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정을 둘러와
연일 대기가 불안정해 하늘엔 구름이 뭉쳐 날씨는 흐려도 비는 오지 않은 유월 중순 화요일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지역에 제대로 된 비가 언제 내렸는지 기억 저편에 가물가물하다. 지나간 봄에는 작년의 혹심했던 가뭄과 달리 비다운 비가 몇 차례 내려 그동안 심각했던 물 부족이 해갈되어 곳곳의 농업용 저수지도 수위가 제법 높아져 있었다. 꽃밭이나 밭작물은 물이 모자란다.
아침 식후 산책을 나서면서 소나기가 올까 봐 우산을 배낭에 챙겨 길을 나섰다. 늘 들러보는 이웃 동 꽃밭으로는 가보질 못하고 곧장 창원중앙역으로 향해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대학 앞으로 갔다. 창원천 냇바닥에는 노랑꽃창포와 달뿌리풀이 시퍼렇게 잎줄기를 불려 자랐다. 노랗게 핀 금계국은 끝물이었고 넝쿨로 뻗어나간 메가 화사한 연분홍 꽃을 몇 송이 피워 눈길을 끌었다.
도청 뒷길을 돌아 창원중앙역으로 오르니 빈 택시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하행선 KTX열차 도착 시각에 맞추어 운전기사들이 손님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진주를 출발해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려고 매표구에서 한림정 구간 표를 끊었다. 전에는 마산역에서 아침 여섯 시 전 출발한 무궁화호가 있었는데 지난 삼월 운행 시각 조정 시에 폐지되어 아쉽게 되었다.
정한 시각 도착해 출발한 열차는 진례역과 진영역에 멈췄다가 한림정역으로 미끄러져 갔다. 차창 밖 화포천 습지는 구름 낀 아침 날씨라 안개가 희뿌옇게 쌓인 속에 쾌청하지 못했다.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한림정역에 나 혼자 내렸는데 역사를 빠져나가 주택가를 빠져 들녘으로 나갔다. 예전에 봐둔 정원을 잘 가꾼 단독주택을 지나니 울타리 너머 가득한 기화요초가 반겨주었다.
한림배수장으로 가는 시전마을로 가질 않고 지름길을 택해 술뫼로 향해 갔다. 들녘은 모내기를 거의 끝냈는데 일부 구역은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는 일손이 바빴다. 이모작 논에는 우리의 삿갓과 비슷한 베트남의 나뭇잎 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요즈음 농촌에서도 외국계 아니고는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사정이라 농장주도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 듯했다.
한림 들녘에서 강둑으로 오르니 당국에서는 무성한 풀을 말끔하게 잘라 정비를 잘해두었더랬다. 드넓은 둔치에 노란 금계국이 저무는 즈음이라도 아직은 황금물결을 이루다시피 했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 건너는 밀양 명례와 오산의 강둑이 삼랑진 뒷기미로 이어졌다. 술뫼마을에 이르러 지인 농막을 들리니, 지인은 부산 자택에 머무는지 부재중이라 강변 풍광만 바라보고 나왔다.
가동마을로 가는 술뫼 둔치는 파크골프를 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이제 발길이 끊겼다. 파크골프장이 국가 하천에 허가받지 않은 시설이라 그런지 지난봄부터 당국의 규제로 드나드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전에는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하고 코스별로 잔디밭이 반질반질했는데 토끼풀이 무더기무더기 번졌다. 그렇게 많이 찾던 파크골프 동호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가동마을을 지난 들녘 농로가 김해와 창원의 행정구역 경계라는 표지판이 강둑에 세워져 있었다. 유등 배수장 근처에 이른 둔치에는 덩치 큰 싸움소가 고삐에 묶여 있었다. 눈을 껌벅거리는 모습이 순둥이처럼 보여도 성질을 돋우어 싸움판으로 끌려갈 소였다. 주인이 녀석에게 일광욕을 시키는 듯했으나 때로는 쇠뭉치를 어깨에 걸쳐 걷게 하거나 끄는 힘든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유등을 지난 유청 삼거리 한식 뷔페에서 현지 농부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원이대로에 닿으니 아직 해는 중천에 걸려 있어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으로 갔다. 지방 일간지를 펼쳐 본 뒤 서가에서 몇 권 책을 골라 대출받아 도서관을 나왔다. 아파트단지로 들어와 며칠 얼굴을 못 본 꽃대감 친구를 만나니 반가웠는데 블루베리까지 안겨주어 고맙기도 했다. 23.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