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7>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0)
[My Review MDCCLXXVII / 인물과사상사 14번째 리뷰] 이 책의 구성은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편년체 방식(연월일 시대순)으로 기술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 사이사이에 벌어졌던 '주요사건들'을 기사본말체(사건별로 역사서술) 방식으로 풀어낸 역사책이다. 특히, 미국과 관련된 '한국사'에 대한 비중도 깊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미국사에 대한 서술이 일품인 책이다. 7권에서 다룬 내용 가운데 한국사와 관련이 깊은 내용은 '해방 뒤에 분단된 한국'과 '한국전쟁의 발발'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즈음에 미국은 이미 패권국가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두 차례의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으며 '가공할 만한 힘'을 전세계에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힘은 '히틀러'를 찍어 누를 때와 '히로히토 일왕'을 압박할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독일이 패망할 즈음에 히틀러는 '자살'을 할 지경이었지만, 일제가 패망할 때에는 멀쩡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랜 친구를 배려(?)하듯 최대한 양보하는 듯한 뉘앙스가 엿보일 정도였다. 이는 전범을 다루는 '방향'에 대해서도 판이하게 달랐다. 독일은 그야말로 전쟁을 일으킨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특히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에 대해서 추호의 용서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일제의 처우는 달랐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에 대해서 관대하기 짝이 없게 단 7명에 대해서만 사형을 집행했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머지 잡범(?)들은 석방되었고, 심지어 과거의 경력을 높이 사서 일본의 주요관직에 속속 복귀할 수 있었다. 조선인을 비롯해 중국인, 만주인, 몽골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 관련자들은 '연구자료'를 미국에 고스란히 넘기는 조건으로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강연에 초빙을 받아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발표할 정도로 안락한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누구도 불명예를 받지 않았고 유명 대학과 제약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호의호식을 받으며 살아갈 지경이었단다.
오히려 해방 이후 일제의 범죄에 대한 죄값을 받은 건 '한국'이었다. 전범국가인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패망하고 분단되었어먀 마땅했는데, 오히려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맥아더의 호의(?) 덕분에 분단이 아닌 '통일'을 유지했는데, 한국은 북쪽으론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군사정권'을 만들어 신탁통치를 강요받은 것이다. 이유는 한국에서 일어날 소요사태를 단속하고 통일정부를 이끌어나갈 정도로 막강한 단체나 지도자를 내세울 수 없을 정도로 '지도부의 분열'과 더불어 '국민들의 사상적 분열'이 매우 심각했다는 분석 때문이었단다. 이는 해방이 되자 서로 일제로부터 '정권 이양'을 받겠다는 인물이 스무 명도 넘게 등장했고, 단체 또한 너무 많았다는 것을 증거로 든다. 이 때문에 한국 분단의 책임을 우리 스스로에서 찾는 경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철저한 '한국 무관심'에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한국은 분명 제국주의의 피해당사자인데도 미국 행정부는 이를 '완벽한 무지'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무시 정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군이 인천항을 통해서 입국할 때 환영하는 한국인들이 치안을 맡은 '일제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한국인을 죽인 일제경찰에 대해서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팩트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미군은 한국을 '해방' 시킨 것이 아니라 '점령'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이렇게 주둔하게 된 미군은 한국을 다스리면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보다 더욱 가혹했던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일본인들을 철저히 공부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일본을 점령한 뒤에 쥐 죽은듯이 얌전한 일본인들 부드럽게(?) 다스린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무관용으로 대응하며 '공산주의의 확산'만을 면밀히 주시하며 철저한 '반공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런 미군정의 자세는 일제가 물러난 한국에 비극의 씨앗을 남겨주었다. 바로 독립운동을 한 이들에게는 모욕감을 주고, 친일행적을 일삼았던 무리에게는 영예를 안겨 준 것이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했던 나라는 한반도의 조선 뿐만이 아니었다. 만주국을 세워 수많은 만주인과 몽골인 들도 일제의 식민통치로 억압을 받았으며, 대만도 총통을 둘 정도로 철저한 관리를 했고, 유럽 열강의 통치를 받던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제도의 식민지들을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점령을 하고 억압하고 수탈했었다. 그 가운데 일제에 끈질긴 항거를 하고 전투를 일삼고 끝까지 저항을 한 나라는 '조선'이 유일했다. 일제강점기 36년은 조선인들에게 치열한 투쟁의 나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한국인'들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고 강제 점령(?)을 강행했던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게 적절한 어필을 못한 탓으로 봐야할까? 유럽과 태평양이라는 '양대 전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머쥔 초강대국에게 우리가 어필 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이 있었겠느냔 말이다. 38선을 긋는 것도 고작 '30분간의 회의' 끝에 일방적으로 그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개무시를 하는 미국에게 우리의 어필이 통하기나 했을까?
물론, 미국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을 것이다. 바로 '공산주의와의 대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에 곧바로 '냉전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뜨거운 전쟁에서 차가운 전쟁으로의 전환은 이미 독일과 일제가 패망하기 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북쪽에 '소련군'이 진군하였고, 이미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상황에서 '소련군의 발빠른 진격(?)'은 미국으로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일제가 그렇게 빨리 항복할 줄 몰랐던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소련의 참전'을 요구한 것부터 오판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일제가 허무하게 항복할 줄도 몰랐고, 소련군이 일본 본토가 아닌 한반도로 진격해갈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소련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38도선'으로 한반도를 양분하기로 통보한 것이고, 이는 두 나라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단다. 미국은 소련이 순순히 받아들일 줄 몰랐고, 소련은 미국이 이처럼 후하게 남하할 수 있도록 배려(?)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그어져버린 '38도선'은 지금까지 한반도를 '분단'시켜 버린 원흉이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미국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미국 사회는 온통 '자신감'으로 넘쳐났고, 그런 자신감은 '힘의 과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에 '고립주의'를 외치던 미국은 이제 본격적인 '세계화'에 나서며 국력을 과시하고 국익이 되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1945년 이후 미국은 '자본주의'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전세계를 주름잡으려는 포부를 공공연하게 내비쳤다. 반면에 소련은 '공산주의'의 위대함을 뽐내며 초강대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자존심을 넘어 '압도'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미국적인 세계화에 번번히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른바 '냉전시대'다. 그리고 그 냉전의 종착점은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미국내에서는 '매카시 광풍'이 불면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데 열을 올리며,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가릴 것이 없이 탄압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그 광란의 분출구를 빠르게 한반도로 '유도'하는 양상이었다. 그에 반해 소련은 한국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탄탄히 하고 있었고 말이다.
이런 와중에 이승만 정권은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며 미군에게 무기를 달라고만 요구했다. 이승만에게 그럴 듯한 대안이라도 있었다면 미국이 '무기'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 못지 않게 '반공주의' 노선을 확고히 했던 이승만이 고마워서라도 도와주는게 인지상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만은 언제나 말로만 앞세웠고, 실제로 '북진통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오히려 '미군철수'와 동시에 쓸만 한 무기로 일체 회수해가버렸다. 무기를 남겨두었을 때 이승만이 저지를 무모함을 우려한 탓이다. 거기에 '애치슨 라인'까지 그으며 한국에서 철저히 발을 빼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냉전'이 새로운 '열전'으로 전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할 수만 있다면 소련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발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은 참전했고 '노근리 학살'과 같은 인종차별적 행태는 한국전쟁을 '이보다 더한 지옥은 없었다'는 언론의 보도보다 더 끔찍하게 한반도를 달구었다. 그 참혹한 전황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서울수복'으로 일단락이 되는 듯 싶었다. 당시 트루먼 미대통령은 '38도선의 회복'으로 전쟁을 일단락 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선넘는' 무모함은 전쟁을 장기화 시켰으며 중공군의 참전을 불렀고, '흥남철수'와 '일사후퇴'로 전황은 더욱 급박해졌고 전투는 더더욱 치열해졌다. 서로 물고 물리는 악전고투 속에 양측의 '희생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전선은 사나운 맹수의 아가리처럼 들쭉날쭉 하길 반복했다. 이런 와중에 맥아더는 중국본토에 원자탄 26발을 투하하여 공산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이미 세워두었단다. 이를 내심 바랐던 것이 이승만이고 말이다. 허나 맥아더의 문제점은 '한국전쟁'을 통해 전세계 공산세력을 궤멸시켜 냉전까지 종식시키겠다는 야심에 있었다. 이에 반해 트루먼은 전쟁은 '한반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둘의 대결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승자는 맥아더가 아니었다.
만약, 맥아더의 야심대로 중국 본토와 만주에 원자탄을 떨어뜨리고, 대만의 장제스가 본토 진격을 했다면, '한국전쟁'은 곧바로 종전을 했고, 이승만은 통일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이는 일제의 무조건 항복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기 때문이라는 환상(!)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일제는 이오지마와 오키나와가 함락되고 매일 반복되는 미군의 '대공습'으로 이미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서두른 것도 아니었다. 항복을 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미군에 피해를 안겨 유리한 고지를 점한 뒤에 '협상 테이블'에서 항복을 조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련군이 참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서둘러 미국에 항복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속셈으로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이다. 그런데 중공군을 지휘하는 모택동(마오쩌둥)은 항복할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원자탄 26발을 얻어 맞으면 전쟁이 종식되고, 전세계 공산세력도 함께 궤멸할 것이라는 환상은 빨리 깨는 것이 다행이었던 것이다. 맥아더의 구상은 오히려 소련의 한국전쟁 참전을 불러 일으켰을 공산이 크며, 그로 인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와중에 '한반도'는 어땠을까?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전이 되어 한반도는 조금이나마 평화로웠을까?
이와 더불어서 맥아더를 '한국전쟁의 우상'으로 삼는 것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면서 백인우월주의자였다. 실제로 그는 항복문서를 조인한 '일왕'을 대신해서 일본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것을 즐기던 고루한 인간이었다. 전근대적인 정복자의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전쟁'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을 넘어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수호받는 것이 마땅한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단 말이다. 만약 그가 '한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일본에 이어 한국마저 '자신의 왕국'으로 삼았을 것이다. 무능한 이승만은 그런 맥아더의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콩고물 얻어 먹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물론, 과거에 젖어서 현재를 망각하고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면 곤란하다. 남북분단에 이어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너무도 아픈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안정'을 걷어찰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다시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은 '지상천국'으로 여겨질 것이다. 절대로 전쟁만큼은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일어나선 안 된다. 우리에게 '미국사 공부'가 필요한 까닭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닌 대한민국의 이익을 우선하기 위해서다. 철저히 공부해서 우리가 당한 만큼(?) 미국을 이용해먹자는 거다. 그들이 우릴 이용해 먹는 것이 '국제관계의 민낯'일텐데, 우리라도 당하고만 있어야겠느냔 말이다. 제대로 빨대 꽂고 쪽쪽 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오늘날의 미국은 절대로 '대한민국'을 버릴 수 없다. 대한민국을 잃으면 미국도 잃을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갑질'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역사를 꿰뚫어보면 그 방법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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