다. 이는 연리지의 현상을 잘못 인식하고 붙여 놓은 이름이다. 연리지 현상은 상호의 가지 끝끼리 나뭇결이 맞붙은 현상을 가리킨다. 그 맞붙은 결에서 물관을 통하여 서로 영양분을 주고 받는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위와 같은 현상은 근접하게 자라다가 몸통이 그냥 접착된 현상일 뿐, 영양분을 주고 받지 않으므로 연리지라 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미 필자가 발견했던 연리지의 뚜렷한 모습을 함께 실어 이해를 돕고자 한다.

2004년 본리 어린이 공원에서 발견한 '중국단풍리지', 2013년에 다시 촬영한 모습이다.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연리지 사이가 벌어진 모습은 발견 당시에 비하면 훨씬 좁혀져 마치 활처럼 휘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2017년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발견한 '때죽나무연리지' 모습, 이렇듯 어디서 결이 이어졌는지 분간할 수 없는 곳에서 서로 가지끼리 결이 이어진 현상을 가리켜 연리지라고 일컫는 만큼 유달산의 소나무와 필자가 발견한 두 나무에서 보이는 연리지 현상을 비견해 보도록 함으로서 자칫 잘못된 인식올 바로잡고자 한다.


유달산 중턱 유선각(儒仙閣)에서 내려 본 목포, 왼쪽 산이 갓바위로 부르는 입암산, 중앙이 유달산 노적봉, 오른쪽이 바다 를 낀 섬 삼학도이나 지금은 왼쪽으로 부지를 연결해 섬 아닌 육지로  변했다. 노적봉과 삼학도 사이로 보이는 작은 산언덕에 조선시대 '목포진'이 설치됐던 곳으로 일대를 복원한 가운데, 객사 건물이 들어서 있 '목포진 역사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달산에서 내려본 목포 시가지(빛)


 마당바위 옆 유달산 암봉, 봉우리 앞에 '부동명왕(不動明王)'이라 새겨진 조각 상이 있다.


노적봉에서 보이는 유달산


노적봉에 세워진 시민의 종, 새해 타종식을 마치고도 며칠 지난 뒤였지만 현수막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노적봉 여자나무', 별 것 아닌 모습에도 목포시에서 이름 붙여 안내판을 세웠다.


'목포진' 객사 복원모습, 왼쪽으로 유달산이 보인다. 1872년 제작된 전라남도 목포진 지도에서 목포진은 원형으로 두른 관아지 일대 가운데, 성문이 있고, 성내에 객사, 내아, 군기고, 옥 등 여러 건물이 있었다.


목포진의 객사 주변 역사공원, 뒤편 언덕 중앙으로는 동백나무 고목을 식재해 놓았다.


목포교육청에서 '갓바위 터널'을 지나면 입암산을 끼고 박물관 도시라 일컬을 만큼 많은 시설이 들어서 있다. 문예역사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남농기념관, 목포문학관, 옥공예전시관, 목포문화예술회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이 한자리에 세워져 있다. 특히 목포문학관은 문학관 시설에다가 눈여겨 볼 것은 극작가 차범석관, 여류 소설가 박화성관, 극작가 김우진관, 문학평론가 김 현관 등을 따로 만들어 대구가 본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대구문협에서 발행한『문학관 톱아보기 』도서에서 필자는 "춘천이 낳은 소설가 김유정, 그 문학촌을 보고나"'란 제하에 '대구문학촌(가칭) 건립에 대한 논고에 갈음하다'라는 부제를 달아 이미 밝힌바 있다. 이상화, 이장희, 현진건, 이설주, 신동집, 구상, 이중섭 이윤수 등등 많은 문학 예술인들이 배출된 문향의 고향임에도 대구 인구의 1/10이 채 안되는 목포가 이런 점에서는 대구를 앞지르지 않나 하는 점에서 다시한번 언급해 본다.


차범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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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9.01.27 17:31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목포에 가도 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시는 군요

  • 작성자 19.01.27 22:55

    보탬이 됐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19.01.28 13:40

    권선생님 전국일주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화이팅~~!

  • 작성자 19.01.29 08:48

    힘이 보태져서 강화도로 떠나 봅니다. 고려가 강화도 천도 후에 실제 왕이 근무하진 않으나 궁궐을짓고 침실까지 마련해 베게도 갖춰놓았던 '고려 이궁' 이 마니산 아래에 있고, 강도에 있을 당시 세상을 떠난 고종의 능이 고려산에 있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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