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즐거운 설날이죠. 다들 떡국은 잘 드셨나요?
저는 떡이 두 개만 든 만둣국으로 맛나게 먹었습니다. 전 떡보다 만두가 더 좋아요. 헤헤!
만두는 복주머니의 의미를 닮고 있어서 많이 먹으면 복이 들어온다네요.
제가 떡국이나 만둣국을 끓여줄 수도 없으니, 대신 설날 선물로 책 추천을 준비했습니다. 무려 3권이나 되는 시리즈 도서죠.
어때요, 풍성하죠?
도서명: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저자: 데이비드 발다치
* 이 소설은 시리즈로 1편과 2편은 넓은마을 도서관 1번 소설에 4번 추리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또 3편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3번 추리 부분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이 책을 들게 된 건 순전히 소재의 탓이 컸다. 무려 과잉기억증후군과 공감각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나온다고 하니, 어찌 그냥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으리오.
두 능력 다 은근슬쩍 동경하고 있는 재능인지라 소개글을 보고 귀가 번뜩였다. 게다가 추리 수사물이 아닌가. 범인을 검거하는 데 공감각과 과잉기억증후군이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퍽 궁금했다. 그래서 이 시리즈,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괴물이라 불린 남자’, 끝으로 ‘죽음을 선택한 남자’를 주르륵 다운받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리플레이, 모든 단서는 그의 새파란 기억 속에!
“영화 보다가 일어나 나가고 싶었던 적 있지?”
“당연하지, 여러 번.”
“그런데 영화를 끌 수 없다면 어떻겠어? 그냥 일어나서 자리를 뜨는 게 불가능하다면? 네 머릿속에서 계속 상영된다면?”
주인공은 에이머스 데커, 전직 형사였던 남자이다. 그러나 지금은 폐지 상자더미에서 자는, 스트레스성 폭식증에 시달리는 뚱뚱하고 무기력한 남자일 뿐이다. 현재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삶이 하루빨리 끝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완벽하기에 끔찍한 기억, 새파란 죽음이 가득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그렇다. 에이머스 데커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이다. 20대, 미식축구 선수시절 겪은 사고로 숫자에서 색을 보고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서 특정 색깔을 연상하는 공감각과 더불어 과잉기억증후군을 얻었기 때문이다. 재활 후 경찰이 되고 따뜻한 가정도 이루었지만 어느 날 밤, 의문의 살인범에게 아내와 딸, 처남을 잃은 뒤 경찰을 그만뒀다.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아내와 딸이 죽은 채 발견된 그날 밤이 생생하다. 희석되거나 바래거나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더 끔찍한 건 그의 화려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살해한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뒤로 현재의 어느 날,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나 자수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의 이름은 세바스찬 레오폴드. 과연 그가 데커의 가족을 죽인 범인일지 의심하던 에이머스는 변호사로 사칭해 면회를 한다. 그리고 자수한 남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직감을 받는다. 진술의 모순과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을 잡아냈던 것. 며칠 뒤 그가 졸업한 맨스필드 고등학교에 총격사건이 발생하면서 데커는 그의 가족을 살해한 사건과, 학교의 총기 사건, 허위로 자수한 사건까지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직관을 느낀다.
에이머스는 열심히 사건을 수사하지만 번번히 범인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해서 몇 번이나 고배를 마신다. 책 중후반까지도 정답에 다가가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범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범행의 동기가 무엇인지 독자도 같이 답답함과 궁금함에 애를 태우게 되는 전개를 자랑한다. 그나마 레오폴드와 함께 밸린다 와이트라는 인물이 수면으로 드러나지만 그저 그뿐이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수사하는 데커가 결국 단서를 찾아가는 걸 보면 뭔가 좀 되려나 싶어 희망이 반짝 솟는다. 하지만 또 범인이 에이머스가 단서를 찾아낼 걸 예상하고 남겨둔 메시지를 보면 맥이 빠진다. 단서는 에이머스 데커의 기억, 그가 미식축구 선수에서 은퇴하고 살아온 발자취에 있다. 범인은 어디도 아닌, 그의 기억 안에 존재한다. 파란 죽음과 숫자 3으로 가득했던 기억, 과연 그에게 악몽을 선사한 인물은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밸린다 와이트와 세바스찬 레오폴드와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미국인 치고 이건 좋아, 하고 말할 때 ‘이스 굿’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스펙이 대단하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바라마지 않는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능력을 탑재하고, 예술가라면 한번쯤 갖길 소망하는 공감각을 가진 인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살인범을 잡지 못했고, 그 무기력감에 인생 포기자가 된 점이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에이머스 데커에게 다시 기회가 주워진다. 그의 가족과 인생을 망쳐버린 인물을 찾아내 잡는 것.
그 때문인지 독자가 추리할 만한 단서나 배경 지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사건은 순전히 주인공의 것이라고 열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읽는 내내 데커의 기억을 리플레이하고, 리플레이하고, 또 리플레이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게 된다. 단서가 그의 기억 속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마치 조각 퍼즐을 맞추듯 기억 속에 조각을 착착 끼워맞추고 단서를 하나하나 모으는 주인공. 그럼에도 범인은 그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가는 여유를 보인다. 그래서 똑똑이 vs 똑똑이 대결에 그냥 팝콘 들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방청객 모드가 되어서라도 끝까지 보고 싶어진다.
너무 주인공 혼자 하드캐리하느라 주변 인물들의 능력이 부각되지 못한다는 게 이 소설의 흠이라면 흠이다. 예시를 들자면 FBI 보거트는 택시기사처럼 에이머스를 제트기로 이리저리 태워다주는 것 말고 어떤 수사력을 어떻게 발휘한 건지 감이 안 온다. 저널리스트 재미슨은 작은 자동차로 에이머스를 이곳저곳 태워다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막상 중요한 현장에서는 차에서 대기를 탄다. 동료 형사 랭커스터는 에이머스가 혼자 단서 다 찾은 후 연락하면 경찰 병력을 부르고 폴리스라인 쳐주는 역할인 것 같다. 모든 단서와 숨겨진 의문점들은 에이머스 혼자 귀신같이 다 알아내고 다른 사람들은 거의 병풍으로 등장한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이유는, 소재의 참신함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필력이 그 단점을 보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절대 쉽게 밝혀지지 않는 범인의 존재감도 한몫을 한다. 이 범인이 대체 누구고, 무엇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는지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보게 만든다.
본인처럼 눈에 불을 켜고 힌트를 찾을 독자를 위해 덧붙인다. 단서는 에이머스 데커가 탐문 수사를 진행했던 어떤 펍, 거기서 대화를 나눈 바텐더의 말 속에 있다. 또 하나, 세바스찬 레오폴드와 만나 나눴던 대화에도 힌트가 숨어 있다. 데커는 그를 기억하고는 있지만 감을 좀 늦게 잡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잉기억증후군이 결코 완벽하지 않고, 기억은 왜곡될 수 있기에 불완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서술 트릭을 쓴 셈이다. 이런 무한 리플레이의 반복이지만 일단 재미있으니 추천한다.
끝으로 이 소설은 은근 사회파적인 면모를 담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것이 나온다. 한국 고문헌에 보면 ‘사방지’라고 칭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남자이자 여성이고, 여자이자 남성인 사람을 지칭한다. 즉, 한몸에 두 가지 성적 특징이 나타난 인물이다. 일종에 유전적 질환으로 수술을 통해 하나의 ‘성’을 선택해 살아가게 한다. 상당히 드문 캐이스기 때문에 괴물 취급은 물론 박해도 많이 받았다. 소수는 때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원인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범인인 밸린다 와이트이자 빌리 와이트에게 동정이 간다. 여자로 살기 두려워 남자가 된 그. 그렇다 해도 와이트가 벌인 짓에서는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선 인물은 그냥 콱, 동정도 그에게 했다가는 빛이 바랠 인물이니..... 어쨌든 주인공이 쭉쭉쭉 활약하는 모습을 좋아한다면 강추한다!
괴물이라 불린 남자, 사형에서 돌아온 그, 범인과 단서는 그의 과거 안에!
“무고한데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단 한 명도 너무 많죠. 그리고 분명히 한 명은 넘을 테고.”
이 소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이은 후속작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에이머스 데커, 그는 모종의 사건을 겪은 후 FBI 자문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보거트 요원이 근무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다. 그러다 라디오에서 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보다 앞선 시점, 이 작품에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멜빈 마스, 전직 프로 미식축구 선수였던 남자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형을 앞둔 죄수에 불과하다. 별칭은 다름 아닌 ‘괴물’, 소설의 제목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가 바로 멜빈 마스인 것이다. 그는 부모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수로서 20여 년을 감옥 생활을 했다. 그리고 사형을 당하기 직전, 그가 전기의자에 앉기 바로 직전에 구원을 받는다. 그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한 인물이 나온 것이다. 그 역시도 사형을 앞둔 죄수 신분이었다.
우연히 라디오로 이 뉴스를 접한 데커, 그는 마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FBI 미해결 사건 전담팀과 함께 멜빈 마스에 얽힌 사건을 수사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데커가 좀 강짜를 부린 감이 없지 않다. 보거트와 토드 밀리건 FBI 요원, 전직 저널리스트 재미슨, 임상심리 연구가 대븐포트, 그리고 공감각과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전직 형사 에이머스 데커, 그들은 멜빈 마스와 함께 그의 과거를 되짚기 시작한다. 사건의 단서는 멜빈의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억도 아닌, 타인의 기억, 그 안에 숨겨진 사건의 실마리. 과연 데커는 ‘괴물이라 불린 남자’ 마스에게 얽힌 사건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아기 돼지 삼 형제’요. 아버지는 자신이 커다란 못된 늑대라며 아기 돼지 세 마리를 잡아먹겠다고 하셨어요. 가끔은 너무 몰두해서 좀 무서울 때도 있었죠.”
이 작품은 누가 무슨 이유로 멜빈 마스에게 누명을 씌웠는가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하필 결정적 시간, 애매한 장소에서 차가 퍼지는 바람에 용의자가 되고, 알리바이에 부실한 부분 때문에 감옥생활까지 한 마스, 그 결과 황금 같은 젊음과 인생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물론 자칫 그의 목숨까지도 잃을 뻔했다. 사형제도의 폐단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사형 판결은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일부 사람들은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정말 파렴치한 범죄자를 보면 저런 놈들은 콱 이 세상 하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형집행은 연기되고 있다. 이 소설은 그런 문제를 가벼운 잽을 날리듯 훅 지적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는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원한인가 추측했고, 가족 중 누군가가 복수를 부른 건 아닐까 예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교도소 내의 비리를 다루고, 정경유착은 물론, 인종차별, 나중에는 KKK단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이 단체가 뭔가 싶은 독자를 위해 대충 설명하자면, KKK단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범죄 테러 집단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삐뚤어진 단체인 거다.
사건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게 눈에 확연하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을 캐면 캘수록 그와 함께 부각되는 건 멜빈의 부모님이었다. 흑인 어머니 루신다, 백인 아버지 로이. 그들에게는 아들 마스가 모르는 과거가 존재했다. 루신다, 그녀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를 당했던 기구한 사연을 지닌 노-예였다. 한편 로이는 인종차별에 앞장섰던 테러리스트 비슷한 인물이었다. 그런 로이가 루신다를 만나며 사랑을 느꼈다. 그것은 로이 같은 남자가 보통은 하지 않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덧붙여 그는 멜빈의 친부가 아니었다.
그런 온갖 사실이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실마리와 새로운 의문의 제기도 함께 뒤따른다. 데커가 우연히 발견한 미식축구팀 사진. 그 프레임에 담긴 인물들은 현재 주요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부국방계약업체를 창립한 CEO, 경찰청장, 그리고 상원의원까지. 그들과 로이를 연결하는 고리를 찾기 위해 데커를 비롯한 FBI 팀원은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멜빈 마스는 자신의 기억을 열심히 헤집는다. 그러다 뜬금없이 떠올리게 된 건 아버지 로이가 가끔 읽어주었던 책이었다.
덩치 큰 터프한 남자가 ‘아기 돼지 삼 형제’를 동화구연하다니, 쉽게 잊히지 않을 기억이긴 하다. 그런데 정말 공교롭게도 그 동화책에 단서가 숨어 있었다. 혈연, 지연, 학연의 전형적인 권력 비리. 자신의 죄값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고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 과연 그들은 얼마나 있을까?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심리보다 사건 그 자체에 주목한 소설이다. 그러니 인물의 행동에서 그의 내면을 유추해야 하는 게 관전 포인트이다. 너무나 이상적인 결말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보기 좋은 결말이긴 하다. 단순하게 시작한 사건은 계속 커지고, 확대되고 넓어지고, 칸을 넘어 다른 이야기로,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종결한다.
보거트와 토드 밀리건 요원도 없고 대븐포트와 재미슨 팀원도 없는 곳에서 데커는 멜빈과 함께 거의 죽기 직전에 살아난다. 막판에 로이가 죽은 건 좀 허망한 것 같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대브니는 총을 들었고, 버크셔를 쐈으며, 그리고 나서 그 자신도 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은, 왜 그가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였다.”
FBI의 거점, 후버빌딩으로 가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 뒤를 걷고 있는 한 남자, 그는 바로 에이머스 데커이다. 후버빌딩 앞, 그리고 에이머스 데커의 정면, 사람들이 있는 도로 앞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총으로 쏘고, 그 총구를 돌려 자신의 머리에 댄다. 남자는 겨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이 세상을 뜬다. 여자는 물론 총격 장소에서 사망했다. 남자의 신원은 월터 대브니, 그는 아름다운 부인과 4명의 딸, 멋진 집과 부를 축적해주는 회사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였다. 더불어 그의 회사는 FBI의 도급을 맡은 업체이기도 했다.
한편 여자의 신분은 앤 버크셔, 그녀는 59세 미혼으로 가톨릭 학교 교사이며 호스피스 병원의 자원봉사자이기도 했다.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두 사람. 대체 왜, 대브니는 버크셔를 죽인 것일까? 그것도 다른 장소도 아닌, FBI의 거점 후버빌딩 앞에서?
대커는 사건의 목격자이자 수사관으로 그 수수께끼에 뛰어든다. 물론 미제사건 담당 팀인 보거트와 재미슨 토드 밀리건도 동참하게 된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앤 버크셔라는 인물에 대한 의혹이 드러난다. 그녀는 200만 달러 이상의 펜트하우스에 고가의 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가톨릭 학교의 대리 교사가 말이다. 더구나 자산이 2천만 달러 이상이고, 10년 이전의 과거는 조회를 해도 나오는 게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수상한 생활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한편 월터 대브니가 머리의 종양 때문에 6개월 시한부 인생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시한부인 삶이 분해서 그냥 미친 척하고, 묻지마 총격을 한 다음에 자살을 한 것일까? 그럼 앤 버크셔는 대체 무슨 사정일까?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신청했던 대상일까? 대체 난데없는 후버빌딩 총격 사건의 전말은 무엇일까? 죽음을 선택한 남자 월터 대브니는 어째서 죽음을 선택했던 걸까? 그리고 죽은 앤 버크셔는 왜 죽어야 했던 걸까?
“오랫동안 자신이 누군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어느 날 깨닫게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될 때가 있다고요.”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일명 데커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그래서 지난 작품에서 나왔던 인물이 이어서 등장한다. 1권이 다르고 2권이 다르고, 3권인 지금은 캐릭터들도 나름 자리를 잡았다. 큰 사건을 거치며 대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적어도 ‘협력’이라는 개념의 실천법을 학습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여러 군데에서 빈축을 사긴 하지만 말이다.
새로운 그의 변화 중 하나는 에이머스가 재미슨과 공동 건물주가 되어 함께 살기로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결혼한 건 아니고, 멜빈 마스가 구매한 건물의 관리인이 된 것뿐이다. 총격 사건 수사 와중에 그나마 훈훈한 면이라 하겠다.
그와 별개로 사건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월터 데브니의 살해 및 자살 동기도 못 잡겠고, 앤 버크셔의 이중생활 수수께끼도 감이 안 잡히는 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DIA, 국방정보국이 하퍼 브라운 요원을 통해 FBI 수사에 은근한 압력을 가하는 게 아닌가? 수사 독촉도 아니고 손 떼라는 압박이다. 국제적 스파이와 얽힌 사건이란 말인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 그나마 보상 개념인지 데커 팀에 새로운 인원이 합류하게 된다. 바로 ‘괴물이라 불린 남자’의 멜빈 마스 되시겠다.
건물 세입자들 중 눈에 띄는 부자가 있었다. 보면서 사건에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엮이는 듯 싶었는데, 뒤로 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쏙 빠져 버렸다. 그들은 멜빈의 화략을 위한, 일종의 무대 장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점이 좀 아쉽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 데커의 설득으로 하퍼 브라운 요원도 FBI 수사에 한 팔을 거들게 된다. 그러나 사건은 중반부를 지날 때까지도 영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대브니와 버크셔를 조사할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은 뭔가 대단한 세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 국가의 주요한 기관과 긴밀한 일을 해왔던 대브니의 지난 시간들이 스파이로 활동했던 이력이 아닐까 하는 의심. 그리고 버크셔 역시 스파이를 관리하던 책임자급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의혹. 어찌어찌 진실에 다가가기까지 원점으로, 또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이었다. 대브니의 집은 정말 문턱이 닳도록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사건의 베일이 한꺼풀씩 벗겨질수록 그들을 압박해오는 거대한 세력을 감지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는, 한 걸음 나아갔나 싶으면 두 걸음 물러서는 것 같네요."
"이따금 모든 사건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시리즈 2권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에서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것을 보고 이 작가는 스케일을 불리는 데 뭐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3권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그보다 몇 술은 더 뜬다. 러시아 마피아가 나오질 않나, 국제적 스파이 첩보 작전이 등장하지 않나, 나중에는 국가 사이에 이해관계까지 얽히고, 대통령을 향한 테러로까지 귀결된다. 그나마 전작에서는 미국 내에만 국한됐는데, 이번 작품은 전 세계급이다. 만약 시리즈 4권이 나온다면, 이번에는 우주적인 스케일이 아닐까?
과연 해결될까 싶을 정도로 원점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사건이더니, 막판에 가서는 확 뚫고 내달리는 맛이 있다. 수사물답게 어쩌면 식상해질 수도 있는 스토리 진행에 여러 가지 요소를 첨부함으로써 또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면도 제법 돋보인다. 특히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작가의 배경지식에는 정말 놀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스케일이 너무 커서 독서하다가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때도 종종 있다.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과장이 지나친 거 아닌가 싶은, 그런 인상이 드는 것이다. 추리 수사물이기보다 첩보물 같다는 느낌도 든다.
또 데커의 능력 중 공감각의 비중이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그나마 1권에서는 곧잘 나오던 공감각 묘사가 2권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파란 죽음으로 등장하고, 3권에 이르러서는 ‘살인 현장 묘사’로만 굳어졌다. 과잉기억증후군은 데커가 회고하고 떠올리고, 그러면서 능력 활용을 보이는데.....
이쯤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총평을 적자면,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즐길 요소가 더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