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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똥이가 병신도의 쪽발이 사학으로 인해 "신"도 잃어먹었습니다.
즉 辰國[신국]이라는 명칭을 쓴 적도 없는데, 마치 이를 '진국"이라고 하는 망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쓴 나라의 명칭을 國으로 해서 써도 무방은 하나, 가만 들여다 보면 후례자식들, 젊은 역사학자 모임이나, 21세기 환까아이들의 놀고 있는데 당혹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마치 씨족싸움하자는 것으로 우선 倭鬼 魏는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신한조선땅에서 신한, 신라를 무시하고 부정[歪]하는 작태는 묵과할 수 없는 씨족의 전쟁으로 민족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백제 8대성이 없는 신한지지에서 엿같이 "마한"이라고 만들어낸 만행은 엿중에 엿 개똥엿이다.
▲ 단국대학교 심재훈 교수(왼족에서 세번째)는 이날 토론발표를 하면서, 자신은 "단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른다."라고 하였다. 심 교수에 따르면 고조선은 존재하지 않았고, 위만조선만 존재하다가 한나라에 멸망당하고 끝나 버린다. 특히 "만주에는 수 많은 종족들이 날립하였는데 고조선도 그 종족 중의 하나가 아닌가,"라고 주장하였다. |
沈 재훈이라는 아이는 윤내현교수의 애제자였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마치 올바른 한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친 놈이 지랄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송호정의 엿조선보다 더한 "존재 無" 민족주의사학자 사이비사학자들의 조작이다는 민족 한민족 모멸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내밷어놓고는 웃고 있습니다, 반한민족학자가 아니고 쪽발이 개쪽 심나라 심까의 개쪽소리다.
1. 단국대학교, 배달나라로 倍達은 白達/伯達/朴達 등 위서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줄기차게 즉 우리나라 국호로 배달나라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위서라는 곳에 우리나라 고조선의 나라를 조선이라고 불렀다, 이는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조에서는 庚寅년 기원전 2311년, 始稱朝鮮이라고 나옵니다, 이에 대해 이는 "나라"를 朝鮮[됴션]이라고 칭한 것이다, 처음으로 비로소 始입니다. 즉 남들, 중국 짱골라야 어이되었든 우리는 "나라"라는 말, 순우리말로 하나의 "나"와 "라"로 이는 볕/밭 누리, 천지라는 우리말로 나는 마고지나의 "나"로 나 日로 본다입니다, 나라는 것은 나 日이고 光[빛]을 상징하는 우리말이고 문자입니다, 라는 羅라고도 하는 향찰문자로 향찰문자는 신라때 만든 것이 아니고 고조선에서도 우리나라 말을 한문이라는 틀로 우리가 우리문자로 한문/一文/大文이라고 한 것이고, 한자는 一字/大字로 우리나라 소리로 쓴 것을 말합니다.
즉 居西干, 次次雄, 尼師今[尼斯今], 麻立干은 언듯 보기에는 촌스러운 용어로 보이나, 王의 칭호로, 우리 향찰문자입니다, 즉 이러한 것은 버릴 것이 아니고 "역사"연구, "한국어"연구의 중요한 사료이자 자료이지 신화집이나 이 어녕처럼 "삼국유사는 신화집"으로 역사서는 아니고 "신화"를 조작만들어낸 일연 돌쭝의 신화집이라고 하면 개소리 왈왈 닭대 꼬끼오하는 스똥이 테러입니다.
이는 전혀 정사라고 인정도 못하겠다는 것으로 三國史記 조차도 삼국건국의 시점도 인정을 안하고 자기들 멋대로 기리사독교인의 서구고등 역사학적 기법이라고 마치 마르크스-레닌대학 졸업자 박헌영역사문제연구소?의 공산주의 역사연구방법, 송호정이 젊을 때 잠시 놀던 공산주의 "유물론적" 실증주의 사학, 랑케의 실증주의사학이 아닌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실증주의에 입각한 민중사학과 진보사학이라고 하는 사회주의, 유물론적/유적론적 실증주의 역사학의 놀고 있는 역사학으로 "기리사독 유일, 유물만 인정하는 세계역사학의 주가 "바이블" 유태역사서"로 알고 있는 병신이 지랄하사 날라다니는 수퍼똥개가 유일신이다는 역사학자들이 지식사회, 최첨단 과학시대에 창조역사학, "태초에 엘로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Genesis] 제1장 1절을 "창조과학"이라고 하니, 이는 擬似과학입니다. 영어로 뭐라고 한다? Pseudo Science/History입니다, 이를 슈도 과학, 역사라고 해도 세계의 역사학자나 과학자들은 이 용어를 인정합니다. 즉 뭐냐? 과학이라고 하고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과연 태초 비기닝은 언제인가? 년대입니다, 둘째, 엘로힘은 인격신 남성신칭이라고 하고 복수형이나 이는 "장엄형, 신칭의 엄숙성부여"칭이라고 하더라도 인격신임에는 달라지지 않는데 과연 "엘로힘"은 엘부족신들이라는 엘족의 지어낸 조작된 이름이 아니냐? 크리에이터, 창주조라고 하더라고 엘족을 위한 이름이다, 엘만의 나라, 즉 천지가 열린 개천과 같이 나라를 열었다는 의미다로 해석합니다. 이는 과학적인 방법보다는 선험적, 이성보다는 감성, 신성이라는 의미로 신화로 엘족의 "신화"로 세계인류사나, 과학, 지구역사, 지구의 발달사와는무관한 엘신화학으로는 가능할 뿐이다. 세째 창조라는 말은 과학에서는 성립이 안되는 것으로 "진보" 일정한 다윈의 진화론처럼 일정한 단계를 거쳐서 시간의 흐름성이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뻥하고 나와 6일만에 천지, 대기. 광명 낮밤, 동식물 인간등을 창조하여 피조물로 피조물을 우상금지라는 모세의 10계명까지 이는 일정한 역사성보다는 신화성으로 경전이라고 하더라고 역사서는 아니고 "신화" 유태인의 민족신화로 신화적인 영역으로 모세5경은 신화집으로 구분합니다, 그 다음의 내용이 유태민족의 역사서로 족보, 문화, 사상, 철학, 문학 등등 예언등이 나오는데, 이는 역사서로 인류역사서가 아니고 일개 소국가 엘족의 "이스라엘 건국기"로 그 흥망성쇠를 그린 것으로 마치 세계 최고의 역사서인양 놀고 있다가 한방 얻어터집니다, 그 위에 수메르문명이 그러자 수메르멸망후, 기원전 2000년후 남우르의 아브라함[기원전 1840년이라고 하나 성서학자는 기원전 1900년 즉 수메르멸망후로]을 종교의 아버지로, 즉 교종, 교조로 "이슬람교"-모세5경 등의 그대로 가지고 있는 코란경-, 유태교, 기리사독교 -천주교와 개신교의 기원이 된다고 봅니다, 즉 성서라는 것은 구약의 경우, 모세5경은 이들 서양종교의 기원의 교리와 경전으로 "유일신" 창조의 신화를 가지고 있고 바이블은 유태 역사서일뿐 구약으로 고약이 아니듯이 구약으로 기원전 1050년경부터 유태 벼리기, 족보기 서기로 일본서기와 같은 일개 민족의 탄생과 명멸의 기록일 뿐이다고 합니다.
-구약의 역사서: 유태의 민족족보 역사서일 뿐.
송호정은 2000년대부터 '단군, 만들어진 신화'다, 즉 이는 쪽발이들, 특히 일제신민 이가 병신도이래로, 기리사독교 이기백-김철준-노태돈-송호정으로 이어지는 개신기독교인 한국사학자들이 역사왜곡으로 이가 병신도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기리사독만세만을 외치는 이상한 나라 엘리스론이 등장하였습니다, 완전 기리사독교 역사학자는 이 만열을 필두로 "기독교와 한글" 등 완전 기리사독교역사학으로 "한국기독교학"이라고 역사학자 전공인데 모든 한국학을 기독교학을 중심으로 역사해석하는 골수 기독교 역사학자들로 옥성득은 미국 UCLA 석좌교수라고 해서 "한국 근현대사, 기리사독교를 빼고는 서술한 것이 없다."는 과감한 도전장을 냅니다, 즉 모든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한 것도 유태한인 기독교의 덕이고 모든 것이 옥황상제인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근현사는 물론 준비된 이스라엘 유태인이 한국인으로 역사화된 것이라는 반미친 놈이 지랄하고 있습니다, 한국학의 맹주, 철학적 사상적 맹주로 "與猶堂[더불어유태당]의 쓰레기 500권의 여유당전서 등이 한국 조선후기 실학파, 한국학의 사상가의 주류라고 소개하고 현 한국정당 및 역사학계는 일개 귀양살이하던 사람이 실증주의 지리학자, 역사학자라고, 송호정같은 기리사도교 장로님이 말하길, 한사군의 한반도에, 한국실학자, 더불어유태당 여유당 당나라 정가 약용께서 我邦疆域考, 방은 소국으로 한문을 아는 초딩은 자신의 나라를 쓰테이트라고 연방의 한 소국이라고 하질 않습니다, 병신이 나르샤 문맹국인이 되샸네.입니다.
전혀 참고할 가치도 없은 일개 귀양살이 이씨조선의 모화사관에 젓은 이좃시대 유학자의 역사서를 가지고 이가 병신도가 아니고, 이좃의 노론, 송나라 송가 시열, 송자, 송쥐새끼가 말씀하셨다 기자조선이 우선이라고, 주자가례, 중국의 신이 우선이라고, 이에 반발한 영남학파의 허목등이 아예 송시열의 아가리에 사약을 때려넣었다가 당파싸음의 도화선으로 서인의 노론이 다른 사색당파를 이잡듯 죽여버린 노론의 세상 조선후기 정조의 시대가 열렸다, 개똥쥐바퀴, 서학의 총애였다가 다시 박해로 이유는 성균관유생에게 혹세무민 서학을 언문으로 정리한 것을 유포하다 걸렸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서학의 집대성자가 "與猶堂" -더불어유태당으로 한문, 한자, 가림어의 파괴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아학편"으로 구한말, 지석영 등의 기본 한문, 언문교과서, 외국어교과서는 천자문/백화문이 아닌, "아학편"이고 천자문비평으로 조선시대 훈몽 초딩 국어교고사서는 1527년 최세진의 "훈몽자회"인데도 그 내용이 너무 잘되어 있어, 알리면 안된다는 서학도 더불어유태당 당나라 정가 약용과 유림, 서학, 그리고 개신개화당의 말세 광유, 미친 선비들은 동몽선습- 국사교과서와 함께 훈몽자회-국어교과서를 숨기는 결과는 가져왔습니다, 99% 한국인은 우리나라 한자교습서가 "천자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일진왜란시, 쪽발이는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전부 수거하여, 쪽발이 한자 교습서로 사용하고 판본이 전부, 일본에 있는 기현상, 즉 초기판본, 임란전 판본은 전부 쪽발이가 소장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이 어녕의 개소리 천자문의 들으면 학을 띠는 소똥이 테러수준으로 우상파괴가 아니고 백제왜만세라는 말도 안되는 천지현황은 누르 황, 즉 누리 황인데 이를 똥눌 황으로 누르다 壓으로 糞壓, 분압, 똥누를 황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고? 안되는 줄면서 왜그랬을까? 주역이랍니다, 완전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검을 현, 감, 검은 神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즉 玄妙=神妙 玄武=神武 등 북이기도 하지만 신이라는 천은 신이고 천지, 신이 사는 곳, 신누리다는 의미로 천지는 [신] 누리라고 누리라고 하는 우리말로 해석하라고 하는 것을 무슨 가믈 한다고 이를 검은 색이라고 하고 1885년 언더우드의 만행 가믈촌 당나라, 국목으로 신목이 있는 가믈촌이 神村이라는 것을 알고는 700년 당나무르 베고 배제학당터를 만들고 기뻐 날뛰고 가믈촌을 신촌으로 新村이라고 하여 현 연대와 이대의 홍대촌이 전부 개신교 新村이 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려면 별 짓을 다한다, 당목은 국가의 안녕의 비는 기원하는 나무로 700년 당목을 뿌리째 뽑아 학원을 세우고 기리사도교의 선교가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 명동, 명당으로 사람이 살 곳이 아닌 태극의 명당에 명동성당, 성당, 당은 천신감림당인데 이에 천근으로 꽂아, 맥을 막았습니다, 다행히 100년이 넘어, 그 태극맥이 옆으로 다시 흘러, 국통맥, 즉 혈맥이 흘러나고 있어 다행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광복도 보지 못할 국맥을 당자리마다 천주교가 교회를 성당으로 천왕당 자리를 잡아, 철심으로 꽉꽉 박아놓았습니다. 이는 국가 지리혈을 막는 것으로 명당자리에는 철심을 박는 것이 아닙니다, 철심으로 심자가로 태극의 알자리에 못박고 있는 미친 놈, 유다동식이도 있으니, 가관이 아니고 주술로 맨날 왜 할 일이 없어서 삼태극, 태극의 알자리에 십자가 못박는 그림, 악마부흥회를 하고 있냐고 물어봅니다, 오늘도 하나, 내일도 하나, 죽을 때까지 그린다니, 참으로 대단한 유태인들 유다씨족입니다, 왜 저들 류씨가 유다이고 싶은지, 개봉 고려 개경때부터 유태인이라고 하는데 유다씨가 柳기 일부 성씨를 장악하고 내려온 것은 아닌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보통 류씨라고 하면 정통인데 류씨가 유이길 원하고 유다석근, 유다영익, 유다영모, 유다동신이라고 아예 제발 구분 좀 하자고 제안합니다.
지금까지는 방어전이고 앞으로는 중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동이는 배달나라입니다, 국호라는 의미로 우리는 우리를 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민족칭은 하늘의 한/광명은 桓이고 우리는 사람을 이라고 합니다. 즉 중국아이들이 人으로 혹은 仁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로 동이는 동방의 인, 사람으로 人혹은 仁이라는 짱골라가 우리를 높여서 부른 것으로 ~이를 뭐라고 합니까/ 바로 仁의 사람[人]으로 夷라고 한다. 이는 大弓의 뜻으로 큰 활이라는 뜻으로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도 있지만, 대궁은 피알로 하늘의 알이다 丸으로 桓의 仁人이다는 뜻으로 ~이, 사람이라는 뜻이고 나라이름으로 리[夷]로 우리를 저들, 짱고라가 동이라고 하면 이는 東方으로 전 東洋으로 오리엔탈 오리지날 랜드라는 東方입니다, 東方禮儀之國으로 方은 모 방으로 국보다는 대륙, 땅덩어리 天地로 누리입니다, 나라라고 하는 것이 우리는 맞습니다, 나라 광명누리로 빛나리 빛나라로 桓 大日로 하나입니다, 대광명이고 단은 大明으로 朝입니다, 즉 十十日이 대일로 대빛 대광명, 우주 하늘 광명이라는 녹도문의 한문으로 쓰는 제자원리입니다.
丸夷[알이 아리, 우리]로 이를 구리, 구이, 고리, 등으로 나라명에 인으로 부족, 민족칭으로 쓰나, 우리는 분명하게 桓은 피, 하늘의 한, 檀 배달로 배는 백, 박으로 밝음으로 桓의 웅의 사람으로 이를 구리라고 해도 청구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말로 나오고, 靑丘, 이렇든 구는 천지, 누리로 청구 구리는 청동구리와 같이 구리족은 구이[丸夷 九夷 句麗, 九黎] 등 이는 다 전음일 뿐이지 우리를 한문자, 향찰문자로 적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고, 아리, 알이, 환이, 뭐라고 내부적으로 "桓"으로 이는 한/하늘의 韓으로 우리는 전부 桓, 韓으로 하나가 한이지 무슨 다른 소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日本은 一로 알[丸]이고 [●]입니다. 이는 一本으로 心으로 一心은 바로 極으로 三辰으로 북신, 북두, 북극인 한가운데 極으로 이를 辰[신]으로 三辰은 삼신으로 이는 아이, 아기, 즉 아는 하늘이고 기는 삼신 기[示]라는 사실입니다.
전 동방이 동이입니다, 이를 九夷라고 하는 것은 배달나라의 제후국의 형태로, 각 지역의 이야기로, 이것이 문제가 생긴 것이 헌원이라는 자식이 西夷로 서쪽에서 즉 람족, 람국의 수밀이국에서 태호복희|씨 패망후, 여와후에, 공공, 수유족에서 밀려서, 東夷/東方으로 기어들어온 이후의 변화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 내용도 아닌 것을 개놈 사마천 사기랍시고 삼황오제론 운운하고 헌원에게 黃帝로 추존했다고 하는 것인지 내용이 조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논리가 없다, 오제는 흑제/적제/청제/백제/황제의 오제인데 이는 주역이 아닙니다, 삼신오제본기의 오제로, 이는 주역이나 중국이야기가 아닌 한국의 삼신오제본기의 10수 천수, 천부의 十승의 이야기 신화입니다, 이에 중국은 5제중 오방색이라는 오제중, 이 오제는 천하대장군이라고 정확하게 나옵니다. 장승문화중 그럼 지하여장군은 오령입니다, 즉 태수, 태화, 태목, 태금, 태토라고 오행이 떡 나옵니다, 그래서 순서도 수화목금토지 목화토금수가 아니다는 것으로 중국의 기록과 사서는 사서는 사마천의 사기에 겨우 년호를 쓴 것이고 년호, 년수법으로 공자?가 썼다는 춘추로 년대확정은 주나라 공화 원년 기원전 841년이 가장 높은 년대입니다, 주나라 연대하나 모르는 병신이 중국 200명 학자의 개소리입니다, 즉 하상주 단대공정에 주나라 건국을 기원전 1046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 알아요?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조에 "주호 즉위 기묘년 봉기자어조선"으로 고기운, 환단고기류의 고기에, 기묘년 주무왕의 즉위년은 기묘년이다, 즉 은나라 패망은 기원전 1122년이다고 나오는데 별 미친 탄소년대측정이랍시고 들이댑니다, 즉 과학적으로 유물측정한 것이라니 그러라고 합니다만, 이미 전 환단고기류의 기정사실은 주무왕은 西伯으로 1767년 기원전, 하나라 걸왕의 미친 광란으로 이를 견제하려고 "신지"씨 우량을 시켜 빈과 기 사이에 군사를 보내, 배치하고 그곳에 岐山에 국으로 제후, 거수국을 세워 지키고 이 후손이 西伯으로 시조가 우량이라고 나옵니다, 姬성으로 희 발이라고 하니, 그렇다고 하는 것으로 西伯은 西夷로 서융과는 달리, 서쪽의 이로 태호복희씨의 서토에서 온 이라는 뜻으로 西夷는 배달나라 초 제5대 포희씨 태우의천왕시 우사였던 태호 복령이 람국의 람제로 서토왕, 그 누이인 여와가 서왕모로 있다가 그 부족이 동이로 돌아온 과정의 西夷로 西戎과는 달리 西夷라고 합니다, 그 족이 西伯이라고 하는 주무왕 희 발이의 족이 나옵니다, 침 재훈의 주전공이 서주라고 하는 西夷학으로 역사라는 서쪽 오랑캐학을 한 것일 뿐 전 동양사, 즉 앞으로 이야기할 주동방의 이야기에서는 겨우 西安이라는 장안의 기어오르는 서주, 西夷의 득세는 주나라, 즉 구테타로 하국이 상국 은나라를 뒤집어엎은 천명유신으로 별 거지같은 이야기를 대단한 이야기로 놀고 있다입니다, 번한조선입니다, 즉 이미 기묘년에서는 조선은 삼한조선으로 삼한관경제로, 번한조선이 당했습니다, 그 번한조선의 최대 제후, 거수국이 은입니다, 그 은나라의 자, 아들은 왕자는 서여로 기자는 다른 아들이고 서여는 태행산으로 급히 도피하고 기자는 거부하다 조선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이숙제이 고죽국은 중국말이고 우리말은 高麗로 2자로 씁니다, 國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헷갈려합니다만 우리는 국, 고려국 이런 몰상식한 내용으로 역사서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로 기국, 즉 우량에게 岐지역에 나라를 그럼 岐라고 하고 거수국임으로 기국이라고 岐國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국역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韓은 제후국으로 삼한밖에 없습니다, 즉 마한, 번한, 신한, 마한을 맥한, 막한으로 전음으로 쓴 것이고 기본이 삼한일통 조선으로 삼한은 3개 제후국으로 단군세기 아래 [마한세가, 번한세가, 신한세가]가 있어야 하는데 신한세가가 없습니다, 즉 태자과 직영하는 단군이 직접관할하는 조정의 韓으로 태자직영의 韓으로 단군세기가 그대로 신한세가로 신한세가는 없습니다.
이는 고조선의 삼한관경제로 우선 모든 것이 시대구분을 해야만 합니다.
기원전 2,333년을 인정도 안하는 아니 못하는 모르니까, 부정하는 짱골라, 짱골라는 기원전 2333년 무진년인지, 갑진년이 왜 기원전 2,357년인지도 모르는 메이요, 짱골라지, 사서가 없는 즉 정사라고 하는 것은 겨우 기원전 109년 ~91년으로 추정되는 사마천의 사기가 최초의 중국정사로 년호를 쓴 최초의 사서고 춘추 등은 재위년수로 제왕의 재위년수로 겨우, 주나라 공화원년 기원전 841년정도가 최고로 빠른 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서, 그 이전은 전부 전설,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따라 삼천리 전설, 레젼드였다는 것. 이를 역사로 바꾼 것이 하상주 단대공정입니다.
심 재훈은 우선 고조선 단기, 단군의 건국년대를 부정하는 개똥입니다, 반한주의자로 짱골라 심나라 심씨 자손이라고 조선의 사대부양반이라고 하는데 산이 보기에는 지 뿌리도 부정한 개쌍놈의 후레자손의 씨입니다, 즉 족, 씨족이 의심스러운 짱골 西夷인으로 서양 유다, 람족의 미개인이 귀화한 西夷의 심씨로 심봉사의 후손이 아닌 것으로 별 볼일 없는 미천한 주나라 심 거수국의 쫄씨의 자손이 지 심나라 주 상국을 쳐 높이고 지랄하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1. 고조선 건국 기원전 2,333년 무진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시하여야지 쪽발이라고 부정[歪]하고는 부정의 부정을 실증해, 이미 서거정의 동국통감을 통해, 확정적 서술에 국가의 법률로 단기까지 제정한 마당에 무슨 "들어본 적도 없다"?? 개새끼가 심나라 심씨라고 간통을 쌂아먹었나? 합니다.
2. 고조선 폐관 기원전 238년입니다. 확정입니다, 수 2096년입니다.
송호정의 고조선 [? ~ 기원전 108년]은 인정이 안되는 수치로, 엿소리하려거든 교회똥통에서 피똥이나 누고 和而不同 사이비 이건 똥 糞이여 응아, 하면 됩니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위만조선은 한국역사에 편입이 안된다, 돼지코 倭鬼 위 가야가 아무리 친구건 젊은 역사학자 모임이건간에 거짓말, 고조선의 지배계급 운운하는 것은 민족의 이름으로 亡族의 개소리다. 개소리하는 것은 然하라, 肉犬은 火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다.
3. 수 1908년 기원전 425년의 의미 - 삼한관경제 붕괴 -마한, 번한, 신한조선체계 붕괴
삼한관경제의 붕괴는 명칭에서도 큰 혼란을 가져옵니다, 즉 고조선이라는 신한조선이 마한조선지지의 우화충이 기원전 426년 신한의 북부 36개군을 휩쓸고 수도를 급히 피해 장당경으로 옯기는 대란으로 반란입니다, 즉 이 이후가 바로 우화충의 목을 베고 44대 단군으로 구물단군이 즉위하는 이 시점에 중요한 점은 이미 삼한관경제가 붕괴되었으므로 [대]부여로 국호를 변경합니다.
즉 고기류에서 두가지 년수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즉 삼국유사는 수1908년은 기원전 425년까지로 수2096년으로 47대 단군까지로 기원전 238년으로 대부여기를 포함한 경우로, 夫餘는 북부여가 최초가 아닌고 부여[대부여]가 있고 북부여가 기원전 239년 해모부가 건국한 것이지, 夫餘라는 국호는 이미 기원전 425년에 개칭한 국호로 부여라고 합니다. 즉 내부적으로 이는 辰韓으로 韓은 나라이름 韓이나 삼한관경제가 붕괴되었는데 쓸 이유가 없이 夫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朝鮮이라고 알려진 번한조선은 번한, 진번 번조선 혹은 朝鮮으로 썼다는 것으로 辰國이라고 한 것은 부여의 후로 신한이라고 한 북부의 원 부여를 신한이라고 한 것으로 이는 고조선-대부여/신한/韓이고 번한조선은 번조선, 진번, 진번조선, 그냥 조선이라고 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朝鮮이라고 한 것은 기원전 425년 ~ 기원전 238년으로 그 이후로도 계속 조선이라고 하면 진번, 번한으로 북부의 부여/고조선의 내용은 '짱골라'가 모르고 있다, 왜곡한 것이다입니다.
즉 우리가 내용중에 전부 朝鮮侯라고 하니, 이게 중국의 제후라고 하나, 부여의 제후로 汗입니다, 배달임금, 임검이 檀君이다고 하니, 단군, 하고 썼다는데 아니고 천제-천왕 그리고 天君이 천손, 천제의 손이라는 뜻이고 텡구리입니다, 그리고 天干으로 天王의 아들로 天干/干이 천자입니다, 신라의 칭호에 간이 나오는 것은 天君/天干입니다, 이후 왕보다는 大王으로 대는 辰으로 辰王이 대왕 삼신왕으로 즉 삼신일체 辰王은 천군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별도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조선후는 番汗으로 이는 번한조선의 후로 신한, 부여라고 번한조선의 아래 급 韓으로 제후로 汗을 씁니다, 즉 韓侯, 朝鮮侯는 우리말로는 番汗. 眞번, 만번한 등으로 번한조선의 한, 제후로 汗으로, 짱골라 사서에는 侯라고 한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기원전 323년 기 후, 즉 기자씨 후손이 기 후가 번한조선의 汗으로 봉합니다, 그 이 후가 기자씨 후손 기 준까지 번한조선, 즉 기원전 323년 ~ 기원전 194년 위만 개새끼에게 찬탈당할 때가지를 기자씨 조선, 기자조선으로 그냥 조선으로 대부여 폐관 기원전 238년후는 조선이라고 하는 국호가 중국사서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혼선이 온 것으로 부여는 고조선 3기 기원전 425 ~ 기원전 238년으로 조선대신 부여로 번한조선이 번조선, 조선으로 불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마한조선은 이미 기원전 425년전에 붕괴되고 북막 등으로 후에 북부여, 만주/송화강일대와 요서까지의 북부여가 나오고 이는 부여에서 북부여로 이어지는 것이지 갑자기 북부여=부여라는 것은 잘못된 내용으로 전혀 관심도 없으면 껴져라고 송호정의 부여사는 초입이 전혀 거짓이고 말기로 연나부 부여란 부란 제도도 모르는 바보가 놀고 있다고 합니다, 즉 서부여 등은 고구려에 편입된 부여로 이는 특별나게 부여제국이 아니다.
즉 위만조선은 신한조선이라는 부여를 건너뛴 적도 없는 하북성으로 기어올라온 연나라 倭鬼 魏滿이라는 개놈의 새끼 왜귀 돼지코의 찬탈로 고조선? 하고는 하등의 연관이 없는 조선, 번조선, 번한의 지지에서 일어난 일개 변란입니다.
즉 부여로 개칭한 대부여 고조선 3기 기원전 435년 ~ 기원전 238년이라도, 위만조선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한사군, 한나라와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엿소리다, 후에 이를 회복하려는 고두막한과 조선의 유민이 이를 설치못하도록 방어한 것으로 이는 조선의 승리지 한나라는 기형으로 사지가 찢게 죽는 형벌과 사마천은 고자형을 받는 사건이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다 아는 사실이므로 생략하고, 흠정 사고전서의 내용을 한번 보면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欽定四庫全書, 史記卷一百十五, 朝鮮列傳苐五十五.
강역에 대한 것도,
【集解: 張晏曰, 朝鮮有濕水 洌水 汕水 三水合為洌水. 疑樂浪, 朝鮮取名於此也. 索隱: 案,朝音潮, 直驕反. 鮮音仙. 以有汕水, 故名也. 汕一音訕】
집해에서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와 열수와 산수가 있는데 이 세 강이 합하여져서 열수가 된다고 하였다. 아마도 낙랑이이 조선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여기에서인 것 같다. 색은에서 안을 내었는데 朝의 음은 조(潮)인데 죠[直驕反]로 발음된다고 하였고, 鮮의 음은 선(仙)이다. 산수(汕水)가 있기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이다. 汕의 음은 산(訕)이다.
이는 수경에도 나오는 이야기를 반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못 믿는 이유가 뭔지? 수경은 하북성의 내용으로 유주다.
도대체 뭘 보고, 한반도 평양이라고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우똥이가 병신도 만세집단이다.
[수경]
又北屈, 東南至狐奴縣, 西入于沽河.
또 북쪽으로 굽어 흐르다가 동남쪽으로 어양군 호노현(狐奴縣)에 이르러 서(남)쪽으로 고하(沽河)로 들어간다.
[수경]
濡水從塞外來, 東南過遼西令支縣北.
유수(濡水)는 새(塞) 밖으로부터 와서 동남쪽으로 흘러 요서군 령지현(令支縣) 북쪽을 지난다.
[수경]
大遼水出塞外衛白平山, 東南入塞, 過遼東襄平縣西.
대료수(大遼水)는 새(塞) 밖의 위(衛) 백평산(白平山)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흘러 새(塞)로 들어간 후 료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 서쪽을 지난다.
[수경]
又玄菟髙句麗縣有遼山小遼水所出
또한 현도군 고구려현에 료산이 있는데 소료수가 나오는 곳이다.
료산이 있으니 좌우로 료서군과 료동군이라고 한다, 료산은 현 연산을 이름한다. 그럼 끝이다, 뭔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냐고? 료산은 태행산으로 기묘년 1122년 상의 자, 아들 서여가 피신한 곳이 태행산 료산이라는 뜻이다.
즉 료동은 실제로는 태행산맥 료산산맥의 재동이고 산동성 포함하는 지역을 말하고, 작게는 현 하북성[유주]의 료산의 동쪽, 발해군이라는 곳이 고려에서는 해주로 고죽국/고려라고 나온다.
즉 고구려는 바로 하북성 유주가 중심으로 평양은 북평 壬平이라는 우북평군, 현도군, 어양군/조선의 선이고 상곡군, 탁군/탁록군, 료서군과 료동군 등은 전부 하북성이다.
고구려가 하북성을 되찾은 것은 후의 일이고 졸본부는 료동의 재서로 산서와 료서군 등 탁록군, 탁군 등 연나라 진개가 탈취한 곳이 "졸본부"라는 졸본부여지지다, 이를 왜곡하니, 고구려-위의 전투는 전면전으로 산서성과 하북성으로 하북성 북경 쟁탈전임을 알 수 있는데도 무슨 개떡 심주, 료주를 지나 길림,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가 누가? 유방의 아들 유철이? 누가/ 흉노를 뚫었냐고/ 신국은 누가? 倭鬼 돼지코 위만이?? 정말 저 위만이 고조선, 조선의 개새끼족이 맞아??? 이건 나라땅과 민족까지 팔아먹는 개새끼 귀화했으면 조용히 살기나 하라고. 어디서 좃나라 좃까 인성하고 놀고 있냐고?
倭奴보다 더 싫어한 것이 倭鬼 魏씨야, 이 개새끼 倭鬼잡종아.
위는 물론이고 광개토대왕때 전연, 후연 개후례새끼들, 백제의 북위를 개박살 낸 사실 등 연나라, 위나라와는 악연으로 아예 倭鬼, 웨이 魏라고 괜히 倭鬼라고 붙여드렸나? 얼마나 싫으면 倭鬼라고 魏라고 했겠냐고? 그것도 모르는 짱골라가 그냥 문자로 써주니 좃다고 웃겨서, 니 위가야 성이 웨이[倭鬼]라고.
문제발생; 두개의 조선과 韓이 있다.
▲ 윤내현 “고조선의 후기 강역도”(고조선 연구 상권 371쪽) |
이 그림은 고조선 후기로 즉 부여, 대부여의 지지로, 만주[송화강-눈강-흑룡강] 등 재서는 마한지지라고 하고 재동은 신한지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東夷와 西夷의 개념상실로 유주가 번한조선이라는 것만 알지, 그 아래가 중국, 연나라지역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아니다는 것으로 중화란 하남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서안 등을 西夷, 西周라는 것으로 동방의 韓 즉 신한이 존속했다 기원전 238년 대부여 폐관후, 조선을 번한조선으로 말하는데, 하북성 유주의 번한조선 망, 위만조선 등장, 그리고 마한은 이미 붕괴되어 북막/북맥으로 이에 북부여로 저러한 지지이나, 馬韓으로 국호를 정한 기 준이 청주 한씨로 한 준으로 말한 마한은 韓地에 들어갔다.
魏志云魏[73]滿擊朝鮮 朝鮮王凖率宫人左右越海而南至韓地開國號馬韓
(《삼국지》의) 〈위지〉에 이르기를, 위만이 조선을 공격하자 준왕은 궁인과 좌우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한(韓)나라 땅으로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고구려를 마한이라고 한 것은 최치원의 이야기는 "마한조선지지"라는 뜻이지 준왕의 마한이 아니다.
한지라는 韓은 있었다고 유주/하북성에서 남하했다면 그건 한반도가 아니다, 산동성으로 산동성 청주로 우리는 韓이라는 말에 대부여, 윤내현의 만주지역을 생각하는데 아니다, 倭가 갑자기 튀어나오는데 이 倭族은 양자강이남 월나라 지역으로 탐라/대만 등 남부로 우리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삼한, 마한-신한-변한/변신은 신라의 신한지지보다는 마한의 내부에 삼한으로 옛 삼한조선의 이름으로 난립한 것으로 한반도가 아닌, 중국 동부지역을 전체를 말한다는 사실로 봐야만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대륙삼국설중, 백제, 신라, 왜의 나열은 "마한'내의 韓으로 우리가 고구려-백제-신라의 구성이 윤내현의 북방과 함께 남삼한이란 바로 한반도가 아니고 대륙 동부의 산동성/ 절강성, 양자강이남으로 왜는 더 밑으로 변신한이 함께 있었다, 즉 韓-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은 재남의 경우, 이는 산동성 청주가 마한으로 신한은 그 동쪽이고 변신은 섞여서, 그리고 왜가 남쪽 남만, 오월, 탐라까지,, 그래서 후에 신라는 원 신한지지에서 고구려는 졸본은 유주/하북성 서쪽 산서성의 료서에서 백제는 마한을 멸하고 산동의 제에서 십제가 백제로 제나라를 통째로, 신라는 2개의 나라로 남신라와 동신라의 형태로 보이는 대륙 삼국이 나옵니다.
즉 마한의 등장은 전혀 다른 것으로 韓地는 번한조선의 조선의 남부 동해안 지역을 韓으로 그 지지에 한 준이 마한 54국, 신한 12국, 변신한 12국, 이는 78국으로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것으로 이는 낙랑군의 남쪽으로 후에 기원후 9년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고 백제를 즉 하남 위례성, 광주는 산동성 등 티우천왕의 청구는 번한조선/조선과 관계없이 신한조선지지로 존속하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역사왜곡도 아예 종합판으로 짱골, 쪽발, 닭대에 연해주 등 러시아, 칼맑까지 아예 육시를 당한 나라, 고조선의 후예 9한이 다시 통합된 것이 바로 삼국이다, 신라 기원전 57년, 고구려 기원전 37년, 백제 기원전 18년.. 즉 이는 백제를 위주로 본다고 해도 제나라 제주라는 산동을 중심으로 재남의 백제다는 내용으로 신라는 우리가 아는 고구려강역을 전부 포함하고 한반도까지 그 남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는 가야지지였다는 것으로 후에 백제의 도움으로 왜놈 남만족의 왜놈이 일본열도를 정복한 것이다는 결론입니다.
즉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은 전설로, 년대표가 없는데, 그 내용이 웃긴 것은 부여는 대부여를 이야기하다, 동부여로 고구려는 산서성, 하북성의 내용으로, 관구검의 고구려-위의 전쟁으로 이미 건국한 백제는 없고 삼한이랍시고, 韓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으로 이 韓은 한반도, 즉 기 준의 남하는 유주, 하북성에서 남쪽은 산동의 청주로 대륙의 중심부의 동부 전체로 마한-신한-변신은 전부 옛 신한지지로 번한조선, 조선이 아니고 신한, 韓이라고 한 지역이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나라 삼국시대도 다시 봐야한다, 즉 신라가 신한이라고 하는 것은 옛 고조선/대부여-신한조선이지 남부의 신한이 아니다, 신한이 신라로 하나로 된 것이고, 고구려는 재서고 신라는 재동이며, 백제는 재남이 어떻게 한반도에 배치가 되는가? 이미 삼국유사가 아닌 후한서에 나온 이야기다.
通典 云 朝鮮 之遺民分爲七十餘國皆地方百里 後漢書 云 西漢 以 朝鮮 舊地初置為四郡後置二府法令漸煩分爲七十八國各萬户 馬韓 在西有五十四小邑皆稱國 辰韓 吊有十二小邑稱國 卞韓 在南有十二小邑各稱國
《통전》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 남아 있는 백성은 모두 70여 나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나라 모두가 사방 백 리였다”고 했다. 《후한서》에는 말하기를, “서한(西漢, 전한前漢)이 조선의 옛 땅에 처음에는 네 군을 두었다가 후에는 두 부(府)를 두었는데, 법령이 점점 번거로워지자 78나라로 나누게 되었고 나라가 각각 만호였다(마한은 서쪽에 있어 54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모두 나라라 불렀고, 진한은 동쪽에 있어 12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마찬가지로 각 읍을 나라라 불렀으며, 변한은 남쪽에 있어 12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각각 나라라 불렀다)”고 했다.
즉 유주 하북성만을 생각했으나, 이는 번한조선지지고, 동부, 이 곳 하북성을 포함한 마한은 산동서부로 마한은 서쪽에, 그 동쪽에는 신한, 남쪽에는 변한/변신이 그 아래에는 왜가, 즉 이는 대륙으로 전대륙의 동부와 남부로 왜는 섬이 아닌 월나라 지역이다는 것을 알아야 남삼한은 바로 대륙남쪽이다.
삼국의 정립된 후의 후한서의 이야기는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卒本州在遼東界
고구려 졸본주는 료동경계다는 것은 바로 료동은 료산/연산의 동쪽이 아닌 서로 료서에 위치하고 료동 즉 고죽국이 고려로 고려/고구려의 본거지는 료서와 녕서와 하북성 즉 요동, 요하는 遙河는 바로 황하로, 요하의 동이 遙東으로 이는 기원전 7-8세기 연나라 이야기의 중심 요하는 遙河로 황하의 동서라는 이야기입니다, 연나라는 하남이고 더 아래로는 강남에서 온 제비입니다, 즉 강역에 대한 개념이 마치 기원전에 대단한 제국으로 중국을 보는 것은 엿같은 짱골라 사관입니다, 겨우, 중화 가운데 낀 나라라는 뜻으로 전대륙을 다 먹었다는 것은 거짓으로 백제는 대륙에서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다입니다.
後漢書云卞韓在南馬韓在西辰韓吊。
변한은 변산의 한으로 백제로 재남이다, 마한 고구려는 재서다, 신한 신라는 재동이라고 후한서에는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정상 삼국의 정립이고, 마한의 한지의 삼한은 대륙이다는 것을 알고서 연구해야만 합니다, 반도설로 왜 년대표 하나 없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나부랭이가 정사인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韓은 신한지지라는 것으로 번한조선의 남쪽 대륙의 동부지역이고 왜는 대방의 남부로 양자강이남이라는 뜻으로 한반도에 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즉 이는 바로 대륙 韓으로 삼국정립전 한지에 마한, 신한, 변한/변신 그리고 왜를 왜귀가 본 것으로 적은 것입니다, 그 언어를 말하는데 현재, 신라어와도 전혀 다른 이상한 짱골라 말을 써놨는데 그러한 언어는 대륙, 오월음이다는 것으로 현재, 신라어라도, 그렇게 나라라고 하지, 만주어처럼 유사한 점이 있어야지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는 그게 신라다?? 전혀 아니다입니다.
대륙으로 쑥 들어갈 수 있다, 그건 다음단계로 우선 위만을 들먹거리는 왜귀와 뭣도 모르는 심재훈은 짱골라 역사학자지 한국사 고대사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 산
삼국지 위서 동이전 - 년대표도 없는 전설 - 대륙 삼한과 왜입니다.
韓(馬韓)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無城郭.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해 있으며, 사방 사천리이다. 세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마한'이고, 둘은 '진한'이고, 셋은 '번한'이다. '진한'은 옛날 '진국'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백성들은 토착을 하며 씨를 뿌리며 양잠을 알고, 갈포를 짓는다. 각각 장사가 있는데 큰 자는 스스로를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한다. 산과 바다사이에 흩어져 있는데, 성곽은 없다.
有<爰襄國>·<牟水國>·<桑外國>·<小石索國>·<大石索國>·<優休牟 國>·<臣 沽國>·<伯濟國>·<速盧不斯國>·<日華國>·<古誕者國>·<古離國>·<怒藍國>·<月支國>·<咨離牟盧國>·<素謂乾國>·<古爰國>·<莫盧國>·<卑離國>·<占離卑國>·<臣 國>·<支侵國>·<狗盧國>·<卑彌國>·<監奚卑離國>·<古蒲國>·<致利鞠國>·< 路國>·<兒林國>·<駟盧國>·<內卑離國>·<感奚國>·<萬盧國>·<酸卑離國>·<臼斯烏旦國>·<一離國>·<不彌國>·<支半國>·<狗素國>·<捷盧國>·<牟盧卑離國>·<臣蘇塗國>·<莫盧國>·<古臘國>·<臨素半國>·<臣雲新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一難國>·<狗奚國>·<不雲國>·<不斯 邪國>·<爰池國>·<乾馬國>·<楚離國>, 凡五十餘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臣雲遣支 報安邪 支 臣離兒不例拘邪 秦支廉之號. 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郞將〈尉·伯長.
<원양국>·<모수국>·<상외국>·<소석색국>·<대석색국>·<우휴모탁국>·<신분고국>·<백제국>·<속로불사국>·<일화국>·<고탄자국>·<고리국>·<노람국>·<월지국>·<자리모로국>·<소위건국>·<고원국>·<막로국>·<비리국>·<점리비국>·<신흔국>·<지침국>·<구로국>·<비미국>·<감해비리국>·<고포국>·<치리국국>·<염로국>·<아림국>·<사로국>·<내비리국>·<감해국>·<만로국>·<벽비리국>·<구사오단국>·<일리국>·<불미국>·<지반국>·<구소국>·<첩로국>·<모로비리국>·<신소도국>·<막로국>·<고랍국>·<임소반국>·<신운신국>·<여래비리국>·<초산도비리국>·<일난국>·<구해국>·<불운국>·<불사분사국>·<원지국>·<건마국>·<초리국>, 등 무릇 오십여 나라가 있다. 큰 나라는 만여가 정도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가 정도이다. 총 10여만 호 정도이다. '진왕'은 '월지국'을 다스린다. '신지' 혹은 '가우'를, '신운견지'라 부르는데, 안정됨을 지키고, 정도에 벗어남을 멀리하고, 신하를 받들어 주는 것과, 아이에게 베푸는것이 사됨이 없어 비교할수 없다. '진지'는 겸손한 호칭이다. 그 관직은 위나라를 따라서, '읍군', '귀의후', '중랑장', '도위', '백장'이다.
<侯準>旣僭號稱王, 爲<燕>亡人<衛滿>所攻奪,{《魏略》曰: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 不攻.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及<秦>幷天下, 使<蒙恬>築<長城>, 到<遼東>. 時<朝鮮王><否>立, 畏<秦>襲之, 略服屬<秦>, 不肯朝會. <否>死, 其子<準>立. 二十餘年而<陳>·<項>起, 天下亂, <燕>·<齊>·<趙>民愁苦, 稍稍亡往<準>, <準>乃置之於西方. 及<漢>以<盧 >爲<燕王>, <朝鮮>與<燕>界於<浿水>. 及< >反, 入<匈奴>, <燕>人<衛滿>亡命, 爲<胡>服, 東度<浿水>, 詣<準>降, 說<準>求居西界, (故)[收]中國亡命爲<朝鮮>藩屛. <準>信寵之, 拜爲博士, 賜以圭, 封之百里, 令守西邊. <滿>誘亡黨, 衆稍多, 乃詐遣人告<準>, 言<漢>兵十道至, 求入宿衛, 遂還攻<準>. <準>與<滿>戰, 不敵也.}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魏略》曰: 其子及親留在國者, 因冒姓<韓氏>. <準>王海中, 不與<朝鮮>相往來.} 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후준'이 참람되게 왕이라 칭하고, '연'나라 망명인 '위만'이 공격하여 빼앗았다. [ '위략'에서 말하길, 옛날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가 '주나라'가 약해짐을 보고, '연'이 스스로를 왕으로 높이고, 동쪽의 땅을 다스리려고 하자,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병사와 함께 '연'을 공격하여 '주'의 왕실을 높이고자 하였다. 대부 '예'가 이를 간하여, 멈추게 되고, '예'를 서쪽으로 보내어 '연'에게 말하니 '연'도 이를 그치고, 공격하지 않았다. 후에 자손들이 점점 교만해지자, '연'이 장수 '진개'를 파견하여 그 땅의 서방을 공격하여, 땅 이천여리를 취하였다. '만번한'에 이르러 경계를 삼자, '조선'이 약해지게 되었다.'진'이 천하를 아우르자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게 하였다. 이때에 '조선왕 비'가 섰다. '진'이 엄습할까를 두려워 하여 복속하여 '진'에 속하였지만, 알현하지는 않았다. '비'가 죽고 그 아들 '준'이 섰다. 이십여년후에 '진', '항'이 일어나 천하가 어지럽자, '연', '제', '조'나라 백성들이 시름하였다. 점점 '준'에게 가서 망명을 하니, '준'이 이들을 서쪽에 두었다. '한'이 '노관'을 '연왕'으로 삼자, '조선'이 '연'과의 경계를 '패수'로 삼았다. '관'이 모반하여, '흉노'로 들어가고,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호'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이에 이르러, '준'에게 항복하였다. '준'에게 서쪽 경계에 살기를 구하고, 중국망명인으로 '조선'을 지키는 병풍이 되고자 하니, '준'이 믿고 은혜를 베풀어, '박사'의 벼슬을 주고, 규를 하사하고, 백리의 땅을 봉하여 서쪽 변방을 지키는 우두머리로 하였다. '만'이 망한 무리들을 꾀여, 무리가 점점 많아지니, 이에 '준'에게 사람을 파견하여 거짓으로 고하길, '한'의 병사가 열길로 쳐들어 온다. 방비하기 위해 들어가니, 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이 '만'과 전쟁을 하는데, 대적하질 못하였다.] 그 좌우궁인들과 도망하여 바다로 들어가, '한'의 땅에 거하였다. 스스로 '한왕'이라 하였다.[위략에 말하길 그 아들이 나라에 있어, 성을 '한씨'라 하였다. '준'이 바다가운데 있은 후로 '조선'과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그 후로 끊어져 멸망하니, 지금 '한'인이 오히려 그를 제사지내는 자가 있다.
<漢>時屬<樂浪郡>, 四時朝謁.{《魏略》曰:初,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至<王莽><地皇>時, <廉斯 >爲<辰韓>右渠帥, 聞<樂浪>土地美, 人民饒樂, 亡欲來降. 出其邑落, 見田中驅雀男子一人, 其語非<韓>人. 問之, 男子曰:[我等<漢>人, 名<戶來>, 我等輩千五百人伐材木, 爲<韓>所擊得, 皆斷髮爲奴, 積三年矣.] < >曰:[我當降<漢><樂浪>, 汝欲去不?] <戶來>曰:[可.] (辰)< >因將<戶來>(來)出詣<含資縣>, 縣言郡, 郡卽以< >爲譯, 從<芩中>乘大船入<辰韓>, 逆取<戶來>. 降伴輩尙得千人, 其五百人已死. < >時曉謂<辰韓>:[ 汝還五百人. 若不者, <樂浪>當遣萬兵乘船來擊汝.] <辰韓>曰:[五百人已死, 我當出贖直耳.] 乃出<辰韓>萬五千人, <弁韓>布萬五千匹, < >收取直還. 郡表< >功義, 賜冠 ·田宅, 子孫數世, 至<安帝><延光>四年時, 故受復除.}
'한'나라 때에 '낙랑군'에 속하게 되고, 사시 조알하였다. [위략에, 처음 '우거'가 깨어지지 않았을 때 '조선'의 재상 '역계경'이 간하였지만, '우거'가 쓰지 않았다. 동쪽의 '진국'은 이때에 백성들이 따라나온자가 이천여호나 되었고, 역시 '조선'과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왕망 지황'때에 이르러, '염사착'이 '진한'의 우수거가 되었다. '낙랑'이 땅이 좋고, 백성들이 부유하다는 말을 듣고, 도망쳐 와서 항복하였다. 그 읍락에서 나와, 밭 가운데에서 참새를 쫓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말이 '한'인이 아니었다. 이에 물으니, 남자가 말하길, '우리는 '漢'인이다. 이름은 '호래'이다. 우리의 무리는 천오백명으로 나무를 베려다, '韓'인에게 붙잡여서 모두 머리를 깍이고, 종이 되었다. 삼년이나 되었다.' '염사착'이 말하길 '나는 '한의 낙랑'에 항복할 것이다. 당신도 같이 가겠는가?'하니 '호래'가 말하길 '좋다'했다. '염사착'이 '호래'와 '함자현'에 이르러, 현에서 군을 말하니, 군에서 '착'을 통역으로 삼고, '금중'으로 나아가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갔다. 역시 '호래'와 함께이다. 항복받은 무리 천명을 얻었으나, 그 오백명은 이미 죽었다. '착'이 이때 '진한'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오백명을 돌려 보내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낙랑'이 마땅히 병사 만으로 배를 타고 와서 너희를 공격할 것이다.' 하니 '진한'이 말하길 '오백인은 이미 죽었다. 나는 마땅히 재물로써 값겠다.'하고, '진한'에서 만오천명과 '변한'에서 포 만오천필이 나오니, '착'이 거두어 곧바로 돌아갔다.군에서 '착'에게 공로를 표시하고, 관책과 밭과 집을 하사하였다. 자손이 수대에 내려오다가, '안제 연광' 사년때에 옛날 복재를 받았다.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建安>中,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其俗好衣 , 下戶詣郡朝謁, 皆假衣 , 自服印綬衣 千有餘人.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忿, 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 <遵>戰死, 二郡遂滅<韓>.
'환제', 와 '영제'말에 '한예'가 강성해지자, 군현들이 능히 제도 하질 못하고, 백성들이 많이 '한국'으로 들어갔다. '건안'중에 '공손강'이 '둔유현'의 남쪽 거친땅을 나누어 '대방군'으로 삼고, '공손모', '장창'등을 보내어 유민을 모아,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쳤다. 옛 백성들이 점점 나오니, 이후로 '왜'와 '한'이 '대방'에 속하게 되었다. '경초'중에 '명제'가 비밀히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하여, 두군의 바다를 건너서, 여러 '한국'의 신지에게 읍군의 인수를 하사하고, 다음으로 읍장에게 하사하였다. 그 풍속에 옷과 두건을 좋아하는데, 하호들이 군에 조알할때에 모두 옷과 두건을 한다. 이제 하사한 옷과 두건을 한자가 천여명이나 된다. '부종사 오림'이 '낙랑'이 '한국'을 통일했다고 해서 '진한'의 팔개국을 나무어 '낙랑'에게 주었다. 통역하는데 다르고 옳음이 있어 전해지자, 신지 '첨한'이 노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이때 태수 '궁준'과 '낙랑 태수 유무'가 함께 병사로 쳤는데, '준'은 전사하고, 이군은 '한'에 멸망하게 되었다.
其俗少綱紀, 國邑雖有主帥, 邑落雜居, 不能善相制御. 無 拜之禮. 居處作草屋土室, 形如 , 其戶在上, 擧家共在中, 無長幼男女之別. 其葬有槨無棺. 不知乘牛馬, 牛馬盡於送死. 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縣頸垂耳, 不以金銀錦繡爲珍. 其人性彊勇, 魁頭露 , 如炅兵, 衣布袍, 足履革 . 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 諸年少勇健者, 皆鑿脊皮, 以大繩貫之, 又以丈許木 之, 通日 呼作力, 不以爲痛, 旣以勸作, 且以爲健.
그 풍속은 기강이 적어, 나라의 읍에 비록 주인이 있지만, 읍락에 섞여 살고, 능히 제도하거나 다스림에 능하지 못하다. 꿇어 앉아 엎드려 절하는 예의도 없다. 거처는 흙으로 만든 집에 풀로 지붕을 올리는데, 형태가 무덤과 같다. 그 문은 위로 내고, 가족이 함께 그 가운데 있다. 어른과 아이와 남녀의 구별이 없다. 그 장사는 곽은 있으나 관이 없다. 소와 말타는 것을 알지 못하여, 소나 말은 사람이 죽었을 때 보내져 쓰인다. 구슬 목걸이를 보내로 삼는데, 혹은 옷에 꾀메어 씀으로 꾸민고, 혹은 목에 매달기도 하고, 귀에 달기도 한다. 금은 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그 사람들의 성질은 강하고 용감하고, 상투를 트는데, 모양이 경병과 같다. 포로 옷을 해 입고, 신발은 가죽신을 신는다. 그 나라에 일이 있으면, 관가에서 성곽을 쌓토록 시키고, 용감하고 건강한 여러 소년들이 등가죽을 뚫어, 큰 밧줄에 이를 묶은후, 큰 나무에 붙들어 맨후 종일 지껄이며, 고함을 치며, 힘을 쓰는데, 아파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 힘쓰는 것과 건강함을 권하는 것이다.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聚歌舞, 飮酒晝夜無休. 其舞, 數十人俱起相隨, 踏地低 ,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信鬼神, 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 名之天君. 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 縣鈴鼓, 事鬼神.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好作賊. 其立蘇塗之義, 有似浮屠, 而所行善惡有異. 其北方近郡諸國差曉禮俗, 其遠處直如囚徒奴婢相聚. 無他珍寶. 禽獸草木略與中國同. 出大栗, 大如梨. 又出細尾?, 其尾皆長五尺餘. 其男子時時有文身. 又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其人差短小, 言語不與<韓>同, 皆 頭如<鮮卑>, 但衣韋, 好養牛及 . 其衣有上無下, 略如裸勢. 乘船往來, 市買<韓>中.
항상 오월 씨뿌릴때가 되면, 귀신에게 제사지내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을 춘다. 밤낮없이 쉴줄 모르고 술을 마신다. 그 춤은 수십사람이 함께 일어나 따라가면서 땅을 밟는데, 손과 발이 서로 응한다. 마디마다 아뢰는 사람이 있어, 탁무와 비슷함이 있다. 시월 농사가 끝나면 다시 이와 같이 하는데 귀신을 믿는 것이다. 나라에서 각각 천신에 제사지내는 주인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천군'이라고 한다. 또한 여러 나라 각가가에는 특별한 읍이 하나 있는데, 이를 '소도'라고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메달고, 귀신을 부린다. 여럿이서 그 가운데로 도망하면 이에 돌아오지 못한다. 도둑이 일어나기에 좋다. '소도'의 뜻은 '부거'와 비슷한테 선악을 행하는 것에는 다름이 있다. 그 북방 군과 가까운 나라들은 예의 풍속이 조금 있고, 먼 곳은 죄인과 같이 노비들과 서로 섞여 산다. 다른 보배는 없고, 짐승들과 초목들도 중국과 같다. 큰 밤이 나오는데 크기가 배만 하고, 또 꼬리가 가는 닭이 있는데, 그 꼬리가 오척이나 된다. 남자들은 때때로 문신을 한다. 또한 '주호'가 있는데, '마한'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이다. 사람들이 작고, 언어는 '한'과 같지 않으며, 곤두 함이 '선비'와 같다. 가죽옷을 입고,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고, 옷에는 위는 있지만 아래는 없어 벌거 벗은 것과 같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과 교역을 한다.
韓(辰韓)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有城柵. 其言語不與<馬韓>同,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有似秦人, 非但<燕>·<齊>之名物也. 名<樂浪>人爲阿殘; 東方人名我爲阿, 謂<樂浪>人本其殘餘人. 今有名之爲<秦韓>者. 始有六國, 稍分爲十二國.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늙은 노인이 세를 전하여 말하길 옛날 '秦'의 사역을 피하여 온 망명인이 '한국'에 왔다. '마한'이 그 동쪽땅을 나누어 주었다. 성책이 있고, 언어는 '마한'과 같지 않았다. '국'을 '방'이라 하고 '궁'을 '호'라 하고, '적'을 '구'라 하고, '행주'를 '행상'이라 하였다. 서로 불러 무리로 하니 '秦'나라 사람과 같음이 있으니, 단지 '연'과 '제'의 사물의 명칭뿐이 아니다. '낙랑'사람을 '아잔'이라 하고 동쪽 사람을 '아'라고 하는데, '낙랑'사람은 본래 그 남은 세력이다. 이제 그 이름을 '진한'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육국이었는데, 점점 나누어져 열두나라가 되었다.
韓(弁辰)
<弁辰>亦十二國, 又有諸小別邑, 各有渠帥, 大者名臣智, 其次有險側, 次有樊濊, 次有殺奚, 次有邑借. 有<已 國>·<不斯國>·<弁辰彌離彌凍國>·<弁辰接塗國>·<勤耆國>·<難彌離彌凍國>·<弁辰古資彌凍國>·<弁辰古淳是國>·< 奚國>·<弁辰半路國>·<弁[辰]樂奴國>·<軍彌國(弁軍彌國)>·<弁辰彌烏邪馬國>·<如湛國>·<弁辰甘路國>·<戶路國>·<州鮮國(馬延國)>·<弁辰狗邪國>·<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馬延國)>·<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弁>·<辰韓>合二十四國, 大國四五千家, 小國六七百家, 總四五萬戶.
'변진' 역시 열두나라이다. 역시 여러개의 작은 별읍이 있다. 각각 거사가 있으니 큰 자의 이름은 '신지'이고 다음은 '험측'이라 하고, 다음은 '번예'라 하고 다음은 '살해', 다음은 '읍차'라 한다. <이저국>·<불사국>·<변진미리미동국>·<변진접도국>·<근기국>·<난미리미동국>·<변진고자미동국>·<변진고순시국>·<염해국>·<변진반로국>·<변진악노국>·<군미국(변군미국)>·<변진미오사마국>·<여담국>·<변진감로국>·<호로국>·<주선국(마연국)>·<변진구사국>·<변진주조마국>·<변진안사국(마연국)>·<변진독로국>·<사로국>·<우유국>이니 '번', '진한'을 합쳐 이십사개국이다. 큰 나라는 사오천가를 이루고 작은 나라는 육칠백가를 이룬다. 총 사오만호이다.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魏略》曰: 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 土地肥美, 宜種五穀及稻, 曉蠶桑, 作 布, 乘駕牛馬. 嫁娶禮俗, 男女有別.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魏略》曰:其國作屋, 橫累木爲之, 有似牢獄也.}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俗喜歌舞飮酒. 有瑟, 其形似筑, 彈之亦有音曲. 兒生, 便以石厭其頭, 欲其 . 今<辰韓>人皆 頭. 男女近倭, 亦文身. 便步戰, 兵仗與<馬韓>同. 其俗, 行者相逢, 皆住讓路.
그 열두 나라는 '진왕'에 속하는데 '진왕'은 항상 '마한'사람이 하여, 대대로 잇는다. '진왕'은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위략에 말하길 밝음이 이주민에게 있어 고로 마한의 제도가 되었다.] 땅은 좋고, 오곡과 벼에 알맞으며, 양잠과 겸포를 하고, 소나 말을 탄다. 결혼하는데 예절이 있으며 남녀는 구별이 있다. 큰 새의 깃털로 장사지내는데, 그 뜻은 죽은자가 날아 오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위략에 그 나라는 집을 지을 때 나무를 가로로 얽어 매는데 감옥과 비슷하다.] 나라에 철이 나오고, '한','예','왜',가 모두 이를 가져다 썼다. 저자에서 돈을 사용함이 중국의 돈사용과 같아, 두군에서도 넉넉히 사용하였다. 풍속에 노래하고, 춤추고, 음주함을 즐긴다. 거문고가 있는데, 모양이 '축'과 비슷하고, 연주하면, 역시 소리와 곡률이 있다. 아이나 태어나면 돌로 그 머리를 눌르는데, 머리를 모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진한'사람이 모두 '편두'이다. '왜국'과 가까워 남녀가 모두 문신을 한다. 보병전을 하고 병사의 무기는 '마한'과 같다. 풍속에 길가던 사람이 서로 만나면, 모두 길을 비켜준다.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 祠祭鬼神有異, 施 皆在戶西. 其<瀆盧國>與<倭>接界. 十二國亦有王, 其人形皆大. 衣服 淸, 長髮. 亦作廣幅細布. 法俗特嚴峻.
'변진'은 '진한'과 섞여 산다. 역시 성곽이 있으며,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과 풍속은 서로 유사함이 있으나, 귀신에 제사함은 다른데, 부엌신을 문에서 서쪽에 두는 것이다. '독노국'은 '왜'와 접해 있다. 열두나라역시 왕이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크다. 의복은 정결하고, 머리를 길른다. 역시 폭이 넓은 가드다란 포를 짓고, 법과 풍속은 특히 엄하다.
倭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依山島爲國邑. 舊百餘國, <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其大官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所居絶島, 方可四百餘里, 土地山險, 多深林, 道路如禽鹿徑. 有千餘戶, 無良田, 食海物自活, 乘船南北市 . 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 官亦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方可三百里, 多竹木叢林, 有三千許家, 差有田地, 耕田猶不足食, 亦南北市 .
'왜'인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고, 산과 섬을 의지하여 나라의 읍이 있다. 예로부터 백여개의 나라가 있어, '한'나라 때에는 알현하는 자가 있었다. 이제 그 역관이 통하는 곳이 삼십나라이다. 군에서 나아가 '왜'에 이르는데, 물로 가서 해안을 따라 돌면 '한국'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가면 '구사한국'의 북쪽에 이르러 거리가, 칠천여리나 된다. 처음 하나의 바다를 건여 천여리에 '대마도'에 이른다. 그 큰 관리를 '비구'라 하고, 부관을 '비노모리'라 한다. 떨어진 섬에 거주하는데, 거리가 사백여리이다. 땅은 산이 험하고 깊은 숲이 많고, 도로는 짐승이 다니는 길과 같다. 호수는 천여호이고 좋은 밭은 없어, 바다에서 나오는 것을 먹어 스스로 생활하며 배를 타고 남북으로 다니며 쌀을 사들인다. 또 남으로 바다 건너 천여리에 일명 '한해'를 건너면 큰 나라가 하나 있는데, 역시 관리를 '비구'라 하고 부관을 '비노모리'라 한다. 사방 삼백리이며, 대나무와 나무가 모여 많은 산림을 이루니, 삼천가정도가 있으며 차이는 밭이 있어 밭을 경작하는데 부족함이 있어 역시 남북으로 쌀을 사들인다.
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有四千餘戶, 濱山海居, 草木茂盛, 行不見前人. 好捕魚鰒, 水無深淺, 皆沈沒取之. 東南陸行五百里, 到<伊都國>, 官曰爾支, 副曰泄謨 ·柄渠 . 有千餘戶, 世有王, 皆統屬<女王國>, 郡使往來常所駐. 東南至<奴國>百里, 官曰 馬 , 副曰卑奴母離, 有二萬餘戶. 東行至<不彌國>百里, 官曰多模, 副曰卑奴母離, 有千餘家. 南至<投馬國>, 水行二十日, 官曰彌彌, 副曰彌彌那利, 可五萬餘戶. 南至<邪馬壹國>, 女王之所都, 水行十日, 陸行一月. 官有伊支馬, 次曰彌馬升, 次曰彌馬獲支, 次曰奴佳 , 可七萬餘戶. 自<女王國>以北, 其戶數道里可得略載, 其餘旁國遠絶, 不可得詳.
또 바다를 건너, 천여리에 '말노국'에 이르는데 사천여호가 있으며, 산기슭의 바다에 거처한다. 초목이 너무 우거져, 길을 갈 때 앞사람을 볼수가 없을 정도이다. 물고기와 전복을 잡기를 좋아하는데 물이 깊이 않고 얕아 자맥질하여 이를 잡는다. 동남쪽 육지를 따라 오백리에 '이도국'이 있는데, 관리를 '이지'라 부르고, 부관을 '설모고', '병모고'라 부른다. 천여호가 있으며, 세세토록 왕이 있는데 모두 '여왕국'에 속해 있어, 고을에 사신이 왕래하고, 항상 머물러 있다. 동남으로 백리에 '노국'이 있는데 관리를 '시마고' 부관을 '비노모리'리 부르는데, 호수가 이만여호이다. 동쪽으로 백리에는 '불미국'이 있어, 관리를 '다모'라 하고 부관을 '비노모리'라 부르며, 호수는 천여가이다. 남쪽으로 '투마국'이 있어 물로 이십일을 간다. 관리를 '미미'라 하고, 부관을 '미미나리'라 부르는데, 가히 오만여호이다. 남쪽으로 '사마대국'이 잇어 여왕이 거하는 도읍으로 물로 십일을 가고 육지로는 한달이 걸린다. 관리를 '이지마'라 하고 다음을 '미마승', 다음을 '미마획지', 다음을 '노가제'라 하니 가히 칠만여호이다. 이 '여왕국'의 북쪽에 있는 나라의 호수와 길를 가히 얻어 기록한 것인데 그 나머지 주변의 나라는 너무 멀어 끊어져 가히 자세히 얻을 수가 없었다.
次有<斯馬國>, 次有<已百支國>, 次有<伊邪國>, 次有<都支國>, 次有<彌奴國>, 次有<好古都國>, 次有<不呼國>, 次有<姐奴國>, 次有<對蘇國>, 次有<蘇奴國>, 次有<呼邑國>, 次有<華奴蘇奴國>, 次有<鬼國>, 次有<爲吾國>, 次有<鬼奴國>, 次有<邪馬國>, 次有<躬臣國>, 次有<邑利國>, 次有<支惟國>, 次有<烏奴國>, 次有<奴國>, 此女王境界所盡. 其南有<狗奴國>, 男子爲王, 其官有狗古智卑狗, 不屬女王. 自郡至<女王國>萬二千餘里.
다음에 <사마국>, <이백지국>, <이사국>, <도지국>, <미노국>, <호고도국>, <불호국>, <저노국>, <대소국>, <소노국>, <호읍국>, <화노소노국>, <귀국>, <위오국>, <귀노국>, <사마국>, <궁신국>, <읍리국>, <지유국>, <오노국>, <노국>,이 있는데, 이 여왕을 경계의 끝이다. 남쪽에 '구노국'이 있는데, 남자가 왕을 하고, 관리를 '구고지비구'라 하는데, 여왕에 속해 있지 않다. 이 군은 '여왕국'에서 만 이천여리나 된다.
男子無大小皆 面文身. 自古以來, 其使詣中國, 皆自稱大夫. <夏后><少康>之子封於<會稽>, 斷髮文身以避蛟龍之害. 今<倭>水人好沈沒捕魚蛤, 文身亦以厭大魚水禽, 後稍以爲飾. 諸國文身各異, 或左或右, 或大或小, 尊卑有差. 計其道里, 當在<會稽>·<東冶>之東. 其風俗不淫, 男子皆露 , 以木 招頭. 其衣橫幅, 但結束相連, 略無縫. 婦人被髮屈 , 作衣如單被, 穿其中央, 貫頭衣之.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竹箭或鐵鏃或骨鏃, 所有無與< 耳>·<朱崖>同.
남자들은 애 어른 없이 모두 얼굴에 문신을 하는데, 예로 내려온 것이다. 사신이 중국에 이르러 스스로를 대부라 칭하였다. '하후 소강'의 아들을 '회계'에 봉하였는데, 머리를 깍고 문신을 함으로써 교룡의 해를 피하였다. 이제 '왜'의 사람들이 자맥질하여 물고기와 조개잡기를 좋아하니 문신으로 큰 물고기와 바닷짐승이 싫어하게 하여 후에 점점 꾸미게 된 것이다. 여러 나라의 문신은 각각 다르다. 혹은 왼쪽에 있고, 혹은 오른쪽에, 크고 자고, 신분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 그 길을 계산하는데 마땅히 '회계'와 '동치'의 동쪽에 있다. 그 풍속은 음란하지 않고, 남자들은 모두 상투를 틀고 무명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 옷은 다만 가로로 하여 서로 연결하여 동여메는데 바느질 하지 않는다. 부인들도 머리를 올려 묶고, 통채로 옷을 지어 중앙에 구멍을 뚫고 머리부터 옷을 입는다. 벼가 있고, 모시 삼 양잠이 있어 길쌈하고, 가는 모시와 비단이 있고, 그 땅에 소와 말, 호랑이, 돼지, 양, 까치가 없다. 병기로 창과 방패, 나무활을 쓰고, 목궁은 아래는 짧고 위가 길다. 대나무로 화살에 쇠나 혹은 뼈로 화살촉을 하기도 하는데, '담이'와 '주애'와 같이 있고 없음에 있는 것이다.
<倭>地溫暖, 冬夏食生菜, 皆徒跣. 有屋室, 父母兄弟臥息異處, 以朱丹塗其身體, 如中國用粉也. 食飮用 豆, 手食. 其死, 有棺無槨, 封土作 . 始死停喪十餘日, 當時不食肉, 喪主哭泣, 他人就歌舞飮酒. 已葬, 擧家詣水中 浴, 以如練沐. 其行來渡海詣中國, 使一人, 不梳頭, 不去 蝨, 衣服垢汚, 不食肉, 不近婦人, 如喪人, 名之爲持衰. 若行者吉善, 共顧其生口財物; 若有疾病, 遭暴害, 便欲殺之, 謂其持衰不謹. 出眞珠·靑玉.
'왜'의 땅은 따뜻하여 겨울에도 여름음식과 반찬이 나오며, 모두 맨발이다. 집이 있어 부모형제가 함께 거하지만 거처는 다르다. 붉은색 진흙같은 것을 몸에 바르는데, 중국의 분가루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음식을 하는데는 '변두'를 사용하고 손으로 밥을 먹는다. 사람이 죽으면 관이 있느나 곽은 없이 흙으로 무덤을 만든다. 처음 사람이 죽흐며 십여일을 상을 치루는데 마땅히 이때고기를 먹지 않고 상주는 곡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장사를 마치면, 집안이 모두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연욕'과 같다. 사신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에 갈때는 한 사람이 머리에 빗질하지 않고, 이나 서캐도 잡지 않고, 의복은 더럽게 하고, 고기도 먹지 않고, 부인과 가까이 하지 않으니 상을 치루는 사람과 같다. 이를 '지쇠'라고 한다. 만일 길을 가는 자가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재물을 그 사람에게 주고, 만일 질병이 있거나, 나쁜해를 당하면 이를 죽일려고 하는데, '지쇠'가 삼가지 않았다고 그런 것이다. 진주와 푸른옥이 나온다.
其山有丹, 其木有 · ·豫樟· ·投 ·烏號·楓香, 其竹篠 ·桃支. 有薑·橘·椒· 荷, 不知以爲滋味. 有 ·黑雉. 其俗擧事行來, 有所云爲, 輒灼骨而卜, 以占吉凶, 先告所卜, 其辭如令龜法, 視火坼占兆. 其會同坐起, 父子男女無別, 人性嗜酒.{《魏略》曰:其俗不知正歲四節, 但計春耕秋收爲年紀.} 見大人所敬, 但搏手以當 拜. 其人壽考, 或百年, 或八九十年. 其俗, 國大人皆四五婦, 下戶或二三婦. 婦人不淫, 不妬忌. 不盜竊, 少諍訟. 其犯法, 輕者沒其妻子, 重者滅其門戶 及宗族 尊卑各有差序, 足相臣服. 收租賦. 有邸閣.
산에는 단사가 있는데, 그 나무로는 남·저·예장·유력·투강·오호·풍향 등이 있고, 대나무로는 가는대와 조지가 난다. 생강과 귤, 산초나무와 양화가 있지만, 맛을 보태는 것인줄 알지 못한다. 원숭이 와 검은 꿩이 있다. 그 풍속에 일이 있으면 이르는 곳이 있는데, 뼈를 불살라 점을 치는 것이다. 길흉을 점칠 때 먼저 점치는 곳에 고하는데 그 법이 거북점과 같다. 불이 터지는 것을 보아서 점을 치는 것이다. 모임에서 앉아서 하는데, 부자와 남녀의 차이가 없다. 사람들 성질에 술을 즐긴다. [위략에 그 풍속에 정확히 해와 사절기를 알지 못한다. 다만 봄에 밭갈고 가을에 거두는 것으로 그 해의 기준으로 삼는다] 어른에게 공경을 보이는 것은 단지 손을 잡고 꿇어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수명은 혹은 백살이요 혹은 팔구십살이다. 풍속에 나라의 어른들은 모두 사오명의 부인이 있는데, 하호들도 혹 이삼명의 부인이 있다. 부인은 음란하지 않고, 투기 하지 않는다. 도둑이 없고, 송사가 적다. 법을 범하면 가벼운자는 그 처자를 죽이고, 무거운 자는 그 집안에서 종족까지 멸한다. 높고 낮음에 차이가 있으니, 복종해야 한다. 세금을 거두고, 문설주가 있다.
國國有市, 交易有無, 使<大倭>監之. 自<女王國>以北, 特置一大率, 檢察諸國, 諸國畏憚之. 常治<伊都國>, 於國中有如刺史. 王遣使詣京都·<帶方郡>·諸<韓國>, 及郡使<倭國>, 皆臨津搜露, 傳送文書賜遺之物詣女王, 不得差錯. 下戶與大人相逢道路, 逡巡入草; 傳辭說事, 或 或 , 兩手據地, 爲之恭敬. 對應聲曰噫, 比如然諾.
나라에 시장이 있어 교역이 있는데 '대왜'가 이를 관리한다. '여왕국'의 북쪽에 특별히 큰 기관하나를 두는데, 여러 나라를 살피는 것으로 여러나라들이 이를 두려워 하고 꺼린다. '이도국'을 다스리는데 나라 중앙에 자사와 같은 것을 항상둔다. 왕이 경도나 '대방군' 여러 '한국'과 '왜국'의 군에 사신을 보내어 여왕에게 하사하는 물건과 문서를 보내와 전하는데, 섞임이 없었다. 하호들이 길에서 대인을 만나면 뒷것을질쳐 풀속에 들어간다. 전하는 말로 혹은 웅크리고 있거나 엎드려있는데 양손을 땅에 댄어 공경을 나타낸다. 대답할때는 '아' 그러는데 이것은 그렇다는 것이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
그 나라는 본래 역시 남자가 왕이었다. 칠팔십년후에 '왜국'에 난이 이서 서로 공격하고 벌하며 지내다가 함께 여자를 왕으로 세웠다. 일명 '비미호'로 귀신을 부리고 능히 백성을 미혹게 하여 이미 성인인데도 남편이 없다. 남자 동생이 있어 나라를 다스림을 도왔다. 왕으로써 왔는데 보았다는 사람은 적다. 여자종 수천이 시중드는데도 오직 남자 한명이 음식을 대고, 나고들면서 말을 전한다. 거처하는 궁실과 누각과 성책은 엄하게 만들었고, 항상 병사로써 지키고 있다.
<女王國>東渡海千餘里, 復有國, 皆<倭>種. 又有<侏儒國>在其南, 人長三四尺, 去女王四千餘里. 又有<裸國>·<黑齒國>復在其東南, 船行一年可至. 參問<倭>地, 絶在海中洲島之上, 或絶或連, 周旋可五千餘里.
'여왕국'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천여리에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의 종류이다. 또한 그 남쪽에 '주유국'이 있는데 사람들의 키가 삼사척으로 '여왕국'에서 사천여리이다. 또한 '나국'과 '흑치국'이 그 나라 동남쪽에 있는데 배로 일년을 가야 이른다. 모두 '왜'의 땅으로 바다 가운데에 섬으로 끊어져 있고 혹은 연해 있기도 하니 사방 가히 오천리이다.
<景初>二年六月,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 求詣天子朝獻, 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其年十二月, 詔書報<倭女王>曰: [制詔<親魏倭王><卑彌呼>: <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市牛利> 奉汝所獻男生口四人, 女生口六人, 班布二匹二丈, 以到. 汝所在踰遠, 乃遣使貢獻, 是汝之忠孝, 我甚哀汝. 今以汝爲<親魏倭王>, 假金印紫綬, 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 其綏撫種人, 勉爲孝順. 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 道路勤勞, 今以<難升米>爲率善中郞將, <牛利>爲率善校尉, 假銀印靑綬, 引見勞賜遣還.
'경초'이년 유월 '왜여왕'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군에 이르러, 천자에게 조헌하기를 구하자 태수 '유하'가 서울에 사신을 보냈다. 그해 십이월 조서를 내려 '왜여왕'에게 말하길 ' '친위왜왕 비미호' '대방태수 유하'가 당신이의 대부 '난승미'와 다음사신'도시우리'를 보내와 남자 4명과 여자 육명, 포 두필이장을 받치니 이에 이르렀다. 당신이 있는 곳이 먼데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치니 당신의 충효가 이와 같아, 내가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당신을 '친위왜왕'을 삼는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인과 붉은 빛 인끈을 봉해서 '대방태수' 에게 보내는 것이니, 당신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힘써 효도하고 잘 순종하도록 하라. 당신이 보낸 사신 '난승미'와 '도시우리'는 길이 먼데 수고가 많았기로, 이제 '난승미'를 솔선중랑장을 삼고, '우리'를 솔선교위를 삼아 은으로 만든 인과 푸른 인끈을 주고 불러 보고 위로한 다음 돌려 보내는 바이다.
今以絳地交龍錦五匹· {臣<松之>以爲地應爲 , <漢><文帝>著 衣謂之 是也. 此字不體, 非<魏朝>之失, 則傳寫者誤也.}絳地 粟 十張· 絳五十匹·紺靑五十匹, 答汝所獻貢直. 又特賜汝紺地句文錦三匹·細班華 五張·白絹五十匹·金八兩·五尺刀二口◇鏡百枚·眞珠·鉛丹各五十斤, 皆裝封付<難升米>·<牛利>還到錄受. 悉可以示汝國中人, 使知國家哀汝, 故鄭重賜汝好物也.]
그리고 강지교룡금 오필과 [ 신하'송지'가, 땅에 비단을 상응하게 한 것은 '한 문제'가 검은옷 입은것과, 두터운 비단을 취한것을 말했으니,이것이다. 이 글귀가 없는것은 위나라때 빠뜨린것이 아니라, 이전에,베껴쓰던 자들의 착오이다], 강지추속계 십장, 청강 오십필, 감청 오십필을 주어 당신이 받친 공물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또 특별히 너에게 감지구문금 삼필과 새반화계 오장, 백견 오십필, 금 팔냥, 오척도 두자루, 동경 일백 매, 진주와 공단 각 오십근씩을 모두 포장하여 '난승미'와 '우리'에게 주어 돌려 보내는 터이니, 너희는 이를 갖다가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여 주어서 우리 나라가 너희를 아끼는 뜻을 알게 하도록하라. 그래서 정중하게 이같은 좋은 물건을 너희에게 하사하는 바이다] 했다.
<正始>元年, 太守<弓遵>遣建忠校尉<梯儁>等奉詔書印綬詣<倭國>, 拜假<倭王>, 幷齎詔賜金·帛·錦 ·刀·鏡·采物, <倭王>因使上表答謝恩詔. 其四年, <倭王>復遣使大夫<伊聲耆>·<掖邪狗>等八人, 上獻生口·倭錦·絳靑 · 衣·帛布·丹木· ·短弓矢. <掖邪狗>等壹拜率善中郞將印綬. 其六年, 詔賜<倭><難升米>黃幢, 付郡假授. 其八年, 太守<王 >到官. <倭女王><卑彌呼>與<狗奴國>男王<卑彌弓呼>素不和, 遣<倭><載斯>·<烏越>等詣郡說相攻擊狀.
'정시' 원년 '태수 궁준'이 건중교위 '제휴'등을 보내서 조서와 인수를 가지고 왜국에 가서 '왜왕'에게 절하고, 아울러 금백과 금계, 도경, 채물 등을 하사하였다. 이에 '왜왕'은 표문을 올려 조서와 물건을 내린 은혜에 회답해 왔다. 사년에 '왜왕'은 다시 사신으로 대부 '이성기'와 '액사구' 등 팔인을 보내서 포로 몇 명과 왜금, 강청, 겸금, 의백, 포단, 목부, 단궁시 등을 바쳐 왔다. 이에 '액사구' 등에게 한결같이 솔선중랑장의 벼슬을 주고 인수를 주었다. 육년에 조서를 내려 '왜국'의 '난두미'에게 황기를 주고, 부군을 주었다. 팔년에는 태수 '왕기'가 와서 보고하기를, '왜국의 여왕 비미호'와 '구노국'의 남왕 '비미궁호소' 사이에 불화해서 '왜국'에서는 '재사', '오월' 등을 보내서 그들의 서로 공격하는 모양을 보고했다고 한다.
遣塞曹 史<張政>等因齎詔書·黃幢, 拜假<難升米>爲檄告喩之. <卑彌呼>以死, 大作 , 徑百餘步, 葬者奴婢百餘人. 更立男王, 國中不服, 更相誅殺, 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壹與>, 年十三爲王, 國中遂定. <政>等以檄告喩<壹與>, <壹與>遣<倭>大夫率善中郞將<掖邪狗>等二十人送<政>等還, 因詣臺, 獻上男女生口三十人, 貢白珠五千, 孔靑大句珠二枚, 異文雜錦二十匹.
이에 중국에서는 색조연사 '장정'등을 보내서 조서와 황기를 내려 '난승미'에게 벼슬을 주고 화친하도록 타일렀다. '비미호'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어 직경이 백여 보나 되게 한 다음 여기에 노비 백여 명을 순장했다. 뒤를 이어 다시 남왕을 세웠으나, 온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복종하지 않고 저희끼리 서로 죽이고 싸워서 이 때 죽은 사람만도 천여 명이나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비미호'의 일가 딸이 되는 '대여'를 세웠다. 이 때 대여의 나이는 겨우 십삼세였는데 비로소 나라안의 인심이 정해졌다. '정' 등이 '대여'를 타이르는 글을 보냈더니, '대여'는 '왜국'의 대부 솔선중랑장 '액사구' 등 삼십명을 '정'에게 보내 와서 뵙고 포로 삼십명과 흰 구슬 오십덩이, 청대구주 두장, 이문잡금 이십필을 바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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