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비님이 요즘 월드컵때문에 들녁(강변역 부근)에서 파견 근무를 하시는 바람에 컴을 사용하실 수 가 없어서 오늘에야 회장님의 글을 보고 저에게 다급합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면 오디주 잘 보관하셨다가 꼭 달라고 말입니다
아주 유용하게 음용하겠답니다.
제가 생각할때는 정말 필요 없는데......ㅋㅋㅋ
조만간에 맛있는 떡 해가지구 산행에 참여할 예정 이라고 합니다.
오디주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슬비님에게는 너무나 정이 포오옥 들어버린 햇빛님들이 보고 싶어서랍니다.
그리고 회장님!
저와 슬비의 ~~일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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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초 아버님이 돌아 가신 이후에, 지금은 대학 졸업반인 딸애가, 어머님이 혼자 계신 용인 집에 할머니의 외로움을 달래 드린다고 들어가 살더니, 교통이 불편하다고 견디지 못하고 이내 학교 앞으로 원룸을 얻어서 가는 바람에 지난 해 늦여름 부터 나는 용인에서 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거실을 가운데에 두고 방 네개와 목욕탕과 주방이 둘러싸고 있는 집 구조는 생활하기 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집안에 있는 서로에게 너무 속이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내겐 다소 불편함을 주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 내 삶은 너무나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콧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공기는 물론이고 온갖 화초와 먹거리들이 나를 즐겁게 맞이 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봄이 되면서 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 정원은 계절을 바꾸어 가면서 온갖 자태를 뽐내며 나를 기쁘게 해 주었고 어머님이 수년 동안 가꾸어 놓은 텃밭에는 갖가지 먹거리들이 정갈하고 깨끗한 식탁을 꾸미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현관 문을 열고 뜰에 나서면 마당으로 난 계단 아래 잘 정돈된 두그루의 관목 양편으로 꽃들이 서로 자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국(夏菊)은 여름인데도 긴 줄기 위에 얌전히 국화꽃을 피우고 있고 온 산의 철쭉이 다 졌건만 영산홍(映山紅)은 아직 핏빛 같은 붉은 자태가 한창이다.
붉은 철쭉 보다 늦게 피는, 꽃 색갈이 흰 흰철쭉도 아직 남아있는 꽃송이가 져버린 꽃 보다는 훨씬 더 많다.
그 옆으로 며칠전 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 백합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어제 어머니께서 백합 몇가지를 꺽어 화병에 꽂아 거실 탁자 위에 놓아 두셨을 때 그 향취에 취해 나는 이꽃을 꺾어 누구에겐가 선물하고 싶어 잠시 안달이 났었었다.
백합의 향은 이름 만큼이나 남정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이미 꽃을 다 떨구어 버린 금낭화 옆에는 나로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조그맣고 예쁜 꽃들이 나지막하게 자리잡고 교태를 부리고 있다.
아~ 겨울이 오면 이 모든 것들이 황량함으로 변할텐데 하며 지레 걱정도 해 본다.
TV에서는 월드컵에 진 이태리놈들의 가당찮은 억지소리를 승자의 관용으로 받아들이자며 스페인전을 독려하고 있다.
정말 살맛 나는 날들이다.
이렇게 여유로운 삶을 즐기며 넝쿨장미가 가시박힌 가지위에 휘어지도록 꽃을 매달아 놓은 곁을 지나 텃밭으로 가 보면 온통 나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전문 쌈밥집에나 있음직한 온갖 쌈밥의 재료인 가지가지의 야채와 상치가 자라고 있고 내가 땀 흘리며 세워 놓은 고춧대에 매달려 파아란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고추이랑을 지나면 이제 막 꽃 떨어진 토마토 나무에는 토마토가 영글기 시작했고 그 곁에는 돼지고기에 쌈 싸먹으라고(?) 깻잎이 배추, 파, 양배추와 함께 자라고 있다.
봄에 어머니와 함께 이랑 위에 검은 보온 비닐 덮느라고 고생한 고구마 밭, 감자 밭에는 넝쿨이 우거져 있고 호박은 이제 그 열매를 준비하고 있다.
밭 주위에는 옥수수가 이미 턱밑까지 자라 키를 뽐내고 있으며 콩밭은 어제 말뚝을 박아 넝쿨을 정리 해 주었다.
당근은 희고 작은 모래처럼 예쁜 꽃무더기를 피워대고 있고 케일은 비가오면 우산으로 써도 좋을만큼 잎이 커져있다.
마당 옆 수돗가에는 포도넝쿨이 이미 영글기 시작한 포도송이들의 무게를 힘겨워 하고 있고 꽃 떨어진 감나무도 벌써 감이 동전 크기만하게 자라고 있다.
뒤꼍의 뽕나무에는 열매인 오디가 지천으로 달려있어 나무 밑에 비닐을 깔아놓고 매일 오디를 싫컷 줏어 먹는다.
먹다 못해 남는건 술병에 담아 과일주를 담는다.
화요일날 자아님과 통화 할 때 오디주 한병 주겠다니 사양하신다.
슬비님은 그런게 전혀 필요 없데나.....
오디주는 복분자주 보다 더 정력에 좋다는데...ㅋㅋㅋ
지난번 장애아마을 봉사때 우리집에 들른 회원들이 오디 익으면 따먹으러 온다했는데 아직 묻는 사람이 없다.
아직 오디는 많이 달려 있는데....
마당이 끝나는 쪽과, 족보있는 개들보다 더 영리한 우리 '애니'의 집이 있는 뒷쪽에 살구나무가 있어 지금 한창인 살구가 하루에 한바가지씩 떨어진다.
백혈구를 생성시킨다는 살구는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좋다는데 할머니인 우리어머니 피부가 좋은건 아마 살구를 많이 드신 때문인가 보다.
울타리쪽의 단풍나무들은 아직 짙푸른 녹색을 띠고 잎이 붉어질 가을을 기다리고 있고 봄에 잠깐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던 목련은 말없이 푸르름만 보여주고 있다.
창고 뒤쪽의 산비탈에 있는 밤나무는 밤꽃이 활짝 피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예고하고 있다.
어느 회원이 의아한 눈초리를 하고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왜 결혼 않고 혼자 사세요?"
이렇게 대답 할 수 밖에 없다.
"전, 결혼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앞으로도, 아니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