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란 말만 들어도 작은 설렘이 파문을 일으킨다. 얼마나 따뜻한 단어인가. 어린아이를 보거나 풋풋한 선남선녀의 가슴 뛰는 사랑의 시작을 보면서도 봄을 떠올리며 웃음 짓게 된다. 그러기에 봄은 새로움, 신선함,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 계절이나 인생사나 겨울이 무르익어야 봄이 다가온다는 순리를 알기에 추위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품고 믿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월동의 씨앗처럼 잠자고 있는 묵은 봄을 마주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가끔 부부끼리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씩 기울이며 새로울 것도 없는 옛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으로 만나는 해묵은 친구가 있다. 남편 후배지만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집안 사정도 알고 있어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이다. 때로는 싱거운 농담으로 쌓였던 마음 속 응어리도 풀어낼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자주 만나던 여러 모임이 모두 끊기며 남편 지병도 더 심해지고 나도 수발에 지쳐가던 어느 날 그 부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럿이 만나는 건 금지 되어 있으니 넷이 만나 술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대충 준비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술이 몇 잔 들어가니 그 부인이 웃으면서 - 형님,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 줄까요? 이 얘기 형님 글에 써도 돼요. 허락해 줄게요- 한다.
그녀는 이십여 년째 연천에서 친정어머니와 식당을 하고 있어서 남편과 별거 아닌 별거 중이었다. 마침 가게 리모델링을 하느라고 집에 와 있는데 쏠쏠한 부업거리가 생겼다고 자랑을 했다. 아침마다 남편이 샤워하고 나오면 물기를 닦아주고 속옷을 갈아 입혀주면 남편이 출근해서 통장으로 만원을 입금해 준단다. 나 보고도 한 번 해 보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어려웠던 속사정을 알기에 다소 민망한 이야기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반월신도시가 생기면서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안고 모여들었다. 그때 우리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궁여지책으로 새로운 곳에 자리 잡고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안산으로 오게 되었다. 반월공단이 문을 열고 첫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공단 직원들의 기숙사로 쓰이게 되었다. 공장 직원들은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이었고 밤마다 술 마시고 패싸움이 벌어져서 각목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흉흉한 광경을 연출하였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몇몇 회사 책임자들과 주택공사 직원들, 주변 상인들이 모여서 회사 간 친목회를 만들게 되었고 몇 개의 조기축구회도 결성되었다. 벌써 40 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안산 공업단지 발전의 증인인 셈이다.
남편 후배는 180cm가 넘는 후리후리한 키와 훈훈한 외모에 번듯한 직장까지 다니고 있었으며 술값도 언제나 자기가 내야하는 성격이라 친구간이나 술집에서나 늘 왕처럼 대우를 받았다. 본인은 즐거웠겠지만 집안 살림에 아이들 돌보며 남편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월급은 정해져 있는데 흥청망청 쓰고 다녔으니 생활비를 제대로 갖다 주었을 리 없었다. 어느 날은 잠깐 들렀더니 부엌 바닥에 만들다 만 만두 쟁반이 패대기쳐져 있었다. 아무리 해도 말릴 수 없는 남편의 행동을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한여름이었는데도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단골로 다니던 룸살롱 마담과 바람이 난 것이다. 그 여자는 자기들의 관계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남자 친구들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선물을 돌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남자의 옷을 맞춰 입혔다. 속없는 주변 남자들은 은근히 남자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해진 수순이었겠지만 그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은 동업으로 술집을 차리고 여자가 관리를 맡아하면서 뒤로 돈을 빼 돌리고 남자 이름으로 대출까지 받아 종적을 감춰버렸다. 결국 남자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설상가상으로 월급 압류가 들어오고 회사에서 알게 되면서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다. 관사로 쓰던 집에서 나와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남자의 외모는 작은 집에 적응을 못했다. 발은 문 밖으로 내놓고 자야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 가정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외도로 한번 무너진 마음에 더해 편히 쉴 집마저 온데간데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어떤 결정을 해도 남편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아이들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남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어서였는지 본인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이어졌을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는 가슴 치는 아픔으로 눈물 흘린 일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 후 남자는 변변치 않은 직장을 여러 번 옮겨 다녔고 아내는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식당을 몇 년 운영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 후로도 남자는 사실인지 소문인지 모를 외도로 아내의 마음에 크고 작은 몇 개의 생채기를 더 냈다. 아내는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 친정어머니가 하는 식당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별거를 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생활에 참견을 안 하니 평화가 찾아왔다. 남자는 혼자 안산에서 작은 빌딩 관리소장을 하며 전공을 살려 스포츠 댄스를 배우러 다니더니 콜라텍 누님들에게 인기쟁이가 되었다고 자랑이다. 그래도 아내가 오는 날은 가만히 앉혀놓고 밥 해 먹이고 속옷 빨래 해 주려고 아기사랑 세탁기도 샀단다. 목욕도 시켜주고 싶은데 말을 안 듣는다고 투덜거린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 황혼을 맞은 사람들의 생존법이자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항상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분란을 일으키고 갈등을 불러온다. 나 역시도 이제는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평온하다. 내가 돌봐줘야 하는 사람. 아무 탈 없이 하루를 살아 낸 것이 고마운 사람. 언제부턴가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남편. 그들도 그런 사이가 된 것이 아닐까.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가게는 새 단장이 끝나 부부가 티격태격하며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만날 수 없지만 오래 전에 끝나버린 것 같던 그들의 봄이 다시 이어진 것 같아 감사하고 기쁘다. 모진 겨울을 슬기롭게 견뎌낸 그녀의 묵혀 두었던 봄날이 보송보송하게 봄볕에 말라 따뜻하고 살갑게 누릴 수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곁에서 오래 지켜볼 것이다.
첫댓글 자녀 낳고 산 부부의 정이란게 요상하지요 때로는 이해도 안되는데 그래도 그렇게 또 살아가는 거.
요즘 세대는 어림없는 얘기일거 같아요~~
맞아요.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그런 부분이 있지요 ㅎ
해피엔딩 이라 맘 놓이네요. 숨쉴틈을 안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부부의 생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