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
곽경덕
무청 밑으로 내민 종아리가 보인다
바람이 키우기는 했어도
아직 바람이 들지는 않았다
속은 가득 차 있으나 속없는 이름을 가져
무우로 늘려 불리며 밭은 안개비로 가득 찬다
뼈도 없고 씨도 없는, 다 벗겨도 살덩이 뿐
지난 날 말리려 햇살 안고 서있다
고랭지(高冷地) 무럭무럭 밀치고 올라와
산채로 뽑혀 누었다
밭이 밀어낸다 살덩이로 먼저 걸어 나가고
치렁한 머리칼 처마 끝에 목을 매달 때
스스로 마당에 늘어선 그림자까지
버릴 몸 하나 없이 다 주고 간다
코스모스의 저녁
마음은 지워져도 몸이 잊지를 않아
나는 다시 피었으나 피었던 곳에 피고
가던 길을 가게 되고 보던 얼굴들 보게 된다
버릇이 뿌리를 내려 저절로 피어나고
덧없이 되풀이 되어 스스로 굳어진다
굳어진 버릇은 속은 바꾸어도 몸을 바꾸지 못한다
몸에 길을 내고 길에 길들여져
수천 개의 다른 내가 길가에 뿌려져 있다
길을 만들고 길을 흔들고 있다
얼굴빛은 다 다르나 생김새는 다 해를 닮아
저녁 하늘 어둑어둑 나를 길들이려 오면
수천 개의 같은 내가 끝없이 흔들린다
나의 몸은 달빛에 그림자로 길을 내는데
얼굴을 팔아 마음을 사는 가시 돋친 꽃들아
너희는 스스로의 흔들림으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느냐
곽경덕
2015년 등단 <시와산문> 시집 「나는 밤마다 연을 날린다」 <시와 산문사 >,동인지 「시의밭」 (2017. 2018)
<시와산문사>2021년 겨울호 시인 조명 ,용인문학회회원